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일 상2015. 7. 11. 16:09

올 들어 처음으로 잠을 설쳤던 어젯밤의 찌는 듯 한 더위에 이어, 오늘 낮도 만만치 않은 찜통더위가 피부에서 땀방울이 샘솟게 하고 있습니다.

 

점심 약속이 있어 외출했다가 돌아왔으나 집이라고 별반 낫지가 않습니다. 선풍기조차도 헉헉대며 더운 바람을 토해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간만에 이렇듯 여유로운 주말 오후를 보낼 수 있음은 더위 덕분일 겁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어느 전철역 계단에 ‘역 보수공사’를 한다는 현수막이 붙어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렇구나, 이제 우리나라도 전철의 역사가 제법 되다 보니 보수공사를 하는 전철역들도 꽤 되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전철역 계단에 눈길이 가더군요.

 

저도 한 3개월 정도 지하철역의 보수공사를 했던 경험이 있거든요. 제가 어느 해 4월초에 일본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리고 6월쯤이었을 겁니다. 기숙사의 후배 하나가 “형, 오늘 저녁에 알바 안 나가실래요?”하는 겁니다.

 

그 후배 녀석이 하는 아르바이트는 일본 지하철역 보수공사 현장의 막일(노가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한명이 결원이 생기자 제게 대타로 나서줄 것을 부탁했던 것이었지요. 아무 생각 없이 부탁에 응해 첫 막일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지하철역 보수 공사는 마지막 전철이 출발한 이후 바로 시작을 해서 첫 전철이 오기 직적까지 약 4시간 반 정도 진행이 됩니다. 그러니까 보통 밤 12시 40분 이후에 시작을 해서 아침 5시 정도까지 했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우리도 마지막 전철을 타고 가서 현장 역 - 도쿄(東京) 코우토우구(江東区)에 있는 몬젠나카쵸(門前仲町)역 - 에 내려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사실, 갈 때부터 작업복 차림이었으니 딱히 준비랄 것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담배 한 대 피우고 잠깐 동료들끼리 잡담 좀 나누다보면 금방 시작 시간이 되더군요.

 

그날 첫 작업은 우선 지상에 부려 놓은 시멘트 포대들을 지하 2층 공사현장까지 메고 가서 옮겨 놓는 일, 그리고 그게 끝이 나면 지하 승차장 바닥을 깨고 그 깬 콘크리트를 지상에 대기 중인 트럭에 옮겨 싣는 일이었습니다.

 

대부분이 한국인 유학생과 조선족 분들인 열댓 명의 인부들이 트럭 한 대 분량의 시멘트를 일일이 어깨에 메고 지하 2층까지 옮겨 놓는 작업은 진짜 만만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특히, 한여름 뙤약볕에 노출되어 잔뜩 열이 올라 있는 시멘트는 열기 덩어리와도 같았습니다.

 

차례대로 뒷사람이 앞사람의 고개 뒤에 두포대의 시멘트를 올려 줍니다. 처음 시멘트 두포를 어깨에 메어보는 순간이었지요. 솔직히, 일어서기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열기가 채 식지 않은 시멘트가 고개를 짓누르니 고개는 기역자로 꺾이고, 이로 인해 머리에 얹은 안전모는 점점 앞으로 밀려나서 시야를 가리고, 손은 뗄 수조차 없고, 정말 미치겠더군요.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엉거주춤 내려가다가 그만 어딘가에 쿵하고 머리를 부딪치는 순간, 울컥하고 뜨거운 것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습니다.

 

정말, 이 시멘트 두포를 바닥에 패대기치고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퍼뜩 생각해 보니 돌아갈 방법(교통편)이 없는 겁니다. 전철도 끊겼고, 택시를 타야 하는데 일본 택시요금이 얼마나 비싼지 다들 알고 있잖습니까?

 

어떻게 어떻게 해서 목적지인 지하 2층까지 왔는데 눈에서는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것들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멘트 두포를 바닥에 내던지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해지더군요.

 

이상하지요? 왔던 계단을 다시 되돌아 걸어올라 가는 동안에 내려올 때와는 사뭇 다른 묘한 오기 같은 게 생기는 겁니다. “그래, 이 까짓것도 하나 제대로 못해내고 어떻게 이 낯선 이국땅에서 뜻한 바를 이룰 수 있겠나?” 하는 생각 같은 것이었습니다.

 

흐흐. 그렇게 두 번째는 오기로 버텨냈고, 세 번째가 되고 네 번째가 되자 어느덧 내 몸이 시멘트의 무게에 적응해 가고 있더군요. 그러고 나니 10분간의 휴식 시간, 날이 더워 지상에 위치한 역 입구에 걸터앉아 우유 하나에 빵 하나를 먹습니다.

 

땀과 먼지로 뒤범벅이 된 얼굴, 후줄근한 작업복 차림의 내 앞으로 무수한 자동차들이 지나가고, 거나하게 술이 취한 청춘들이 스쳐가고, 그때 참으로 많은 생각들을 했습니다. 산다는 것, 일한다는 것, 돈 번다는 것, 공부한다는 것 등등...

 

암튼, 다시 또 작업에 돌입해 정신없이 일에 매달리다보니 드디어 하루 일이 끝날 시간이 다가오고, 멀리서 희망찬 태양이 고개를 내밉니다. 적당히 세수를 하고, 먼지를 털어내고 첫 전철에 오르자 잠이 쏟아집니다.

 

어찌 하다 보니 그 일을 3개월을 했습니다. 눈물이 오기가 되었고, 오기가 재미가 되었고, 즐기다 보니 돈도 짭짤하게 들어오는 맛에 6월부터 8월말까지 정말 핫한 여름을 보냈습니다.

 

그거 아시나요? 도쿄 몬젠나카쵸역의 바닥과 계단은 제가 깔았답니다. ㅋ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