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감 상2015. 8. 10. 16:42

이런 영화의 감상문은 좀 시건방진 말투로, 마치 휘갈겨 쓰는 듯한 느낌으로 적어 내려가는 것도 나름 어울리지 싶다. 영화 「베테랑」 이야기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서울올림픽의 감흥이 채 가시기도 전인 10월의 어느 날이었지. 서울 북가좌동의 한 가정집에 교도소를 탈출한 일당 4명이 가족을 인질로 경찰과 대치중에 일당 중 한 명이 외친 말이었어.

 

“있는 놈들은 다 빠져 나가고, 없는 놈들만 죄인 취급 받는 게 이놈의 나라다.”

 

그때라도 정신들을 차렸으면 나라가 이 꼴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다들 있는 놈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이, 있는 놈이 되기는커녕 처지만 우습게 됐다.

 

애초에 안 되는 거였잖아.

 

내 새끼 건드렸다고 아들 같은 애 하나 불러다가 죽어라 패놓고 돈으로 해결하려면 적어도 몇 천은 던져 줘야 하는데, 그럴 돈과 배짱은 있어? 게다가 해결사는 어떻게 살 거고?

 

자식새끼가 술과 마약에 쩔은 채 폼 나는 외제차를 과속으로 몰다가 인명 사고를 냈어. 이걸 단순 운전부주의로 조작하려면 전화 몇 통 돌릴 곳은 있어야 할 것 아냐? 하물며 자식 놈 외제차는 뭔 돈으로 사 줄 건데?

 

그런 거지. 애초에 글러 먹은 거였어. 그런데 혹시나 했던 거지, 다들.

 

그런데 말이야. 이런 가십성 기사가 있는 놈들에게는 몹시 쪽팔릴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야. 꼭 그렇지도 않아. 모범(부러움)이 되어 주잖아? 겉으로는 다들 욕하지만 그렇게 그들처럼 하지 못해서 안달들을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니 말이지. 나부터가 그래.

 

이게 어디 단순히 부러움에만 국한된 문제겠어? 그렇게 돈에 환장한 인간 군상들을 만들어 놓으면 통치하기도 편치. 돈 얘기만 하면 다들 좀비 떼처럼 모여들고, 부자 되게 해 주겠다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정권조차 맡겨주니 그렇다는 얘기지.

 

 

▲ 영화 베테랑

 

“잘못도 없는데 왜 맞아요?”

 

물류운송을 업으로 하고 있는 트럭기사인 배기사(정웅인 분)는 밀린 임금과 불법 해고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신진기업 앞에서 시위를 벌인다. 이 광경을 본 재벌3세 조태오(유아인 분)는 자신이 직접 해결하겠노라며 배기사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인력파견 외주업체 소장(정만식 분)을 만나게 해 준다.

 

하지만 그 해결방식이 독특하다. 두 사람에게 복싱 글로브를 하나씩 던져 준 조태오는 배기사의 아들(김재현 분)이 보는 앞에서 둘이 싸울 것을 주문하나 배기사는 일방적으로 얻어맞는다.

 

후에 배기사의 아들이 이 상황을 형사 서도철(황정민 분)에게 전하면서 한 말이다. 권력은 힘으로 패고, 자본은 돈으로 팬다. 더럽고 치사하게 맞으며 살고 싶지 않으면 바꾸어야 한다. 자본 우위의 세상을, 인간 중심의 세상으로 말이다. 이 영화의 메시지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테랑」은 하나의 사건에 관한 영화는 아니다. 몇 개의 작은 사건들이 있고, 그 와중에 신진기업 재벌3세 조태오의 비리가 영화의 핵심 모티브로 등장한다.

 

보는 이들에 따라 호불호는 갈릴 수 있을 거다. 허나, 오락 액션영화 보러 가면서 너무 엄청난 걸 기대하는 것도 무리 아니겠나?

 

가격 저렴한 분식점에 가서 음식 맛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것, 오천 원 하는 머리 컷트집에 가서 잘 잘랐느니 맘에 안 드느니 따지는 짓만큼 꼴불견이 것도 없다.

 

맛을 원했으면 돈을 좀 더 지불했어야 함이 옳고, 유행에 어울리게 제대로 자르기를 기대했다면 동네 미장원을 벗어났어야 한다.

 

같은 이치다. 오락 액션영화의 진수는 화끈한 볼거리와 시원한 싸움질, 거기에 감초 같은 웃음이 더해진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2시간의 투자와 만 원짜리 한 장 지불하는 게 전혀 아깝지 않은 영화다.

 

그런데 말이다. 도대체 언제까지나 영화 속에서만 대리만족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가? 잘못이 있는 놈은 지위고하나 쩐의 많고 적음을 막론하고 반드시 매를 맞는다는 지당함이 현실이 되는 세상을. 난. 갈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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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