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일 상2019. 6. 12. 21:43

요즘은 명절이나 연휴, 또는 휴가철이면 외국으로 나가는 사람들로 인해 공항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그때·그 철만 되면 인파로 북적이는 공항소식도 빠지지 않는 뉴스 중 하나가 되었다.
 
이를 두고  “경제가 어렵다는데 저렇게 나가는 사람들 보면 다 거짓말”이라며 부러움에 삿대질로 한탄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 “까짓것, 능력되면 가는 거지. 해외여행이 대수야?” 하고 호탕하게 웃어넘기는 이들도 있다.
 
나?
 
나는 두 번째 부류다. 기회 되고, 시간 되고, 여유 되면, 아니 설사 그런 것들이 찰지게 없더라도, 끈덕지게 만들어서라도 나가라고 권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러나 조심할 일이다.
 
자주, 아니면 많이 못 나가봤다고 해서 그걸 탓하거나 능력의 문제로 확대 해석할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누군들 그런 굴뚝같은 맘이야 없었겠는가? 다들 형편이라는 게 있다보니 그리 못했을 뿐이다. 특히나 우리 세대나 우리 윗세대들은 더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이 또한 이제는 흘러간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최근 10년간 해외여행을 다녀온 연령층의 변화를 보면, 50대 이후와 30대 이하에서는 눈에 띄게 늘고, 다른 연령층에서는 줄어든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이렇다.
 
지금의 30대와 40대는 2000년대 중반 해외여행이 붐을 이루기 시작할 때 젊은 세대였을 것이다. 그때 이미 충분히 다녀왔으니 이제 좀 뜸한 것이기도 할 테고, 자녀들 교육과 주택구입 등으로 씀씀이도 점점 커지는 때이기에 놀러 갈 여력이 없어 그렇다.  
 
50대 이후는 당연히 경제적 여유와 더불어 예전에 못해본 것에 대한 보상심리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30대 이하는 말이 필요 없다. 해외로 마실 가는 세대가 그들이다.
 
해외여행이 완전자유화 된 것이 1989년,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해외여행은 ‘그들만’의 전유물에서 국민 ‘누구나’의 향유물이 되었다.
 
우리나라 국민들 해외여행 경험자 수가 OECD 국가 중에서 독일과 영국 다음으로 많다는 최근의 통계자료도 있다.
 
또 어떤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한 해 여행객 수가 인구대비 50%대 중반, 일본이 15%대라고도 하는데 해외여행도 다녀본 사람이 또 가는 경향 등을 고려한다면 이 수치를 그대로 믿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외국에 많이 나가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누구는 나가봐야 자신이 ‘우물 안의 개구리’임을 알 수 있다고도 하던데, 나는 반대의 입장이다.
 
나가봐야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기에 많이들 나가는 것을 권한다.  
 
글쎄다.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으나, 휴양지를 제외하고 세계 어디를 가든 한국만큼 깨끗하고, 편리하고, 안전하고, 친절하고, 밝은 사람들을 만나거나 또는 그런 지역을 찾기도 쉽지 않다.
 
시대가 이러함에도 여전히 ‘외국물’ 타령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외국물 좀 많이 혹은 자주 먹어야(세뇌되어 있어야) 지적이고, 세련되고, 선진적이라는 기이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학계에만 그런 사람들이 있는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언론 쪽에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오히려 한 술 더 뜬다.
 
단적으로 하나만 들자.
 
거시적으로 봤을 때, 우리 주변의 현존하는 핵심 의제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다.
 
이는 우리들의 문제이자 민족사적 과제다. 즉, 우리의 시각으로 보고·판단하고·해결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조차도 서양(미국)인의 시각으로 해석하려는 ‘검은머리 서양인’이 학계에는 득실댄다는 거다.
 
더 쉽게 설명할까? 한반도 문제 즉, 내 이야기이며 나의 현실인 것을 영어(서양인의 사고)로 쓰여 있는 글로 이해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부류들이다. 지독한 서양도착증세(the Occident perversion, 西症)[각주:1]의 일종이다.

 
하다하다 이제는 대통령의 잦지 못했던 해외여행(해외경험)을 물고 늘어지는 초라한 사고력의 언론인을 다 보게 된다.[각주:2]
 
한때는 대학물을 갖고 대통령 자격을 운운하더니, 이제는 외국물을 갖고 대통령 자격을 운운한다.
 
누구나 이런 경험 하나쯤은 있다.
 
시골 촌놈 처음 하는 지하철 놀이에 티켓은 어디서 사서 어디에 넣고 어떻게 들어가야 하는지 촌티 내지 않고 해내야 했던 기억.
 
처음 타보는 비행기에 신발은 벗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하던 기억.
 
경양식집 돈가스 먹기의 복잡함에 난감했던 기억.
 
내 운동신경만 믿고 그까짓 것 하며 신고 올라갔다가 엉금엉금 기어서 내려왔던 스키장 초보코스의 기억. 등등
 
처음이니 당연한 것이라 이해하면 좋으련만, 그때는 식은땀마저 송골송골 돋아나던 곤혹스러운 순간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거창한 듯하나 실상은 별거 아니더라는 거. 몇 번만 해보면 익숙해지는, 혹은 여유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보잘 것 없는 것들이더라는 거.
 
결론은, 본인들은 대단한 듯 떠벌릴지 모르나 외국물 또한 이와 별반 다르지 않더라는 거다.
 
(덜떨어진)외국물을 빼야 (앞에 있는)우물이 보인다.



  1. 필자가 만든 신조어다. 서양을 바라보는 변태적 시각 정도로 이해하라. [본문으로]
  2. 고발뉴스닷컴, <<중앙> 논설위원의 ‘문대통령 외국물 못 먹어봤다’는 치졸한 칼럼> 참조. 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7865>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7865 [본문으로]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