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감 상2018. 5. 18. 01:40

지금. 다시. 마르크스


과거로의 여행이었다. 약 170여 년 전의 유럽을 거닐고 왔다. 독일, 영국, 프랑스, 벨기에의 도시들에서 여러 인물들을 만났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들의 배우자이자 연인이었던 예니와 메리 번스, 그리고 프루동, 바이틀링, 루게 등 당대의 혁명가들과도 조우했다.


올해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걸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세계 각지에 열리고 있으며, 또한 예정되어 있다. 현재 몇몇 영화관에서 상영 중인 영화 <청년 마르크스> 역시 그 일환으로 기획되어 수입 개봉되었다.


영화에서 엥겔스가 아버지로부터 “이딴 책을 냈느냐”며 호되게 질책 당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책이 「신성가족」인데 - 이 책은 엥겔스와 마르크스의 최초의 공동저작으로, 당시 종교비판에 관한 한 최선두에 섰던 바우어 형제(브루노 바우어, 에드가 바우어)와 그 일파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1845년에 쓰였다. 그리고 「철학의 빈곤」이 1847년, 「공산당 선언」은 1848년에 쓰였다. 여기까지가 영화에서 다루는 내용이며, 대략 이 기간을 ‘청년 마르크스’라 칭한다.


물론, 청년 마르크스라는 용어는 그저 단지 연령에 따른 생물학적 의미만이 아니라 마르크스의 사상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성을 갖는다.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들 간에는 ‘청년 마르크스’와 ‘성인 마르크스’ 사이에 사상적 단절(또는 변화)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대해, 즉 사상적 일관성이라는 측면과 관련해 다양한 논쟁들이 있어 왔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왜 하필 영화 제목이 <청년 마르크스>이며, 딱 그 기간까지 만을 다루었는가에 대한 궁금증이다.


추론을 해 보자면, 이 영화를 만든 라울 팩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6년여에 걸쳐 마르크스를 읽고 공부했다고 한다. 마르크스주의 전문가 수준이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아마도 그는 마르크스가 궁극적으로 꿈꾸었던 미래 사회, 즉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체”에 관해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를 공산주의 사회라 불러도 좋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발전과정 속에서 계급적 차이들이 소멸되고 모든 생산이 연합된 개인들의 수중에 집중되면, 공권력은 그 정치적 성격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본래의 의미에서의 정치권력이란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한 한 계급의 조직된 폭력이다. [···] [그렇게 되면] 계급과 계급 대립이 있었던 낡은 부르주아 사회 대신에 각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하나의 연합체가 나타난다.(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1권, 박종철출판사, 420~421쪽)


물론, 「공산당 선언」이 쓰여지기 2~3년 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동으로 저술한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이미 이와 관련한 자신들의 생각의 일단을 피력했다.


지금까지 개인들이 그것을 위해서 단결되었던 바의 겉보기만의 공동체는 항상 그 개인들에 대해서 자립적인 것으로 되었고, 동시에 또한 그 겉보기만의 공동체란 한 계급의 다른 계급에 대항한 단결이었기 때문에 피지배 계급에 대해서는 완전히 환상적인 공동체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족쇄였다. 진정한 공동체 속에서는 개인들이 그들의 연합(Assoziation) 속에서 그리고 그들의 연합을 통하여 동시에 자신들의 자유를 획득한다.(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1권, 박종철출판사, 247쪽)


개인들은 이 공동체에 [계급으로서가 아니라] 개인들로서 관여한다. 개인들이 자유로운 발전과 운동의 조건들을 개인들의 통제 아래에 두는 것은 바로 개인들의 연합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개인들의 자유로운 발전과 운동의 조건들은 우연에 맡겨져 있었으며, 각각의 개인들에 대해서 자립적인 것들로 되었는데, 이는 바로 개인들의 개인들로서의 분리 때문이고, 분업과 함께 주어진 불가피한 연합, 즉 개인들의 분리에 의해 그들에게 낯선 결박이 되어 버린 불가피한 연합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연합은 예를 들면 사회계약에서 표현되는 것처럼 자의적인 연합이 아니었고, 개인들이 우연성을 만끽하는 그러한 조건들에 관한 불가피한 연합이었다.(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1권, 박종철출판사, 249~250쪽)


이미 ‘청년 마르크스’는 이렇듯 확고하게 미래사회에 대한 자신의 포부를 밝힌 셈이다. “자유롭고 자발적인 연합“ ”개인들의 자유로운 연합“이 어떠한 구체성을 갖고 있으며 그것의 역사적 발전 경로는 어떠했는지를 명확하게 밝혔으며 마침내 「공산당 선언」을 통해 세계만방에 고한 것이다. 더 무엇이 필요한가? 나머지는 실천인 것을.


이 영화 <청년 마르크스>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의기투합해서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은 새로운 미래사회를 구상하기까지의 몇 년에 걸친 인생역정과 당시의 시대상황을 그려낸 역작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그저 그런 한 혁명가의 전기로써만, 또는 특정한 시대극으로만 대우받고 말아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이는 우리가 다시 마르크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봉건제가 붕괴되고 상업자본주의 시대를 맞았으며, 이후 산업혁명을 거쳐 산업자본주의 시대, 그리고 이제는 신자유주의시대에 살고 있다. 절대군주에 대항하여 싸우던 시민혁명의 와중에서 상공인으로 대표되던 중산층은 혁명의 핵심역할을 했다. 그리고 자유주의는 중산층의 핵심 사상이었다.


이후, 이들이 산업자본가로 되어 자본주의에서의 명실상부한 자본축적세력으로 활개를 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시대에서는 불평등의 최상위 먹이 사슬에서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마르크스에게 있어 ‘노예제’ 또는 ‘노예’라는 신분은 단지 신분으로서가 아니라 계급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공산당 선언」의 그 유명한 구절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는 선언이 가능했다.


노예의 역사는 길다. 마르크스의 규정에 따르면 소유의 최초의 형태는 ‘부족소유’이다. 물론 이때는 수렵, 어로, 목축 정도가 생산의 전부였으므로 발전되지 못한 생산단계였다. 하지만 생산수단의 발전과 더불어 생산력이 늘어나면서 외적 교류가 확대되는 가운데, 전쟁포로 등이 생기고 자연스레 노예제도 발전한다. 고대 그리스 로마 등은 기본적으로 노예제를 기반으로 한 사회이고, 봉건제 역시도 그러했다. 봉건제의 붕괴와 함께 등장한 산업자본주의 사회, 노예수준 이하의 참상에 마르크스는 분노했던 것이다.


각설하고, 시간을 한참을 건너뛰어서 오늘의 현실로 돌아와 보자. 10대 90의 사회, 불평등의 심화, 금수저 은수저, 부의 대물림, 갑질, 가장 직접적인 표현으로는 임금노예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영화는 「공산당 선언」을 낭독하는 예니(마르크스의 부인)의 음성과 함께 막을 내린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자유민과 노예, 귀족과 평민, 영주와 농노, 장인과 직인, 요컨대 억업자와 피억압자는 끊임없는 대립 속에서 서로 마주섰으며, 때로는 은밀하고 때로는 공공연한 끊임없는 투쟁을, 즉 매번 사회 전체가 혁명적으로 개조되는 것으로 혹은 투쟁하는 계급들이 함께 몰락하는 것으로 끝난 투쟁을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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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