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시 사2022. 9. 26. 13:03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 지역(동부의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남부의 자포리자, 헤르손) 주민을 대상으로 러시아와의 합병 찬성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결정했다. 23일부터 닷새간 진행되는데, 출구조사 결과가 나왔다. 러시아 관영 타스 통신에 따르면 주민의 90% 넘는 다수가 러시아와의 합병(편입)에 찬성했다고 한다.

 

이번 투표 결정과 그 결과가 의도하는 바는 분명하다. 러시아의 이번 특수군사작전은 이제 성공으로 마무리될 것이며, 나름의 절차적 정당성 또한 확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의도대로 된 셈이다. 거의 작전 정리 절차로 이행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푸틴 대통령의 공언대로 12월 31일 작전이 종료될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국지적인 형태의 분쟁조차 완벽하게 종결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크라이나는 어떤 형태로든 러시아에게 빼앗긴 지역을 되찾고자 할 것이고, 러시아는 이를 자국 영토에 대한 침공으로 규정하고 적극적으로 격퇴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러시아의 군 동원령 역시 이를 위한 용도로 이해해야 한다. 이들 병력을 동원하여 합병한 지역을 사수하기 위한 전력으로 활용할 것이라 보기에 그렇다.

 

아직 러시아는 공군을 비롯한 중요한 핵심 전력을 작전에 제대로 투입하지 않은 상태다. 예비 병력으로 항시 주변에 대기해 놓고 있다. 혹시 있을지 모를 서방세계의 합동 공격으로부터 러시아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의 핵무기 사용 위협 발언도 서방세계를 향한 경고로 읽힌다. 핵 버튼을 누를 준비가 되어 있으니,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엉뚱한 짓 하지 말라는 메시지다.

 

서방 언론에서는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이 고립무원의 상태라고 여론을 호도한다. 중국과 인도마저도 푸틴의 패배를 예감하고 등을 졌다는 말이 떠돈다. 하지만 중국 신화통신이 전하는 소식은 사뭇 다르다. 지난 15일~16일 이틀에 걸쳐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에서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가 열렸다. 참가 국가들의 면면도 만만찮다. 러시아, 중국, 인도, 이란, 튀르키예(터키), 파키스탄,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름을 올렸다. 러시아와 중국 정상회의에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이런 발언을 했다. "중국은 러시아와 협력하여 서로의 핵심 이익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강력한 지원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다."(신화통신, 2022.09.15.)

 

중국도 그렇고 인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설사,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이번 작전에서 실패하던, 더 큰 전쟁으로 확전되어 패배하든, 이를 마냥 반길 수만은 없는 처지에 있다. 러시아를 몰락시킨 이후에 서방세계는 어느 국가를 다음 타깃으로 삼을지 너무도 자명하기 때문이다.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주석도 이를 의식한 듯 "워싱턴은 세계를 둘로 분리하려고 준비 중에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만약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가 핵전쟁으로까지 확전 된다면 그것은 서방세계와 반대진영(러시아, 중국, 인도, 이란 등) 간 3차 대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를 잘 알기에 서방세계와 서방언론에서는 러시아를 고립시키기 위해 열심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의 입장에서도 러시아와의 친교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나 대만 문제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어떤 형태로든 중국의 대만 침략은 그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물론, 이것이 전쟁 형태를 띤 전면전으로까지 확대되지는 않을 테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정도의 강도를 지닌 군사작전으로 진행될 여지는 충분하다. 중국 시진핑 주석에게 이번 러시아의 작전은 마치 타산지석과도 같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면 목표는 하나다. 대만을 더는 독립 운운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만들어 놓고 마무리하는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 대만이 완전히 타도해 전멸시켜야 할 적국이 아니기에 그렇다. 대만 침략이 시진핑 주석에게 독일지 약일지는 두 번째 문제다. 중요한 판단 기준은 시진핑 주석의 장기집권에 득이냐의 여부다. 상황이 연출되면 할 수밖에 없는 것이 국지전 개념의 군사행동이다. 소극적 전투이기는 하나 파괴력이 크기에 유혹이 상당하다. 미중 패권 경쟁의 현실과 중국 내부의 잠재적 요인들이 그런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애초에 이번 군사대결을 전쟁으로 부르지 않았다. 특수군사작전(돈바스 주민 보호를 위한 특수군사작전)이라 명했다. 그 이유는 돈바스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의 안전을 도모하고 지역을 해방하는 임무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돈바스는 친러시아 성향이 강한 지역이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할 때, 돈바스 지역 여론도 러시아로의 합병에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이러한 여론을 우크라이나 정부가 강경 진압으로 막았던 상황이다. 특히 유럽연합의 중재와 이를 통한 상호 협약(민스크 협정) 체결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정부는 돈바스 지역을 극우 성향의 ‘아조우 부대’를 통해 관리토록 했다. 아조우 부대는 돈바스의 친러시아 성향 주민들과 싸우기 위해 만들어진 민병대 조직이다. 신나치 극우 세력으로 우크라이나 정부에 의해 정식 군사 경찰 조직으로 편성되었다. 이들에 의한 돈바스 지역 주민 사망자만 1만 4천 명에 달했다.

 

이러한 돈바스 분쟁에 기름을 부은 것이 나토(NATO)의 확대 정책이다. 나토의 현상유지는 미소 간 합의 사항이었다. 이를 조건으로 소련은 독일 통일에 찬성했다. 그런데 1999년 헝가리와 폴란드, 체코를 나토에 가입시켰다. 2004년에는 루마니아, 불가리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발트 3국이 나토에 가입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러시아와 경계하고 있는 지역이 추가로 나토 가입을 희망하는 사태를 러시아는 그저 수수방관할 수 없다. 군사작전의 두 번째 명분이다.

 

세 번째의 명분은 미국의 이해와도 합치한다. 냉전의 해체는 서방세계를 무료한 평화로 안착했다. 그러다 보니, 패권의 영향력이 별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미국의 입김이 잘 먹히지 않는 것이다. 특히 유럽지역이 그렇다. 독일은 새롭게 부흥 중이고 유럽의 맹주처럼 군림한다. 미국의 기분이 좋을 리 없다. 패권의 무서움을 보여주어야 유럽의 여타 국가들이 다시 고개를 숙이고 들어온다. 에너지 부족 등으로 혹독한 올겨울 추위를 겪고 나면 비로소 힘의 무서움을 다시금 몸소 느끼게 될 것이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러시아와 일부 유럽 국가 간의 에너지 및 경제 연대를 차단하는 효과도 있다. 이러한 연대가 향후 안보 연대로 발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현실화하면 미국의 입지는 유럽에서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미리 싹을 잘라야 한다.

 

중국이 넘버 2 자리를 넘본다고는 하나, 아직은 어설프다. 역시 패권은 미소 패권이 제격이다. 미국과 러시아의 이해가 일치하는 지점이다. 세계 패권 경영도 해본 이들이 잘 안다. 비록 라이벌이라고는 하나 익숙한 파트너가 그래도 상대하기는 수월하다. 갓 성장한 애송이는 어디로 튈지 감을 잡을 수 없어 피곤하다. 손 안 대고 코 풀었고, 싸우지 않고 이긴 미국은 역시 쎈 선수다. 재고 무기들을 소진해서 돈을 왕창 벌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한 강 달러 전략은 세계의 부를 미국으로 빨아들인다. 미국이든, 러시아이든, 중국이든, 유럽이든, 일본이든 먼저 쓰러진 자가 남은 자들을 위한 성찬의 먹잇감으로 전락한다. 이후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한정된 평온을 되찾는다.

 

마지막으로 세계 금융자본의 이해득실도 한몫한다. 자본은 이미 국경을 초월한 상태다. 세계는 지금 거대한 통화량 홍수 상태에 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는 이를 더욱 확장하였으며, 연장하였다. 돈이 너무 많이 풀린 것이다. 거품도 많다. 부풀려진 고무풍선을 터트려야 한다. 예측 가능한 경로를 따라야 터진 고무풍선에서 떨어지는 내용물을 고스란히 받아먹을 수 있다. 이것이 예측 불가능하게 흘러서는 죽 쒀서 남만 좋은 일 시킬 수 있어 낭패를 본다. 자본가나 자산가가 자신의 자산을 두세 배로 불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늘 그렇듯이 호황과 불황은 일정한 사이클을 갖는다.

 

이렇듯 분명한 명분과 뚜렷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으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은 피할 수 없는 당연지사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국가 간 외교와 협상이 중요하다. 가능한 한 군사적 분쟁은 피해야 하고, 전쟁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 약소국에는 절대적 과제이다. 정치를 제대로 못 한 위정자 탓에 죽어나는 것은 국민이다. 행동(힘을 키우려는 노력)하지 않는, 말뿐인 정의는 전쟁의 고통과 죽음만을 가져온다. 역사가 알려주는 진리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은 이제 서서히 결말을 향해 간다. 이번 작전으로 러시아가 확보한 우크라이나 지역의 면적은 약 9만㎢로 우리나라(남한) 면적보다 조금 작은 규모다. 우크라이나 전체 영토의 약 15%에 해당하는 규모라니 결코 만만치 않은 지역을 확보한 셈이다. 러시아는 합병 지역에 대한 자치권을 확실하게 인정한 후, 이곳을 방어하는 수비형태의 전술로 전환하는 것으로 작전을 종료하려 들 것이다. 우크라이나 역시 그냥 수수방관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대적인 폭격과 시설 파괴다. 다시는 우크라이나가 힘을 키우지 못할 만큼 철저하게 폐허로 만들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수도 키이우를 비롯한 대도시들, 공장시설, 군사시설 등이 목표가 될 것이다.

 

이제까지 러시아는 무차별 폭격은 피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우크라이나의 거점 지역을 정밀 유도탄을 발사해 집중 타격하는 방식을 취했다. 돈바스를 비롯한 특정지역의 접수·합병이 목표였기에, 전투 못지않게 중요했던 게 점령한 지역의 주민 안전과 시설 보호였다. 이제 그 목표는 달성되었고, 남은 것은 위협 요소의 제거다. 그렇다고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젤린스키 정부를 전복하고 친러 정부로 교체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자칫 아프가니스탄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1978년 시작되어 1988년 끝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개입에 따른 소모전은 결국 소련 붕괴의 원인이 되었다. 가엽게도 이를 젤린스키 대통령도 이미 눈치채고 있다. 사태 정리에 대한 의지가 안 보이는 이유 중 하나다.

 

지금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래기이다. 일국에서 벌어지는 일이 결코 일국적인 상황으로 끝나지 않는다. 세계 도처에, 다방면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때로는 일국의 선택이 타국의 이해를 반영한,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판을 연상시키곤 한다. 이처럼 패권을 휘두르는 강자는 비록 일국이지만 절대 일국적이지 않은 국제적 지위를 갖는다. 국가가 힘을 길러야 하는 이유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