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시 사2014. 1. 2. 17:32

 

1970년 12월의 어느 날, 서독 총리였던 빌리 브란트는 폴란드의 바르샤바를 방문했다. 그리고 유대인 강제수용소였던 게토(Ghetto)의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빌었다.

 

불행했던 지나간 과거사에 대한 진정어린 참회와 반성의 순간이었다.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무한 감동을 주는 명장면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반문할 분들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지나간 역사를 돌이켜 보자. 인류 역사상 무수히 많은 전쟁과 약탈이 있었음을 우리는 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근·현대사가 전하는 침탈의 역사만 보더라도 참혹하기 그지없는 것들 투성이다.

 

힘 있는 나라들의 소비시장 확대와 원자재의 원활한 공급을 목적으로 얼마나 많은 약소국가들이 식민지화 되었으며, 식민지 국가의 국민들이 노예로 팔려 나갔었는지 헤아릴 수조차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강대국 하나 그러한 지나간 역사에 대해 진심어린 반성과 용서를 구했다는 얘기는 들어 보질 못했다. 그뿐인가? 지금도 비슷한 일들이 힘 있는 국가들에 의해 버젓이 자행되고 있음이 국제관계의 현실이다.

 

그러나 빌리 브란트는 용기 있게 무릎을 꿇었다. 이는 정치인 빌리 브란트의 탁월함과 독일 국민들의 우수한 역사인식 때문이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로부터 침략과 수난을 당했던 무수히 많은 유럽 국가들이 전쟁이 종료된 후 일제히 역사바로세우기에 나섰던 영향이 컸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전쟁이 끝나자 프랑스와 네덜란드 등은 나찌에 부역했던 자국의 친나찌 인사들을 가차 없이 처단했다. 그 수가 많고 적음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손톱만큼이라도 흠집이 있던 인사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어떤 일에 종사했는지를 가리지 않고 모조리 조사해 처벌해 버렸으니 그 수가 많게는 수십만 명에 이르렀다고도 한다.

 

프랑스의 경우, 전쟁이 끝나자 나찌 부역자 50만 명을 체포해 그중 16만 명이 형을 받았으며, 네덜란드는 16만 명, 벨기에는 60만 명이 같은 죄목으로 조사를 받았다. 영국에서도 예외는 없어 적극부역자를 처형하기도 했다.

 

침략을 당했던 국가들이 이러하니, 침략의 당사자였던 독일의 입장은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지금도 독일은 나찌 부역자들 찾아 벌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반면,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일본 보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반성하라고 종용하고 있다. 진정성 있게 용서를 구하는 것만이 양국관계를 돈독히 하는 지름길이라고 일갈 한다.

 

하지만 저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아니, 들은 척도 안하는 수준을 넘어 아주 개무시를 한다. 더 이상 길게 얘기하지 않아도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말이다.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고, 있던 사실조차 부정으로 일관하며 주변국 의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는 저들의 태도는 분명히 잘못 되었다. 하지만 그런 저들을 탓할 양심이 우리에게는 있는가도 냉정히 살펴봐야 할 문제다.

 

만약에 말이다. 우리가 유럽의 제국가들처럼 일제에 부역했던 친일 매국분자들을 철저히 단죄했더라면 아마 지금의 한일관계는 많이 달라져 있을지도 모른다. 설사, 달라져 있지는 못하더라도 저들이 지금처럼 우리를 개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작업을 못했다. 오히려, 제 나라와 제 민족을 팔아먹고 호의호식했던 자들과 그들의 자식들이 이 나라의 정치 · 경제 · 언론 · 교육 · 고위 관료 등 모든 분야를 장악한 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살도록 했다. 온갖 감언이설로 자신들의 매국행위를 정당화하고 합리화 하도록 방치해 두었다.

 

그러니 민족정기 따위가 있을 턱이 없다. 오직 하나 있다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제 앞가림 하는 놈이 장땡이라는 그릇된 가치관만 만연시켜 놓았다.

 

더 이상 일본 보고 왜 독일처럼 못하느냐고 따지지 마라. 그 전에 왜 우리는 유럽 국가들처럼 하지 못했는가를 반성하자.

 

일본이 독일처럼 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이제라도 우리가 먼저 나서서 프랑스 · 네덜란드 · 벨기에처럼 하면 된다.

 

 

일본은 왜 평화헌법을 폐기하려 하는가
국내도서
저자 : 이토 나리히코 / 강동완 역
출판 : 행복한책읽기 2006.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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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