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감 상2014. 11. 14. 19:16

함께 살자!

 

아무리 좋은 제도와 법률이 있다한들 그것이 내 삶의 가까운 곳에서 나와 함께 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입니다. 직장인들에게 주어지는 휴가라는 것도 그런 것 중에 하나인 것 같습니다. 주변 눈치 보느라 있으나 마나 한 존재로 전락해 버렸다면 그건 이미 없느니만 못한 것이 된 겁니다.

 

시중에 떠도는 말 중에 내가 없어도 조직이 잘 돌아간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알리는 게 두려워 다들 휴가 가기를 꺼린다.”는 결코 웃을 수만은 없는 짠한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이게 어디 비단 휴가에만 국한된 문제이겠습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팍팍하며 적나라한 총체적 모습이 그러합니다.

 

가끔 전철을 타고 늦은 귀갓길에 오르다 보면, 곳곳에서 눈을 감고 졸고 있거나 한 잔 술에 거나하게 취해 불콰해진 얼굴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또 때로는 내가 그런 분들 중의 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말입니다.

 

오래 전에 일본에서 꽤 긴 시간 생활했던 적이 있습니다. 학교 연구실을 나서 늦은 지하철을 이용해 집으로 향할 때면, 역시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풍경 중에 하나가 바로 위에서 든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 어디인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때(십여 년 전), 늦은 시간의 일본 지하철에는 중년 여성분들의 모습이 적지 않았다는 점 정도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도대체 사람이 산다는 게 뭔가" 하고 참 많이 고민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우리 사회도 그런 모습이 되어버렸습니다. 여성들의 사회 참여 즉, 맞벌이가 많이 늘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그런데 사실 여성의 사회 참여 문제와 관련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희망하는' 사람에 한해서만 일 하자는 주장에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일반적으로 볼 때, 많은 수의 맞벌이 부부들의 경우, 요즘 같은 세상에서 남편의 외벌이만으로는 생활에 어려움이 있기에 자의반 타의반 반찬값이라도 번다는 생각으로 맞벌이를 시작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희망하는(자의에 의한)' 이라는 전제를 달고 싶은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여성(주부)들이 사회로 등 떠밀려 나가게 되면 이런 여성분들은 대다수가 육아를 포함한 '가사'와 '직장'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됩니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 그리고 행복이란 관점에서 본다면 이는 확실히 문제 있는 사회의 현상태입니다. 분명, 가정이라는 곳은 일터와 학교를 위해 그저 잠깐 들러 잠만 자고 가는 곳은 아니라 믿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좀 덜 벌어도 좋고 덜 일해도 좋으니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 앉아 함께 먹고, 같이 어울려 놀 수 있는 그런 사회를 향한 오랜 꿈이 내게는 있습니다.

 

▲ 영화 <카트>,  롯데시네마 촬영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 '카드'도 그렇게 일하는 아니 일 해야 하는 여성들에 관한 영화입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들을 다룬 영화입니다.

 

매출 1위의 명예를 위해 오늘도 파이팅을 외치는 것으로 더마트직원들의 하루는 시작됩니다. 일이 힘들건, 잔업이 많건,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라 쉬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당행이라 믿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 역시도 경영합리화와 구조조정의 매서운 칼날을 피해갈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고용계약 해지 문자가 발송이 되고, 자신들의 신분이 하청업체 직원으로 변한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하지만 이미 그 칼날은 자신들의 목구멍 바로 앞까지 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어렵사리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사측과의 힘겨운 싸움에 나서지만, 까대기(포장 상자를 뜯는 일)와 찍기(계산원)만 했던 그들에게 노조와 투쟁이란 단어는 낯설기만 그런 것이었습니다.

 

긴말 필요 없이 나와 내 이웃들의 고단한 삶의 이야기로 보시면 됩니다. 주변에 가까운 분들과, 가족들의 손을 잡고 함께 관람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우리의 부모님들이 사셨던, 그리고 또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삶의 현장들이기에 충분한 공감대가 만들어지리라 믿습니다.

 

부지영 감독의 연출도 좋았고, 염정아(선희 역), 문정희(혜미 역), 김영애(순례 역), 김강우(동준 역)를 비롯해 아역배우들의 빼어난 연기까지 더해져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며 나는 네가 되고 너는 또 다른 네가 되어 같이 더불어 사는 사회를 외치고 있더군요. "함께 살자" 라고 말입니다.

 

직접 한 번 보시기를 권해 드리며, 노동문제와 관련해서 며칠 전에 써 놓았던 글 하나를 첨부하는 것으로 영화 '카트' 이야기는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자유로운 인간 활동으로서의 노동.

 

인간의 삶 자체는 노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절대적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자본의 물신성이 인간 정신을 지배하는 소유만능의 세상이 되면서 노동을 통한 부의 증대(탐욕)는 대다수 인간의 염원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렇듯 부를 향한 인간의 노동은 과연 인간에게 만족을 주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물론, 이건 어제 오늘만의 화두가 아닌 사적소유가 시작된 이후 전시대에 걸친 문제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처럼 소중하게 보이는 노동이 왜 인간사회의 풀리지 않는 두통거리로 되었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아니, 이렇다고 본다. 노동이 인간의 최종의 목표가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무언가를 창조해 낸다. 공장의 노동자는 물건을 만들고, 골방의 소설가는 소설 작품을 생산한다. 또 동네 이발사는 손님의 머리를 자른다. 하나 같이 노동력을 투입한 노동의 결과로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렇다. 이처럼 우리는 어딘가에 종속이 되면서 우리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판매한다. 공장과 골방과 이발소가 그곳이다. 직장인은 말할 것도 없고, 소설가, 자영업을 하는 그도 일을 하는 그 시간만큼은 자신의 노동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바로 여기서 소외가 발생한다. 만약, 아마도 인간의 노동력이, 노동력이라는 상품 그 자체가 모든 인간들의 최종의 목표라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노동력을 확보한다는 의미는 금덩어리를 하나씩 갖는 것이나 같은 게 될 것이기에 그렇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인간에게는 노동력이 최종의 목표가 아니다. 최종 목표는 그 노동력을 투입해 만들어 내는 생산물(상품)이 된다. 이렇다 보니, 노동은 자본가 계급에게는 물론이고 노동자 자신에게조차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질 못한다. 다시 말해 물신성은 존재하나, 노동신성은 존재하지 않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사회는 변한다.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부침을 거듭한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듯 보인다.

 

기계가 컴퓨터로 대체되고, 육체를 통한 인간의 노동이 인지적 노동으로 바뀌었다 한들 그가 세상의 주인이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래도...

 

한 번 사는 세상, 살만한 공동체로써의 삶이어야 하지 않겠나? 노동의 가치가 자기화되는 세상이어야만 하지 않겠나?

 

인간의 노동 행위를 최종의 목표로 끌어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오로지 많이 소유하고야 말겠다는 탐욕을 버리고, 노동을 자유로운 인간활동 그 자체로 만족하며 살 수만 있다면 이 또한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희뿌연 빛이 어둠을 밀어내고 있는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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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