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시 사2011. 7. 2. 23:23

세상에 언론이라는 이름을 단 매체들이 난립하다 보니 때로는 이해불능 기사를 양산해 내는 곳도 눈에 띄곤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풍요 속의 빈곤을 절감합니다.

 

일본에서 가장 우익의 입장을 대변하는 언론하면 산케이신문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미우리 신문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우익 대변지는 산케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고 봅니다.

 

그런데 오늘 인터넷 포탈에 올라와 있는 기사 중에 눈길을 끄는 게 일본에서 발행되고 있는 모 인터넷 신문이 올려 놓은 기사인데, 산케이신문 칼럼을 별다른 여과장치 없이 그대로 보도하는 우를 범하고 있어 약간 화가 나서 급하게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제가 볼 땐 일본 우익의 자기 합리화에 불과한 칼럼인데, 이를 마치 일본 지식인(언론)의 분석인양 전하고 있어 많이 실망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 기사에 의하면 산케이신문 편집위원인 오노 토시아키씨가 쓴 칼럼 '왜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가'라는 글에서 오노씨는 지진과 방사능 유출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를 두 가지로 들고 있는데요. 하나는 일본 정부에 대한 믿음, 다른 하나는 일본 왕인 천황에 대한 신뢰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래는 그 기사의 일부 입니다.

 

(중략)칼럼에서는 "이 정도의 대규모 재해에도 일본에서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데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첫째는 일본인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기다리면 반드시 어떻게든 된다"는 믿음이 있다는 것이다.

 

일본인은 아무리 붐비는 전철이라도 줄 서서 기다리면 언젠가 반드시 탈 수 있고, 질서를 지키면 배신당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이런 심리로, 엄청난 재해 후에 힘든 상황에서도 일본 정부가 피해자를 죽어가도록 놔두지 않고 반드시 구조의 손을 뻗어줄 것이라는 신뢰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천황의 존재다.

 

일본인은 최고권력자가 어떻든 최종적으로 서민을 지켜주는 이는 최고권력자 위의 존재 즉, 천황이 있다는 데 안심을 하고 있다고 한다. 만일 서민을 소홀하게 대하는 권력자가 있다면 천황이 용서할 리 없다는 잠재적인 신뢰감이 일본인에게 "기다리면 어떻게든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오노 씨는 일본인들의 천황에 대한 신뢰감을 지나온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유럽이나 중국, 한국 등 많은 왕후귀족들은 서민들의 착취와 탄압을 통해 권력을 잡고 유지해왔다. 권력 유지를 위해 서민들의 희생은 당연한 듯이 받아들여졌지만, 유일하게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암흑기로 묘사된 에도시대 막번체제의 서민들은 절대 가혹한 삶을 살지 않았다고 한다.

 

때문에 이번 재난 직후에도, 천황이 TV를 통해 국민들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하자, 일본 국민들은 마음 한 켠에 자신들의 신뢰감을 배신당하지 않았다는 안심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어 오노 씨는 "그러나 요즘 정부를 보면 부디 이 신뢰감을 무너뜨리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고 칼럼을 마쳤다.

 

한 마디로 강아지가 풀 뜯어 먹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데, 이를 무비판적으로 소개하게 되면 독자들은 혼란스러워집니다. 기자의 양식으로 제대로 분석 후 소개함이 옳다고 봅니다.

도대체 어떤 글이었는지 궁금해서 산케이신문 웹사이트 들어가 한참을 찾아 확인해 봤더니, 뭐 별로 거론하고 싶지 않은 수준의 그렇고 그런 글이더군요. 그냥 자민족 우월주의자의 배설물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원문 클릭)

하지만 가끔은 이런 주장하는 일본인들 보면 솔직히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대개가 보수 우익들 중에 자민족 우월주의자들이 많지요. 그런데 우리는 자칭 보수라는 사람들이 자민족 비하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종종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나라 잘 되자(?)고 집회하면서 남의 나라 국기인 성조기나 열심히 흔들고 대고 있으니 그 속에서 민족의 자존이 파고들 여지나 있겠습니까? 서글픈 우리의 자화상 입니다.
 

자, 각설하고 제가 보는 일본에서 폭동이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첫째, 사무라이(무사) 문화 때문입니다. 잘 알다시피 일본 문화는 사무라이 문화입니다. 아주 오랜 세월 일본 사회는 사무라이 문화 속에 푹 젖어 살아 왔습니다. 그까짓 것이라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일본 사무라이에게는 평민을 처형할 수 있는 권한까지 주어졌었다는 사실을 생각하신다면 그렇게 쉽게 받아드릴 수는 없을 겁니다.

 

한 마디로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사회에서 어느 누가 나서 권익이니 민주주의니 할 수 있겠습니까? 자주적 근대화 운동이라 불리는 메이지유신의 주축 세력도 소외되었던 하급 사무라이들이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여기에 더해 이런 사회체제를 타파하고자 했던 70년대 학생운동조차도 권력에 의해 처참하게 실패하면서 사무라이 문화는 지금도 일본 사회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처럼 성공한 시민혁명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일본이기 때문에 폭동이 불가능합니다.

 

또 하나의 이유, 이는 산케이신문 편집위원 오노씨의 주장과 비슷합니다. 일본 정부에 대한 신뢰라는 사실인데요.

 

일본이 패전 이후,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보면 자민당 일당 독주체제였다는 사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것저것 다 젖혀두고 일본 국민 입장에서는 원초적인 빵 문제를 해결해 주었음은 물론, 더 나아가 모든 국민을 중산층화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준 자민당이 예뻐 보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또한 일본 정부 역시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물론, 고인 물은 썩는다는 당연한 이치를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이 요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일본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전쟁으로 인한 폐허 이후 그 짧은 기간에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선진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사회복지국가로 발전시켜준 점은 일본 국민들로부터 크게 인정받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것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신뢰는 절대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본 왕인 천황과 관련한 부분은 일본 우익들의 바람에 다름 아니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다라는 희망사항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일본 우익에게 있어 천황의 존재는 절대적인 것입니다. 전에 일본 총리를 했던 모리 요시로(森喜朗)씨가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한 신(神)의 나라"라고 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변국의 반발을 산적이 있는데요. 이런 일본 우월적 망발을 할 수 있는 이유도 천황이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지요.

 

지난 역사이기는 합니다만, 사실 일본의 천황제는 1945년 패전과 함께 종말을 고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일본 군부를 포함한 우익집단의 집요한 요구와 미국의 안일한 상황인식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봐도 무리가 없습니다.

 

일본이 패전을 인지했던 게, 대략 1943년 경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1945년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기 전까지 계속 전쟁을 이어갑니다. 무려 2년 가까이 전쟁을 더 끌어가면서 엄청나게 많은 병사와 민간인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이처럼 패전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계속 끌고 갈 수 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천황제 유지를 약속 받기 위한 미국정부와의 협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2차세계대전과 원폭은 관계가 없다고 믿습니다. 원폭은 천황제 유지를 위한 욕심의 산물입니다.

고로, 원폭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천황의 몫입니다. 이런 이유로 일본 왕인 천황은 전쟁에 대한 책임 뿐만 아니라 원폭에 대한 책임까지 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무튼, 천황제를 보는 일본 우익들의 생각 일단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됩니다.

세상에 때어나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다 죽어 갈 인간들 중에 신의 자식이 따로 있고, 인간의 자식이 따로 있다는 발상. 게다가 인간의 자식들 조차도 다시 귀족과 평민으로 구분해 나누려는 발상. 역시, 강아지 풀 뜯어먹는 소리로 나는 받아드립니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