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감 상2014. 11. 9. 21:16

상상력을 자극하는 감성 다큐드라마 인터스텔라.

 

30여 년 전,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그때는 워크맨이라는 것은 상상 속의 물건에 불과했으며, 우리가 그나마 주변에서 접할 수 있었던 제대로 된 소형 라디오 역시도 꽤나 비쌌던 시절로 기억이 됩니다.

 

그런데 그 당시의 여느 청소년들이 다들 그러 했듯이 - 특히 고교야구를 너무도 좋아했던 몇몇은 광적으로 - 친구들은 조그만 라디오를 하나씩 들고 다녔는데, 안테나 클립을 쇠붙이에 꼽고 이어폰 하나로 들을 수 있었던 아주 조그마한 라디오였습니다.

 

지금도 기억하기로는 봉황기에 황금사자기, 대통령배 고교야구라도 하는 때가되면, 그리고 자습이라도 할라치면 창가 자리를 차지한 채, 안테나의 선을 창틀 쇠붙이에 연결해 놓고는 이어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때 가끔 이런 상상을 했던 기억이 문득 떠오릅니다. 혹시 이렇게 혼자서 라디오를 듣고 있을 때, 우주에 있는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어오지 않을까 하는 류의 겁나는(?) 상상 말입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우려는 한 번도 현실화 되지 않았고, 나는 지금 이 나이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무지막지하게 겁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 영화 <인터스텔라>,  롯데시네마 촬영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는 그런 영화입니다. 철부지 어린 소녀에게 누군가가 모스부호를 이용한 메시지로 말을 걸어 왔는데, 놀랍게도 말을 걸어온 그 누군가는 그녀(머피역, 제시카 차스테인)의 아버지(쿠퍼역, 매튜 매커너히)였던 겁니다.

 

퇴직 우주 조종사였던 쿠퍼는 어느 날, 우연히 딸의 방에서 묘한 메시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분석을 해 보니, 그것은 모스 부호를 이용해 보내온 특정한 지역의 좌표였습니다. 당시 어린아이였던 딸 머피는 이를 유령이 보내온 신호라고 말하곤 했는데, 후에 이게 자신의 아버지가 보내왔던 신호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무튼 그 좌표를 찾아 떠난 쿠퍼와 머피는 그곳이 나사의 비밀 연구소이고, 그 모스부호는 '중력'에 의해 만들어진 메시지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옛 동료였던 브랜드 박사(마이클 케인 분)와 그의 딸 아멜리아(앤 해서웨이 분)를 만나고, 그들의 설득으로 우주비행선 비행사로 함께 우주로 향합니다.

 

우주여행의 갖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마침내 쿠퍼는 혼자서 블랙홀로 빠져들게 됩니다. 반드시 지구로 돌아가 가족들을 만나야 한다는 일념에 위험을 무릅쓴 결단을 내린 겁니다.

 

블랙홀의 중심으로 떨어진 쿠퍼는 그곳에서 5차원의 존재들이 만들어 놓은 미래의 시·공간인 큐브에 들어가게 되고, 그의 딸 머피에게 그때까지 미해결로 남아있던 양자역학의 공식을 전해줍니다(이게 앞에서 이야기했던 유령의 신호인 셈인데, 시·공간이 다름을 염두에 두셔야 이해가 됩니다). 덕분에 자신은 살아서 돌아오게 - 지구가 아닌 새로운 인간 이주지로 - 되고 말입니다.

 

아멜리아는 여전히 우주공간의 어느 별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고 쿠퍼가 그녀를 찾으러 다시 우주로 떠나는 것으로, '인터스텔라2'를 예고한 채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당시의 지구는 대기오염(황사)과 이상기온 등으로 식물의 재배는 물론 인간의 생존마저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해있던 급박한 시절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인간 이주지를 찾아야만 하는 절박한 시점이었던 것이지요. 쿠퍼 일행에게 주어진 임무 역시 새로운 인간 이주지를 찾는 문제(플랜A)와 인류의 씨를 어딘가의 별에 뿌리는(플랜B)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영화 ‘인터스텔라’ 제작진의 우수성이 빛을 발합니다. 우주를 향한 공상과학 영화들은 이제껏 수도 없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공간을 현존의 과학이론으로 접근했던 영화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블랙홀, 그리고 웜홀이론을 이 영화에 적용해 시·공간을 넘나드는 우주여행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제가 받은 느낌은 아주 잘 만든, 마치 다큐드라마 같은 그런 영화였다는 겁니다.

 

연기 보증수표와도 같은 명배우들의 빼어난 연기도 좋았고, 컴퓨터그래픽의 환상적 우주 묘사도 뛰어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한 감이 있을 정도로 훌륭했습니다. 영화제작진의 아이디어는 너무도 멋졌고 말입니다.

 

아, 그런데 영화가 너무 깁니다. 러닝타임 169분, 앞에 이어지는 광고까지 감안한다면 3시간을 스크린에 몰입하기에는 제 인내력이 한계를 보이려고 하더군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도입부의 상당부분과 얼음행성에서의 만 박사(맷 데이먼 분)와의 에피소드, 결론부분의 몇몇 장면들을 들어내고 두 시간 정도의 분량으로 재편집하는 편이 영화적 역동성과 관객의 몰입에 훨씬 도움을 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게 감상의 즐거움까지 퇴색시키지는 못합니다. 우주의 무한성과 따뜻한 가족애, 그리고 굳어진 상상력의 발현을 위해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심이 어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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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