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일본 속 우리

김해 구지봉에서 규슈 한국악으로: 신의 강림을 갈구하는 소리의 계보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25. 4. 19. 17:05
“일본 여행 사전 지식-아는 만큼 보인다” 시리즈를 준비합니다.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가로지르는 고대사 대장정입니다. 한반도 문화의 일본 열도 전파라는 주제로, 대략 6개월에 걸쳐 가야, 백제, 신라, 고구려 각 10편씩 총 40편을 연재할 계획입니다. 이 정도의 사전 지식은 갖고 일본 여행을 가면 좋겠다 싶은 내용으로 선정해서 기술할 예정입니다. 일본 땅에 깃들어 있는 한반도 개척자들의 혼과 열정을 기대해 주십시오.

가야편 제5회

김해 구지봉에서 규슈 한국악으로: 신의 강림을 갈구하는 소리의 계보

 

신화는 단지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역사 이전의 역사이며, 한 민족의 기억이고,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가장 오래된 언어이다. 우리는 신화를 텍스트로 기억하지만, 그것이 처음 발생했던 자리는 소리였다. 제사장의 노래, 공동체의 외침, 북소리와 발 구르는 소리, 무용수의 리듬 속에서 신화는 태어났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김해의 구지봉에서 울려 퍼진 ‘구지가(龜旨歌)’와 일본 규슈 지역에 전승된 제의무악 ‘가구라(神楽)’ 사이의 문화적 연결고리를 탐색할 필요가 있다. 이 두 제의 전통은 서로 다른 시대, 다른 지리에서 탄생했지만, 그 형식과 기능, 세계관의 구조에서 놀라운 공통점을 드러낸다.

 

먼저 김해의 구지봉을 살펴보자. 구지봉은 경상남도 김해시 중심부에 위치한 해발 200미터 남짓의 낮은 구릉이다. 언뜻 보면 평범한 동산처럼 보이지만, 이곳은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이 하늘에서 내려와 탄생한 성역으로 전해진다.

 

『삼국유사』에는 아홉 명의 간(干, 촌장이나 부족장의 의미이며, 징기즈칸의 '칸'과 같은 어원으로 본다)들이 수로왕의 강림을 기다리며 이 언덕에서 제를 올리고, 그를 호출하는 노래를 불렀다고 기록돼 있다. 그 노래가 바로 ‘구지가’다. 지금도 구지봉 언덕 아래에는 ‘수로왕릉’이 있고, 구지봉 정상에는 김수로왕의 난생신화를 기리는 비석과 사적 안내가 자리 잡고 있다. 이렇듯 구지봉은 단순한 역사 유적이 아니라, 신화와 의례, 제정일치의 기억이 아로새겨진 한국 고대문화의 출발점 중 하나이다.

 

고고학적 발굴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김해 일대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금관가야가 단순한 지역 부족국가가 아니라, 해상 교역과 기술 문화를 주도한 강력한 문명권이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수로왕릉 주변에서 출토된 청동기 및 철기 유물, 그리고 제단 형식의 석조 구조물은 이곳이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고대 의례와 제사가 이루어진 복합적인 신성 공간이었음을 시사한다.

 

반면, 규슈 남부에 위치한 한국악(韓国岳. 한국산)은 고도 1,700미터에 이르는 활화산 지대의 중심 봉우리다. 일본 가고시마현과 미야자키현 경계에 위치한 이 산은 기리시마 화산군 중 하나로, 그 자체가 일본 고대 신화 속 '천손강림'의 무대로 간주된다. 『일본서기』에는 아마테라스의 손자 니니기노미코토가 하늘에서 내려와 일본 땅을 다스리기 시작한 장소가 바로 이 일대라고 기록돼 있다.

 

한국악이라는 명칭도 이 지역이 고대 한반도 도래 개척자들의 활동 무대였음을 암시한다. 즉, ‘한국’이라는 지명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한반도계 이주민들의 흔적이 지형의 이름에까지 새겨져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한국악은 단순한 산이 아니다. 그것은 땅의 깊은 곳에서부터 치솟는 불기둥과, 하늘과 지하 세계를 잇는 상징적 기둥 같은 존재다. 실제로 한국악이 속한 기리시마 화산군은 지금도 활발한 화산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이달 초에는 신모에다케 화산이 분화해 현재까지 입산 금지 조처가 내려진 상태다.

 

분화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하얀 연기와 유황의 냄새는 이곳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살아있는 대지의 호흡을 간직한 장소임을 일깨운다. 이러한 지질학적 특성은 한국악이 신화적 무대로 기능하는 데 중요한 맥락을 제공한다. 고대인들에게 화산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신의 분노이자 음양의 전환점이며, 새로운 질서의 시작을 상징하는 초자연적 공간이었다. 신들이 하늘에서 내려올 만한 성스러운 대지가 바로 이곳이었던 것이다.

 

한반도에서 건너온 이들에게 이 높은 산은 고향을 그리며 바라볼 수 있는, 그리움을 녹여 내리는 장소로도 적당했다. 일본 역사서 『고사기』에도 “여기는 좋은 곳이다. 왜냐하면 가라쿠니(韓國)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김해 구지봉과 규슈의 한국악 위치 (구글 지도)

 

『고사기』의 신대편에 따르면, 천상의 세계인 타카마가하라(고천원)에서 내려온 니니기노미코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乃曰:此處甚麗。雖朝日之直刺地、夕日之日隱地、然而甚麗。
故此處、於韓國之方向、甚麗也。
是以名之曰日向也。

"그가 말했다. 이곳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구나. 아침 해가 바로 드는 나라, 석양이 비치는 나라, 참으로 좋은 곳이로다.

게다가 이곳은 가라쿠니(韓國, 한국)를 향하고 있어 더욱 아름답다.

허니, 이곳을 히무카(日向, 일향)라 부르겠다.”

 

본문에서 말하는 가라쿠니(韓國)란 당연히 한반도의 김해 지역일 것이며, 히무카(日向)는 그 뜻을 풀이하면 ‘고향을 향하는 곳’이 적절할 듯싶다. 여기서 한자 일(日) 자는 태양을 의미하며, 의역하면 모든 것의 근본이다. 인간의 뿌리는 고향이다. 고향을 떠난 이들의 애틋한 마음이 잘 드러난다. 19세기 후반 메이지유신 이후에 일본 정부가 한국악의 지명을 바꾸려고 하다가,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과 저항으로 무산된 바 있다. 한국악의 한(韓)이라는 글자를 일본어 발음이 똑같은 공(空)으로 교체하려다가 실패한 것이다.

 

이때 일본 내에 있는 한반도 관련 지명, 사찰과 신사 이름 등이 많이 개명되었다. 일본 내에 산재해 있던, 한반도와 관련한 한자인 한(韓) 자를 빼고 다른 한자로 교체해 버렸다. 한(韓)이라는 글자를 대체한 대표적인 한자가 당(唐), 신(辛), 한(漢) 등이다. 일본어에서는 한(韓), 공(空), 당(唐), 신(辛), 한(漢)이 모두 ‘카라’라고도 발음하기에, 본래 이름에서 한자를 한 글자 바꾸더라도 의미는 달라지나 발음은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한 꼼수다. 한반도의 색채를 지우려는 일본 보수세력들의 얄팍한 역사관이다.

 

『일본서기』에는 니니기노미코토가 아마테라스의 명을 받아 다카마가하라(高天原)에서 내려와 이 땅을 다스리는 장면이 자세히 묘사된다. 그는 일본 천황가가 자신들의 종교적 권위의 상징으로 모시는 삼종신기 – 거울, 검, 곡옥 - 와 곡물을 가지고 이 땅에 강림하였으며, 그가 처음 발을 디딘 산이 바로 기리시마, 곧 한국악 일대이다. 이후 일본 천황가는 이 신화를 자신들의 조상 신화로 내세워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했다. 이곳은 단순한 자연경관이 아닌, 신의 족적이 시작된 거점이었다. 그 신화적 무게는 오늘날에도 제례와 공연 예술로 계승되어 오고 있다.

 

‘구지가’는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수록된 한국 고대의 대표적인 제의가요다. 금관가야의 시조인 김수로왕이 하늘에서 내려올 때, 아홉 간(干)이 그를 맞이하며 부른 노래가 바로 이것이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이 짧은 가사는 단순한 민요가 아니다. 이는 신적 존재를 소환하는 집단적 의례의 핵심이었으며, 그 안에는 고대 공동체의 정치적 상징성과 주술적 신앙이 짙게 녹아 있다. 특히 ‘거북이’라는 동물은 고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장수를 상징하거나 하늘과 땅을 매개하는 존재로 여겨졌기에, 단순한 동물 명칭이 아니라 상징적 코드로 읽어야 한다.

 

이와 유사한 구조는 일본의 ‘가구라(神楽)’에서도 발견된다. 가구라는 본래 일본 신도(神道)에서 신을 맞이하기 위해 연주되는 노래와 춤의 종합 예술로, 일본 전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전승되어 왔다. 그중에서도 규슈 지역, 특히 한국악이 위치한 가고시마현과 미야자키현 일대에서 전승된 고전 가구라는, 타카치호 요가구라와 기리시마 가구라가 있다. 이 중에 기리시마 가구라의 경우 가사가 구지가와 유사한 천손강림의 내용이다.

 

“기리시마의 신이여, 내려오소서

산의 정기, 우리를 지키소서

검을 들고, 악을 물리치리

풍요의 들판, 영원하리라”

 

고대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이 이식한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지역의 가구라는 신을 모시고, 신의 강림을 기원하며, 신의 힘을 통해 공동체의 안녕을 빌고, 의례를 통해 신을 다시 보내는, 정교한 의식 구조를 갖추고 있다.

 

가야의 구지봉과 규슈의 한국악은 단순한 지리적 상징이 아니다. 두 장소는 각기 한반도와 일본 열도에서 ‘신의 강림’을 둘러싼 고대 제의의 중심지였다. 구지봉은 김수로왕이 황금알에서 태어났다는 난생신화를 품은 장소이자, 아홉 간이 머리를 조아리며 왕의 강림을 노래한 성역이다. 반면 한국악은 고대 일본의 천손강림 신화에서 니니기노미코토가 하늘에서 내려온 장소로 여겨진다. 이 두 산은 각각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가 인간 세상에 첫 발을 디딘 신화적 지점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즉, 구지봉은 가야 건국의 신화를 열었고, 한국악은 일본 왕실의 신화를 연 무대였다.

 

이러한 지리적 유사성은 단순한 우연이라 보기 어렵다. 구지봉에서 불린 구지가는, 공동체가 하늘에서 내려올 존재를 맞이하기 위해 부른 제의적 합창이었다. 그리고 한국악에서 연행된 가구라는, 하늘의 신이 인간 세계에 내려와 이 땅의 신으로 자리 잡는 의례의 핵심 요소였다. 이 두 제례의 구조는 거의 동일하다. 하늘의 존재를 노래로 불러내고, 그 존재가 강림한 뒤 공동체는 새로운 질서 속에 들어선다.

 

구지가는 김수로왕이라는 난생(卵生)의 신화를 가진 왕의 출현을 요구했고, 가구라는 천손강림 신화를 기반으로 한 신의 등장을 요청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구지가의 상징인 ‘거북이’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라”라는 노래는 수로왕의 강림을 요청하는 집단적 의례의 목소리였지만, 여기서 거북이를 실제 동물로만 해석할 것인지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주류 해석에서는 거북이를 수로왕이 들어 있는 알 또는 그가 탄 상징적 매개체로 보기도 하고, 또 어떤 학자들은 '거북(龜)'이라는 존재가 수로왕의 도래 자체를 상징하는 상징적 동물로서의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구지’라는 말이 '거북(龜)'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지역 방언이나 고대어에서 왕을 부르는 존칭어 혹은 신성한 존재를 의미하는 고유명사였다는 주장도 있다. 그래서 구지봉은 큰 사람 즉, 대왕의 봉우리라는 해석이다. 이러한 시각은 구지가의 해석을 단순한 동물과의 상징적 연결 이상으로, 보다 복합적이고 깊이 있는 의례 구조로 바라보게 만든다.

 

두 전통 고전의 음악적 구조 또한 비교할 만하다. 구지가는 반복과 리듬을 통해 집단의 일체감을 유도하며, 일종의 주술적 효과를 발생시키는 원시적 형태의 노래다. 이는 선율보다 운율이 강조되는 형태로, 특정 음계를 따르기보다 상황과 목적에 따른 즉흥성과 상징성에 중점을 둔다. 가구라 역시 반복적인 리듬, 단조로운 선율 속에서 상징적 동작과 가사가 중심이 되는 제의 음악이다. 양자는 모두 ‘음악’이라기보다는 ‘의례적 성음 즉,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이며, 그것을 통해 인간과 신, 땅과 하늘, 현세와 초월 세계를 연결하고자 하는 시도다.

 

더 흥미로운 것은 두 노래가 모두 ‘신의 현현’ 이후 새로운 질서의 정착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구지가는 김수로왕의 출현과 금관가야의 개국으로 이어지고, 가구라는 신의 하강 이후 지역 공동체의 결속과 풍요를 기원한다. 즉, 이들은 단순한 종교적 의식이 아니라, 고대국가 형성기의 권력 정당화, 사회 통합, 민족 정체성 구축이라는 정치 · 사회적 함의를 내포한 복합 코드이다.

 

결론 삼아 몇 자 덧붙이자면, 구지봉과 한국악의 연결고리는 신화 이상의 현실적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특히, 천손강림 신화에 등장하는 니니기노미코토와 가야 김수로왕의 사라진 '7 왕자(七王子)'와의 관련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수로왕에게는 10명의 왕자와 두 명의 공주가 있었다. 그중 7명의 왕자가 하동 칠불사에서 수도한 후 구름을 타고 떠났다는 승운이거(乘雲離去) 기록이 김해 김씨 족보에 남아 있다고 한다. 왕권의 장자 승계 구조에 의해 왕위 계승에서 멀어진 이들 7 왕자의 이후 행적에 관한 구체적인 사료는 없다. 추론컨대, 이들이 도착한 곳이 지금의 일본 규슈 최남단 가고시마(鹿児島) 지역이지 않았을까?

 

김해에서 구름을 타고 떠났던 이들 7 왕자는 신화적 존재로 화하여, 규슈 한국악에 천손 니니기노미코토가 되어 구름을 타고 내려왔을 법하지 않은가. 물론, 믿을 만한 사료 기록을 찾기란 쉽지 않지만 그렇게 추론하는 주장은 많다. 7 왕자를 기념하는 7 신사(七神社)를 포함해, 이들이 쌓았을 것으로 추정하는 7개의 산성터, 고대 남규슈에 있었던 구노국(狗奴國)의 존재 등 이런저런 관련한 유적들이 그 근방에 산재해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그리고 그곳과 멀지 않은 곳에 한반도 김해 지역을 연상케 하는 한국악이 있다.

 

한일 양국의 고대 신화와 의례 전통은 단절된 두 개의 상이한 문화가 아니다. 특히 규슈 지역은 한반도 도래 개척자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 있는 공간으로, 가야와 백제, 심지어 신라 출신의 기술자, 예인, 샤먼들이 건너가 뿌리를 내린 곳이다. 이들이 가져간 것은 단지 철기 기술이나 토기 양식만이 아니라, 하늘을 부르는 노래,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춤, 그리고 세계의 질서를 설명하는 신화였다. 구지봉과 한국악은 그 연결 지점이자, 문화적 다리의 양 끝이었다.

 

우리가 오늘날 구지봉의 전설을 다시 불러내고, 한국악 산기슭의 가구라를 다시 바라보는 이유는 그저 하나의 유사성을 찾기 위함이 다가 아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이름을 지녔지만, 동일한 기억을 공유하는 우리의 과거를 마주하기 위함이다. 구지가는 한국 고대의 목소리였고, 가구라는 일본 땅에 새겨진 그 메아리였다. 우리는 이 소리의 계보를 따라 걸으며, 다시금 묻는다. 신을 부른 자는 누구이며, 신의 이름을 잊지 않으려 애쓴 이들은 누구인가. 그 질문 속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옛 이야기의 조각들을 찾게 될 것이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