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 사전 지식-아는 만큼 보인다” 시리즈를 준비합니다.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가로지르는 고대사 대장정입니다. 한반도 문화의 일본 열도 전파라는 주제로, 대략 6개월에 걸쳐 가야, 백제, 신라, 고구려 각 10편씩 총 40편을 연재할 계획입니다. 이 정도의 사전 지식은 갖고 일본 여행을 가면 좋겠다 싶은 내용으로 선정해서 기술할 예정입니다. 일본 땅에 깃들어 있는 한반도 개척자들의 혼과 열정을 기대해 주십시오.
가야편 제8회
낙동강의 축원, 바다를 건너다: 신녀와 묘견공주, 히미코 전설
새벽녘, 낙동강의 은빛 물결이 고령의 언덕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안개가 지산동 고분군을 감싸고, 첫 햇살이 금동관의 찬란한 문양을 비추는 순간, 천 년 전 가락국의 제사 행렬이 되살아난다. 철의 불꽃이 제단에서 타오르고, 청동거울이 신령의 빛을 반사하며 신성과 권력이 하나 되던 그곳, 가야의 심장에서 성스러운 숨결이 시작되었다. 이 숨결은 낙동강의 메아리를 따라 바다를 건너, 규슈의 푸른 해안과 이즈모의 신성한 숲속으로 스며들었다.
동시에, 멀리 아리아케해(有明海)의 잔잔한 파도 속에서 별빛이 춤춘다. 구마모토의 야쓰시로 신사(八代神社), 묘견궁(妙見宮, 795년)의 신성한 경내에서 북극성의 신, 묘견신(妙見神)이 고요히 빛난다. 이곳으로 한 여인이 바다를 건너온다. 거북의 등에 실려, 구름을 타고, 그녀는 천상의 빛을 품은 묘견(妙見)공주다. 그녀의 이야기는 낙동강의 바람과 규슈의 파도가 만나 엮어낸 신화적 유물, 고대 한일 교류의 장대한 서사다.
이 여인은 누구인가? 가락국의 신녀(神女)이자 야마타이국(邪馬台国)의 여왕 히미코(卑弥呼)일까? 그녀의 동반자, 왕자 선(仙)은 낙동강의 축원을 규슈의 제단에 심은 이일까? 그리고 거북, 하늘의 뜻을 전하는 신성한 사자는 가락의 구지가와 묘견공주의 배를 하나로 잇는가?
가락국의 샤먼 전통과 야쓰시로 신사의 묘견신앙, 히미코의 신탁과 거북의 항해를 엮으며, 별빛 아래 펼쳐진 영원의 서사를 그려낸다.
낙동강의 축원: 가락국의 샤먼 씨앗
김해의 푸른 평야, 낙동강 하구에서 가락국은 1세기부터 6세기까지 꽃피웠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초대 왕 김수로(재위 42~199년)는 금알(金卵)에서 태어나 하늘의 명을 받아 왕국을 세웠다.
그의 부인 왕비 허황옥, 인도 아유타국에서 온 신령한 여성은 가락국이 해양 교류를 통해 외부 문화를 포용한 강국이었음을 보여준다. 건국 설화의 중심에는 구지가(龜旨歌)가 있다. 거북이 하늘의 뜻을 전하며 왕의 탄생을 예고하는 이 노래는 가락국의 샤먼 전통이 천신과 인간을 연결했음을 암시한다.
수로왕은 아홉 간(干, 촌장)의 지지를 받아 연맹적 통치를 구축했다. 대성동 고분군의 웅장한 무덤과 청동거울, 파형동기는 왕권의 권위가 점차 강화되었음을 증언한다.
파형동기(巴形銅器) , 천신과 교감하는 독특한 이 제사 도구는 가락국 샤먼의 상징이었다. 2대 거등왕(199년경)에 이르러 가락국은 철기 생산과 해상 교역을 활성화하며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학계 일각에서는 거등왕이 연맹 체제를 넘어 중앙집권적 왕권을 시도했을 것으로 본다. 《삼국지》 <위지 왜인전>은 가락국이 주변국 및 왜국과 활발히 교류했음을 암시하며, 철의 수출을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왕권에 의한 철기의 관리를 통해 외교와 권력 강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전략을 썼을 가능성있다. 당시에 철은 매우 귀중한 자산이었기에, 이의 생산과 분배는 아주 중요하고, 한편으로는 미묘한 문제였다.
그러나 이러한 권력의 중앙화는 부족 촌장(干, 간)들과의 사이에 갈등을 낳았을 개연성이 크다. 《편년가락국기》 「초선대」편은 거등왕의 아들 왕자 선(仙)이 세상의 혼란함과 세상사의 허망함을 탄식하며 신녀와 함께 구름을 타고 떠났다고 기록한다.
이 “승운이거(乘雲離去)” 설화는 정치적 갈등과 왕위 계승의 상징적 메타포로 해석된다. 일국의 왕자 신분인 이가 단지 인생무상을 이유로 나라를 떠나 타지로 간다는 것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 여러 의문을 남긴다. 혼란스러운 세상에 대한 왕자 선의 탄식은 많은 여운을 남긴다. 왕자 선을 둘러싼 정국이 혼란스러웠던 듯싶다. 어찌되었든, 왕자 선과 신녀의 여정은 가락국의 샤먼 전통을 품고 새로운 터전을 찾는 항해, 곧 규슈의 묘견공주, 즉 히미코 전설로 이어진다.
김해의 민담은 이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초선대 바위, 낙동강 지류가 흐르는 신성한 경계에 서서, 선과 신녀의 천상 여정을 기린다. 한 민담은 선이 안개 낀 언덕에서 빛나는 신녀를 만나 북두칠성이 이끄는 먼 땅의 운명을 들었다고 전한다.
그들은 구름을 타고 일본으로 떠났으며, 신녀는 그곳에서 여왕이 되어 새 왕국을 형성했다. 이 신녀가 묘견공주요, 히미코다. 가락국의 샤먼 씨앗이 규슈의 제단에 뿌려진 순간이다.
야쓰시로 신사: 북극성의 신성한 항구
아리아케 해의 잔잔한 파도 속, 야쓰시로 신사(묘견궁)는 북극성과 북두칠성의 신, 묘견신을 모시는 천상의 성소다. 이곳에서 묘견공주의 전설이 살아 숨 쉰다. 지역 민담은 그녀를 바다에서 나온 천상의 처녀로 그린다. 귀사(龜蛇) 즉, 뱀의 머리에 거북의 몸을 한 배를 타고 상륙한 그녀는 별빛으로 반짝이는 옷을 입고, 야쓰시로 사람들에게 북두칠성의 인도에 따라 바다를 항해하는 법을 가르쳤다. 어떤 전승은 그녀를 묘견신의 화신으로, 하늘과 땅을 잇는 신성한 다리로 묘사한다. 다른 전승은 그녀를 씨족을 통합한 여왕이나 여사제로 본다.
매년 11월 22일~23일 늦가을, 야쓰시로 일대에서 열리는 묘견제(妙見祭)는 묘견신의 은혜를 기리는 유서 깊은 축제다. 규슈지역을 대표하는 3대 마츠리 중 하나다. 북극성을 상징하는 화려한 카사호코(笠鉾)와 묘견공주를 태운 거북뱀(亀蛇)이 이끄는, 신을 모신 임행 행렬(神幸行列)이 쿠마가와(球磨川) 강변을 따라 펼쳐지며, 사자춤과 제례 음악이 묘견신의 보호를 소원하는 찬가로 울려 퍼진다. 야쓰시로 신사의 사제들은 이 행렬이 북두칠성과 연결된 묘견신의 천상 기원을 기념한다고 전한다. 쿠마가와 강 근처의 카메바네(亀津, 거북나루)는 거북뱀의 신성한 상징과 연결된 장소로, 지역 전승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묘견공주가 히미코라면, 야쓰시로 신사는 그녀의 신탁이 규슈에 뿌리내린 성소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에 따르면, 히미코는 사람을 홀리는 귀신도(鬼神道, 무속행위)를 통해 영적 권위를 행사하며 야마타이국을 통치했다.
그녀의 주술적 역할은 묘견신의 천상적 상징과 조화를 이룬다. 북극성은 묘견신의 신성한 빛으로, 질서와 운명을 관장한다. 히미코의 예언은 이 빛 아래 여러 부족을 하나로 묶었다. 묘견제에서는 그녀의 이러한 주술적 유산을 기린다. 묘견제의 화려한 신코 행렬과 쿠마가와 강변의 거북뱀 의식은 이 무속적 전통을 계승하며, 묘견공주가 히미코의 신화적 후계자임을 암시한다.
히미코와 왕자 선: 가락의 신녀, 야마타이의 여왕
2~3세기 야마타이국의 여왕 히미코는 중국 사서 《후한서》나 《삼국지》에 “귀신도를 써서 무리를 현혹(事鬼神道、能以妖惑衆 )”하는 무녀(혹은 제사장)로 기록되어 있다. 이 서사는 그녀를 가락국 왕자 선과 함께 구름을 타고 떠난 신녀로 비정한다. 선은 히미코의 신탁을 전달하며 야마타이국을 보좌한 남동생, 가락국의 샤먼 전통을 규슈에 심은 이로 해석된다.
그들의 여정은 192~194년 동북아시아를 휩쓴 대기근과 사회적 혼란 속에서 시작되었다. 《후한서》는 192년 후한의 극심한 기근을 묘사하며, 이 재앙이 해상 교역을 통해 가락국과 규슈로 파급되었음을 보여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193년 굶주린 왜인들이 신라로 식량을 구하러 온 사건을 기록하며, 규슈 북부의 불안을 증언한다. 규슈 북부 요시노가리 유적(吉野ヶ里遺跡)의 깊은 환호(고랑)와 목책은 기근으로 촉발된 갈등을 반영한다.
일본 신화 속 천손강림을 전하는 고대 역사 기록 중에 당시 사회의 혼란상을 암시하는 듯한 기술이 눈에 띄는 게 있다. 일본 천손강림의 무대로 알려진 히무카(日向, 지금의 미야자키현 일대) 지역의 역사를 중심으로 기술한 《일향국풍토기(日向国風土記)》에 이런 기록이 나온다.
"니니기노 미코토가 천손강림할 당시 세상이 캄캄했는데, 호하시(大鉏)와 오하시(小鉏)라는 두 사람이 니니기에게 치호(千穂)의 벼에서 얻은 쌀을 뿌리면 좋겠다고 아뢰었고, 그렇게 하자 하늘이 맑아지며 밝아졌다. 이런 연유로 천손 니니기가 하늘로부터 내려선 장소를 “히무카 다카치호의 이중의 봉우리(日向の高千穂の二上の峰)”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니조산(二上山)으로 여겨진다."
위 내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치호의 벼에서 얻은 쌀을 뿌리자 캄캄했던 세상이 밝아졌다라는 구절이다. 치호(千穂)란 니니기노 미코토가 천상으로부터 강림할 때 가져온 천상의 벼이삭을 뜻한다. 즉, 본격적인 농경문화의 시작을 알리는 표현이며, 또한 그 지역에 새로운 세력에 의해 비로소 신성한 물질인 쌀 생산이 뿌리내리게 되었다는 이중의 의미를 갖는 표현이다. 그래서 니니기노 미코토가 천손강림한 땅을 '다카치호(高千穂)'라 부르게 되었다는 기록이다.
참고로 위 기록을 근거로 천손강림의 땅이 흔히 알려져 있는, 가고시마현과 미야자키현의 경계에 위치해 있는 기리시마산(霧島山)의 다카치호노 미네(高千穂峰, 고천수봉) - 한국악(韓國岳)의 옆 봉우리 - 가 아니라, 그곳으로부터 약 90km 떨어진, 미야자키현의 북단부 다카치호쵸(高千穂町)의 니조산(二上山)이라는 설이 존재하게 되었다.
물론, 다카치호쵸에는 다카치호신사(高千穂神社)를 비롯해서 쿠시후루신사(槵觸神社, 환촉신사)가 있어, 이곳이 천손강림의 땅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일본 신화에 따르면, 천손 니니기노 미코토가 다카치호의 쿠지후루다케(久士布流多氣)에 강림했다고 하니, 신화 속 지명 두 곳과 관련한 신사가 바로 이곳에 있는 셈이다. 또한 쿠지후루다케에 강림했다는 일본의 건국 신화는 가야의 김수로왕이 김해 구지봉(龜旨峯)에 강림한 신화와 지명조차도 비슷하여 가야인들의 영향력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예로 거론된다.
이렇듯 여러가지로 혼란한 상황일 때, 히미코는 가락국의 샤먼 전통을 품고 규슈에 상륙했다. 그녀의 귀신도는 고조선의 복골점에서 기원한 점술로, 소의 넓적다리뼈를 태워 갈라진 자국으로 길흉을 점쳤다. 태양을 상징하는 바람개비 모양의 청동기인 파형동기(巴形銅器)를 높이 들고 천신의 뜻을 전하며 그녀는 29개의 부족 연합을 결속시켰다. 왕자 선은 가락국의 해상 교역 경험을 바탕으로 위나라와의 외교를 이끌었고, 히미코는 238년 금인자수(金印紫綬) - 제후에게 내리는 금으로 만든 도장과 자주색 동장끈 - 를 받으며 친위왜왕(親魏倭王)에 책봉되었다.
히미코의 통치는 신비로운 은둔과 신탁에 뿌리를 두었다. 그녀는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단 한 명의 남성(왕자 선으로 추정)이 그녀의 신탁을 전달했다(唯有男子一人給飮食, 傳辭語). 요시노가리 유적의 제사 시설과 청동거울, 파형동기는 가락국의 샤먼 전통이 이식되었음을 보여준다. 히미코의 신탁은 부족들의 신앙을 하나로 묶었고, 선은 외교를 통해 야마타이국의 권위를 높였다. 《삼국지》 위지 왜인전(魏志倭人伝)에는 히미코(卑弥呼)가 다스린 야마타이국(邪馬台国)에 대해 "호수 7만여 호"(戶數七萬餘) 규모의 국가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247년경 히미코의 사망은 왜국을 또 다시 혼란 상태로 몰아넣었다. 이토시마 지역의 히라바루 유적(平原遺跡)에서 발견된 야타노카가미(八咫鏡, 팔지경. 일본 국보로 이세신궁 보관), 태양을 상징하는 대형 청동거울은 그녀의 신적 권위를 기리는 신물이었다.
그녀의 죽음으로 연맹체는 흔들렸고, 남성 왕의 즉위는 부족 간 내전을 낳았다. 그러나 열세 살의 종녀(從女, 조카) 이요(壹與)가 파형동기를 들고 신탁을 계승하며 나라를 다시 안정시켰다. 이요는 248년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는 등 대외관계를 이어가며 가락국의 샤먼 전통을 규슈에 꽃 피웠다.
거북의 항해: 구지가와 묘견공주의 다리
거북, 하늘의 뜻을 전하는 신성한 사자는 가락국과 야쓰시로의 신화를 잇는다. 《삼국유사》의 구지가는 거북이 수로왕의 탄생을 예고하며 바다에서 나온다. 이 거북은 가락국의 해양 문화를 상징하며, 신성한 명령을 전달한다.
야쓰시로에서는 묘견공주가 뱀의 머리와 거북 모양의 몸을 한 배를 타고 상륙했다는 민담이 전해진다. 쿠마가와 강의 카메바네(거북나루)는 그녀의 배가 닿은 신성한 나루로, 장수와 보호의 상징이다.
쿠마가와 강에서 바다로 연결되는 초입에 큰 비석이 하나 서 있다. 하동도래비(河童渡来之碑)라고 하는 이 비석은 고대 도래인들이 이곳으로 들어와 야쓰시로에 정착했음을 알리는 비석이다.
비문에는 “천오 육백 년 전, 하동이 중국 방면에서 바다를 건너와 살기 시작했다고 전해지는 장소이고, 삼백오십 년 된 다리의 석재로 만든 비석이며, 가랏파(ガラッパ)의 돌이라고 부른다. 어느 날 장난꾸러기 요괴(갓파)가 주민들에게 붙잡혔다. 이 돌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장난을 치지 않는 조건으로, 대신 1년에 한 번 축제를 열어 달라고 했다. 그래서 매년 5월 18일 축제를 여는데, ‘오레오레데 라이다(オレオレデーライタ)‘ 축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가랏파‘라는 단어와 ’오레오레데 라이다‘라는 표현이다. 일본에서는 하동(河童)을 가랏파 또는 갓파라고 읽으며,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요괴 중 하나를 가리킨다. 우리의 도깨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가랏파의 의미가 하동이 아니라는 지적이 있다. 묘견공주 일행이 야쓰시로 지역에 상륙하여 그곳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현지 토착민들이 느꼈을 공포와 두려움을 ’가랏파‘라고 했으며, 이는 ’가라의 무리‘라는 뜻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오레오레데 라이다’라는 표현 역시 고대 한반도의 사투리로 ‘오래오래 되어지이다’라는 의미로 비문의 ‘이 돌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와 같은 의미로 해석한다.
히미코 연구가 故 이종기 선생은 히미코가 김수로왕의 딸로, 오빠 선견(선의 변형)과 함께 거북 배를 타고 규슈로 항해했다고 주장한다. 히미코, 곧 묘견공주의 거북 항해는 가락국과 야마타이국을 연결하는 문화적 다리였다.
구지가의 거북과 묘견공주의 거북 배는 공유된 신화적 원형을 암시한다. 가락국에서 거북은 왕을 낳고, 야쓰시로에서는 공주를 전달한다. 이 대칭은 해양 교류에 뿌리를 두며, 히미코가 가락의 공주로서 이 모티프를 규슈로 가져가 묘견신앙과 융합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북두칠성과 샤먼: 묘견신앙의 천상적 뿌리
묘견신앙은 북두칠성과 북극성을 중심으로 신토, 불교, 고대 한반도인들의 무속 행위가 융합된 신앙이다. 묘견신은 질서와 운명을 관장하며, 황실과 항해자를 수호한다. 히미코의 샤먼적 권위는 이 천상적 상징성과 조화를 이룬다. 그녀의 귀신도는 별의 인도를 받아 신들의 뜻을 점치는 황홀 상태의 의식을 포함했을 것이다. 묘견제의 별빛 행렬과 바다 의식은 이 무속적 유산을 반영하며, 묘견공주가 히미코의 신화적 재창조임을 암시한다.
한반도의 고대 민속 신앙에서 북두칠성은 하늘의 중심축으로, 운명과 권위를 상징했다. 일본 규슈, 특히 쿠마가와 강 유역의 해양 공동체는 히미코와 같은 통치자가 촉진한 문화적 융합을 통해 이 신앙을 받아들였다. 묘견공주의 전설은 이러한 천상 상징을 담아내며, 그녀를 북두칠성의 인도 아래 쿠마가와 강을 통해 바다를 항해한 신성한 인물로 재창조했다.
일본 신도의 뿌리: 가락국의 불꽃
히미코와 이요의 신탁통치는 가락국의 샤먼 전통이 규슈에 뿌리내린 증거다. 사가현 칸자키시(神埼市)의 히미코 동상은 파형동기를 든 모습으로, 가야의 제사 전통이 왜국에 이식되었음을 상징한다.
요시노가리와 히라바루 유적에서 발견된 청동거울은 가야와 왜국의 물질문화가 연결되었음을 보여준다. 히미코의 귀신도는 고조선의 복골점에서 영향을 받아 천신과 조상을 연결하는 의식을 형성했으며, 이는 일본 신도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스사노오노미코토(素戔鳴尊, 일본 건국 신화 속의 신)의 신라 기원설은 한반도계 도래 개척자들이 가야의 제례 전통을 야마토에 전파했음을 시사한다. 스사노오 신사의 바다 숭배, 오미와 신사의 산 숭배는 가락국의 샤먼 전통과 맥을 같이한다. 일본 신사의 시메나와(しめ縄, 금줄)는 가야의 서낭당 금줄과 신성한 경계를 공유한다.
연대적 도전과 신화의 힘
이 가설에는 연대적 불일치가 있다. 《편년가락국기》는 왕자 선과 신녀가 199년 떠났다고 기록하며, 《삼국지》는 히미코가 180~248년 활동했다고 전한다. 이는 고대 사서의 구전 의존과 후대 편찬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파형동기, 복골점, 청동거울은 가락국의 샤먼 전통이 왜국에 뿌리내린 강력한 증거다.
신화는 역사적 사실보다 문화적 상상력과 상징성을 우선한다. 묘견공주, 히미코, 가락국의 신녀는 한일 교류의 신화적 융합을 상징하며, 그 이야기는 낙동강과 아리아케 해를 잇는다.
영원의 제단 위, 천년의 서사
고령의 고분에서 피어오른 제사의 향은 낙동강을 타고 하늘로 솟구쳤다. 그 연기는 구름이 되어 대한해협을 건너, 야쓰시로의 해안과 이즈모의 신목 속으로 스며들었다. 묘견공주, 히미코, 가락의 신녀는 파형동기를 들고 복골점으로 길흉을 점치며 야마타이국의 심장을 일으켰다. 왕자 선은 그녀의 신탁을 전하며 가락국의 해양 문화를 규슈의 제단에 심었다.
그들의 발자취는 요시노가리 유적의 제사 시설, 히라바루의 청동거울, 야쓰시로의 묘견제에 새겨져 천년을 넘어 빛난다. 가락국은 흙으로 돌아갔으나, 그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 낙동강의 바람은 구지가의 거북과 승운이거의 구름을 실어 바다를 건넜다. 스사노오 신사의 파도 소리, 오미와 신사의 산바람, 이세신궁의 청동거울은 가락국의 축원을 되살린다.
야쓰시로의 해안에 서서 별빛 바다를 바라보며, 우리는 파도 속에서 속삭이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묘견공주, 히미코, 가락의 신녀는 한반도의 축원을 일본 열도의 심장에 심었다. 그 씨앗은 신도 문화의 맥박으로 고동치며, 낙동강에서 이즈모까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영원한 다리가 되어 흐른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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