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감 상2014. 8. 13. 17:10

『밀입국 25명 질식사 · 水葬 - 8일 오전 전남 여수시 경호동 대경도로 밀입국을 기도했던 중국인과 조선족 60명 가운데 25명이 운반 어선 '7 태창호'(70t급)에서 질식사하고 대경도에 상륙한 35명은 군·경에 모두 검거됐다. 검거된 사람은 왕무화(王武化. 34. 중국 복건성)씨 등 한족 24명과 최광일(45. 중국 길림성)씨 등 조선족 11명으로 모두 남자며 사망자들의 신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여수=연합뉴스)』  2001년 10월 9일자 연합뉴스의 주요뉴스 중에서.

 

이 충격적인 사건을 극단 연우무대가 ‘해무’라는 타이틀로 무대화 했고, 이를 다시 시나리오 작업(심성보, 봉준호)을 한 후 심성보 감독이 영화화 했습니다. ‘해무’라는 타이틀 그대로 말이지요.

 

▲ 영화 <해무>,  롯데시네마 촬영

 

IMF 경제 위기가 서민들의 숨통을 조이며 삶을 나락으로 잡아끌던 1998년 여수. 엎친데 덥친 격으로 바다의 사정 또한 좋지 않아 앙망강 어선들이 예전만한 수입을 올리지 못하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전진호라는 앙망강 어선의 선장인 철주(김윤석 분)는 크게 한 탕해서 목돈을 손에 쥘 요량으로, 조선족 밀항자들을 운반하기로 결심합니다(일명 조구잽이). 어두운 밤, 망망대해의 고요를 깨뜨리며 배 한척이 다가오고 그곳에 실려 있던 이십 여명 남짓한 조선족들을 전진호로 옮겨 태웁니다.

 

이들 밀항자들이 지나가는 배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해 다른 배가 가까이 오면 밀항자들을 어창(갑판 밑에 있는 어획물의 저장고) 속에 숨기게 되는데, 그만 냉동기가 터지면서 어창이 프레온가스로 가득차 그곳에 숨어있던 이십여 밀항자들이 모두 가스 질식사를 하고 맙니다.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선장은 이 시체들을 모두 끌어내어 바다에 수장시켜 물고기 밥이 되도록 시체를 난도질하도록 시킨 후, 이를 모두 바다 속으로 던져버립니다.

 

그런데 이때 이 사실을 몰래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한 여인이 있습니다. 홍매(한예리 분)라는 이 여인은 전진호로 옮겨 타는 도중 그만 바다로 떨어져 위기를 맞게 되는데, 동식(박유천 분)이 바다로 뛰어 들어 목숨을 구해줍니다.

 

이게 인연이 되어 동식이 몰래 기관실에 숨겨 놓고 있던 겁니다. 다시 기관실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홍매는 오열을 하고 동식이 위로를 합니다. 그리고 때를 같이 해, 이런 일련의 사고에 충격을 받은 기관장 완호(문성근 분)는 정신착란 증세를 보입니다.

 

완호는 바다 속으로 수장된 밀항자들의 타다 남은 신분증을 들고는 혼잣말처럼 “뭍으로 가는 즉시 해경에 신고해 가족을 찾아주겠노라”고 중얼거립니다. 이를 말리고 달래던 선장 철주는 결국 더 이상 참지를 못하고 쇠뭉치를 들어 완호의 머리를 내리쳐 죽여 버린 후 바다에 던져 버립니다. 동식과 홍매는 숨어서 이 일을 모두 지켜보며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리고는 바로 생뚱맞은 섹스 의식이 진행됩니다. 개연성도, 처절함도, 원초적이지도, 노골적이지도 않은 그런... 욕정에 눈먼 철없는 청춘들도 아니고, 그 상황에서 그짓이 가능하기나 할지도 의문입니다.

 

인간 욕망 분출의 불구덩이 같은 아수라장에서 그나마 남아 있는 순수한 존재로서의 인간, 그리고 그런 인간 군상들의 진솔한 행위로써의 섹스를 그리고자 했다면 표현 방식과 처리기법이 달라야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같은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벌어지는 두 행위 간 오버랩이라든가, 성적 행위에 들이는 정성과 무자비한 살인 행위 간 비교 교차와 같은 방식 등으로 말이지요.

 

한편, 홍매가 기관실에 숨어 있는 것을 눈치 챈 창욱(이희준)은 홍매를 겁탈하기 위해 달려듭니다. 이를 동식이 말리는 과정에 큰 소리가 나게 되고 결국 선장도 이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갑판장 호영(김상호 분)에게 홍매를 바다에 던져 버리라고 명령합니다.

 

다시 이를 저지하려는 동식과 밀고 밀리는 한바탕 난투극이 벌어지고, 설상가상으로 전진호는 지나가던 화물선에 부딪혀 침수로 인해 모든 게 수장되고 맙니다. 탈출하기 위해 바다로 뛰어든 동식과 홍매는 구명부표에 의지해 해안가로 밀려와 목숨을 건집니다. 하지만 동식보다 먼저 의식을 회복한 홍매는 "고맙다"는 혼잣말을 남긴 채 동식을 떠납니다.

 

그리고 6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두 사람이 만나기로 약속했던 구로동의 한 식당에서 동식은 홍매의 뒷모습을 보게 되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이 영화 ‘해무’에는 두 개의 긴장관계를 설정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밀항자와 전진호 선원들의 긴장관계, 다른 하나는 밀항자들의 죽음 이후에 찾아오는 선원들 간(작게는 선장과 선원들 간, 크게는 선원들 개개인 간)의 긴장관계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둘 다 만족할만한 긴장관계를 그려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는 참혹함 또는 광기 그 이상의 어떤 인간적 모습도 분석해내지 못하고 맙니다. 광기의 근원에 대한 분석이 있어야 광기가 부득이한 광기로 이해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 없이 즉, 아무런 이유 없이 광기에 들떠 정신 없이 날뛰는 인간들은 말 그대로 진짜 미친놈들에 불과할 테니 말입니다.

 

또 하나, 성격분석과 인물구축이란 측면에서의 실패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앞에서 말씀드린 긴장관계의 구도와도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는데, 제가 볼 때는 다들 처음부터 정상적이지 않은 미친놈들처럼만 보이더라는 겁니다.

 

여자에 환장한 놈들도 아니고, 다들(동식, 창욱, 경구) 여자나 섹스에 정신들을 못 차리더라는 사실이지요. 만약에 동식이란 인물이 극중에서처럼 26살의 앳된 총각이 아니라, 한 마흔 살 정도 먹은 완전 노총각이라 노모에게 효도라도 하는 차원에서 여자가 절실했다는 설정으로 갔다면 그나마 이해의 노력 정도는 해 보겠습니다만, 생판 처음 보는 여자 하나 구해 놓았다고 마치 내 여자 대하 듯 하는 모습이나, 그냥 어찌 한번 해보겠다고 무턱대고 달려들고 보는 창욱이나 경구 또한 이해 불가한 캐릭터였습니다. 아니, 어디 안드로메다에서 온 인물들도 아니고 세상 어디에고 그처럼 여자에게 막 들이대도 되는 곳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친놈들이 아니라면 말이지요. 어선이 무슨, 여성 추행의 치외법권적 해방구라도 됩니까?

 

그리고 스릴러물에 공포가 없더라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큰 아쉬움이었습니다. 전진호의 선원들은 왜 그런 무서운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요? 그들이 특별히 악인이었기에 그랬을까요? 아니면 선장 철주가 유난히 표독스런 인간이라서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그들을 그런 결정으로 내몬 것은 극도의 공포와 불안감이었을 겁니다. 바로 그 공포와 불안감이 인간적 사고를 마비시켰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어떤 거대한 힘이 그 공포와 불안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곳으로 이들을 인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 영화 ‘해무’에서는 불안과 공포로부터 야기된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힘 같은 걸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잠시의 망설임 정도와 선장의 지시 정도는 있었을지 모르나, 그것이 극중인물 개개인에게 극한의 공포로 까지는 연결되지 못하더라는 겁니다. 그런 상태에서 벌이는 잔혹한 도살 행위는 싸이코패스의 그것, 미친놈의 광기적 행동일 뿐입니다.

 

극중인물들의 심리상태와 분위기 자체가 공포와 불안으로 휩싸인 상황으로 조밀하게 꾸며진 뒤에야 비로소 거기서 벌어지는 살인과 도살, 그리고 남녀의 육체적 행위가 환상적 유희로 처절하게 가슴에 와 닿게 되는 것입니다.

 

선인도, 그렇다고 악인도 아닌, 평범하고 일반적인 인간들이 어떻게 잔인무도한 광기의 환락(?)을 벌일 수 있는지를 그려 보겠다는 의도는 좋으나, 이에 대한 인물들의 철저한 성격구축이 뒤따라 주지 못하다 보니 이런 사단이 벌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고립되고 밀폐된 공간 안에서의, 극한의 상황에 놓인 인간의 참혹함을 그리려면 그게 그렇게 보일 수 있는 개연성이 필요한 법입니다.

 

도대체 감독은 영화 ‘해무’를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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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