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감 상2015. 7. 2. 00:36

그래도 역사는 발전한다.

 

내 청춘을 통틀어 수없이 되뇌었던 가장 긍정적이자 간절한 언어 중 하나다. 그런데 굴곡이 있더라. 앞서가는 듯싶다가는 어느 순간 현실을 직시해 보면 다시 한참을 뒷걸음 친 것 같은 아이러니한 상황들. 그런 우여곡절의 역사를 내 삶으로 살아내면서 예술(영화)이란 장르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영화를 통해서라면 내 방식대로의 역사를 만들어 갈 수도 있겠구나 싶은 철부지 같은 무모함에 간절히 그 길을 갈망했던 젊은 날들이었다.

 

그런데 살아가다 보니 느끼겠더라. 영화 같은 이야기는 꼭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로구나 하는 깨달음 같은 것 말이다.

 

60억 인구가 복작대는 지구촌 어느 구석에선가 정말 영화 같은 이야기들이 현실이 되어 있더라는 불편한 진실 같은 것이다. 하기야 그 예가 꼭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느 나라의 어느 구석일 필요는 없다.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곳에서도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그런 얼토당토않은 일들이 부지기수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음이 현실이니 말이다.

 

그렇게 철(?)이 들어가면서 영화에 대한 간절한 갈망은 하찮은 젊은 날의 꿈 정도로 전락되어 버린 채 이 나이에 들었다.

 

 

▲ 영화 소수의견

 

김성제 감독의 영화 「소수의견」은 '이 영화의 사건과 인물이 허구'임을 자막으로 밝히며 시작한다. 재건축을 위한 철거현장에서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고 2명이 목숨을 잃는다. 이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측과 이를 막고 은폐하려고 하는 측의 법정 공방이 주된 내용이다.

 

어쩌면 자유, 민주, 평등의 원리는 ‘다름’을 서로 인정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가치인지도 모르겠다. 여기서의 다름이란, 비단 생각의 다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상과 이념, 경제적 정도, 신체적 조건, 지능의 높고 낮음, 거주지역의 수준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다름은 깡그리 무시한 채 1등부터 꼴찌까지를 일렬로 서열화 시키려는 무한 경쟁 체제, 다른 한편으로는 다름을 반대(부정)로 인식하고 오로지 하나로만 통일시키려는 획일화된 독재적 발상이 되겠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그릇된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이 자신들의 그런 편협한 행위를 숭고한 애국이라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모든 반인륜적 행위가 용서 가능해 지는 것이고 말이다.

 

영화 「소수의견」의 구조 역시 같은 맥락이다. 국가를 위해 공권력의 남용을 당연시 하는 세력(다름을 부정하는)과 이를 부당하다며 저항하는 세력(다름을 인정하는) 간의 극한 대치 구조가 영화의 핵심 얼개다. 다소 엉성하긴 하지만...

 

이런 좋은 주제의 영화들을 볼 때면 간혹 느끼는 문제 중에 하나가, 좋은 이야기를 보다 더 훌륭한 영상과 스토리텔링으로 꾸며낼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더 멋졌을까 하는 생각이다. 아무리 절실한 문제의식이라 한들 그게 모두가 예견 가능한, 내지는 일상화된 사건의 나열로 흐른다면 극적 긴장감은 느슨해질 수밖에 없기에 그렇다.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아들을 잃은 박재호(이경영 분)는 자신의 쇠파이프에 의해 목숨을 잃은 전경 김희택의 아버지(장광 분)에게 재판과정 중에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를 연발하며 사죄하는 장면이 나온다.

 

글쎄다, 세상에 미안해해야 하는 이들이 어디 그들뿐이겠는가? 나 또한 이렇듯 혼탁한 세상의 일원인 것을... 그래서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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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