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시 사2015. 6. 6. 08:05

메르스가 온 나라를 바이러스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병원 가기를 꺼리는 것은 물론이고 식당이나 대형마트 등은 손님이 뚝 끊겨 울상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손 씻기부터 마스크 착용하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방법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제가 보거나 받은 SNS 메시지도 한 둘이 아닙니다.

 

어제는 저녁 약속이 있어 아는 지인 몇 분과 함께 식사를 했는데요. 식사가 거의 끝나가자 그 중 한분께서 고용량 비타민C를 꺼내더니 한 알씩 주시는 겁니다. 메르스 예방에 비타민C가 좋다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기억 하나, 2004년쯤이었을 겁니다. 당시 일본 총리는 고이즈미 준이치로씨였고, 미국과 영국 연합군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빌미로 전쟁을 벌인 후 치안유지에 힘쓰고 있을 때였습니다. 물론, 일본 자위대 대원들도 이라크 내에 파병되어 있던 상황이었고 말입니다.

 

그해(2004년) 초, 이라크에서 인도주의 활동을 벌이던 일본인 NGO 세 명이 이라크 무장저항 세력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당시, 일본정부 당국자는 공개 브리핑을 통해 “인질 구출에 최선을 다하겠지만 여행위험 지역에 들어가지 말라는 피난권고에도 자진해서 들어간 것은 매우 유감”이라는 식으로 ‘자기 책임론’을 들고 나옵니다.

 

그런데 이게 의외로 국민들 정서에 불을 댕겨 자기 책임론이라는 게 사회적 화두가 되었으며, 보수 언론과 매스컴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당한 납치자 가족들은 공개 사과를 해야 했음은 물론, 후에 구출 비용까지 국가에 납부해야 한다는 압력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보수 언론들이 이렇게 들고 일어났던 이유는,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 연장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의회가 동의를 해 주어야 하는데 당시만 해도 파병 연장에 대한 국민여론이 싸늘할 때였습니다.

 

이후, 몇 번 더 있었던 일본인 납치 사건 때 어김없이 등장했던 게 납치 가족들의 공개 사과였습니다. 해당 부모님들이 매스컴에 나와 “우리 아이의 철없는 행동으로 일본 국가와 국민 여러분들께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라며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었습니다.

 

세계 유수의 언론과 일본 내 진보 세력들은 한 목소리로 이를 비판했습니다. 「일본의 국제적 이미지를 개선시킨 젊은이들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는 못하고 비난을 퍼붓고 있다」거나 「분쟁지역에서의 불가피한 인도적 활동을 자기 책임으로만 돌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었습니다.

 

허나 이런 지적들이 일본 사회의 보수우익화 흐름에 제동을 걸고 그 물길을 되돌리기에는 미약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기억 둘, 일본 도쿄에서 유학하던 시절의 경험담입니다. 워낙 자연재해(지진)가 심한 나라에서 살다보니 나름의 생존 매뉴얼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상 책꽂이에다가 열쇠고리 하나를 매달아 두었고, 작은 배낭에는 비상시 입을 의류 몇 개를 챙겨두었습니다.

 

작은 지진이라도 오면 어김없이 열쇠고리가 흔들리며 위험 정도를 제게 알려주는 역할을 했으며, 가끔은 머릿속으로 위험 순간이 오면 핸드폰과 지갑을 주머니에 쑤셔 넣은 채 준비해 둔 배낭을 메고 집밖으로 뛰쳐나간다는 나름의 피난 행동 요령들을 그려보곤 했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경험해 본 지진의 진도 규모는 비록 낮은 것이었으나, 그 조차도 내게는 매우 강렬한 공포감으로 다가왔기에 제 나름의 대비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기억 셋, 2011년 3월 11일 일본 토우후쿠(東北)지방에 강진이 발생해 많은 인명피해를 입혔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도시에서만 유독 희생자가 아주 적었다는 기사가 일본 언론에 실렸습니다.

 

이유인즉슨, 그 도시의 한 중학교 학생들은 유사시 피난 행동 요령에 대한 철저한 훈련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진이 느껴지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교사의 피난 권고가 없더라도 무조건 학교를 빠져 나와 정해진 높은 지대로 피난한다는 것이 그 훈련의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강진이 발생했던 그 날도 이 중학교 학생들은 일제히 제일 먼저 앞서 고지대로 달려 나갔습니다. 이를 본 초등학생들이 그 뒤를 따랐고, 나중에는 연세 많으신 고령자분들도 함께 피난길에 나서 인명피해를 최소화 했다는 겁니다.

 

첫 기억은 국가 본연의 책임은 방기한 채 오로지 국민 개개인의 잘못 · 탓으로만 몰고 가려고 하는 無메뉴얼한 임기웅변식 현실에 대한 항의의 메시지로, 자기 책임이란 이런 것 정도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두 번째 기억을, 그리고 사태의 본질 접근에는 속수무책인 채 유언비어(?) 확산 방지에만 주력하고 있는 무책임한 일부 공직자들의 안일한 사태인식에 경종을 울리고자 하는 차원에서 세 번째 기억을 떠올려 봤습니다.

 

힘들 때 의지가 되고 힘이 되어 주는 친구 하나 없다는 대한민국, 알아서 생존해야 하는 시대, 그래도 더불어 사는 삶이 희망이다.

 

 

첫 번째 기억 관련글 : 피랍일본인 사건이 美·日에게 주는 교훈

 

두 번째 기억 관련글 : 지진은 정말 무서워요

 

세 번째 기억 관련글 : 재해시, 가장 먼저 대피하라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