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감 상2018. 5. 30. 10:56

혜연이 엮은 임제의현 스님의 법어 「임제록」에 의하면 “살불살조살부살모(殺佛殺祖殺父殺母)” 즉,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친척 권속을 만나면 친척 권속을 죽여라” 한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불상에는 부처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붕어빵에서 붕어의 상을 보고, 불상에서 부처의 상을 본다.


중생이다 부처다 하나 이는 곧 그 이름의 다름 아님이요 관념의 산물일 뿐이다. 그것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그것이 생기기 이전의 그 속으로 들어가야 알 수 있거늘, 그저 그 표상에 매달려 연연하지 말라는 말이다. 부처의 상을 만들고, 부모의 상을 만들고, 나한의 상을 만들고 해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음이다. 그 상을 죽이라 한 말이다. 근원을 깨달은 자 부처요, 깨닫지 못하여 지혜롭지 못한 자는 중생일 뿐이다.


불타(burning)는 청춘은 갈망(burning)하는 청춘이다. 청춘들은 마음속에 하나의 거대한 상을 갖고 살아간다. 그들의 현재 상태는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리틀 헝거(물질적 추구)와 같은 것이나, 그들이 갈망하는 미래는 그레잇 헝거(정신적 추구)이다.


어떤 하나의 계기로 인해, 청춘들은 자신의 갈망하는 바(목표)를 만들게 된다. 종수에게 있어 해미가 그런 하나의 계기로 작용한다. 종수와 해미, 둘의 첫 섹스 도중에 종수는 운 좋게도 방안으로 들어오는 잠시의 빛을 본다. 갈망이 구체적으로 잉태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같은 공간에서 반복되는 종수의 자위행위와 카타르시스는 갈망의 정도를 깊게 만든다.


갈망이 깊어갈수록 점차 벤의 존재가 종수의 심중 깊은 곳으로 각인된다. 좋은 자동차와 멋진 집, 성공한 자의 모든 것을 갖고 있는 벤. 해미를 통해 서로를 알게 되었으며, 사라져버린 해미를 찾기 위해 자주 조우하게 되는 종수와 벤. 그런데 이 둘은 정말 다른 존재일까? 종수가 벤이요, 벤이 종수이지는 않을까? 종수가 칼로 찌른 것은 벤인가? 종수 자신인가? 벤이 태웠다는 비닐하우스와 종수가 살해 후 불태워버린 벤과 자동차는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섬기거나 얽매이지 마라. 불타는 청춘은, 청춘 속의 갈망하는 대상을 태워버려야 비로소 갈망하는 대상으로 다가갈 수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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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