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감 상2014. 8. 6. 17:19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글을 쓰는 분들이나 영화감독들은 '상상력과 가정법의 마술사'들이 아닐까 라는 생각 말입니다. 밖으로 드러난 하나의 줄기를 번쩍 들어 올려 무수히 많은 고구마 줄기를 끄집어내듯이, 그들에게는 그런 재능이 있나 봅니다. “그게 그때 만일 그랬었다면...” 이런 번뜩이는 상상력과 가정법이 돋보이는 영화가 ‘해적-바다로 간 산적’ 입니다.

 

1388년 고려말기, 요동정벌에 나선 이성계가 압록강 하구 위화도에서 전쟁을 단념하고 회군을 결정하자, 장수 모흥갑(김태우 분)의 부하였던 장사정(김남길 분)은 역적질에 함께할 수 없다며 반발하다가 도망쳐 산적떼의 두목 노릇을 합니다.

 

한편, 바다에서는 소마(이경영 분)를 두목으로 한 일군의 해적떼가 무리를 지어 세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그 밑에 부두목급 인물이 여월(손예진 분)로 이 네 사람이 영화 ‘해적’의 중심축을 이룹니다.

 

▲ 영화 <해적>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같은 시기, 고려를 엎어버리고 새로운 나라를 세운 이성계는 명나라로부터 국호와 국새를 하사받기 위해 사신을 파견하게 되는데, 예문춘추관대학사 한상질(오달수 분)이 그 역할을 수행합니다. 명으로부터 국호와 국새를 받고 귀국길에 오르던 배 위에서 고래의 습격을 받아 배는 반파되고 국새를 고래가 삼켜버리는 황당한 사고가 발생합니다.

 

바로, 이 고래를 잡아 국새를 되찾으려는 또는 차지하려는 자들의 물고 물리는 갈등과 대립의 쟁탈전을 영화 ‘해적’은 나름 코믹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름’이라는 토를 단 이유는 제 개인적으로 안타까움의 표현입니다.

 

사실, 연기를 하거나 연출을 했던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코믹연기만큼 어려운 게 없다고들 합니다. 어찌 보면 코믹연기는 타고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극단적인 표현을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만큼 웃음을 유발하는 연기가 어렵다는 의미일 겁니다.

 

이 영화 '해적' 역시 웃음을 통한 재미를 표방하는 작품이기에 영화 곳곳에 웃음 코드들을 깔아 놓고 있습니다. 철봉역의 유해진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뛰어난 배우임에 틀림없습니다만, 항상 보던 유해진식 유해진 연기는 다소 식상하다는 것이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좋은 연기자, 오래가는 배우가 되려면 분명히 고민해봐야 할 대목이라 사료됩니다.

 

그리고 작품의 주연이라 할 김남길의 코믹성에 대해서는 인물분석을 통한 캐릭터 창조가 좀 미진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열심히 하고자 하는 것은 보이는데, 뭔가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치고 있는 것과 같은 어색함이 영화를 보는 내내 눈에 거슬렸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연기는 대사와 몸짓, 감정의 삼위일체가 핵심이자 필수입니다. 예를 들어, 대사는 어리바리하게 하는데 몸짓이나 행동하는 것은 의젓하고 바르다면 이것은 굉장히 거북스러운 연기가 됩니다. 즉, 대사가 어리바리하면 몸짓도 어리바리 해야 자연스러운 연기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감정은 어떨까요? 대사와 몸짓은 어리바리한데 감정이 이입이 안 되어 따로 노는 경우, 이것은 눈빛이 말해줍니다. 연기라고 말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다들 '좀 모자라는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런 인물일 수도 있고 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차이는 인물분석에 따라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물분석이 중요한 것이 됩니다.

 

영화 '해적'의 압권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된 스펙터클한 화면의 조합입니다. 초반의 칼싸움 장면, 대포를 훔쳐 달아나는 장사정 패거리와 여월간의 추격전 그리고 언덕을 굴러 내려오는 물레방아, 고래의 유영, 바다 위에서의 전투 장면 등 많은 볼거리들을 CG가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유쾌한 웃음과 통쾌한 즐거움을 원한다면 지루하지 않은 두 시간이 되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세상의 모든 순진한 것들은 권력의 재물이 되는 법”이라는 악질 해적 두목 소마(이경영 분)의 일갈 역시 요즘 같이 얼치기들이 판치는 세상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점도 말씀 드리고 싶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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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