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시 사2015. 5. 1. 16:07

재보선에서 야당이 참패를 했다. 말들이 많다. 지리멸렬하다는 타박에서부터 무능하다는 비판에 이르기까지 차고도 넘친다.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으나, 야당이 변화의 속도에 둔감한 탓도 클 것이다.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인간의 의식이 채 세월의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물질 구조에 비해 의식 구조의 대응이 늦다.

 

일례로,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이 되고 세계 부자 나라의 대열에 합류를 한 것, 소위 말하는 한강의 기적은 전후 불과 30~40년 만에 이루어진 결과이다. 쉽게 말해, 찢어지게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학 졸업과 동시에 자가용을 타는 시대로 바뀌어 버린 거다. 이건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먹고 쓰는 것은 이전보다 많이 풍요로워 졌으나, 정신은 아직도 피죽 한 그릇도 제대로 먹지 못했던 그 시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거다. 그러니 기본질서나 예의(매너)와 관련해 온갖 비아냥거림이 난무했던 거고 말이다.

 

같은 얘기다. 정치도 그렇다. 민주화운동 이후, 사회의 보수화 경향은 너무도 가팔랐다. 이 정도면 됐다는 생각이 만연했다. 그리고는 모두가 한강의 기적을 모태로 한 개인적 기적을 희구하며 부동산 대세론에 편승한 채 부자 되기 열풍에 가세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렇듯 부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한편에서는 부(富)를 주겠다고 난리인데, 한쪽에서는 복지(분배)를 얘기한다. 복지란 증세의 다른 말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어떠한 선택을 할는지는 너무도 자명하다.

 

선거란, 정치란, 이겨야만 한다. 이기지 못하는 정치, 이기지 못하는 정당은 그 존재 가치를 부여받을 수 없다. 긴 병에 효자나 효부 없다고 했다. 같은 이치다. 매번 지기만 하는 정당에는 열혈지지자도 발길을 돌린다.

 

진실과 진심은 선거에서 승리한 이후의 얘기다. 지고나면 말짱 제도루묵이 되고, 내 진실과 진심 따위는 동내 강아지도 쳐다보지 않는 하찮은 것으로 되어 버린다. 물론 절대로, 이게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의 야당은 이기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듯하다.

 

제 아무리 훌륭한 정책이라 한들 그것을 펼쳐볼 기회 자체가 봉쇄되어버리면 즉, 선거에서 패배하게 되면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되는 거다. 결국, 승리한 세력들의 독무대가 정치판이다. 백보 양보해서, 그렇다고 무슨 엄청난 정책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자칫하면 지는 것도 습관화된다.

 

또한 아젠다 선점에서 밀린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게 변명처럼 들린다. 오물 몇 방울 튀는 것까지도 경계하는 도덕적 선민주의에서 탈피해라. 이번 재보선 역시 여당의 사면 물 타기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망쳐버린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큰 틀에서 사건을 바라보려는 거시적 목표 자체가 없이 사안별로 접근하는 소극적 대응 방식에 더해, 상대의 물 타기 식 도덕성 흠집 내기에 비계획적으로 과민하게 반응하다보니, 중심을 잃고 이리 저리 휘둘리며 끌려만 다니게 되는 거다.

 

마지막으로 연대 없이 성공할 수 없다.

 

한국의 정치적 특수성과 야당의 구조상 지역 간 연대는 핵심 사안이다. 그 대표적인 게 DJP 연합이다. 이기고자 한다면 연대해야 한다. 특히, 영남에 기반을 둔 문재인 대표의 등장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역 구도는 영남과 호남, 그리고 최근에 새롭게 가세한 충청으로 3분 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지역주의 구도는 위태롭기는 하나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연합으로 가는 과정이 험난해서 그렇지 일단 연합에 성공하고 나면 과거 DJP 이상의 막강한 세력을 갖게 되는 기회로 탈바꿈 하는 것이다.

 

정치를 통해 사회를 바꾸고 싶거든, 진보의 가치를 염두에 두고 있거든, 이겨라. 이는 이긴 자들만이 할 수 있는 그들의 전유물이기 때문이다. 바꾸고 싶고 진보로 향하고자 한다면, 먼저 이겨야 한다.

 

그리고 선택의 권한을 쥐고 있는 국민을 변화시켜 내편으로 만들 자신이 없거든, 나 스스로를 변화시켜라. 그리고 선택 받아라!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