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4:49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를 둘러싼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반발은 이미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이 문제로 인해 중일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려 있고, 우리와도 상당히 불편한 관계에 있다. 특히 이번 달로 예정되어 있던 한일간 정상회담 역시 여느니 마느니 하면서 한동안 설왕설래하다가 결국은 오는 20일 서울에서 열기로 합의한 것으로 한일 양국 정부가 어제 발표했다.
 
이처럼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 문제가 일본과 주변국간 갈등의 원인으로 표출되는 이유는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를 바라보는 일본과 주변국의 시선이 다르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총리은 누차 강조하고 있듯이 자신의 야스쿠니 참배는 일본 총리의 자격으로서가 아니라 고이즈미 개인 자격으로서의 참배라는 것이다. 역시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찬성하고 있는 일본 보수우익들의 일반적인 시각도 이와 비슷하다. 참고로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도 많이 보수화 된 듯이 보인다. 참배 반대 여론이 줄어들고 참배에 찬성하는 여론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그러나 주변국, 한국이나 중국의 시각은 이와는 정반대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는 개인 자격이 아니라 총리 자격으로서의 참배라는 인식이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무엇이 문제인가?
 
우선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야스쿠니신사에는 A급 전범들의 위패가 다수 보관되어 있다. 바로 이런 사실로 인해 주변국 및 일본내의 양심세력은 총리의 참배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 만이 총리의 참배를 반대하는 이유의 전부가 아니라 야스쿠니신사로 대표되는 일본의 종교적 관습에 관한 역사적 사실이 더해진다.
 
야스쿠니신사는 서울 동작동에 있는 국립 현충원과 같은 추도시설이나 국립묘지 성격의 시설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야스쿠니는 일본의 오래된 종교적 관습에 의거한 일종의 종교시설물에 해당한다. 이러한 종교적인 관습으로 대표되는 존재를 신도라고 하는데,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전에 이 신도라는 종교 관습은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적극적으로 지지 · 장려하면서 신도와 국가의 일체화에 의해 국교처럼 되었으며, 타 종교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통한 종교 말살 정책조차 서슴지 않았고, 더 나아가 일본 군국주의의 거대한 정신적 지주로까지 발전하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는 일본 헌법 제20조에 규정된 정교분리 원칙에도 위배된다. 고이즈미 총리는 평범한 시민도 아닌 공직자의 신분이고, 신사참배를 갈 때 이용하는 차량 역시 공직자이기 때문에 이용 가능한 관용차라는 점이다. 즉 일본국민의 세금으로 특정한 종교시설을 방문, 참배하고 있음이 명백한 사실이다. 그뿐 만이 아니다. 방명록에다가 자신의 공식 직함인 내각총리대신 고이즈미 준이치로라고 당당하게 기재했다.
 
결론적으로 야스쿠니신사가 갖고 있는 역사적 문제에 더해서 일본 헌법상으로 보더라도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는 일본헌법 제20조, 정교분리 원칙 위반이라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일본 왕이었던 쇼와 천황의 야스쿠니 참배도 사적 행위
 
또한 전후에 행해졌던 일본 왕, 쇼와 천황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의 성격을 묻는 야당의원의 질문에 일본 정부는 개인 자격으로서의 참배였다고 지난 14일 답변했다.
 
일본 왕이었던 쇼와 천황은 전후인 1945년부터 1975년까지 총 8번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이를 두고 일본 정부의 입장은 사적 참배라는 것인데,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참배할 당시에 참배금(시주돈)을 자신의 생활비로 지출했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그리고 고이즈미 총리가 혹시 현재의 일본 왕인 헤이세이 천황에게 야스쿠니 참배를 진언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고이즈미 총리는 다른 누구에게도 참배를 권장하거나 진언한 일은 없다고 답변한 것으로 언론은 전하고 있다.
 
 
정상회담은 예정대로 진행되어야 한다
 
무산 혹은 연기 가능성까지 제기됐던 한일정상회담이 오는 20일 서울에서 개최된다고 일본 언론들도 일제히 보도를 했다.
 
이달 20일로 예정되어 있던 한일 정상회담은 앞서 살펴본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와 더불어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 문제,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등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상태에서 최근에는 나카야마 문부과학상의 종군위안부 망언 등이 이어지면서 무산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특히 나카야마 문부과학상은 자신의 종군위안부 관련 망언에 대해서 호소다 관방장관이 사과 성명을 발표한 것을 부정해서 파문이 일기도 했다. 호소다 관방장관은 이 문제와 관련해서 14일 오후 기자회견을 통해 “장관간담회에서 나카야마씨가 ‘나의 발언으로 폐를 끼친 것에 사과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이야기 했다”고 소개를 했다. 그런데 나카야마 문부과학상은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라고 부정해서 발언의 진위 여부를 놓고 혼란이 가시지 않고 있다.
 
한편 일본 언론은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고이즈미 총리가 강제징용자의 유골 반환, 한국에 거주중인 원폭피해자의 지원, 사할린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 지원책 등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외에도 역사교과서를 제2기 역사공동연구위원회 연구대상에 포함시킬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
 
지난 14일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3부 요인과 여·야 당 대표를 초청한 청와대 오찬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한다면 어떤 주제로 할지 결정되지 않아 고심하고 있다” “협상은 유연한 자세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막고 품듯이 밀어붙이는 것도 중요하다”라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한국 정부의 대일외교를 놓고 말들이 많다. 갈등만을 부추키는 아마추어식 외교라는 비난에서부터 동북아 균형론 같은 설익은 찐빵만을 양산해 내고 있다는 지적까지 온갖 것들이 난무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대안은 별로 없다.
 
이유는 우리만을 보기 때문이다. 외교는 분명 우리와 상대가 함께 만들어 내는 공동의 작품이다. 그런데 우리만을 보고 딴지를 거니 항상 현실과는 빗나가는 삽질만 해대는 꼴이 되고 만다. 보자. 올해가 한일국교 수립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데 어떤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람쥐 쳇바퀴처럼 독도문제, 과거사문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다.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임시방편적 정책, 친일로 작심한 한심한 무리들의 문제 봉합적 매국 행태로 그 순간만을 넘겨가며 40년을 버텨왔기 때문이다.
 
갈등 없이 해결 없다. 앞으로 40년 뒤에도 지금처럼 한일관계가 독도문제와 과거사문제로 발목을 잡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오늘의 갈등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필요하다면 갈등을 만들어서라도 해결할 것은 해결하고 가야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갈등의 원인과 해결책을 분명하게 짚어 줘야 한다.
 
왜 그래야 하는지 참 한심한 사례 하나만 소개 하도록 하겠다. 일본에서 꽤나 유명하다는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이 있다. 그 프로그램에는 유명세에 걸맞게 꽤나 유명하고 다소 진보적(?)이라고 하는 사회자를 필두로 여·야 정치인, 대학교수, 평론가 등 역시 꽤나 유명한 저명 인사들이 10여명 초대되어 토론을 벌인다.
 
프로그램의 성격상 동북아 문제와 미일관계가 주된 논제로 다루어진다. 지난달 토론에서였을 것이다. 한일관계가 잠시 언급이 되면서 한국 정부의 대일관계가 도마 위에 오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유명하다고 하는 인사들이 한국 정부의 대일외교에 대해서 너무도 모르고 있더라는 사실이다.
 
사회자가 물었다. '한국 정부의 입장을 제대로 모르겠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나간 과거사를 자신의 임기 중에는 거론하지 않겠다고 하더니 이제는 지나간 과거사를 이유로 한일관계를 갈등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유가 뭔가?' 대충 이런 뉘앙스의 질문이었다.
 
그러자 다른 패널들도 이에 공감을 표시하며, ‘글쎄 말이다’ ‘ 나 또한 궁금하다’ ‘한국 국내 문제를 외교에…’ 역시 이런류의 대답으로 얼버무리며 넘어가더라는 것이다. 결국은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것인데, 우리나라 중학생조차도 알고 있는 그 이유를 일반 국민들도 아닌 일본 최고의 지성들이라고 하는 그들이 정말 모르고 있더라는 사실에 난 엄청난 충격을 먹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대일외교를 놓고 딴지 거는 분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해주고 싶다. 우리의 수준으로 이들을 보지 말라. 우리가 알고 있다고 이들도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
 
한일 정상회담. 안 하면 안 된다.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러나 좋은 게 좋다는 식의 대충 대충 넘어가기여서는 절대 안 된다. 설사 갈등이 생기더라도 풀 것은 반드시 풀고 가야 한다. 그리고 갈등의 이유는 찬찬히, 자세하게, 조목조목 일본 총리 및 관계자 그리고 일본 국민들에게 설명해 줘야 한다. 잘 알아 먹도록.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