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일 상2015. 5. 2. 17:53

달리는 말을 멈추고 잠시의 여유를 갖는다. 말이 빨리 달렸기에 미처 따라오지 못했을 자신의 영혼을 기다리며 말이다. 인디언들의 이야기란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이 50, 지천명임에도 쉽사리 대답할 수 있을 만큼 그리 단순 명쾌한 성질의 물음은 분명 아니다.

 

또한, 나이 50이 넘어 그런 주제의 강의를 듣는 것 역시도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이 만큼 살았음에도 쉬이 확언키 어려운, 마치 뿌연 안개 속을 걷는 것 같은 여정이 삶이요, 살아온 날들보다 분명 적게 남았음직한 날들, 그 미래 또한 손으로 확 잡을 수 없는 흙탕물 속의 무언가를 움켜쥐는 것 같기에 그렇다.

 

음악을 좋아했던 한 청년이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의사가 되기를 희망하셨던 부친의 뜻에 반하는 전공 선택을 하자 부친께서는 학비 지원을 중단하신다. 이때부터 고단한 유학생활은 시작이 된다.

 

현실의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레스토랑 웨이터를 해 가며 공부를 계속해 나가던 어느 날, 평소 자신의 소중한 손님이었던 어느 노부부로부터 질문을 하나 받는다.

 

“당신은 이 식당 웨이터 일 외에 다른 직업을 갖고 있습니까?”

 

청년은 대답한다. “일주일에 3일 정도는 이 식당에서 저녁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 낮에는 근처에 있는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 중에 있습니다.”

 

노신사는 말씀하신다. “역시, 그렇군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노신사는 모 대학의 학장님이셨고 그 청년에게 자신이 재직 중인 대학에 강사 자리를 제의하신다.

 

이 일을 계기로 그 청년은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할 수 있었으며 지금은 국내 유명 사립대학의 교수로 있다. 온갖 역경 속에서도 항상 준비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노라는 말 속에 자부심이 짙게 묻어난다.

 

연세대학교 박희준 교수의 프로필 중 일부이다. 「연세 강서 리더스 아카데미」 6번째 강의는 ‘불확실성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생존 및 성장 전략’이란 주제 하에 박희준 교수께서 수고해 주셨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항상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비즈니스를 고민하라는 말씀으로 요약 가능한 이번 강의는 이 글 서두에 인용했던 인디언의 말타기를 소개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좋은 강의였다. 그런데 지금의 시대적 사회 매커니즘 자체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과거와는 다르게 해도 안 되는 사회, 날 때 이미 장래가 결정되어 버리는 사회,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이 절대 없는 사회, 즉 불평등의 만연이 그 한 원인이다.

 

일례로, 사(士)자 직업의 대명사이기도 한 변호사 역시 그렇다. 예전에는 사법고시에 패스를 하면 신분 상승의 엘리베이터를 탔다고 했는데 이제는 단순히 합격했다는 것만으로는 그 경지에 도달하기 어렵다.

 

합격 이후 꽤 괜찮은 로펌에 취업이 되지 않는 한, 그가 올라 갈 수 있는 위치에는 한계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대를 이어 학연과 혈연으로 끈끈하게 맺어진 소수의 사람들만이 신분계층의 최상층에서 군림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자명한 현실을 개인의 노력으로만 극복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주문이다. 나면서부터 출발선이 다른데, 누구는 이미 저만치 앞에 출발선을 두고 있음에도 동등한 경쟁의 논리를 앞세운 채 열심히 하라고 복달하며 내 몬들 그 결과가 좋을 리 만무하다.

 

물론, 달달한 결과를 만끽하기 위해서는 쓰디 쓴 과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허나 과정이 쓰디썼다고 해서 결과가 반드시 달달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근년 들어 특히 더 하다.

 

단, 이미 달달한 결과를 맛보고 있는 이들이 보기에는 쓰디 쓴 과정의 결과물이 달달함이다. 그리고 그런 달달한 결과에 취해 있는 이들은 거두절미하고 쓰디 쓴 과정에 정열을 쏟으라고 한다.

 

그러나 글쎄다. 그렇게 개인의 노력만을 강조하기에는 어딘가 미진한 구석이 커보인다.

 

개인의 노력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 노력이 정말로 공평 정대한 경쟁의 무대에서 정정당당하게 겨뤄질 수 있도록 사회적인 틀을 정비하는 작업이 그것이다.

 

또한, 개인의 능력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당연하다.

 

정말 제대로 된 경쟁이 되려면 출발선의 다름이 없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여기에 더해 개인의 능력에 준하는 - 학연과 출신성분이 아니라 개인의 지적 능력, 신체적 결함 등을 고려한 - 적절한 배려 역시 심히 고려해봐야 할 일이다.

 

그런 연후에, 공정한 사회 시스템 하에서,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고 하자.

 

기다려줘야 하는 것이 어디 내 영혼뿐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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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