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웅'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07.30 <암살> & <미션임파서블>
  2. 2014.08.02 영화 명량
  3. 2014.07.29 군도 민란의 시대 1
2007년~현재/감 상2015. 7. 30. 17:24

요즘은 영화산업 또한 대기업의 그늘 아래 편입이 된 상황이다 보니, 영화의 인프라 자체가 자본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영화관 역시 대기업 계열의 몇 개 회사가 나눠 갖고 있는 실정이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전의 영화관에서 느낄 수 있었던 낭만 같은 것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영화관 담장을 넘어가 공짜 영화를 본다든가, 두 편 동시상영 영화 같은 게 우리세대가 추억할 수 있는 낭만의 상징이겠지요.

 

80년대 중반쯤으로 기억이 됩니다. 그때는 한창 영화에 대한 꿈이 무르익던 시절이었습니다. 영화도 자주 보러 다니고, 영화에 대한 고민도 많고 하던 시절이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비가 내리는 우중충한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그날도 영화 한편 보겠다고 극장 상영작들을 쭉 살펴보는데 다 올드한 영화들뿐이더군요. 뭐, 딱히 볼만한 것도 없는지라 표를 사서 들어갔습니다. 두 편 동시 상영인데 하나는 하길종 감독님의 <바보들의 행진>이었고 다른 한편은 실버스타스탤론 주연의 <람보>였습니다.

 

졸작에서도 배울 게 있다는 생각에 별로 기대하지 않고 찾은 영화관에서 저는 영화에 대한 제 고민을 한번에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제 영화이론에 교과서와도 같은 영화가 되어 주었습니다. 얼마나 기뻤던지 퍼부어대는 장대비에도 아랑곳 않고 무수한 상념에 빠져 한참을 걸어서 집에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런 영향은 저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이후 저와 동시대의 인물들에 의해서 한국영화는 부흥의 새시대를 열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 영화 암살 & 미션임파서블

 

어제는 영화 <암살>, 오늘은 <미션임파서블>을 관람했습니다.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문득 옛날 그 두 편의 영화가 떠오르더군요.

 

결론 먼저 말씀드리면, 저는 개인적으로 두 편 다 관람 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암살>은 저녁 무렵에 관람하시고 맛있는 파전집에 들어가 막걸리 한 잔 하며 고민을 나누어야 할 영화.

 

<미션임파서블>은 심야에 관람을 하시고 시원한 생맥주 한 잔으로 마무리를 하면 좋을 만한 영화입니다.

 

<타짜>와 <도둑들>을 연출했던 최동훈 감독의 작품이니 영화의 완성도와 관련해서는 믿어도 좋고, 배우들의 연기 또한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들이 열연하고 있으니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최동훈 감독의 연출력은 물이 오른 상태더군요.^^

 

1933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명의 독립군 안옥윤(전지현 분), 속사포(조진웅 분), 최덕삼(최덕문 분)- 에게 지령을 내립니다. 친일파 강인국(이경영 분)과 조선주둔군 사령관 카와구치 마모루(심철종 분)를 암살하라.

 

이후 벌어지는 물리고 물리는 반전의 연속, 염석진의 배신(이정재 분). 극중 청부살인업자로 등장하는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분)이 안옥윤에게 묻습니다.

 

"그깟 친일파 2명 제거해서 뭐하겠냐?"고 말입니다.

 

안옥윤이 대답합니다.

 

알려 줘야지. 우리는 계속 싸우고 있다고...”

 

순간, 콧등이 시큰했습니다.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의 <미션임파서블>은 볼거리 풍부한 액션영화의 전형입니다.

 

영국 정보기관의 국장인 애틀리(사이언 맥버니 분)는 영국총리 몰래 비밀정보기관 신디게이트를 만듭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새 조직이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려 함을 느낀 애틀리 국장은 이 조직의 와해에 힘을 쏟게 되는데,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 미국 정보기관 IMF 소속의 톰 크루즈(에단 헌트 역), 제레미 레너(윌리엄 블랜트 역), 사이먼 페그(벤지 던 역), 빙 라메스(루터 스티켈 역), 그리고 영국 정보기관원 레베카 퍼커슨(일사 역) 등입니다.

 

오토바이 추격씬이 아주 볼만합니다.

 

요즘 같은 무더운 여름밤을 이기는 또 하나의 비결, 액션 영화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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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7년~현재/감 상2014. 8. 2. 10:39

「나는 다만 임금의 칼에 죽기는 싫었다. 나는 임금의 칼에 죽는 죽음의 무의미를 감당해낼 수 없었다.」

 

「임금은 장수의 용맹이 필요했고 장수의 용맹이 두려웠다. 사직의 제단은 날마다 피에 젖었다.」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의 교서를 받았을 때 나는 김덕령의 죽음과 곽재우의 삶을 생각했다. 나는 김덕령처럼 죽을 수도 없었고 곽재우처럼 살 수도 없었다. 나는 다만 적의 적으로서 살아지고 죽어지기를 바랐다. 나는 나의 충을 임금의 칼이 닿지 않는 자리에 세우고 싶었다. 적의 적으로서 죽는 내 죽음의 자리에서 내 무와 충이 소멸해 주기를 나는 바랐다.」

 

「……전하, 전하의 적들이 전하를 뵙기를 고대하고 있나이다. 신은 결단코 전하의 적들을 전하에게 보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적들은 전하의 적이 아니라 신의 적인 까닭입니다…….」

 

위에 인용한 문장들은 김훈의 장편소설 <칼의 노래> 중에서 발췌한 것들입니다. 명량해전 직전의 이순신 장군의 생각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아 참고삼아 옮겨 놓았습니다. 이 책도 일독을 권합니다.

 

당시의 혼탁했던 시대 상황과 풍전등화와도 같은 나라의 운명을 책임지고 있는 무장으로서의 굳은 각오가 엿보이는 대목으로 그저 읽고만 있어도 희뿌연 흑백의 파노라마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습니다.

 

▲ <명량> 포스터,   롯데시네마 촬영

 

1597년 명량해전을 목전에 둔 어느 날을 기점으로 영화 「명량」은 시작됩니다. 영화가 시작되기 이전, 그러니까 그해 초봄에 이순신은 한산 통제영에서 체포되었습니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죄명은 조정을 능멸했고, 임금을 기만했으며, 조정의 기동출격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출옥 후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의 자리에 앉은 이후부터 명량해전까지의 몇 개월이 영화 「명량」의 시간적 공간이 됩니다.

 

다들 아시는 바와 같이, 달랑 12척의 배로 쿠루시마 마치후사(来島 通総)가 이끄는 일본 수군 330척을 맞아 기적과도 같은 승리를 거둔다는 내용입니다.

 

쿠루시마 마치후사는 육군으로는 꽤나 많은 전공을 세웠던 유능한 무사였다고 합니다. 20대 초반에 토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의 권유로 그의 가신이 되었으며, 24살 약관의 나이에 토요토미의 시고쿠((四国) 정벌 때 선봉에서 큰 전공을 세운 덕에 토요토미로부터 1만 4000석을 받고 영주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나름 뛰어난 장수였던 그는 정유재란 시, 조선침략 과정에서 수군쪽이 자꾸 밀리자 수군으로 명량해전에 참전하게 되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영화에서처럼 이순신 장군에게 목숨을 잃게 됩니다. 37의 나이였다고 합니다.

 

명량해전과 관련한 이야기는 워낙 역사서에 많이, 그리고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는 관계로 그 대략의 내용들은 다들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을 것이기에 여기에 구구절절이 옮겨 놓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이 영화 「명량」도 직접 한 번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조금 과장을 보태서 말씀 드리면, 강추한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조급하지도 그렇다고 느슨하지도 않는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으면서도 긴장과 풀어짐 양면에 걸쳐 한시도 관객의 눈을 허튼 공간에 두지를 않습니다.

 

다소 지루해 보일 수도 있을 명량에서의 긴(한 시간여에 걸친) 전투 장면 역시 그 안에 또 다른 이야기 - 말 못하는 여인 정씨 부인(이정현 분)과 탐망꾼 임준영(진구 분)의 애틋함, 산 위의 마을 사람들 - 를 가미하여 전투의 강렬함과 인간적 감동이라는 두 측면을 적절한 배치와 조합 속에 무리 없이 표현해 냄으로써 긴장의 끈을 조임과 동시에 긴 울림까지 선사합니다.

 

시나리오, 연출 , 연기, 세트, 무대의상 등 모든 면에 걸쳐 완성도 높은 영상 미학이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해 줍니다. 뿐만 아니라 전쟁의 참혹함과 공포, 화면 가득한 피 비린내, 비인간적인 내면의 연결 구조들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고 쉬웠던 전쟁, 중요하지 않은 역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혹 있다 하더라도 그런 전쟁, 그런 역사는 고이 남겨져 후세에까지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전쟁의 내면에서 혹독하게 파괴되고 버려진 인간성의 실체만이 후세에 역사라는 이름으로 전해질 따름입니다. 교훈 가득한 역사교과서로 말이지요. 하지만 그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 뿌려진 피의 양이 얼마나 될는지 저는 감히 감조차 잡을 수가 없음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입에 올리고, 그저 수많은 역사 중에 하나로 몇 줄 기술하고 있는 명량해전. 하지만 그날 12척의 배 위에 있던 어떤 분들에게는 목숨을 건 사투요, 생과 사가 공존하는 생사의 갈림길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그 전투에서 살아남았던, 억세게 운이 좋았던 이름 없는 무명씨로서의 누군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말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개처럼 고생했는지 후세들은 알기나 할까?” 또 다른 무명씨가 답합니다. “모르면 호로자식들이지”

 

12척 뿐인 군함, 그리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군사들. 더 이상 살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 새까맣게 몰려오는 330척의 적선을 맞아 이순신은 죽을 각오로, 아니 정말 죽기 위해 싸우는 사람처럼 자신을 버립니다. "죽어야겠지, 내가" 군사들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기 위해 이순신이 내린 처방은 그것이었습니다, 사즉생 생즉사.

 

자신을 버린 군주, 버릴 수 없는 충(忠에) 대한 맹세. 이순신은 그 충을 백성을 향한 마음으로 승화시킵니다. 무장된 자의 소임으로 자신의 충은 임금이 아닌 백성을 향해 공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릇 국가의 녹을 먹는 이들의 자세를 말함 입니다. 그리고 이게 바로 정치가 되어야 하지요.

 

다소 생뚱맞은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만, 영화가 끝이 나고 자막이 올라가는 그 순간 극장 문을 나서며 전쟁과 정치와 인간의 삶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봤습니다.

 

자크 랑시에르라는 서양철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미학 안의 불편함>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플라톤은 수공예 기술자들은 그들의 일자리 외에 다른 곳에 있을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그들이 있을 수 없는 이 “다른 곳”은 물론 인민의 의회이다 “시간의 부재”는 사실 감각적 경험의 형태를 자체 안에 기입된 자연화된 금지이다.」

 

또한 <감성의 분할>이란 책에서는 「그것은 “시간의 부재”에 근거한 ‘다른 것’을 하는데 대한 불가능성이라는 어떤 감성 분할의 이념이다.」 「민주주의적 감성 분할은 노동자를 이중적 존재로 만든다. 그것은 장인을 ‘자신의’ 장소, 가내 노동 공간으로부터 나오게 하며 그에게 공적 토론들의 공간에, 그리고 토의하는 시민의 신분 속에 있을 ‘시간’을 준다.」

 

다시 앞의 책에서 「정치는 공동체의 공동의 것을 규정하는 감성의 분할을 재구성하는 일을 하며, 새로운 주체와 대상들을 공동체에 끌어들이고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만들고 시끄러운 동물들로만 지각됐던 사람들의 말을 들리게 하는 일을 한다. 대립을 창조하는 이러한 작업은 정치의 미학을 구성한다.」고 규정짓고 있습니다.

 

한 순간의 쉴 틈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죽어라고 돌려대는 쳇바퀴와도 같은 삶의 일상 속에서 이제는 여유 또한 일(작업)의 일부가 되어버린지 오래입니다. 그렇게 죽어라고 바쁘게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조용히 사라져 주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것인 양 강요하고 있음 또한 작금의 현실이구요.

 

인간에게 쉴 수 있는 여유와,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자 하는 정치. 바로 그런 정치가 바른 정치 아닐는지요? 예술(영화)의 참모습 또한 거기서 찾아질 것이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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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7년~현재/감 상2014. 7. 29. 09:05

한 여론조사 전문 기관이 50대 여성 30여만 명을 대상으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으십니까?”

 

그런데 굉장히 의외의 대답이 다수를 차지했습니다. 대답은 “현재의 50대가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인즉, 10대는 공부에 시달려야 하고, 20대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부담, 30대는 자녀들 돌봄에 지치고, 40대는 여유가 안 되고, 비로소 50대가 되니 그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여유 있는 삶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일견 이해되는 대목이 많습니다. 이는 역으로 우리사회 50대의 급격한 보수화 경향을 잘 설명해 주는 한 예로써도 충분한 근거가 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50년 고생 끝에 이제 막 삶의 안정을 찾고, 그것을 만끽하고 있는 이들에게 변화와 개혁은 터부시하고 싶은 어떤 것임에 틀림없을 겁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한 우리사회에서 변혁의 동력을 놓고 고뇌하고 있는 분들의 고민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잘 웅변해 주는 결과인 것 같습니다.


영화 ‘군도-민란의 시대’를 봤습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불현듯 이 얘기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아마도 50을 목전에 둔 저 자신의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란의 성공을 간절히 희구하는 제 속마음이 오버랩 되어 나타난 현상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니, 어쩌면 영화 ‘군도’에 대한 찐한 아쉬움이 그런 식으로 표출된 것일지도 모르겠고 말입니다.


▲ <군도> 포스터,   롯데시네마 촬영


‘군도’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조선 철종 13년(1862년), 실제로 당시의 서민 삶이라고 하는 것은 거죽만 붙어 있는 산송장과 같았다고 합니다. 자연재해로 인한 연이은 흉년에 더해 세도정치를 등에 업은 탐관오리들의 학정 탓이었음은 익히 아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를 참지 못한 농민들과 몰락한 양반계층은 힘을 모아 봉기를 하게 되는데, 이때 전국적으로 약 삼사십 여회에 이르는 농민 봉기가 발생했다고 역사는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영화 ‘군도’는 이야기를 만들어 갑니다. 쇠백정에서 깨우친 농민군으로 변신하는 도치(하정우 분)와 부잣집의 서얼로 태어난 자신의 출신 성분이라는 굴레를 평생 떨쳐버리지 못한 채 오로지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살아가는 조윤(강동원 분). 이 두 대립축이 농민군과 세도가로서 영화 '군도'의 핵심 모티브입니다.

 

쇠백정으로 살아가던 도치는 어느 날 조윤의 부름을 받습니다. 남편을 잃고 절로 피신해 있는 조윤의 제수(弟嫂, 본처 아들의 부인)를 없애달라는 부탁 아닌 부탁과 함께 돈을 받게 됩니다. 조윤은 기생 어머니를 둔 서얼 출신이므로 아버지의 본처가 낳은 동생의 씨앗이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습니다. 가업을 물려받아야 하는데 본처의 씨가 있는 한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잠든 새벽 쇠백정은 그녀를 없애기 위해 절간으로 향했으나 임신한 상태인 그녀를 본 후, 죽이는 것을 포기하고 돌아와 받은 돈을 되돌려 줍니다. 하지만 이에 앙심을 품은 조윤의 부하에 의해 어머니와 여동생이 불에 타 죽고, 자신은 간신히 목숨만 건집니다.

 

이후, 쇠백정은 농민군의 일원이 되어 조윤에게 복수할 날만을 학수고대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조윤의 집을 털기로 하고 거사를 실행에 옮기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농민군의 지리산 산채는 조윤과 관군의 급습을 받고 전멸하게 됩니다.

 

이때, 그곳에서 조윤은 자신의 어린 조카(동생의 아들)를 발견합니다. 조윤의 제수가 농민군에 몸을 의탁한 채 애를 낳은 후 죽게 되어 이 아이는 농민군들이 키우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조카임을 한 눈에 알아 본 조윤은 그 아이를 데려 갑니다.

 

하지만 조윤의 아버지 역시 그 아이가 자신의 피붙이임을 직감으로 알고는 조윤에게서 몰래 빼내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안 조윤은 그 길로 아버지에게로 달려갔으나 여전히 싸늘한 냉대에 절망한 그는 아버지마저 목 졸라 살해합니다. 「더러운 땅에 연꽃이 피어오르는 것이 신의 뜻인가, 아니면 연꽃의 의지인가?」 조윤의 독백입니다.

 

그리고 끝내는 조카를 품에 안은 채 도치의 칼을 받고 목숨을 잃습니다. 피로 끌리는, 뭔지 모르는 그 애틋한 감정을 지키려다 자신의 목숨과 맞바꾼 셈이지요.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는가 봅니다.

 

‘군도’는 그냥 재미있게 만든 오락영화다, 저는 그렇게 봤습니다. 한국산 웨스턴 무비, 아니면 한국산 무협지라고나 할까요. 흥행의 요소를 잘 아는 감독의 작품인 듯한 느낌 또한 강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우선, ‘군도’라는 제목부터가 잘못되었지 않나 싶었습니다. 차라리 ‘아들의 이름으로‘가 더 적절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주체의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한 사람의 인간이 주체가 된다는 의미는 타인에 의해 이름 불려짐(상징 기호)에 의해 시작됩니다. 이 이름 불려짐 즉, 어려서는 개똥이가 되고, 성장해서는 직장에서의 직급이 되기도 하며, 또는 누구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불려지는 과정들에 의해 사회구조 속에서 주체로서 자신의 위치가 정립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와 같은 주체의 정립 뒤에는 소외라는 결핍감이 동반됩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첫 단계는 자신의 욕망 대상으로서의 어머니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욕망의 팔루스는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는 이를 포기하게 되는데, 아버지라는 법을 인정하고 어머니를 포기하는 거세의 과정을 통해 주체에게는 소외(빈공간)가 따르게 됩니다.

 

결코 채워지지 않는 이 결핍감을 안고 사는 주체로서의 ‘조윤’은 욕망의 화신으로 화한 채 인생을 허비합니다. 아버지로부터 이름이 불리기(인정 받기)를 기대하며 말이지요. 「타고난 운명을 바꾸기 위해 생을 걸어본 자가 있거든 나서라. 그자의 칼이라면 받겠다.」 자신과 대치 중이던 농민군들을 향한 조윤의 외침입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군도’는 두 개의 큰 대립축이 있습니다. 도치를 중심으로 한 농민군 세력이 하나고, 조윤으로 대표되는 포악한 세도가들이 다른 한 축을 형성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민란을 표방하고 있음에도 민란의 반대편에 있는 타락한 세도가 자제로서의 인간 조윤의 캐릭터가 워낙 조밀하다보니 이쪽으로 관객의 감정이 이입되어 이 두 대립축이 강하게 부딪히지 못한 채, 이쪽저쪽 모두를 긍정하는 쪽으로 흘러버리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즉, 악질 지주인 조윤을 절대로 미워할 수만은 없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거기다가 얼굴까지 잘 생겼으니...

 

이렇듯 시나리오 상으로만 이야기 하자면 치명적인 모순을 처음부터 잉태하고 출발한 셈이 됩니다. 거기다가 오락성까지 가미가 되다보니 처절해야 할 민란 영화로서의 ‘군도’는 그다지 높은 점수를 받기가 쉽지 않은 태생적 구조를 갖고 있다 하겠습니다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서도 제목을 그대로 고집했다면 이는 솔직하지 못한 탓이고, 진실로 '민란의 시대'를 조명하는 영화를 만들고자 의도했던 것이라면 이는 작품성의 실패로 귀결된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시각을 다소 바꾸어서 보면, 오락영화로서의 ‘군도’에는 아주 다양한 즐길 거리들이 즐비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배우들의 감칠맛 나는 연기를 꼽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정우와 강동원, 이경영, 이성민으로 대표되는 연기파 배우들의 열연은 영화 보는 재미를 더해줄 뿐만 아니라 영화 속으로 흠뻑 빠져들게 합니다.

 

여기에 더해, 활극 영화로써의 스케일과 만화적 요소의 삽입 등으로 영화의 재미는 한층 배가 되는데 마치 예전에 유행했던 홍콩느와르의 조선 버전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물론, 옥에 티와도 같은 어색한 부분들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컴퓨터 그래픽의 톤이 너무 맑지 않았나 - 당시의 시대상황을 고려한다면 - 하는 점과 농민군의 지리산 산채의 위치 - 관군의 공격에 수비하기 좋은 위치여야 하는데 산속 협곡에 위치하고 있어 기습 공격에 치명적 - 가 적절치 않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에 민란은 없습니다. 재미는 있습니다. 선택은 각자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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