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시 사2021. 4. 15. 18:55

나는 앞선 글 자유민주주의의 딜레마에서 지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의 결과를 분석하였다. 여당 참패의 원인에 대해 거론하면서 그 중 영향이 컸던 게 불로소득에 대한 욕망이었다고 진단한 바 있다. 대표적인 예로 부동산 폭등과 재난지원금의 선별지급을 들었다. 
 
그 글의 주제는 선거 결과에 대한 분석이었기에 불로소득이 어떻게 사회를 붕괴시키는지를 자세히 다루지는 않았다. 이 글에서는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요즈음 선·후진국 여하를 막론하고 세계 도처에서 민주주의 위기론이 한창이다. 
 
정치학자들은 대체적으로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으로 다음 세 가지를 든다.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 구성 분자의 이질성, 유튜브 등 미디어 환경의 다양화에 따른 언론의 역할 변화다.

 

먼저, 사회 구성 분자의 이질성이란 이민이나 난민에 의한 외부인의 유입을 말한다. 이로 인한 갈등을 잘 보여주는 좋은 예가 미국에서 흑인들이 벌이고 있는 아시아계에 대한 공격이다. 자신들의 영역(이익)을 아시아계가 빼앗고 있다는 위기 의식에서 보이는 행동이다. 민주주의 붕괴의 현장이다.

 

유튜브 등 미디어 환경의 다양화에 따른 언론의 역할 변화에서 핵심은 언론이 더 이상 사회적 문지기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한계론이다. 정론 추구를 위한 필터링 기능은 소멸되고, 소비자의 욕구에 부합하는 기사만 생산한다. 소비자는 정론을 통해 진실에 접근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믿는 것만을 보고 그 믿음을 강화해 간다. 음모론과 가짜뉴스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경제적 불평등이란, 빈부격차의 심화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찾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해법 역시 간단하게 찾아진다. 빈부격차를 줄이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자본주의의 위기로 파악하기도 한다. 자본주의가 천민자본주의화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렇듯 민주주의의 위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경제적 불평등은 불로소득과 관련이 깊다. 불로소득이라 함은 노력하지 않고 즉, 노동하지 않고 얻어지는 소득을 말한다. 지대(임대료)나 부동산에 의한 소득 증가가 대표적이다.

 

우리 사회가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서 한강의 기적을 끌어낼 수 있었던 동력은 농지개혁에 있다. 박정희나 이승만의 업적으로 추켜세우는 일부 논리도 있으나 진실은 아니다. 핵심은 농지개혁이다. 세계적으로 농지개혁에 성공한 비사회주의권 국가로는 한국, 대만, 일본이 유일하다. 지주(기득권)들의 반발로 추진하기 쉽지 않은 일인데, 당시 농림부장관이던 조봉암 선생의 공이 컸다.

 

1949년 국회를 통과한 농지개혁법에 의해 농지의 소유제도를 개혁함으로써 지주 일인에게 몰려있던 농지가 소작농들에게 유상분배되면서 자영농의 증가와 농업생산물의 획기적 증대를 가져왔다. 전체 인구의 70.9%였던 농민 중 소작인이 85%였다. 이들이 자영농으로 신분변화가 이루어졌다.

 

자영농의 입장에서 부지런함은 최고의 덕목이다. 부지런한 만큼 수확도 많아지니 열심히 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영농의 농업생산력 증진은 농촌의 생활 향상으로 직결되었다. 이렇게 벌어서 그 돈으로 자식들 교육에 올인했다.

 

비록, 우골탑(대학을 일반적으로 상아탑이라 부른다. 이를 빗댄 표현으로 소의 뼈로 쌓은 탑이라는 의미에서 우골탑이라 했다. 농기계가 없던 시절 소는 농사일의 주요한 한 부분을 차지했다. 그런 소를 팔아서라도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려고 했던 당시의 현실이 잘 반영된 표현이다)이라는 오명을 듣기는 했으나, 자식만큼은 농사일시키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농사 수익은 자식 농사로 이어졌다.

 

그렇게 해서 한국 사회의 인력 시장은 고등교육 수혜자들로 넘쳐났으며, 이는 선진기술 습득과 생산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선진국 진입에 성공한 유일한 비선진국가로 기록되고 있다.

 

대체로 IMF 국가부도 위기 이전까지의 한국 사회의 모습이다. 이때까지는 불평등이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다. 80년대 이후 불어닥친 신자유주의 물결은 부의 불평등을 심화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노동과 생산력에 기반한 자본주의가 아니라 이자 낳는 자본 즉, 금융과 부동산에 기반한 자본주의가 판을 치게 된다.

 

이와 같은 불로소득형 자본주의는 가진 자가 축적의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구조로 사회를 재편한다. 투자할 여력이 있는 계층이 그 사회 부의 절대다수를 축적하게 하는 구조다. 현재 우리 사회 부의 절대다수를 소수의 가진 자가 독점하고 있는 현실이 대표적이다. 부의 불평등 구조다. 이러한 사회에서의 구성원들은 다들 불로소득 얻기에 혈안이 되어 투기꾼화 한다.

 

이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선진 자본국이 겪고 있는 일반적인 모습이다. 우리도 그들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이처럼 불로소득형 자본주의의 병폐는 국민을 이득만을 좇는 불나방 신세로 만든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는 민주주의의 위기로 나타난다.

 

민주주의는 가치를 먹고 산다. 가치는 신념의 산물이다. 피 흘릴 각오 없이 절대 얻어지지 않는 고귀한 유산이다. 이득만이 배회하는 거리에서 가치는 설 자리가 없다. 민주주의가 위기인 이유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