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이미 고인이 되셨으니 여쭙고자 하나 여쭐 수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요, 연출의 변 또한 확 와닿지 않으니 그 진의를 짐작하기가 쉽지 않음이라.
어렵다 한들 헤아리지 못할 바 없고, 헤아려 살피고자 노력조차 아니 함은 나의 태만함일지니 나름의 생각을 아래에 적어 본다.
요한복음 1장에 이르기를 “태초에 말씀이 있었으며,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만물이 지은 바 되었다”는 구절을 염두에 두고 작품 해석을 했으나 이는 그저 내 생각일 뿐, 모르겠다. ㅠ
1. 말씀
지난밤 잠결에 말씀이 있었다.
“내일 집 나간 아들이 돌아 올 것이니라.”
가족 모두가 애타게 기다린다.
기다림의 끝자락, 길 잃은 젊은이가 빛으로 찾아온다.
모두가 말씀의 증거라 확신한다.
하지만 그 젊은이는 자신이 그들의 가족임을 믿지를 않는다.
즉, 자신이 보내심을 받은 자(者)인줄 알지 못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한복음 1장)
2. 바위
화전을 일구며 살던 이들에게 어느날 갑자기 힘겹게 일궈놓은 화전 한 가운데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버티고 서 있다. 이 바위로 인해 화전으로써 쓸모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 바위를 쪼개다가 삶을 마감(?)해 버린 아버지. 허나 가족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가져다 주는 존재이시라.
터키에 카파도키아 동굴수도원이 있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로마시대 이래 종교적 탄압을 피해 바위를 뚫고 그 동굴 속에 몸을 숨기고 신앙생활을 했던 곳이라 한다.
삶에 있어 바위란, 고난의 상징이자 안식의 피난처이다.
3. 쥐가 되다
길을 잃고 찾아온 낯선 젊은이에게 가족들은 그 젊은이를 쥐가 되어 집을 나가버린 자신의 가족이라 한다.
이를 완강히 거부하던 젊은이. 하지만 끝내는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인 채, 그곳을 떠나지 않고 함께 살고자 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 들이니라”(요한복음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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