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읽 기2015. 8. 9. 12:10

인간 수명 100세 시대를 넘어 이제는 120세 시대를 기대하는 눈치다. 그리고 뒤이어 수명연장은 과연 축복이냐에 대한 의문도 추가된다.

 

100세가 되었든, 120세가 되었든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만 살다가 갈 수 있다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겠으나 신체연령의 한계는 우리의 바람을 따라주지 못함이 현실이기에 그렇다.

 

그런데 이 신체연령의 한계에 더해 뇌 속 인지기능의 이상반응은 장수를 희구하는 우리들의 삶에 피폐함을 더해 준다.

 

소위 우리가 말하는 치매라는 게 그것이다. “내 머릿속에 지우개가 들어 있어.” 정우성과 손예진이 주연했던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도 신경퇴행성 질환인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청춘 남녀의 로맨스를 담고 있다.

 

기억이 사라진다고 하는 극단적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들어줬던 영화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중장년층으로 갈수록 제일 무섭다고 느낀다는 치매. 어느 연구 조사에 따르면, 60대 연령층에는 1~2%에 불과한 치매 환자가 80대가 되면 20~30%로 급증하고, 90세가 넘어가면 거의 절반 이상이 치매를 앓게 된다고 한다.

 

치매에 대한 두려움의 근저에는 기억이 사라진다거나 초조, 불안, 폭력성이 증가한다는 점 외에도 치료가 불가능한 불치병이라는 인식이 제일 크게 자리하고 있다.

 

오랜 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이 있다. 치매를 앓고 있는 부모를, 아내 또는 부인을 살해한 이들의 슬픈 이야기가 신문 지면을 장식하기도 한다.

 

노년의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가정사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좋은 실례이자 절망의 외침이기도 하다. 도대체 언제까지 개인책임론만 되뇌고 있을 텐가? 국가는? 사회는? 노년의 문제는 이미 가정의 경계를 벗어난 지 오래다.

 

시인이자 수필가인 류자 선생의 시어머님은 치매를 앓고 계신다. 8년 전의 이야기란다.

 

치매 앓는 어머니와 함께 했던 8년, 그 인고의 세월을 시집 「치매도 시가 되는 여자」에 담아냈다.

 

 

▲ 류자 지음. 치매도 시가 되는 여자

 

치매를 앓는 부모의

자식은

마치 형벌을 등에 지고

아슬아슬한 절벽을 오름과 같다.

 

하고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내게로 와

살을 파고 뼈를 도리는지

원망과 한탄으로 보내기에

다른 것은 너무도 멀쩡하다.

 

... 중략 ...

 

치매도 시가 되는

여자로 살기로 하자

마음 하나 바꿨을 뿐인데

밀쳐뒀던 쓴 도라지

산삼뿌리 기운을 내니

살아갈 힘이 솟는다

 

... 후략 ...

 

류자 시인의 시 <치매도 시가 되는 여자>의 일부이다.

 

우연한 자리에서 류자 시인으로부터 이 책 소개를 받았을 때, 공교롭게도 퍼뜩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것은 고향에 계신 연로하신 내 어머니였다.

 

그래서 그날 술자리에서 건배사를 제안 받고서도 그 생각이 떠나지를 않아 “우리들의 어머니를 위하여”로 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렇다고 내 어머니께서 현재 치매를 앓고 계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은연 중에 지금 이후의 어머니에 대한 걱정은 있다. 그래서였을 거다.

 

<치매시를 왜 쓰느냐 물으신다면...>

 

치매 8년차에 접어드는

시어머니와 함께하는

며느리의 이야기입니다.

 

처음 치매 진단을 받고

왜 나냐고

내가 왜 이걸 감당해야 하냐고

낙담과 슬픔에 빠진 건

당사자보다 더 아플 준비에 두려운

며느리였습니다.

 

... 중략 ...

 

그러던 어느날

시를 쓰게 되었지요

사건이 에피소드가 되고

도저히 알 수 없는

행동의 뒷면이 보이며

아하 그래서 그러셨구나

 

... 중략 ...

 

지옥으로 떠밀리다

천국의 계단에 발을 걸친

아슬아슬하고

생생한 이야기

“치매도 시가 되는 여자”입니다.

 

 

▲ 강동완이 추천하는 「치매도 시가 되는 여자」^^

 

시를 소개하는 도중에 중략과 후략을 둔 것은 저작권의 문제도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직접 읽어보실 것을 권하고픈 마음 때문이었음을 밝혀둔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