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편 제10회
히무카(日向): 고향 땅 가야를 향한 그리움
바다 너머 태양의 고향
옛적, 동쪽 바다 너머 한반도의 남녘 끝자락에 가야라 불리는 강대한 연맹이 있었다. 금관가야의 중심지 김해는 철의 불꽃과 바다의 숨결로 번영을 누렸다. 그곳 백성들은 태양을 신성한 존재로 섬기며, 매일 아침 동쪽 지평선에서 솟아오르는 빛을 향해 기도했다. 그들에게 태양신은 생명의 근원이었고, 권력과 번영의 상징이었다. 가야의 강줄기는 이 신앙을 품고 멀리 일본열도까지 뻗어 나갔다. 파도 위로 실린 배들은 철과 토기, 그리고 태양신에 대한 믿음을 싣고 규슈의 남쪽 해안으로 향했다.
대한해협을 건너는 가야의 배들은 그저 흔하디흔한 상선이 아니었다. 그들은 문명을 전파하는 전사이자, 고향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시인이었다. 그들의 항해는 평범한 이동이 아니라, 새로운 땅에 가야의 불씨를 심고, 태양신의 빛을 퍼뜨리는 여정이었다. 이 도래 개척자들은 규슈 남동부에 자리한 히무카(日向), 그 중 다카치호(高千穂)라는 신성한 언덕을 목적지로 삼았다.
일본열도 남단, 오늘날의 미야자키현(宮崎県)에 해당하는 고토 히무카는 고대 일본 신화에서 ‘천손강림(天孫降臨)’의 무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의 이름 ‘日向(히무카)’를 단지 신화의 무대로만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태양(日) 숭배의 땅을 향한(向) 그리움의 다른 이름, 히무카. 태양 숭배의 땅은 그들의 고향 가야다. 히무카라는 지명 속에는 가야의 후예들이 품었던 정서와 세계관, 그리고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겹쳐 있다. 히무카(日向)는 『 일본서기』에서 신들의 자손이 내려와 나라를 세운 성역으로 칭송되지만, 그것은 곧 '외부에서 온 존재'가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서사의 중심 무대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외부에서 온 존재'라는 개념은, 고대에 일본 열도로 이주한 다수의 한반도계 도래 개척자들, 특히 가야계 도래인들의 정체성과 겹친다. 태양을 숭배하며 바다를 건너온 이들은, 자신들의 뿌리를 잊지 않고 새로운 땅에서 ‘해를 향한’ 신념과 고향을 향한 ‘그리움’의 회한을 지명으로 새겼다.
다카치호는 하늘이 땅과 맞닿은 곳, 가야의 고향이 손에 닿을 듯 가까워 보이는 규슈에서 가장 높은 산이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고향의 태양신을 기리며 새로운 서사를 썼다. 바다를 건너온 이들은 고향의 황금빛 들판을 떠올리며, 태양신의 축복 아래 새로운 터전을 일구었다.
다카치호(高千穂), 신의 강림지
다카치호의 가파른 언덕은 태양신의 숨결이 깃든 성지였다. 일본 신화에 따르면, 태양신 아마테라스(天照大神)의 손자 니니기노미코토(邇邇芸命)가 하늘에서 그 땅으로 내려왔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 신화의 뿌리에는 가야 도래 개척자들의 신앙이 깊이 얽혀 있다. 그들은 다카치호에 정착하며 고향 가야의 태양 숭배를 이곳에 뿌리내렸다. 그들의 기도는 바다 너머 북쪽, 김해의 신성한 언덕 구지봉을 향했다.
매일 아침, 그들은 다카치호의 언덕 위에서 태양을 향하여 기도했다. 그리고 고향 김해의 신어산(神漁山)과 두 마리 물고기를 상징하는 ‘쌍어 문양(雙魚文)을 떠올렸다. 쌍어 문양은 허황옥이 김수로왕에게 시집오면서 인도로부터 가져온 신앙의 상징이다. 그들의 마음은 고향과 새로운 땅 사이를 오가며, 두 세계를 잇는 영혼의 다리를 놓았다. 이들은 다카치호와 그 일대를 히무카(日向)라 불렀다. 히(日)는 태양신의 축복을, 무카(向)는 고향 가야를 향한 간절한 그리움을 담았다. 즉, 태양신을 숭배하는 고향, 가야를 그리는 마음이 히무카인 것이다.
'태양(日)'은 단지 천체로서의 해가 아니다. 가야의 무속 · 제례 문화, 특히 수로왕계의 태양 숭배 전통은 일본 초기 신사 신앙의 구성과도 연결되어 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수로왕이 붉은 해를 상징하는 붉은 천에 이끌려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전승이 있고, 일본 열도에 도착한 한반도계 집단이 태양 숭배와 제사 규범을 동시에 전수했다는 기록도 다수 존재한다. 가야의 여러 고분군에서 출토된 청동 거울의 존재 역시 태양의 빛(숭배)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청동 거울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일본 열도 곳곳의 고분에서도 상당량이 출토되었다.
그렇다. 히무카는 그저 평범한 지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가야의 태양신을 숭배하는 성소를 바라보는 시선, 바다를 건넌 이주민의 가슴에 깃든 고향의 메아리였다. 히무카는 그들의 정체성이자, 고향과 새로운 땅을 잇는 영혼의 다리였다. 이 이름은 가야의 불씨가 타오르는 규슈의 언덕에서, 태양신의 빛 아래 영원히 빛났다.
다카치호에는 아마노이와토(天岩戸, 천암굴) 신사가 자리 잡고 있다. 일본 건국 신화에 따르면, 아마테라스가 동굴에 숨어 버리며 세상에서 태양이 사라졌고, 신들이 춤과 노래로 그녀를 불러냈다. 이 동굴 신화는 가야 도래 개척자들의 태양 숭배와 깊은 연관이 있다. 그들은 아마노이와토에서 태양신의 부활을 기리며, 가야의 빛을 다카치호에 새겼다. 신사의 바위 동굴은 고향의 기억과 새로운 땅의 희망을 속삭이는 성소가 되었다. 이곳에서 그들은 태양신의 부활을 축하하며, 고향 가야를 향한 그리움을 노래했다.
태양의 융합, 신화의 탄생
가야의 도래 개척자들은 다카치호에서 토착민들과 손을 맞잡았다. 그들의 철은 농기구와 무기로, 토기는 제사 그릇과 일상 도구로 변모했다. 가야의 태양 숭배는 규슈의 토착 신앙과 융합되며 새로운 서사를 낳았다. 태양신은 아마테라스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고, 히무카는 일본 왕가의 기원지로 우뚝 섰다.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는 이 위대한 융합을 기록하며, 히무카를 일본의 신성한 발상지로 찬양했다.
히무카의 백성들은 바다를 바라보며 고향을 떠올렸다. 그들의 노래는 김해의 고분, 가야의 황금빛 들녘을 그리워하는 선율로 가득했다. 그들은 새로운 땅에서 뿌리를 내렸다. 그들의 철은 농지를 일구었고, 토기는 신앙과 생활을 담았다. 히무카는 가야의 영혼과 다카치호의 희망이 만나는 성지였다. 이곳에서 태양신은 더 큰 빛으로 타올랐다.
가야 도래 개척자들은 고향을 떠난 한낱 이주민이 아니었다. 그들은 문명을 심는 개척자였다. 그들의 기술과 신앙은 규슈의 토착 문화와 어우러져 독특한 융합 문화를 창조했다. 예를 들어, 가야의 경질토기는 미야자키의 고고학 유적에서 발견되며, 그들의 철기 기술은 농업과 전쟁의 도구로 지역 사회를 변화시켰다. 이 융합은 단순한 물질적 교류를 넘어, 신화와 정체성의 재구성을 낳았다. 히무카는 가야의 태양신과 규슈의 토착 신앙이 하나로 어우러진 신화의 용광로였다.
히무카의 메아리, 『만엽집』 의 노래
히무카의 서사시는 일본 고대 시집 『만엽집萬葉集』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후반에 걸쳐 편찬된 이 시집은 일본 고대문학의 거대한 집합체로, 고대 일본의 시와 노래를 모은 중요한 문헌이다.
약 4,500수의 와카(和歌)를 담고 있으며, 히무카의 신성한 풍경과 신화적 상징성을 노래한 시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日向なる 高千穂の峯を 仰ぎ見て 天津神の 御代を思ふ”
“히무카의 다카치호 봉우리를 우러러보며,
천상의 신들의 치세를 떠올린다.”
이 시에서 언급된 '천상의 신의 치세'는 일본의 신화적인 전통을 넘어서, 고대 한반도에서 건너온 이들의 기억과 정서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부분이다. '천상의 신들의 치세'를 회상하며, 고대 일본 신화의 세계를 떠올리지만, 동시에 그 너머에 있는 떠나온 고향에 대한 기억을 담고 있다. 미개척의 새로운 땅을 향해 걸어온 이들이 품었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들의 뿌리에 대한 향수를 엿볼 수 있다.
이때의 '천상의 신'은 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고대 가야인들이 하늘과 태양을 숭배하던 자연 신앙 속 신(神)의 일종이자, 가야 사회의 신적 세계관을 반영한 정신적 흔적이다. 일본의 신화 속 '천손강림' 이야기는 사실, 외부에서 온 존재들이 새로운 땅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의 이야기로 읽히기도 한다. 이는 고대 가야에서 일본으로 이주한 이들이 겪었을 정신적 여정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바다를 잇는 영원의 다리
히무카의 서사시는 고고학의 흔적과 신화의 메아리로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미야자키의 유적지에서 발견된 가야의 경질토기는 그들의 존재를 증언한다. 『일본서기』는 가야와 규슈의 끈끈한 인연을 기록하며, 바다를 통한 고대 동아시아의 해상 교류를 보여준다. 이 기록들은 히무카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가야와 일본을 잇는 문화적 다리였음을 말해준다.
히무카의 의미는 한자 그대로 “태양을 향한 곳”이 전부가 아니다. 그것은 “태양을 숭배하는 곳, 가야를 향한 그리움”이다. 히무카는 “지리적 방향”을 염두에 둔 말이 아니라 “심적 방향”을 드러내는 말이다. 히무카는 가야의 도래 개척자들이 바다를 건너며 품은 꿈, 고향을 향한 간절한 마음, 그리고 새로운 땅에서 피운 희망의 상징이다. 다카치호의 언덕에서 태양은 여전히 떠오른다. 아마노이와토의 바위 동굴은 태양신의 부활을 속삭이고, 신사는 가야와 일본의 융합을 기념한다. 히무카는 가야의 태양신을 다카치호의 아마테라스로 잇는 영원의 다리다.
히무카라는 지명은 실제 일본 각지에 분포한다. 규슈 남부 미야자키 지역이 가장 잘 알려져 있으나, 같은 이름의 유사 지명(日向村, 日向山, 日向谷 등)이 혼슈, 시코쿠, 큐슈 전역에 존재한다. 고대 도래 개척자들이 한반도에서 건너와 정착할 때, 그들이 가져온 정신적 표식이 '히무카'라는 이름에 담겼다.
히무카는 그런 전통의 연장선이자, 태양을 향한 땅에 자신의 정체성을 새기려는 도래 개척자들의 언어적 기억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히무카는 새로 정착한 땅이면서도, 잃어버린 뿌리를 재생산하는 정신적 거점이었다. 이 서사시는 고대 동아시아의 해상 교류, 이주민의 용기, 그리고 태양 아래 하나 된 문명의 찬가로 빛난다. 가야의 도래 개척자들은 그저 새로운 땅에 정착한 이주민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고향의 불씨를 품고, 태양신의 빛을 따라 문명을 창조한 개척자였다. 그들의 이야기는 바다를 건너, 세대를 이어 오늘날까지 살아 숨 쉰다.
히무카의 빛, 우리의 유산
히무카는 한낱 과거의 전설에만 그치지 않는다. 가야에서 건너온 이들이 자신의 영성과 정체성을 투영하여 붙인 이름, 그 언어의 기억이 일본 곳곳에 ‘히무카日向’라는 글씨로 새겨졌다. 그것은 가야와 일본, 바다와 육지, 신앙과 정체성을 이어주는 살아 있는 유산이다. 오늘날 미야자키의 다카치호를 방문하는 이들은 여전히 태양신의 숨결을 느낀다. 아마노이와토 신사의 고요한 숲길, 고봉 다카치호 협곡의 맑은 물줄기는 고대 도래 개척자들의 발자취를 떠올리게 한다. 이곳에서 태양은 여전히 하늘을 밝히며, 가야와 히무카의 이야기를 속삭인다.
히무카는 가야 도래 개척자들의 고향 사랑, 다카치호의 신성한 언덕, 그리고 태양의 영광을 노래하는 불멸의 찬가다. 그 이름은 단순한 지명을 넘어, 고대 동아시아의 문화적 융합과 이주민의 용기를 상징한다. 『만엽집』 의 시들은 히무카의 신화적 풍경을 영원히 기록하며, 가야의 태양신과 일본의 아마테라스가 하나 되는 순간을 노래한다. 히무카의 서사시는 우리의 뿌리 깊은 이야기를 하늘 높이 띄우며, 태양신의 빛 아래 영원히 빛난다.
이 이야기는 역사로써의 과거를 돌아보는 데 그치지 않는다. 히무카는 우리에게 정체성과 문화의 융합, 그리고 새로운 땅에서의 희망을 말해준다. 가야의 도래 개척자들이 바다를 건너며 품은 꿈은 오늘날에도 우리 안에 살아 있다. 히무카, 그 이름은 태양신의 축복과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어우러진 영원의 노래다. 이 서사시는 고대 동아시아의 해상 교류, 이주민의 용기, 그리고 태양 아래 하나 된 문명의 찬가로, 우리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울려 퍼진다.
히무카(日向)- 고향을 향한 그리움
바다를 건너온 저녁 빛,
가야 땅 김해의 해가 이마에 머물고,
나는 아직 고향의 흙냄새를 기억한다.
한 줌의 흙을 가슴에 품고
규슈의 최고봉 다카치호에 첫발 디딜 때,
바다는 등 뒤에서 끝없이 밀려왔다.
히무카(日向)라 이름 붙인 이곳,
그 이름은 빛이 아닌
그리움이었다.
태양을 본다.
그러나 나는
태양 아래 있던 고향을 생각한다.
언덕 위 바람이 분다.
어머니의 숨결처럼 따뜻하고
형제의 울음처럼 깊다.
우리는 정착한 자,
그러나 마음은 매일 떠도는 자.
돌아갈 수 없는
그 옛집의 기억을 품은 나그네.
히무카,
너는 떠나온 고향의 그림자.
그리고
새로이 살아갈 아침의 이름이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