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시 사2014. 1. 27. 12:27

"전쟁을 했던 어느 나라에도 위안부는 있었다."

 

모미이 카쯔토(井勝人) 일본 NHK 신임 회장이 내뱉은 이 '위안부 망언'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한 분, 황금자 할머님께서 별세하셨다. 영면하소서.

 

저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사람의 물리적 나이와 정신적 성숙은 상관관계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회의감마저 들곤 한다.

 

생각의 끝이 일국의 공영 방송 수장이라는 양반이 갖고 있는 일천한 역사인식이라는 사실에 이르게 되면 자괴감은 더욱 깊어지고 말이다.

 

하긴, 남의 나라 일만도 아니다. 오늘의 NHK가 저 모양이 된 데는 불순한 의도를 갖은 정치세력의 개입에 의한 측면이 크다는 점에서 오늘 우리나라 공영방송의 암울한 현실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듯도 하다.

 

1990년대 후반, NHK는 여러 면에서 개혁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말이 좋아 개혁이지, 일본 보수우익이 생각하는 개혁은 자기들 입맛에 맞는 방송을 내보내는 정권의 나팔수로써의 공영방송 구축이 그것이었다.

 

당시 그들은 인사문제의 개입뿐만 아니라 방송 프로그램에까지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장하려 했다. 그러자 내부 인사가 이 사실을 외부에 공개해 파문이 일기도 했고 말이다.

 

그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2001년도에 불거졌던 위안부 특집 프로그램의 제작 중단 사건이다.

 

당시 이를 폭로했던 NHK 관계자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던 도중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제작이 중단되는 사태를 맞게 되었는데, 이 일의 처리과정에서 NHK의 간부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자민당 간사장(원내 대표) 대리의 만남이 있었으며 이때 그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지적이었다.

 

아베 신조. 지금은 일본의 총리로 있는 인물이다. 일본 보수우익들의 냄새나는 준동에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수구 꼴통의 대명사격인 인물이기도 하다.

 

주변국과의 영토분쟁, 교과서 왜곡 파동, 위안부 문제 부정, 북한 때리기를 통한 안보위협론 조성 등 열거하기조차 힘들 만큼 다방면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수구를 자양분으로 정치적으로 성장한 괴물 같은 인물이 바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다.

 

당시, 정치적 위기 상황에 있던 아베 신조는 자신의 정치개입을 지적했던 아사히 신문 보도와 관련해서는 "완전한 오보이며, 악의적인 날조다"라고 완강하게 부인했다.

 

또한 "4년이나 지난 시점에 이 문제가 불거졌고 교과서 검정 시기와 때를 맞춰 일어난 점" 등을 들어 자신이 북한에 의한 납치문제를 비롯해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이에 불만을 품은 세력에 의한 "어떤 정치적인 의도가 있음을 느낀다"고도 주장했다. 한 마디로 색깔론인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 보수세력이 즐겨 써먹던 종북 빨갱이 타령이 일본 사회에서도 유효했던 셈이다. 대일본 군국주의 세력과 그에 기생하는 주변부 친일 반민족 인생들의 저열한 생존 전략이다.

 

사실 이 부분과 관련해서, 아베는 어떤 '정치적 의도'의 근거로 북한에 의한 납치자 문제와 교과서 문제를 거론하고 있으나 이는 아베의 경박한 억지 주장임에 틀림없다고 당시에 나는 판단했다.

 

왜냐하면, NHK 정치인 외압 폭로 사건은 단지 NHK 내부의 개혁문제 - 정치 개입을 옹호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간의 - 가 발단이 돼서 불거진 사건일 뿐이며, 발단만을 놓고 본다면 지나간 과거사와는 전혀 관련성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내부의 권력 투쟁 성격을 띤 폭로 사건으로 보았다.

 

만약에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다면 그것은 이와 같은 내부 권력 투쟁 과정 중에 하나 - 친 정치개입이냐? 반 정치개입이냐? - 일 것이며, 이는 아베의 주장처럼 납치문제나 교과서 문제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갈등일 것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그 사건은 일반 국민들의 뇌리에서 멀어져 갔고, 그로부터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일본 공영방송 NHK의 수장은 저런 천박한 인물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앉기에 이르렀다.

 

오늘, 대한민국의 공영방송은 안녕하십니까?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