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시 사2022. 7. 14. 11:09

뭐, 일본 언론들이야 그렇게 쓸 수도 있다 치자. 현재 발표되고 있는 일본 수사기관의 수사 상황 설명이니 그것을 그대로 받아 적어 그렇다 하자.
 
그런데 우리 언론이 그것을 그대로 베끼듯 받아 쓰는 이유는 뭔가?
 
아니, 특정 종교에 원한이 있으면 그 특정 종교를 대상으로 범행을 해야 함이 일반적이지. 안 그런가?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하는, 행사(통일교 관련 단체인 천주평화연합이 공동 주최한 '싱크탱크 2022 희망전진대회') 축하 메시지 보낸 것을 핑계로 그 정치인을 테러의 목표로 삼는다? 
 
이게 말이 된다면, 세상의 모든 정치인은 다 테러당했다. ㅋㅋ 바보 아님?
 
이 진술이 성립을 하고, 말이 되려면, 그런 종교가 일본 사회에 뿌리를 내릴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놓은 일본 사회에도 잘못(책임)이 있음을 지적해야 한다.
 
마르크스라는 옛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헤겔의 법철학 비판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대략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 종교는 곤궁한 피조물의 한숨이며, 무정한 세계의 감정이고, 또 정신 없는 상태의 정신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1, 박종철출판사, p. 2)

 

이 말을 가지고도 종교와 관련 있는 사람들이 많은 비판을 했어. 그래서 사회주의에서, 특히 북한에서는 종교를 반대한다는 등의 얼토당토않은 주장들을 했고, 현재도 하고 있다.
 
그런데 말이야, 마르크스의 저 말은 종교에 대한 일방적인 반대나 탄압 그런 뜻이 아니야. 우리가 익히 아는 것처럼, 아편은 마약으로도 쓰이지만, 병원 등에서 고통을 잊게 해주는 긍정적 용도로도 쓰이지. 합법적으로 말이야.
 
마르크스가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본 이유도 같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는 종교를 찾을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고 봤어. 빈부격차와 경쟁, 무한 축적, 물신화 등으로 그 속에 사는 인민들은 정신적·육체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강요당하기 때문이라는 거지.  
 
그래서 종교를 찾게 되는데, 종교를 탄압한다고 해서 종교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거다. 왜? 하나의 종교를 없애면 또 다른 종교가 어디에선가 탄생할 게 자명하니, 이는 인력으로 막을 수 없다고 봤어.  
 
해법은, 종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 즉, 사회주의 사회가 되어야 종교는 자연스레 극복될 것이라고 본 거지.
 
이런 주장이 나온 배경은 당시 프로이센(現 독일) 사회에서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대한 찬반 논쟁이 한창이었던 시대적 상황 탓인 거지. 이 시대적 화두에 마르크스도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끼어들어 숟가락 하나를 얹게 돼. 그리고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라는 책을 쓰기도 한다. 
 
그러니 요약하면 이렇게 돼.
 
“종교란 불평등한 사회체제가 만들어 놓은 특이한 현상이다.  
 
이는 강제한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그런 사회체제를 새로운 체제로 전환해야 종교문제도 해결이 된다.  
 
그리고 현재의 인민들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종교를 믿는 것은 그것이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해주는 아편과도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편은 잠시의 고통만을 잊게 해주지,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거나 해결하지는 못하기에 그 원인을 찾아야만 한다.  
 
인간 고통의 원인은 자본주의체제에 있는 바, 이를 극복하고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길이 해법이다.”
 
바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주장을 했던 것인데, 이러한 마르크스의 본 의도는 싹 사라지고,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하는 자극적인 문구만이 인구에 회자하기에 이른 거지.  
 
고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종교를 없애야 한다.

 

맑스의 이러한 사상은 다른 저작에서도 찾아지는데,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중 제4테제에서 볼 수 있다. "따라서 세속적 기초 자체가 자기 자신 안에서, 자신의 모순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뿐 아니라 실천적으로 혁명화되어야 한다."(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1, 박종철출판사, p. 186)

 

말이 좀 어려운데, 앞 뒤 문맥을 연결해 풀어서 쓰면 이렇다. 포이에르바하의 종교적 자기 소외는 종교적인 세계와 세속적인 세계로의 이원화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원화는 종교적 환상으로 인해 하늘의 유령(신=종교)과 세속적 세계를 거꾸로 전도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여기서 '전도'의 의미는, 사람으로 치자면 세속은 다리고 종교는 머리인데, 이게 물구나무를 서고 있다고 보면 이해가 쉽지. 즉, 토대는 세속이고, 종교는 상부구조인데 이게 거꾸로 서 있다고 보면 된다. 맑스가 보기에 이게 현실이라는 거야.

 

하지만 뭣이 중헌디? 맞아, 하늘 유령의 실체는 중요하지 않아. 왜? 그것은 종교적 환상이 나은 부차적 문제이기 때문이지. 중요한 것은 종교적 환상을 만들어내는(혹은 찾게 되는) 세속적인 제약을 제거하는 거지. 그리되면 자연스레 종교적인 제약도 제거된다고 보는 거지. 그래서 이렇게 종교적인 세계와 세속적인 세계가 서로 전도된 그 세계를 실천적 혁명을 통해 바로 잡아야 한다는 말이야. 그러니까, 종교 문제의 해결은 종교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방식이 아니라, 세속의 삶의 혁명적 변화를 통해 가능하다고 본 거지.
 
자, 그렇다면 현실로 돌아와서, 저격범이 아베를 향해 총을 쏜 이유가 언론의 주장대로 특정 종교에 대한 원한이라고 치자.
 
그럼, 그러한 특정 종교가 일본 사회에 뿌리를 내리게 된 사회 환경이 무엇인지 찾아봐야지.  종교를 필요치 않는 사회에 종교가 침투할 수 있을까?  대부분, 현실이 고달프기 때문이겠지. 종교가 한 사회에 뿌리를 내리게 되는 이유가 말이야.
 
특정종교와 아베 저격을 등치시키는 현재와 같은 논리라면, 이제 총탄의 방향은 자명해졌다.  
 
인민의 삶을 아편으로 연명하게끔 만들어 놓은 일본 사회가 그 표적이 돼야 마땅한 것이다. 즉, 제대로 된 논리대로라면 이번 아베 저격과 일본의 사회환경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말이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그 저격범은 머리도 꽤나 영특했다고 하던데, 그런 그가 그 정도 판단도 못 했을까?
 
대다수의 정치인 테러범에게 하듯이 차라리 아베 저격범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었다고 해라. 차라리 그게 더 설득력이 있겠다. 이 바보천치 같은 일본 보수우익(수사기관 관계자)들아.
 
정리하자면 이렇다.  
 
저격범이 재일한국인이었다면 더없이 좋았을 테지만 그것도 아니다.  
 
어찌되었든 원인을 외부에서 찾아야 한다.  
 
역사적으로 만만한 게 주변국이라고 한국과의 연결고리를 찾다 보니, 끝내는 한국 관련 종교와 연관성을 찾았다.
 
그렇게 어떻게 해서든 한국을 끌어드리고야 마는 저 일본 보수우익들의 경거망동한 침략주의 행태는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탓다’라는 유언비어와 맥을 같이 하는 아주 저열한 동물적 수작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저격범의 범행동기가 일본 사회에 대한 불만, 혹은 일본 보수우익 정치에 대한 불만으로 밝혀질 경우, 이제까지 일본 보수우익들이 만들어 왔던 ‘신군국주의적 경향’ 성과들이 한 방에 무너질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격의 원인을 개인적·외부적 문제로 돌리려는 것이다.
 
정치인 아베 저격과 저격범 모친의 특정 종교가 무슨 관계인가? 본질을 호도하지 말라.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