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일 상2015. 4. 18. 14:08

다분히 아주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어쩌면 지금의 50대 이상 중년세대가 축복받은 '여유'의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물론, 그 여유로움의 이면에는 후세대가 누려야 할, 그들 몫으로 남겨두었어야 했을 자산을 통째로 갉아먹은,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몰염치한' 재산불리기가 한몫 했음을 부인하기 어렵고 말입니다.

 

그래서일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1억 · 2억 하는 그 '억'이 새삼 대접받는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이게 말이 좋아 '억'이지 그 '억'을 모으기 위해서는 일반 월급쟁이들의 빤한 주머니 사정으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알기에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이라는 단위가 친근했던 이유는 재산을 뻥튀기 시켜주는 부동산(특히 아파트)이란 게 존재했었기 때문입니다. 목만 잘 보고 빠르게 선점하면 개인의 능력에 관계 없이 하루아침에 몇 천만 원씩 알아서 뻥튀기를 시켜주니 그까짓 1억쯤은 껌값처럼 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있습니다. 좋은 말로 표현을 하면 재산불리기의 엘리베이터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신분 상승의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는 것에 더해 서민들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겠지요.

 

그 대표적인 것이 삶의 다운사이징이 될 것입니다. 젊은 세대를 포함해서 기성세대 모두는 지금보다 훨씬 다운사이징 된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모든 씀씀이를 축소해서 접근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유는 풍선처럼 커지고 있는 빚(채무) 때문입니다. 가계부채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상승하고 있다는 얘기는 더 이상 뉴스거리도 아닙니다. 그 중 아파트 담보 대출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담보 없이 돈 빌려주는 금융권은 없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대한민국 가구당 보유자산 현황을 보면 자산의 대부분이 아파트에 올인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작년 2014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50대의 부채(평균 8천백만 원)를 뺀 평균 순자산 규모가 약 3억 5천이라고 합니다. 이중 실물자산이 3억2천이고, 가용 순 금융자산은 3천만 원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50대는 3억 2천만 원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현금은 3천만 원을 갖고 있다는 것으로, 그야말로 부동산에 완전 올인 되어 있는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모든 게 아파트로 시작해서 아파트로 끝나는 구조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풍선처럼 빚으로 커지고 있는 아파트의 거품이 꺼지게 된다면, 상상하기조차 싫은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임은 불문가지입니다.

 

일본은 1991년의 부동산 거품 붕괴에 이어, 1997년 2차 버블이 붕괴되면서 대량의 하우스푸어를 양산했습니다. 1차 버블이 꺼지면서 부동산 가격이 크게 하락을 하자 이를 저점이라고 생각한 많은 이들이 부동산 재매수에 나서 결국 2차 버블 때 모두 쓰러지게 된 것입니다.

 

제가 99년 4월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으니 버블붕괴의 현장을 직접 체험했던 셈입니다. 더구나 지인들 중 몇몇이 부동산업을 하는 분들이 있어 개인파산의 아픔을 제 눈으로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사업을 하던 한국인들 중에 이때 돈을 좀 번 분들이 꽤 많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 중에 또 대다수가 바로 부동산업에 종사하던 분들이었습니다.

 

부동산업이라고 해서 지금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은 정상적인 물건을 매매 또는 임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분들은 파산한 물건, 즉 경매에 들어가기 전 물건들을 임대해 거기서 사업을 하는 것입니다.

 

언제 경매에 넘어갈지 모르는 리스크가 큰 물건이니 임대료며 보증금은 거의 헐값에 가까웠습니다. 그리고 그런 물건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큰 사장(야쿠자 등)이 있고, 이 물건을 받아오는 작은 사장들이 있어 이들이 그 물건을 원하는 각 개인들에게 임대해 주는 방식으로 운영이 되었습니다.

 

이 위험 물건을 임차한 한국인 사장들은 그 건물을 잘게 나누어 여러 개의 방으로 만들고, 이를 한국인이나 중국인 유학생들의 기숙사로 많이들 활용을 했습니다. 도쿄가 워낙 집값이나 월세가 비쌌던 곳이라 작은 방 하나 만들어 놓고 그 방에 유학생 두 명 넣으면 1인당 최소 월 3만5천엔(한화 약 30만원)을 받는데, 두 명이니 방 하나에 월 60만원이 들어오는 셈이지요.

 

이런 방을 한 열 개 정도 갖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구요. 최소 월 600만 원 정도가 그냥 들어오겠지요. 하지만 이런 사업을 하는 분들은 비슷한 건물 몇 개를 임차해 사업을 하시니 단순 계산으로 해도 한 달에 몇 천만 원은 번다고 봐야 합니다. 사업자 신고가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니 세금 한 푼 없는 그야말로 알짜배기 순수입인 셈입니다.

 

제가 지인들과 어울려 다녀본 곳 중 지금도 눈에 선한 몇 개 건물만 말씀드려 볼까요? 도쿄 시내에 있던 건평 60~70평은 족히 됨직한 멋진 2층짜리 일본식 개인주택이 있었습니다. 그 한쪽에는 공장으로 썼던 것 같은, 비슷한 평수의 공장건물이 붙어 있는 물건이었습니다.

 

주인 가족이 밤에 몰래 야반도주를 했다고 하더군요.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불과 어제까지도 사람이 살았을 것 같은 깨끗하고 정갈한 실내 분위기가 그것을 말해주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물건을 받은 한국인 사장님은 간단하게 칸막이 공사 등을 한 후, 그 멋진 건물 역시 유학생 기숙사로 썼습니다.

 

도쿄의 약간 외곽에 위치한 5층짜리 사우나와 그 근처에 있던 5~6층 규모의 호텔 역시 파산한 물건으로 그런 사업을 하던 분들이 들어가 영업을 했습니다. 정말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싼 월세를 내고 말입니다.

 

가끔 한국에서 손님이 오시면 그 호텔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드렸으니 그 시설이나 이런 것은 저도 잘 알고 있는데, 그렇게 막 사용하기에는 여간 아까운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사우나도 그랬구요.

 

또한, 한 개 층이 전부 원룸으로 되어있던 어느 회사가 사원들 기숙사로 사용했다던 그 물건 역시 저렴하게 임차한 분이 그대로 기숙사로 활용을 했습니다. 어떤 방에는 개인짐도 미처 챙겨가지 못한 채 그대로 놓여있더군요.

 

이렇게 돈을 벌어서 건물을 사고, 큰 식당을 하고, 이후 불어 닥친 한류 바람에 사업의 전성기를 맞이한 꽤 많은 재일한국인들을 봤습니다.

 

그리고 그런 성공의 이면에서 또 제가 목격한 것은 한 개인이나 가족들의 쓸쓸한 퇴장이었습니다. 그 좋은 건물을 통째로 거저 넘겨주고 떠나야 했던, 야쿠자의 등살에 밤잠조차 설쳐야 했을, 심하게는 밤에 몰래 도망가는 길을 선택해야 했던 가족들의 아픔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군요.

 

불과 십여 년 전, 제가 직접 보고 경험한 것들이기에 절대 남의 일 같지 않은 파산 현장의 참혹한 사례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는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의 위태로움이 옛 기억을 자꾸 상기시켜 주는 요즘입니다. 다들 건승하세요.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