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시 사2017.10.02 23:12

알려고 하지마라-은폐된 일본지배의 구조


 






최근 일본에서 출판된 책 중에 관심이 가는 게 있어 검색을 좀 하다 보니, 해당 출판사 홈페이지에 이 책 내용과 관련한 자세한 소개 글이 퍽 인상적이어서 옮겨 본다. (저작권 문제와 관련해서도 상업적 목적이 아닌 경우, 자유로운 인용 및 공유를 허가한 자료다)

 

내가 해당 내용을 옮겨보고자 마음먹은 이유는, 책의 내용과 우리의 현실이 자꾸 중첩되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야베 코지(矢部宏治), 제목은 알려고 하지마라-은폐된 일본지배의 구조, 고단샤(講談社) 출판이다.

 

책의 핵심 내용은 미국과 일본 사이에 맺어진 9개의 이면협정(밀약)과 관련한 진실 알리기이다.


아, 그런데 왜 책 제목이 '알려고 하지마라' 이냐구? 역설적 표현이다. 그저 속 편하게 아무 생각없이 살고자 한다면 모를까, 생각있는 사람이라면 사실을 아는 순간 몹시 화나고 불편한 진실일 테니 그렇다.

 

9장으로 되어 있는 내용을 1장부터 살펴보자.

 

1모든 일본 상공은 미군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 1959년 미일안보조약개정 협약을 통해 미군은 일본 점령 7년이 경과했으므로 일본 상공 비행에 대한 제약을 완화했다. , 상공 비행권을 일본에게 반환한 것이다. , 미군기지와 그 주변은 예외로 한 채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비행 가능한 범위, 다시 말해 기지 주변의 범위를 결정하는 권한은 미군에게 있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는 반환 전과 다를 게 없었던 셈이다.

 

2모든 일본 국토는 미군의 치외법권 하에 있다


- 다들 알고 있는 것처럼 치외법권이란 외국인이 현재 체류하고 있는 나라의 재판권에 복종하지 않고 본국법의 적용을 받을 권리를 말한다. 그런데 미군이 일본에서 치외법권이라는 의미는 미군기지 내에서 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의 치외법권이라는 의미이다. 1953년에 맺어진 밀약에 의해서 그렇다

- 일본 경찰은 미군기지 밖에서도 미군의 재산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않는다.

 

3일본에 국경은 없다


- 1947년 미국·필리핀 군사기지 협정에 의해 미군이 필리핀 국내에 기지를 설치할 수 있는 것은 23개로 한정했다.

- 2008년 미국·이라크 지위협정에 의해 이라크에 주둔 중인 미군은 이라크 국경을 넘어 주변국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이라크는 2003년 미국의 공격을 받고 26일 만에 패배한 상태였다.

- 1952년 행정협정, 1960년 미일지위협정에 의해 미군은 일본 전국 각지의 희망하는 곳에 기지를 건설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 주둔 미군은 일본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군사활동을 할 수 있었다.

 

4일본의 권력은 미군+관료에게 있다


- 매월 두 차례씩 미일합동위원회가 열린다. 미국측 참가자는 대부분 군인이며, 일본측에서는 엘리트 관료들이 참가한다. 60년 이상 이어온 위원회이기 때문에 이들 상호간의 친밀감은 매우 높다. 그리고 여기서 결정된 사항은 국회든 헌법이든 상관 않고 실행 가능하다.

-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주일공사를 지냈던 리처드 리 스나이더(일본 공산당에 의해 CIA 요원이라 의심받던 인물, 필자 주)점령 중에 맺어진 이런 이상한 관계는 바로 중단되어야 한다며 반발했으나 중단 없이 이어지고 있다.

 

5국가는 밀약과 밀약 매뉴얼에 의해 운영한다


- 1960년 일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수상은 대등한 미일관계를 만들어 보겠노라며 안보조약을 개정한다. 그러나 당시 주일대사였던 맥아더(맥아더 장군의 조카, 필자 주)는 이 개정을 기시 수상의 보여주기식 개정이었다고 평가절하하며, 겉으로는 조문의 개정이지만 내용은 이전과 변함이 없도록 밀약을 체결했음을 밝혔다.

 

6일본 정부는 헌법에 연연하지 않는다


- 1957년 도쿄 스나가와쵸(砂川町) 미군기지 확장 문제와 관련한 재판에서 도쿄 지방 재판소는 1심에서 일본 정부가 미군의 주둔을 용인하는 것은 지휘권의 유무, 출동 여부와 관계없이 일본국 헌법 9조 2항에서 금지하고 있는 전력의 보유에 해당하기 때문에 위헌에 해당하며, 형사특별법의 벌칙은 일본국 헌법 31조 위반이라고 판결한다.

- 그런데 이것이 최고재판소에 가서는 미일안보조약과 같은 고도의 정치적 문제와 관련해서는 최고재판소는 헌법판단을 하지 않는다라는 판결로 바뀌었다.

- ‘미일안보조약과 같은’, 이후 이 표현은 미군뿐만 아니라 자민당 정권 및 고급관료에게도 남용되었다. “원자력발전과 같은 고도의 정치성을 갖는 문제는 헌법판단을 하지 않는다등등

 

7중요한 문서의 최초 작성은 영어로 한다 


- 당대 일본 최고의 지성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 )헌법 9조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내포되어 있는 이념의 사상적 배경으로까지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생피에르 및 칸트로부터 간디에 이르는 항구평화의 정신, 또는 비폭력 사상의 발전의 문제이기도 하며...”

- 이런 주장에 대해 저자는 대서양헌장(1941)->연합국공동선언(1942)->덤바턴 오크스 회의(1944)->국제연합 헌장(1945)->일본국헌법GHQ초안(1946)이 만들어진 역사적 경위와 그 내용을 검증해 볼 것을 주문하고 있다.

 

8자위대는 미군의 지휘 하에 있다


- 일본의 경찰예비대를 창설했던 프랭크 코왈스키 대좌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한반도에 출격한 미군을 대신해서 주일 미군기지를 방어하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한다.

- 헌법 9조 하에서 일본의 이라크 파병이나 안보법제 강행 체결 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마크 클락크 대장은 전쟁이 나면 자위대는 미군의 지위 하에서 전투를 한다는 밀약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말하는 밀약이란 1952723일 요시다(吉田) 총리와 체결한 밀약을 말한다.

 

9미국은 국가가 아닌 국제연합이다


-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부 장관 일본은 미국정부가 아닌 군부에 의해 쭉 식민지 지배되고 있다. 도대체 어떤 관계가 된 것인가?”

- 미국의 대통령도 국무부장관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미군과 일본정부의 이상한 관계

- 그 요지경 같은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1950년 맥아더 장군은 일본을 독립시키고 미군을 철수시킨다는 것이 포츠담 선언의 약속이라고 믿고 있었다.

- 하지만 미 군부는 일본의 독립을 인정할 수 없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했는데 주변국 일본을 군사적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이때, 미일안보조약의 창시자로 알려진 존 덜레스(John Foster Dulles, 당시 미국무장관 고문, 필자 주)가 하나의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점령 중인 관계를 그대로 유지하는 형태로, 일본은 독립 후에도 국제연합군을 대신한 미군에게 기지와 병력을 제공하겠다는 조약을 체결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것이다.


 

** 반면교사란 이런 것을 보고 얻는 지혜를 이르는 말이다. 북미간 평화협정 체결, 한미간 보통국가 보장, 남북간 평화통일 교류. 한반도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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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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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이오

    라정찬 - https://ko.wikipedia.org/wiki/라정찬
    라정찬 - https://www.youtube.com/watch?v=1Q7PwgryFeA
    라정찬 - www.business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507
    라정찬 - www.biostar.co.kr/2015/09/바이오스타-라정찬-박사-연구팀-소변-줄기세포usc-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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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0.15 08: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007년~현재/시 사2017.01.16 11:40

1. 들어가며

 

대한민국은 지금 촛불혁명 중이다. 헌정 사상 최대의 촛불시위 인파가 운집했던 지난 6차 촛불집회(123) 때는 청와대인근인 서울 광화문 광장과 시청광장 일대에만 170만 명의 시민대중이 모여 촛불을 들었으며, 전국적으로는 주최 측 추산 약 232만 명이라는 거대한 촛불행렬이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촛불로 밝혔다. 지난주 토요일까지의 8차 촛불집회 기간 동안 참가했던 연인원만도 무려 800만 명을 넘었다.

 

대한민국은 지금 국민적 분노의 도가니탕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과 그의 측근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이 촉발한 국민적 분노는 마침내 국회에서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압도적 통과라는 믿기지 않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탄핵안 가결의 요건이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표를 얻어야 한다는 점과, 탈이야 있든 없든 그래도 여당인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이 전체 의원의 과반 이상을 점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볼 때, 300석의 국회의원 중 200명 이상의 찬성표를 이끌어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음에도 탄핵소추안은 가결되었다. 이는 촛불의 준엄한 명령에 각 정당의 정파들이 어쩔 수 없이 따르도록 만든 시민혁명의 결과이자 시민대중의 승리였다. 몇 백만 촛불의 장엄한 기세에 놀란 각 정파들이 탄핵안 의결 전까지 갖고 있던 자신들의 이해득실에 관한 셈법을 모두 버리고 탄핵안 통과 동의로 돌아섰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국회를 통과한 탄핵소추안은 현재 헌재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광장민주주의의 실험장이다. 광장에 모인 수백만의 시민들은 초등학교 어린이에서부터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까지, 직업의 다름, 재산의 많고 적음, 또는 사회적 지위에 구애됨이 없이 다 같은 한 사람의 명예로운 시민의 자격으로 당당하다.

 

대한민국은 지금 새로운 국가시스템을 열망하고 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있어 한 획을 그은 일본제국주의로부터의 침탈, 그리고 자력이 아닌 연합국에 의한 독립의 달성은 분단을 전제로 하는 반쪽짜리인 민족해방을 의미했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은 애초부터 또 다른 혼란-민족동란과 군부쿠데타 등-을 잉태한 자주독립국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첫 단추를 잘못 꿰인 것이다.

 

이런 조건들을 배경으로 본 글에서는 향후 시민촛불의 진로에 대해서 검토하겠다. 특히,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을 중심으로 고찰할 것인바, 2장에서는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에 대한 일반적 이론을 검토해 보겠다. 3장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향후 시민촛불이 나아가야 할 진로에 대해서 주장하겠다. 마지막으로 4장에서 이를 총괄하겠다.

 

2.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

 

헤게모니란 패권을 의미하는 것으로 군주에 의한 힘으로써의 권력을 상징하는 용어로 사용이 되었다. 후에 이 용어는 혁명 지도의 개념으로 러시아 마르크스주의 지도부 내에서 사용이 되기도 했으며, 레닌 또한 1905년부터 가끔씩 프롤레타리아와 빈농대중과의 동맹과 지도라는 의미로 사용을 했다.

 

"헤게모니 개념은 정치적 효과의 제한된 영역을 다루기 위해 러시아 사회민주당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이처럼 이 개념은 그리 대단치 않은 연원에도 불구하고 이미 '정상적인' 역사발전이라고 여겨졌던 것의 위기와 붕괴로 인해 요청된 일종의 우연적인 개입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 후, 레닌주의에서 제국주의 시대의 계급투쟁이 일어나는 우연적인, 그리고 '구체적인 상황'에서 요구되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계측에서 핵심적인 개념이 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람시에 이르러 그 용어는 전술, 전략적인 어법을 초월해서 새로운 유형의 중심성을 획득한다. , 헤게모니라는 용어가 구체적 사회구성체 속에 존재하는 통일성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개념이 된 것이다."(A. 라클라우 C.무페, 사회변혁과 헤게모니, 도서출판 터, 1992)

 

이태리의 마르크스주의자 그람시는 이를 보다 복잡한 개념으로 정의하였다. 그는 자신의 '헤게모니론'을 통해 현대 민주주의에 있어 지배와 종속의 관계를 보다 복잡하며 유동적인 것으로 보며, 다양한 권력집단의 투쟁과 교섭 그리고 합의를 취득해 나가는 것에 의해서 지배와 종속 관계가 형성되어 진다고 본다. 또한 이러한 관계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일시적 균형상태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그람시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헤게모니라 부른다.

 

그람시가 헤게모니란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했던 것은 1924년 빈에서 이태리 공산당에게 보낸 편지에서였으나, 헤게모니 개념이 그의 저작 속에서 프롤레타리아의 헤게모니로 명확하게 나타난 것은 1926년 봄 체포 직전에 쓴 미완성의 논문 남부문제의 제주제(Notes on the Southern Question)에서 인데 여기서 헤게모니 개념은 다음과 같이 소개되고 있다.(C. 무페, 그람시의 헤게모니와 이데올로기 개념, 한울, 1989)

 

"튜린 공산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노동자 국가의 사회적 기반-문제를 구체적으로 제기하였다. 프롤레타리아는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국가에 대항하는 다수의 노동자를 동원할 수 있는 동맹체제를 구축할 때에 비로소 지도계급(leading class, dirigente)과 지배계급(dominant class)이 될 수 있다. 실질적인 계급관계가 존재하는 이태리의 경우, 이것은 광범위한 농민대중의 합의를 확보하는 정도를 의미한다."

 

이처럼 옥중수고집필 이전의 그람시는 헤게모니 개념을 계급동맹적 관점에서 파악했다. 무페는 이런 점에서 볼 때, "이 논문은 그람시 사상에 있어서 발전적 단계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마침내 옥중수고11권에서부터 헤게모니의 문제영역에 중요한 혁신을 가져오게 된다고 말한다.

 

"앞으로의 연구가 기반으로 해야 하는 역사적·정치적 기준은 다음과 같다. 즉 지배계급은 2가지 측면에서 지배적이다. 2가지 측면이란 다름 아닌 '지배(dominant)'와 통치(ruling)'의 측면으로서, 동맹계급을 통치하며, 적대계급을 지배한다."(안토니오 그람시, 옥중수고)

 

, "그람시는 더 이상 헤게모니의 문제영역을 프롤레타리아의 전략으로서만 한정시키지 않고 지배계급 일반의 실천으로서 생각하였다"(C. 무페, 그람시의 헤게모니와 이데올로기 개념, 한울, 1989)는 것이다.

 

헤게모니의 주요 개념이 '지적 도덕적지도' 좀 더 광의의 의미로는 '문화 교육적지도'라는 것으로 명확해졌다. 헤게모니 개념이 계급동맹의 차원을 넘어서는 결정적 전이가 일어난 것은 지평이 '정치적'인 것으로부터 '지적 도덕적'인 것으로 이동한 바로 이러한 변동 속에서였다. 현실에서 대립과 타협의 과정을 거치면서 제집단에 의한 헤게모니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영역과 측면을 그람시는 '시민사회'라고 부른다. 지배집단은 학교, 교회, 가족 등 사적조직체의 총체인 시민사회의 헤게모니를 행사해서 지배의 강화·유지를 도모한다. 강제적 통치의 측면이랄 수 있는 정치사회에 대해 시민사회의 헤게모니는 거의 지적지도와 공감에 의한 동의, 즉 교육적인 것을 특징으로 한다. 특히, 지식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회 제집단에 있어서 구성원들의 사회적 의의를 자각시키며 동질성을 부여하는 유기적지식인을 창출해 내는 것이 헤게모니의 성패를 가늠하게 된다.

 

3. 시민촛불/기동전/진지전

 

오늘날 한국사회는 갈림길에 서 있다. 멀리는 1945년의 해방정국에서부터, 짧게는 1960년 박정희의 군부쿠데타로부터 기인하는 친일과 군부독재에 기반한 권위주의적 정치체제가 70여년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드디어 그 생명력의 소진 단계에 진입해 있다.

 

권위주의(Authoritarianism)1964년 정치학자이자 사회학자인 '후안 린즈'가 제창한 개념이다. 후안 린즈에 의하면 권위주의란 종래의 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중간형태를 의미한다. 그는 권위주의를 4가지 특징을 사용하여 정의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나무위키, https://namu.wiki/w/%EA%B6%8C%EC%9C%84%EC%A3%BC%EC%9D%98)

 

"1. 정치적 다원성(plurality)의 제약: 입법부, 정당, 이해집단 등에 대한 정권 차원에서의 제약을 가하는 경우.

2. 감정(emotion)에 기초한 정통성(legitimacy) 기반: 특히 내란이나 저개발 등 쉽게 식별될 수 있는 사회 문제에 맞서 싸우기 위한 방편으로써 정권을 필요악으로 간주할 때.

3. 극소한(minimal)의 사회적 동원: 대개 반정권 활동이나 정치적 적수의 억압 등에 의해 야기.

4. 비공식성(informality): 그 정체가 모호하거나 변하기 쉬운 행정부."

 

권위주의 정치체제는 스페인의 프랑코 체제를 출발점으로,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 한국에서는 박정희와 전두환시대로부터 시작해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박정희로 대표되는 군부독재 세력에 대항해 맞서 싸우는 반독재 민주화세력의 한 축이 형성된다. 이들은 시대적 특수성으로 인해 계파적 정치 또는 절대적 권한의 1인 보스정치라는 틀 속에 갇히게 되는데, 이는 민주화세력의 정권 장악, 즉 집권 및 재집권 이후에도 한국 정치체제의 잔재로 남는다. 한국사회에 유구히 흐르는 유교사상 위에 덧칠해진 권위주의의 정체는 정치·사회·문화 전부문에 걸쳐 침투해 들어갔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통령 탄핵과 관련한 촛불시위 역시 앞선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시민대중의 도전적 성격이 강하다. 불통의 권위주의, 전제적 권위주의에 대한 시민대중의 반발인 셈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식의 전후순서와 관련된 문제로 논쟁의 여지는 있을 수 있겠으나, 필자는 현재의 박근혜 정부를 앞서 전제했던-지역주의에 기반한-'권위주의적 1인 보스정치'의 마지막 종착점으로 규정한다. 현재의 국정혼란의 원인 또한 보스체제의 권위주의적 사고, 계파이익 우선주의 정치행태의 폐해가 고스란히 드러난 전근대적 정치체제의 균열로 규정한다.

 

필자가 현재의 촛불시민에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 촛불시민들에게서 새로운 미래를 발견하려는 이유 역시 이 지점에 있다. 한국사회는 지금 권위주의를 탈피하고 민주주의로 나아가려는 갈림길에 서 있다. 민주적 시민대중의 역할이 몹시도 중요한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진행 중인 촛불집회의 양상은 매우 고무적이다. 지도부의 역할도 존재하기는 하되, 자발적인 시민참여의 열기는 한층 거세다. 이러한 시민대중의 자발성이 이번 촛불시위를 사상 최대 인파가 참여하게 된 기제로 만들었다. 그람시의 용어를 빌린다면, 기동전으로써의 혁명적 참여다.

 

그러나 한국 사회 보수지배계급의 역량 또한 그리 만만하지 않다. 8차 촛불집회가 있었던 지난주 토요일, 탄핵반대를 외치는 수구보수세력의 맞불집회 역시 그 세가 이제까지 와는 사뭇 달랐다. 규모 면에서 꽤나 조직적이었다. 박근혜에 대한 변함없는 콘크리트 지지층 30%의 의미를 과소평가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람시는 노동자계급의 정치권력 획득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헤게모니의 쟁취가 선결적 과제임을 밝혀주었다. 지배계급은 헤게모니를 장악한 채 피지배계급을 정치적으로 종속시킬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까지 종속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 정신적 지배는 정치적 지배의 선결조건이라는 의미이다. 노동자계급의 세계관과 가치체계가 사회 제계급의 정치적 동맹이 되고,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의 위치로 서지 않으면 정치권력의 획득, 나아가 혁명 승리의 길은 열리지 않는다.

 

시민사회가 성숙한 선진제국에서는 전위당이 대중을 이끌고 일거에 정치사회의 통치기구를 박살내버리는 러시아혁명과 같은 돌격방식의 기동전은 유효한 수단이 아니다. 현존하는 헤게모니 관계를 일상적인 측면에서 고민하고 교육해서 변화시키려는 운동 및 조직화로서의 진지전이 현시대 시민대중에게는 필요하다. 이처럼 헤게모니의 침투 및 확대에 의해 경제적·정치적 통합으로부터 국민적 통일집단의 형성에 성공하게 될 때 비로소 혁명은 성취 가능한 것으로 된다.

 

그람시는 대중들의 일상생활에서의 관습을 전환하기 위해 지적·도덕적 개혁을 강조한다. 지식인에 의한 대중의 지도가 필요해지는 지점이다. 여기서의 지식인에 의한 지도란 단순한 진리의 주입이 아니라 상식 - 그람시가 '상식'(senso comune)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그것을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작업은 옥중수고에서 비로소 시작됐지만 그 용어에 대한 연구는 그의 정치-저널리스트 활동의 초기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옥중수고에서 상식은 시민사회의 핵심적 주제로 다뤄지고 있다. '참호'를 얻기 위한 투쟁은 특히 상식의 영역에서 벌어진다. 그람시의 상식에 대한 분석은 특히 깊은 다층성을 보여준다. 상식의 본질은 그것이 실제 일상생활의 영향을 받아 형성될 뿐만 아니라 매우 보수적인 요소들도 지니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람시는 상식과 진보적인 고급문화를 융합시키기 위한 근본적인 전제가 통합적인 인식과정 즉, "지식으로부터 이해로, 느낌으로의 끊임없는 이행, 그리고 그 반대로, 느낌으로부터 이해로, 지식으로의 이행"을 반드시 회복하는데 있다고 보았다. 상식이 그람시에게는 실천철학과 그 정치의 출발점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미학의 출발점이었다는 사실이 우선 상술돼야 한다.(자빈 케비어, 안토니오 그람시의 시민사회, 백의, 1994) -의 일면성을 일관성 있는 세계관, 주체적 가치관으로 수렴해 가는 과정인 것이다. 시민대중의 자발적 참여로 실현되고 있는 거대한 촛불민심이 보다 체계적인 민주적 대중조직으로서의 시민혁명 촛불세력으로 나아가는 과정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기동전의 진지전으로의 전환, 추후 촛불 향배의 미래상이다. 몇 백만의 시민이 단일한 의사결정구조를 갖는 일은 결코 용이하지 않을뿐더러 현실적으로도 가능하지 않다. 또한 그 많은 숫자의 광장 시민대중의 생각과 뜻이 하나같지도 않다. 그런데 이를 좀 더 세분화해서 나눌 수만 있다면, 뜻을 모으고 의사를 결집하는 일은 한층 수월하게 가능해 질 것이다. 그 세분화의 기준은 자신의 지역생활권이다. 소위 말하는 풀뿌리 민주주의에 기둥이 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좀 더 세분화시켜 본다면, 대공장 노동자들은 그들 나름의 소비에트를 창조하는 일이 될 것이며, 시민대중들에게는 지역 코뮌(시민사회)을 창설하는 일이 될 것이다.

 

전국의 각 시·도지역별, 광역단체에서는 구 단위로, 적게는 100여명 많게는 300여명의 시민대중의 자발적 참여로 만들어진 '진지'는 자발적 참여 형식의 전형으로 역할을 할 것이다.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제계급과의 상호관계를 통해 흔들리지 않는 유기적 지식인으로의 자기확립은 다른 말로 일상생활로써의 진지전을 의미한다. 이는 몇 가지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첫째, (직업)과 관련해 동료로서의 동질성이 존재한다. 둘째, 동일한 생활권 즉 지역 현안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고민이 있다. 셋째, 지역적 유대감이 강하다. 시민대중에 의한 진정한 민중 권력은 아래로부터 건설되는 진정으로 민주적인 대중적 조직이다.

 

4. 나가며

 

129, 국회에서 압도적 표차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시민대중의 촛불 진로에도 큰 변곡점이 생겼다. 시민촛불이 목표로 하는 1차적 종착점이 박근혜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그날까지라고 하는 암묵적 동의는 존재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시민들 서로간의 말없는 무언의 동의, 그러나 생각은 서로 다른, 그게 현실이다. 그런 탓에 얼개 자체는 엉성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더 중차대한 문제는 이런 엉성한 토대에 기반을 둔 촛불의 미래, 다시 말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거대한 시민대중의 촛불 역량을 지속가능한 광장민주주의로 승화시키는 일, 그리고 그 미래에 관해 논의해야만 하는 일이다.

 

현재 국정공백을 최소한 한다는 명분으로 여··, 즉 국회와 정부 간의 협의체 구성 등이 논의되고 있다. 행정부는 탄핵안의 가결로 식물대통령이 된 박근혜를 대신해 황교안 국무총리에 의한 대행체제가 진행 중이다. 대한민국은 의회민주주의 국가다. 또한 국가권력의 작용을 입법부와 사법부 그리고 행정부의 3권 분립에 입각한 국가체제다. 바로 이 지점에 촛불시민세력이 나아갈 방향이 있다. 대의제로서의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시민대중의 정치적 욕구가 분출되는 통로는 당연히 입법부인 의회이다. 행정부와 사법부의 견제와 감시 기능은 위임받은 대의기관인 의회의 몫이며 이는 삼권분립체계의 당연한 귀결이다.

 

지나간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그나마 일정정도 민주주의가 활성기에 접어들어야 비로소 진보정당의 출현이 가능할 수 있었으며 진보적 인사들의 의회 진출 또한 가능했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새겨볼 일이다. 민주적 대중조직의 확대를 통한 지역(지자체)과 중앙(국회) 대의기관의 민의만이 답이요, 길이다.

 

결론적으로 촛불의 민심이 박근혜 하야에 머무르지 않고 그 동력을 확대 발전시켜 정권교체를 넘어서는 체제 변혁의 길로 나아가도록 조직하는 일, 조급증을 버리고 이를 중장기적 과제로 하여 지속적인 시민대중 운동으로 이끌어 내는 일, 촛불승리·촛불혁명의 길은 거기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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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7.06.20 14:40 [ ADDR : EDIT/ DEL : REPLY ]

2007년~현재/감 상2015.08.18 16:37

광복(光復) : 빼앗긴 주권을 도로 찾음.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광복의 뜻입니다. 며칠 전이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광복 70주년이었지요. 그런데 정말 우리가 주권을 도로 찾은 게 맞나?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전쟁 발발시 국군의 작전을 통제할 수 있는 우리 군의 작전통제권(작전지휘권)조차 갖고 있지 못함이 현실이니 말입니다. 1950년 7월 14일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불쾌한 현실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우리는 참으로 비극의 역사를 살아왔습니다. 고조선이 멸망한 후 한의 한사군 통치기가 잠시 있었습니다.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는 당의 예속화 시도가 있었지요. 웅진도독부나 계림도독부를 통한 간섭, 안동도호부를 통한 만주통치기가 그렇습니다.

 

특히, 고려가 몽골과의 30년 전쟁 후 원에 의해 간접 지배를 당하며 이후 조선 멸망기까지 약 500년을 자주성 잃은 국가 신세로 전락합니다. 그리고 다시 일제의 식민지화, 그게 끝인가 싶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강대국에 의한 내정 간섭...

 

참, 광복 70년이라는 말이 무색합니다. 참담합니다.

 

▲ 영화 「협녀, 칼의 기억」

 

역시나, 나라가 나라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던 그때. 몽골과의 전쟁으로 국토는 황폐화 되고, 백성들은 도탄과 쇠락에 빠져 거지가 되고 노비로 전락하고, 왕실과 권문세족들은 민고민지(民膏民脂)로 제 배 불리기에만 정신이 없던 고려말.

 

흉흉한 민심은 민란군이 되어 관군과 일전을 벌이는데, 이들의 대장격인 풍천(배수빈 분), 덕기(이병헌 분), 월소(전도연 분)의 활약으로 관군은 패퇴를 면치 못합니다.

 

허나, 결정적인 순간 덕기의 배신으로 풍천은 월소의 칼을 맞고 쓰러지고 맙니다. 배신자 덕기를 흠모한 월소의 또 다른 배신이었던 셈이지요. 결국, 덕기의 손에 풍천의 딸 홍이(김고은 분)마저 목숨을 잃게 됩니다.

 

인생사가 순탄치만은 않듯, 덕기와 월소의 선택도 갈리게 됩니다. 왕이 되겠다는 야심으로 똘똘 뭉친 덕기는 유백의 자리에 오르며 승승장구하나, 풍천의 죽음을 잊지 못하는 월소는 복수를 선택합니다. 끝내 월소는 자신과 덕기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홍이라 짓고 이 아이로 하여금 풍천의 원수를 갚게 합니다.

 

그리고 복수를 위해 두 명을 없애야 하는데 그 두 사람이 바로 자신과 유백임을 고백하며 출생의 비밀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은 바로 홍이의 친부모입니다. 풍천의 딸 홍이는 덕기의 손에 죽임을 당했으니까요.

 

마침내, 홍이는 자신의 부모를 죽이고(정확히는, 부모가 죽어 준 것이지요. 자식의 복수를 위해 희생되어 줬죠) 풍천의 원수를 갚습니다만 그 마음이야 어떻겠습니까?

 

영화 「협려, 칼의 기억」의 대강의 줄거리입니다. 결론 먼저 말씀 드리면, 참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다 좋았는데 시나리오가 좀 엉성했다고나 할까요? 우선, 극적 긴장감이 전혀 없습니다. 죽고 죽이는 게 다 개인사에 국한되다 보니 대의랄까 명분이랄까 이런 게 많이 희석되어 버렸습니다.

 

또한 왕이 되겠다는 자인 유백의 야망과 의지도 전혀 빛을 발하지 못합니다. 왕이 되겠다고 했으면 왜 그게 되고 싶은지에 대한 각고의 노력 같은 게 보여야 하는데, 말로만 그렇게 합니다. 그러니 이입이 안 되지요.

 

역시, 복수를 말하는 월소와 홍이의 입장도 다르지 않습니다. 왜 복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지가 미약합니다. 너무 느슨한 거죠.

 

이러한 이야기 구조의 느슨함이 결국은 지루함을 더하게 하고 자꾸 시계를 향해 눈길이 가게 만들더라는 겁니다.

 

영상도 좋고, 연기도 괜찮았고, 풍광 또한 멋졌는데 한국판 무협지를 만들어 보겠다는 감독(박흥식)의 욕심이 끝내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를 만들어 놓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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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현재/감 상2015.08.15 13:18

'홍도야 우지마라 오빠가 있다 -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김중배의 다이아반지가 그리도 탐나더란 말이냐? - 이수일과 심순애.'

 

'마음씨 고운 여선생님, 그 선생님의 도움으로 검사가 된 청년의 순애보적 이야기 - 검사와 여선생.'

 

'기생의 한 많은 삶과 사랑 그리고 고단한 결혼생활 - 어머니의 힘.'

 

적당한 코맹맹이 소리의 변사가 변죽을 울리며 들려주던 애절한 이야기. 정말이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고, 손수건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애틋한 사랑의 이야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마치 전설과도 같은 신파극의 명작으로 우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작품들이다.

 

블랙과 화이트, 그리고 천정에 매달려 있는 홍등의 대비. 검은색 막이 둘러쳐져 있는 무대, 그 위에 흰색으로 치장된 높고 낮은 단들로 무대는 꾸며져 있다. 단출하다.

 

▲ 연극 「홍도」의 무대장치

 

이와 같은 단출한, 마치 무대가 텅 비어 있는 것 같은, 그리고 진짜로 텅 비어있는 그런 연극 방식은 폴란드의 연출가 예지 그로토프스키에 의해 ‘가난한 연극’이라 이름 붙여졌다.

 

그로토프스키의 실험극 이론인 가난한 연극은 단지 무대만을 배제한 이론이 아니다. 배우를 제외한 여타의 모든 것을 배제해도 가능한 것, 그게 바로 연극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과격한(?) 이론은 당시의 매스미디어(영화나 TV)의 활발한 세 확산과도 관계가 깊다. 영화나 텔레비전이 의존하는 테크닉에 반대하고 조명, 의상, 무대장치로부터도 자유로운 형식으로서의 배우의 몸짓이 미장센이 된다.

 

이제껏 보아온 연극 중에 그래도 개인적으로 명작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89년인가 90년인가 러시아국립극단이 내한해서 문예회관대극장(現 아르코극장)에서 공연했던 「햄릿」이다.

 

그 넓은 대극장 무대 위에 장치라고는 달랑 원통형 기둥 네 개뿐. 그리고 이어서 펼쳐지는 햄릿의 장엄한 의식들. 3시간 반의 공연을 이렇듯 텅 빈 무대 위에 펼쳐 놓는대도 지루할 틈도 없이 긴장감으로 무대를 응시해야 했다. 마치 그때그때 무대가 바뀌는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다.

 

때로는 그 네 개의 기둥이 기준선이 되어 앞쪽은 이승의 세계가 되고 뒤쪽은 저승의 세계가 되며, 또 때로는 궁궐의 안과 밖이 되기도 하고, 네 편과 내편의 경계선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공연의 피날레는 네 개의 기둥이 관객석을 향해 들어 올려지며, 그 기둥들로부터 환한 빛줄기가 어둠에 싸인 객석을 향해 투사된다. 희망이다.

 

희고 검은 단출한 무대를 보며, 이십 여 년 전의 그 무대 「햄릿」을 떠올렸던 이유는 어쩌면 그때와 비슷한 감동을 받을지도 모르겠다는 나름의 길한 예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랬다. 고선웅 연출의 「홍도」는 훌륭했다. 배우 예지원씨의 연기도 압권이었다. 좀 더 과장해서 말하자면 ‘예지원에 의한, 예지원을 위한 연극’이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연극 「홍도」는 예지원을 돋보이게 했다.

 

▲ 연극 「홍도」의 포스터와 함께 강동완

 

이 연극 「홍도」의 원작은 1936년 임선규 선생이 쓴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이다. 이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것이 고선웅 버전의 「홍도」라고 볼 수 있다.

 

내용이야 뭐 이미 다들 아는 것이니 여기서 다시 소개할 필요는 없을 듯 하나 간략히 적어 본다면, 오빠(홍의준 분)의 공부를 위해 기생이 된 홍도(예지원 분)의 기구한 운영 정도가 되겠다. 요즘 우리들 안방을 수놓고 있는 신파형 아침드라마의 원조격이다.

 

연극은 크게 두 개의 스토리로 나눠 볼 수 있다. 이는 고선웅 연출의 의도적인 구분선 긋기로 판단이 된다. 초반부 무대 위를 밝히고 있는 홍등과 중반 이후 홍등이 올라가고 사람 인(人)자 모양의 기와집 지붕이 천정에 내걸리는 부분으로 양분화 된다.

 

홍등의 의미는 홍도의 전반부 인생, 사람 人자 모양의 기와집 지붕은 인간으로 살고자 했던 홍도의 후반부 인생을 상징화한 형상물처럼 보인다.

 

배우들의 연기는 원작의 느낌을 살리고자 했던 이유 때문인지 신파극조의 발성법을 따르고 있는데 홍도의 이미지와도 부합이 되고, 나름 마당극과 현대극을 뒤섞어 놓은 듯한 극의 이미지 상, 그리고 코믹한 극의 전개 등을 고려해 볼 때 의미 있는 선택으로 보인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완전히 비어 있는 텅 빈 무대를 지향한 것이 아니었다면 굳이 조명까지도 배제할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백색 계열의 무대장치 위를 좀 더 다양한 조명효과를 통해 구획 지웠더라면 장소의 전환이나 분위기 창조에 한층 기여했을 것이기에 그렇다.

 

특히나, 극 후반부에 등장하는 홍도의 집안일과 관계된 다양한 소품들이 조명 밖에 위치해 있는 탓으로 마치 극과는 동떨어진 화면 밖 어떤 물체를 보는 느낌이 들더라는 점이다. 배우의 움직임이 무대의 생명이듯, 소품에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것은 역시 조명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 음향의 사용이 간혹 있었는데 이것 역시 마당극의 형식을 빌려 무대 위에서 라이브로 실연이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현대음악이든, 고전음악이든, 아니면 음향이 되었든 무대 위 한편에 마련되어 있는 공간에서 충분히 실연 가능하기에 그렇다. 그랬다면 극의 분위기와 한층 조화를 이루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마지막으로 무대(배우)와 관객과의 구분을 그렇듯 철저히 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부분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과 어우러져 함께 하는 극으로 만들었더라면 재미와 흥, 웃음과 즐거움을 더욱 극대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구나 결과가 예측 가능한 뻔한 스토리라는데 보는 관객의 곤혹스러움과 지루함이 있다. 이를 상쇄하기에는 관객의 참여가 절대적일 수 있다.

 

이 연극 「홍도」의 백미는 마지막에 홍도가 자신의 라이벌 혜숙(최주연 분)을 살해하고 경찰이 된 오빠 철수의 손에 체포되어 잡혀가는 대목이다. 하얀색 무대 위로 붉은 꽃잎이 눈처럼 쏟아진다. 울림이 크다.

 

이제까지의 연극이 “홍도야 우지마라, 오빠가 있다”였다면 고선웅 버전의 연극은 “홍도야 울어라, 오빠는 없다”가 되겠다.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부분이나 시사하는 바는 제법 크다. 전자의 연극이 주는 메시지는 오빠의 존재가 홍도의 어려운 형편을 구해줄 수 있다는 희망적 대사라면, 후자는 그게 가능하지 않은 시대적 상황에 대한 역설적 표현이다. 더 이상 신분상승의 엘리베이터는 존재하지 않기에 그렇다.

 

그래도 홍도는 꿋꿋하게 대답한다.

 

“오빠는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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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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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현재/감 상2015.08.10 16:42

이런 영화의 감상문은 좀 시건방진 말투로, 마치 휘갈겨 쓰는 듯한 느낌으로 적어 내려가는 것도 나름 어울리지 싶다. 영화 「베테랑」 이야기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서울올림픽의 감흥이 채 가시기도 전인 10월의 어느 날이었지. 서울 북가좌동의 한 가정집에 교도소를 탈출한 일당 4명이 가족을 인질로 경찰과 대치중에 일당 중 한 명이 외친 말이었어.

 

“있는 놈들은 다 빠져 나가고, 없는 놈들만 죄인 취급 받는 게 이놈의 나라다.”

 

그때라도 정신들을 차렸으면 나라가 이 꼴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다들 있는 놈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이, 있는 놈이 되기는커녕 처지만 우습게 됐다.

 

애초에 안 되는 거였잖아.

 

내 새끼 건드렸다고 아들 같은 애 하나 불러다가 죽어라 패놓고 돈으로 해결하려면 적어도 몇 천은 던져 줘야 하는데, 그럴 돈과 배짱은 있어? 게다가 해결사는 어떻게 살 거고?

 

자식새끼가 술과 마약에 쩔은 채 폼 나는 외제차를 과속으로 몰다가 인명 사고를 냈어. 이걸 단순 운전부주의로 조작하려면 전화 몇 통 돌릴 곳은 있어야 할 것 아냐? 하물며 자식 놈 외제차는 뭔 돈으로 사 줄 건데?

 

그런 거지. 애초에 글러 먹은 거였어. 그런데 혹시나 했던 거지, 다들.

 

그런데 말이야. 이런 가십성 기사가 있는 놈들에게는 몹시 쪽팔릴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야. 꼭 그렇지도 않아. 모범(부러움)이 되어 주잖아? 겉으로는 다들 욕하지만 그렇게 그들처럼 하지 못해서 안달들을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니 말이지. 나부터가 그래.

 

이게 어디 단순히 부러움에만 국한된 문제겠어? 그렇게 돈에 환장한 인간 군상들을 만들어 놓으면 통치하기도 편치. 돈 얘기만 하면 다들 좀비 떼처럼 모여들고, 부자 되게 해 주겠다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정권조차 맡겨주니 그렇다는 얘기지.

 

 

▲ 영화 베테랑

 

“잘못도 없는데 왜 맞아요?”

 

물류운송을 업으로 하고 있는 트럭기사인 배기사(정웅인 분)는 밀린 임금과 불법 해고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신진기업 앞에서 시위를 벌인다. 이 광경을 본 재벌3세 조태오(유아인 분)는 자신이 직접 해결하겠노라며 배기사를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인력파견 외주업체 소장(정만식 분)을 만나게 해 준다.

 

하지만 그 해결방식이 독특하다. 두 사람에게 복싱 글로브를 하나씩 던져 준 조태오는 배기사의 아들(김재현 분)이 보는 앞에서 둘이 싸울 것을 주문하나 배기사는 일방적으로 얻어맞는다.

 

후에 배기사의 아들이 이 상황을 형사 서도철(황정민 분)에게 전하면서 한 말이다. 권력은 힘으로 패고, 자본은 돈으로 팬다. 더럽고 치사하게 맞으며 살고 싶지 않으면 바꾸어야 한다. 자본 우위의 세상을, 인간 중심의 세상으로 말이다. 이 영화의 메시지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테랑」은 하나의 사건에 관한 영화는 아니다. 몇 개의 작은 사건들이 있고, 그 와중에 신진기업 재벌3세 조태오의 비리가 영화의 핵심 모티브로 등장한다.

 

보는 이들에 따라 호불호는 갈릴 수 있을 거다. 허나, 오락 액션영화 보러 가면서 너무 엄청난 걸 기대하는 것도 무리 아니겠나?

 

가격 저렴한 분식점에 가서 음식 맛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것, 오천 원 하는 머리 컷트집에 가서 잘 잘랐느니 맘에 안 드느니 따지는 짓만큼 꼴불견이 것도 없다.

 

맛을 원했으면 돈을 좀 더 지불했어야 함이 옳고, 유행에 어울리게 제대로 자르기를 기대했다면 동네 미장원을 벗어났어야 한다.

 

같은 이치다. 오락 액션영화의 진수는 화끈한 볼거리와 시원한 싸움질, 거기에 감초 같은 웃음이 더해진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2시간의 투자와 만 원짜리 한 장 지불하는 게 전혀 아깝지 않은 영화다.

 

그런데 말이다. 도대체 언제까지나 영화 속에서만 대리만족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가? 잘못이 있는 놈은 지위고하나 쩐의 많고 적음을 막론하고 반드시 매를 맞는다는 지당함이 현실이 되는 세상을. 난. 갈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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