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일 상2014. 9. 6. 12:10

추석이다.

 

베란다 창밖으로 보이는 거리 풍경도 어제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포근하다랄까? 따듯함이랄까 하는 그런 게 묻어 있는 듯도 하다. 어쩌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이라는 게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내 느낌과 기분 그대로만 보이는 게 실은 세상의 이치이나, 자신의 생각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때로는 좌절하고 악다구니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요즘은 짬을 내서 공부하는 시간을 좀 갖으려고 노력 중에 있다. 그래서 몇 개의 공부 모임에 들어가 함께 책도 읽고, 강의도 듣고, 토론도 하곤 한다.

 

그 모임들 중에 하나가 화폐와 금융자본주의에 관한 책을 읽는 공간이다. 3권의 시리즈가 끝나고 곧이어 이의 연속선상에 있는 부채 문제와 관련한 책 읽기로 이어질 것 같다.

 

공부를 하다보니,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금융화와 신자본주의를 간략하게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풍선화 효과’가 아닐까 라고 말이다.

 

그리고 이 풍선화 효과는 두 가지로 대별해 볼 수 있는데,  '욕망의 극대화'와 계층 간 '갈등 조장'이 그것이다. 이는 금융자본주의는 사회구성원 개개인들의 몸에 욕망과 탐욕과 기대와 자본이라는 공기를 무수히 주입하고 있다는 믿음의 발로에 기인한 발상이다.

 

뛰어남, 편안함, 남다름이라는 논리를 저변에 깐 채, 모든 이들의 욕망에 기름을 부으며 풍선 부풀리기에 나서고 있다는 생각 떄문이다. "당신도 그리될 수 있다"고 끊임없이 유혹하며 말이다. 그러니 구성원 모두가 다들 부자 된다는 환상에 잔뜩 도취된 채 욕망 입자의 주입을 멈추지 못하고 있음이 현실이다.

 

풍선화 효과의 또 다른 노림수는 계층 간 '갈등 조장' 정책이다. 욕망의 극대화는 그 욕망을 주입 받는 자와 주입하는 자가 존재해야 한다. 바로 이 두 세력 간 협력(욕망)과 알력(현실)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욕망의 입자를 주입하는 자들은 그 사회의 10%에 존재하는 세력이다. 이 세력의 구성원들은 풍선이 커지면 커질수록 자신들에게 떨어지는 이익의 부스러기도 함께 늘어나는 자들이다. 물론, 전체적인 규모에서 본다면 부스러기에 불과할 것이나, 그 규모 자체가 엄청나기에 부스러기만 얻어 챙겨도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으니 자본의 풍선 만들기에 기꺼이 동참하는 것이다.

 

그리고 욕망의 입자를 주입 받는 자들은 나머지 90%의 서민들이다. 언론과 미디어, 관료와 학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주입하는 자들에 의해 훈육되고 세뇌 당하며 무수히 욕망의 풍선 부풀리기에 열중하고들 있다. 설혹, 이들 중에 깨어 있는 자가 있어 세력화라도 할라치면 어김없이 날아 오는 반대 논리가 있으나, 이는 주입하는 자들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이들 세력에 부화뇌동하는 일부 주입 당하는 세력 속에서 나온다.

 

이처럼 욕망을 주입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손이 아닌, 주입 받는 세력 중에 일부를 포섭하고 이들로 하여금 서로 간 갈등과 반목을 되풀이 하도록 조종하여 사회적 혼란을 조장한다. 그리고 이런 혼란 가운데 정치는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실종된 채, 제 본연의 조정 기능 또한 상실해 버리고 만다. 이는 곧 사회 제어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진다.

 

자, 그렇다면 이처럼 금융화된 신자유주의의 풍선화를 극복할 방안은 무엇인가?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욕망 입자의 주입을 멈추고 들어 있는 그것조차도 서서히 빼내려는 노력 즉, 삶의 다운사이징 작업 아닌가 싶다.

 

도대체 지금보다 얼마나 더 풍요로운 세상이 도래해야 만족할만한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지금보다 다소 여유롭지는 못하더라도 사람답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여유를 가지는 문제가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갈등과 반목을 해소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같은 계층 간 반목과 갈등으로 결국 덕을 보고 있는 세력이 누구인지에 대한 적확한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그 건 안 돼”라는 부정의 논리가 아닌 “그건 이렇게 해 보자”는 긍정의 논리로 갈등과 불신을 해소하고 서로가 상생 · 공존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만약, 도래할 새로운 사회의 미래가 있다면 그건 바로 이런 형태의 ‘삶(앎)의 공동체’적 노력에 의해 가능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행복한 명절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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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