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시 사2018. 2. 9. 08:08

36년여에 걸친 식민지 지배 상태에 있었다. 미국이 투하한 핵폭탄 두 발에 의해 일본이 손발을 다 들자, 마침내 자주독립국이 되었다. 그런데 일본이 항복 선언을 하던 그 순간, 연합국 사령관인 맥아더는 필리핀 마닐라에 머물고 있었다. 때문에 식민지였던 이 나라는 큰 혼란에 빠졌다. 해방은 되었으되 구심점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치안 부재의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 거다. 


마닐라에서 맥아더는 해방된 식민지의 치안을 당분간은(연합군이 인천에 상륙한 그해 9월 8일까지) 패망한 일본총독부에게 맡기기로 결정한다. 서울에 있던 아베 총독에게 통전을 보내 무장을 해제하지 말고 연합군이 상륙할 때 까지 치안을 유지하라고 명령했다. 이후 아베의 총독부는 한반도에 진주한 연합군에게 친일파를 대거 요직에 천거했고, 독립투사들은 빨갱이로 몰아 적색분자로 고발해 버린다. 불행한 역사의 시발점이다.


하지만 이런 수치스러운 대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해방의 그날부터 오늘까지, 변하지 않고 쭉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 되어버렸으니 이 어찌 치욕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 10여 년 전에 책 한 권을 번역하면서 당시의 그 상황에 대해 일본의 한 양심적 지식인이자 전문가(대학교수)에게 질문을 했던 적이 있다. “맥아더 사령부(미국 정부)는 왜 그런 조치를 취했을까요? 해방이 되었으면 치안권은 당연히 해방된 주체에게 넘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했더니 그 분 말씀이 “아마도 당시의 미국 정부에게 조선반도(한반도)의 존재감이나 인식이 거의 전무했을 것이다. 그래서 믿고 맡기기 어려웠을 것이다.”라는 거였다. 


무엇을 염려해서 믿고 맡기지 못했을까? 사회주의 국가인 러시아와 중국, 그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가 발목을 잡은 것이다. 당시 미국에게 있어 한반도는 마치 계륵과도 같은 존재이지 않았을까?


자, 그런 측면도 하나 있을 수 있고, 또 하나 다소 음모론적 이야기이기는 하나, 전쟁 당사국인 미국과 일본 정부 간 모종의 딜(거래)이 있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사실, 일본 정부가 전쟁의 패망을 인지하고 있던 시점은, 항복하기 2년 전인 1943년쯤이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다. 그 2년 동안 일본의 군부가 한 일은 전쟁을 함과 동시에 미국과 협상을 하는 것이었다. 핵심 의제는 일본왕인 ‘천황’의 안위를 보장해 달라는 것. 그리고 1945년 8월 10일 버섯구름을 목격한 일본 정부는 항복선언을 하기에 이르는데, 이 과정이 영 석연치 않다는 거다.


패망 후, 일본 군부의 온갖 노력(패색이 짙은 가운데서도 천황 하나 살리겠다는 명분 하에 무모하게 전쟁을 이어간 탓에 그 기간동안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전장에서 목숨을 잃어야 했는지, 또 급기야는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핵 투하로 인해 얼마나 많은 무고한 민간인들이 참변을 당해야 했는지 역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덕분이었는지 1급 전범인 일본왕 ‘천황’은 전쟁의 책임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일본은 미국의 기지국가화 된다. 


이 모든 게 단 두 발의 핵폭탄 투하와 함께 이루어진 일이다. 헌데 더 의아한 사실은 핵폭탄이 투하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치 준비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이 노트를 든 일군의 전문가들이 핵폭탄 투하지역에 대한 실태조사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마치 준비라도 하고 있었던 듯이 말이다. 의문스러운 대목이다. 역사상 최초의 원폭 실전 실험국이 된 미국과 패전국 일본, 전쟁은 했으되 관계는 오히려 동맹국으로 진일보 해버린 아이러니한 경우다.


이제, 현실로 돌아와 보자. 오늘은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있는 날이다. 북쪽 선수들의 참가,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북쪽 공연단의 방남 공연 등을 이유로 몰지각한 일부 인사들 사이에서는 평화올림픽이 아니라 평양올림픽이니 뭐니 잡소리가 많지만 결론적으로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은 평화올림픽이자 트럼프의 올림픽이 될 공산이 크다.


우선, 남과 북이 많이 컸다. 한때는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해 6자회담이 거론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말이 자취를 감췄다. 대신 북을 사이에 놓고 각개전투가 벌어졌다. 러시아와 중국, 한국과 미국이 돌아가며 북쪽과 숨 가쁜 줄다리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분단 당사자들인 남과 북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대화의 테이블을 만들었다.


이번 평창올림픽에서는 남과 북, 미국과 일본, 즉 4자(문재인 대통령, 김영남 위원장, 펜스 부통령, 아베 총리)가 핵심 대화 파트너가 된다. 이 시점까지 온 여정을 생각하면 더 이상 서로 간에 긴 이야기는 의미가 없다. 이미 서로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 메뉴는 식탁 위에 다 차려져 있다. 평화, 비핵, 안전보장, 핵동결, 평화협정, 통일 등이 주메뉴다. 여기에 식사 후 간식거리로 떠올려 볼 수 있는 가장 맛나는 후식 메뉴로는 미국 내에서 트럼프의 입지, 일본 아베총리의 생색내기를 떠올려 볼 수 있다.


이번 기회에, 북미가 기존의 대립관계를 청산하고 현재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할 수만 있다면, 미국 내에서 온갖 추문으로 흔들리고 있는 트럼프의 입지는 확고해질 뿐 아니라 노벨평화상 후보로까지 거론될 수 있다. 단 한 방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핵폭탄급 카드다. 


미국 갤럽 사회여론조사에 의하면, 러시아는 더 이상 미국의 주적이 아니다. 북한에게 그 자리를 내줬다. 러시아, 중국, 이란, 북한이 매년 미국의 주적 자리를 놓고 순위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2016년 조사에서는 북한이 러시아를 단 1%의 차이인 16%로 미국의 주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3위는 13%의 이란, 중국이 12%로 그 뒤를 이었다. 그만큼 미국인들이 보는 북한에 대한 위협론이 만만치 않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이 엄중한 위협적 상대를, 동반자적 관계로 되돌려 놓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업적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다. 필자가 보기에 미국이 사용할 가능성이 가장 큰 두 번째 핵폭탄은, 첫 번째 핵폭탄 투하가 만들어 놓은 ‘비정상(한반도 분단)’의 ‘정상화(한반도의 평화통일)’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확신하는 이유가 말이다. 한 번은 핵무기 두 방으로, 이번에는 펜 하나로.


이는 한반도 분단의 실질적 책임이 있는 일본제국주의의 승계자 아베 총리에게도 신의 한 수다. 세상은 변했다. 더 이상 일본 국내 정치용으로서의 북한때리기 및 북한위협론은 효력을 다했다. 가능하지 않은 시대로 진입했다. 미국이 그걸 원하고 있으며, 이미 대세는 북미간 ‘대립에서 평화로’ 이행하는 단계다. 흐르는 물결(미국 정부의 주적이 북한에서 중국으로 옮겨감)을 어찌 거스를 수 있겠는가. 


북미평화협정에 뒤 따르는 후속 조치, 그 뒷감당은 일본(아베 총리)의 몫이다. 전쟁배상금 물어내고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자문제 하나 제대로 해결하면 그 또한 전범의 자식으로서 아들·손자된 도리를 제대로 하는 것일 터, 아베 총리는 신심을 다하라.


하여, 나는 평창(평화)선언을 기대한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