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시 사2022. 7. 10. 12:47

강동완 지음, 『일본 신군국주의』, 호메로스

아베 전 일본 총리가 쓰러졌다. 심장에 총알을 맞았다. 총알은 일본 강경보수우익의 심장을 관통했다.

 

일부 민주주의자들을 비롯한 다수의 일본 국민은 비통할 일이다. 정치인에 대한 테러는 민주주의에 대한 심대한 도전이다. 그래서다. 대다수 정치인에 대한 테러는 한 인간의 일탈을 넘어서며 막중한 의미를 갖는다. 무게감 또한 상당하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테러 직후 체포된 저격범(山上徹也)집안을 파산에 이르게 한 자신의 어머니가 빠져있는 종교단체와 아베 전 총리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한 것으로 진술했다 한다.

 

그럴듯하게는 들리지만, 확 다가오지는 않는 뭔가 석연찮은 범행동기다. 종교단체에 불만이 있었다면, 해당 종교단체에 항의하거나 그곳 혹은 그곳의 인물을 범행 대상으로 삼는 게 일반적이다.

 

게다가 전직 해상자위대의 장교였다고는 하나, 그가 사제총을 그렇게 정교하게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군대에서 배웠다고 보기도 어렵다. 군의 규율상 그런 종류의 사제총을 개조할만한 분위기였을까도 의문스럽다.

 

그렇다면 전역 이후에 총을 제작했거나 구매를 했다는 것인데, 일본 치안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사제총 제작은 그렇다 쳐도 실험은 어디서 할 수 있었을까? 글쎄다, 혹 지하세계에서 불법 거래되는 권총이었다면 또 모르겠다.

 

아무튼 아베는 일본의 유력 정치 가문이다. 아니, 일본의 유력 가문이다. 천황家에 버금갈 정도의 세도가문이다. 아베가 총리가 된 이후로 심심찮게 일본 언론에 오르내렸던 기사 중 하나가 정치권(아베류)과 천황가와의 갈등설이었다. 아베의 세력은 천황의 말도 듣지 않고 무시할 정도의 힘을 가진 집안이자 힘으로 성장했다.

 

이들 세력의 범위는 비단 아베 집안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일본 보수세력 중에서 신흥 강경보수세력의 힘의 막강함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일본 보수 본류는 천황의 유지를 받들고자 한다. 천황은 일본의 국체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신흥 강격보수세력의 관심은 전전으로의 회귀 즉, 군사적 대국화에 몰입되어 있다. 아베가 대표적이다. 이들 간 갈등을 무시할 수 없다.

 

나는 일찍이 일본의 보수우익화를 경계하며, 일본 사회를 신군국주의로 규정한 바 있다.

 

(역사 및 방위)수정주의적 해석을 통해 사회 일체가 안보 하나로 연결되고 수렴되는 현상을 ‘신군국주의’라 정의하였으며, 이러한 경향성이 일본 신군국주의의 실체다.(강동완 지음, 『일본 신군국주의』, 호메로스)

 

이 말을 약간 풀어서 부연하자면 이렇다. 한 국가(사회)에는 규범과 가치라는 게 있다. 이는 그 사회 일반이 추구하는 이상과도 같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 ‘사람이 먼저다’, ‘홍익인간’, ‘대동세상그저 말만 들어도 그 사회가 가야 할 방향성이 보인다.

 

달리하자면, 한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는 현재를 넘는 미래구상이다. 그런데 과거로의 회귀만을 꿈꾸는 집단이 있다면, 사회의 가치체계가 바로 정립되지 못한다. 근대 이후 일본이 그렇다. 메이지유신 이후의 일본제국에 혼이 나간 이들이 21세기를 지배하고 있다.

 

1993년인가 처음으로 정치에 입문한 아베 전 총리가 정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되는 계기가 2000년대 초반 고이즈미 정권부터였다. 이후 일본 보수우익의 아이콘 역할을 하며 근 20여 년 일본 사회를 쥐락펴락했다.

 

그 시기 아베의 머릿속을 맴돈 것은 오직 평화헌법 개정’, ‘자위대의 군대화’, ‘미일군사동맹 강화뿐이었다. ‘일본제국의 부활이다. 그 속에 국민이나 인권, 인간의 삶과 같은 고차원적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듯 사회 일체(정치·경제·문화)가 안보 하나로 귀결되고 수렴되는 현상을 나는 신군국주의로 본 것이다.

 

이 기간, 일본 경제는 철저하게 망가져서 회복 불능 상태로 내몰렸고, 잦은 자연재해 탓에 안전한 사회 일본이라는 안전신화는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으며, 종신고용과 전국민의 중산층화는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이제는 이웃나라 한국에게마저 업신여김을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누구의 책임인가?

 

비슷한 맥락에서 이번 저격 사건도 이해하려 한다. 이는 한 인간의 개인적 원한에 의한 단순한 일탈적 행위가 아니다. 일본 보수세력 간의 권력 투쟁으로 파악 중이며, 보다 거대한 흐름 즉, 동아시아의 세력 재편과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변화 등이 암묵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읽으려고 한다.

 

단기적으로는 이번 사건이 일본 보수우익을 결집하는 부정적 효과로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어쩌면 평화헌법이 개정되고 자위대가 군대가 되는 일이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불편한 마음도 있다.

 

오늘이 일본 참의원 선거일인데, 일본 쿄도통신의 보도로는 지난 선거 때보다 현재 투표율이 다소 높다고 한다. 보수파의 압승이 예상된다. 이번 사건의 영향이 클 것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일본 사회가 보다 합리적인 국가, 미래지향적이며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탈신군국주의화 하는 계기로 작용하게 될 것으로 조심스레 낙관해 본다.

 

일본 평화헌법이 바뀐다고? 자위대가 군대가 된다고? 이미 그런 현실이다. 문맥 상으로만 그렇지 않을 뿐이다. 설사 그리된다고 해서 변하는 것 또한 별로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힘을 기르고, 힘의 균형을 유지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로 대응하는 일이다. 우리가 힘이 있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아베씨와 일본 신군국주의의 명복을 빈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7년~현재/여 행2022. 4. 20. 09:30
한라산 관음사 108사찰순례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7년~현재/여 행2022. 4. 14. 10:36

 

108사찰순례 제주선운정사 Seonunjeoungsa Temple 韓国の古刹名刹(お寺) Korean Buddhist temples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7년~현재/여 행2022. 4. 9. 19:06

 

구미 금오산 마애여래입상 Rock-carved Standing Buddha in Geumosan Mountain, Gumi 磨崖如來立像 お寺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7년~현재/여 행2022. 4. 3. 22:23

 

태안 안면암 Anmyeonam Temple 安眠庵 韓国のお寺 Korean Buddhist Temples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7년~현재/여 행2022. 3. 28. 08:02
구미 도리사 Dorisa Temple in Korea 桃李寺 韓国のお寺 Korean Buddhist Temples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7년~현재/여 행2022. 3. 23. 22:59
제주 산방산 산방굴사 Sanbanggulsa Temple in Jeju Island 山房窟寺 韓国のお寺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7년~현재/여 행2022. 3. 20. 12:56
의성 운람사 Unramsa Temple 雲嵐寺 韓国の古刹名刹(お寺) Korean Buddhist Temples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7년~현재/여 행2022. 3. 17. 16:18
서산 간월암 Ganwolam Temple 看月庵 韓国の古刹名刹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7년~현재/읽 기2022. 3. 15. 16:33

꺾일 줄도 모른 채, 지친 기색이라고는 하나 없이, 모습마저 바꿔가며 세를 확산하고, 인류의 존망조차 위협할 듯 무서운 기세로 덤벼드는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으니 사람들은 이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라 부른다. 코로나는 짧은 시간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물질적인가 비물질적인가, 혹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를 떠나 인간세계에 끼친 영향이 너무도 크고 막중하다.

 

누구에게는 생명의 종말을, 누군가에게는 육체적·정신적 아픔을, 누군가에게는 상실의 고통을, 누군가에게는 타인 기피증을 코로나는 안겼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시대의 미래를 그려볼 기회를 제공했다. 뿌연 안갯속 불분명함으로 인해 말만 무성했던 4차 산업혁명의 실체를 코로나가 또렷이 보여주기도 했다. 비대면과 거리 장벽의 극복이 그것이다.

 

뿐인가? 소중한 한 권의 책을 안겨주기도 했으니, 그 영향력의 끝이 어디일지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시인이자 수필가인, 학창 시절에는 신사임당을 꿈꿨었다는 류자 선생의 『코로나 1박 2일』(대양미디어)이 그 주인공이다. 코로나라고 하는 엄중하며, 기괴하고, 때로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던 그 척박한 환경 속에서 저자는 한 송이 장미꽃을 피워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담담한 어조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살다 보면 앞만 바라보며 걷던 걸음이 갑자기 튀어나온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도 있다.” 저자에게 코로나는 그런 존재였나 보다. 그렇듯 일상에서 불쑥 튀어나오곤 하는, 속된 말로 ‘제수 옴 붙은’ 것 같은 그런 존재 말이다.

 

그래서일까? 코로나 팬데믹의 종말에도 다소 낙관적이다. “코로나는 예방백신과 치료제의 등장으로 곧 정복될 예정이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던 걸음걸이가, 툭툭 털고 일어서서 다시 걸음을 재촉하는 그 용기에 의해 별것 아닌 잠시의 해프닝 정도로 그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람들은 때로 난관 앞에 서서야 자신의 참된 진가를 발견하곤 한다. 그저 그런 일상인 줄로만 알았던 하루하루의 평온과 혼란, 기회와 위기가 실은 그의 육신과 내면을 단련시키는 담금질이었다는 사실은 언젠가 닥칠 지리멸렬한 곤란 앞에 섰을 때야 비로소 알게 된다.

 

우리도 그렇다. 식민지배의 굴욕, 동족상잔의 전쟁과 폐허, 분단의 현실은 현재진행형으로 우리를 왜소화하는 요소였다. 당연히 우리는 스스로를 하찮게 여겼으며, 가야 할 길이 먼 후진적 국가의 국민으로 인식하게 했다.

 

하지만 눈 떠 보니 선진국이더라는 누군가의 말마따나 우리는 선진 대한민국에서 풍요로운 국민으로 살고 있음을, 마치 새삼스레 발견이라도 한 듯 놀라워한다. K-문화, K-방역, K-푸드 등으로 호들갑을 떨지만, 이미 그런 호사들은 우리의 일상적 삶에 불과할 따름이다. 역시나 코로나 위기 상황이 가져다준 재발견이라면 재발견이다.

 

혹자는 세계 각국이 코로나 위기를 헤쳐나가는 극복 방안들을 분석하면서 우리 삶의 방식이 옳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우리의 고유한 공동체 중시 문화가 서구의 개인주의적 삶의 태도에 앞서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이 주장에 공감하든 아니든, 아무튼 이번 코로나 위기는 우리에게 소중한 경험을 안겨준 것만은 분명하다.

 

서구적 삶과 우리의 삶에 대한 비교 역시 그 한 예다. 사상사적으로 특히 그렇다. 서구문화의 우월감은 학문하는 이들에게는 넘기 힘든 벽과도 같다. 그 넘사벽은 두껍고도 높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이러한 서구 우위적 사고에 일대 전환을 위한 일종의 기폭제이자, 서구 문명 재인식의 긍정적 바이러스로 작용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서구, 특히 유럽 문명은 종교(기독교, 가톨릭)를 빼놓고 논하기란 곤란하다. 서구에서 종교는 종교 이전에 문화라고 봐야 하기에 그렇다. 확고하게 계급이 지배하던 고대 로마와 같은 신분제 사회에서 신(神)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사상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발상이었으나, 그런 시도가 있었다. 이는 이후 서구사회를 지배하는 중심 이데올로기로 발전한다.

 

여기에 더해 16~17세기 벌어진 시민(부르주아)혁명은 자유를 위한 피의 투쟁이었다. 물론, 이 당시의 자유 개념은 오늘날의 자유 개념과는 차이가 컸다. 당시의 자유는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자유 즉, '축적의 자유'를 의미했다.

 

봉건영주의 절대적 힘이 마치 법과도 같았던 중세 봉건시대 말기에 ‘상인’이라고 하는 새로운 계급이 등장한다. 상업을 통해 이윤을 얻는 집단으로 역사상 일찍이 없던 계층이자 역할의 출현이었다. 당시의 이윤은 땅(토지)에서 얻어지는 농산물이거나 지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상업활동의 보장을 놓고 영주계급과 갈등을 빚던 이들 상공업자 부르주아 계층은 농민과 서민을 규합해 부르주아 혁명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들의 구호가 바로 ‘자유’였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자유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은 숭고한 의미로서의 자유 개념은 근대 이후가 돼서야 비로소 정립된다.

 

정리하자면, 신 앞의 만인의 ‘평등’ 정신과 ‘자유’ 개념은 지금까지도 서구문화의 중심 사상이다. 이 두 정신은 서로 보완하고 충돌하며 인간사를 지배하고 있다. 우리라고 여기서 예외일 수 없다. 단적으로 자유 민주주의 체제(자유 우위)를 지향하는가, 아니면 민주 공화정(평등 우위) 체제를 지향하는가에 따라 그 정책이 사뭇 달라진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개인의 자유이기는 하나,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를 진보와 보수로 가르는 경계점이기도 하다) 놓치면 안 되는 중요한 한 가지는 이 둘은 단지 상부구조일 뿐이고, 이 둘이 발 딛고 서 있는 토대는 ‘자본주의’ 체제라는 사실이다.

 

토대가 자본주의 체제라는 점은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바가 자본 축적의 고도화를 추구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여기에 자유(경제활동을 위한)를 더 중시할 것이냐, 아니면 평등(분배)을 더 중시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단순한 선택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 즉, 자본에 자본을 더할 것인가, 아니면 자본에 평등을 더할 것이냐의 문제로 볼 수 있기에 그렇다. 어느 쪽으로 향할 때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지는 안 봐도 뻔하다.

 

그런 이유에서다. 코로나 이후 서구사회의 마스크 거부 운동이 수긍되는 이유가 말이다. 전통적 자유주의 사상에 입각한 표현의 일환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사적 이익을 위한 자유, 그것을 위해 피의 깃발을 들었던 저들의 치열했던 과거 부르주아 혁명을 상기해 보자. 충분히, 저들은 그렇게 행동하는 게 맞는 거다. 개인의 마스크 쓰지 않을 자유가 몹시도 소중하기에 저들은 투쟁한다. 나와 타자 모두 자신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개인이다.

 

반면, 우리의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 사상은 어떠한가? 홍익인간은 주체로서의 ‘나’가 아니라 나인 ‘인간’과 타자인 ‘인간’ 즉,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인연 혹은 관계에 주목한 사상이다.

 

재세이화는 인간 존재의 공(在)·시()성을 바른 이치()로 바꾸어 낸다는 의미다. 이는 홍익인간이 함의하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라는 공간성(在)에 더해, 그 기원이나 연원까지를 아우르는 역사적 시간성()까지도 포함하는 광의의 사상이다. 인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인간 상호 관계를 이치(체계)화 한다는 의미다. 그러니 내 개인적 자유와 타인에 대한 배려를 동일한 기준 위에 놓은 채 사고하고 판단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관습이다.

 

이들이 꿈꿨던 미래는 자연스럽게 대동세상(大同世上)으로 이어진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와 그 역사성이라고 하는 것의 실체는 인간 상호성의 인정이며, 상호 다양성에 대한 이해이고, 상호 다름에 대한 인식이다. 이것이 공공선으로 이어진 곳에 대동세상이 존재한다.

 

각설하고, 다시 책으로 돌아가 보자. 역시, 저자에게도 코로나는 그저 악의 화신으로만 머물지 않고 일상의 어떤 것들이 새롭게 드러나고, 그것을 밝게 밝혀주는 등불의 역할로 확대된다. 무료하게만 느껴지던, 하지만 어김없이 늘 반복되던 일상이, 철저히, 단절되었다.

 

그것에 대한 그리움과 그로 인한 행복감. 코로나가 가져다준 마치 선물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아니다. 그 감흥을 저자는 이렇게 멋진 시로 풀어낸다.

 

행복한 날 – 류 자

 

아무 일도 없는 날들은 참 지루했지

매일매일 그럭저럭 지내는 날들

어제와 다를 게 없는 오늘을 살며

 

뭔가 좀 특별한 게 없을까

내일은 좀 다르게 살아보자고

허파에 바람 든 소리나 하며 살았지

 

먼 바다를 꿈꾸며 흘러가는 시냇물

있는 듯 없는 듯 졸졸 흐르는 물소리

리듬이 깨지면 안 되는 걸 그땐 몰랐지

 

하루하루가 전쟁 같은 코로나19

보이지 않는 창살에 꽁꽁 묶여보고야

평범한 일상이 행복이었던 걸 알았네

 

아침에 일어나 허겁지겁 출근을 하고

친구와 만나 악수를 하며 밥을 먹다가

때론 침 튀기며 언쟁도 좀 벌이던

 

늘 쳇바퀴처럼 돌기만 하던 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

아무렇지도 않던 그날이 행복이었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