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감 상2014. 8. 2. 10:39

「나는 다만 임금의 칼에 죽기는 싫었다. 나는 임금의 칼에 죽는 죽음의 무의미를 감당해낼 수 없었다.」

 

「임금은 장수의 용맹이 필요했고 장수의 용맹이 두려웠다. 사직의 제단은 날마다 피에 젖었다.」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의 교서를 받았을 때 나는 김덕령의 죽음과 곽재우의 삶을 생각했다. 나는 김덕령처럼 죽을 수도 없었고 곽재우처럼 살 수도 없었다. 나는 다만 적의 적으로서 살아지고 죽어지기를 바랐다. 나는 나의 충을 임금의 칼이 닿지 않는 자리에 세우고 싶었다. 적의 적으로서 죽는 내 죽음의 자리에서 내 무와 충이 소멸해 주기를 나는 바랐다.」

 

「……전하, 전하의 적들이 전하를 뵙기를 고대하고 있나이다. 신은 결단코 전하의 적들을 전하에게 보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적들은 전하의 적이 아니라 신의 적인 까닭입니다…….」

 

위에 인용한 문장들은 김훈의 장편소설 <칼의 노래> 중에서 발췌한 것들입니다. 명량해전 직전의 이순신 장군의 생각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아 참고삼아 옮겨 놓았습니다. 이 책도 일독을 권합니다.

 

당시의 혼탁했던 시대 상황과 풍전등화와도 같은 나라의 운명을 책임지고 있는 무장으로서의 굳은 각오가 엿보이는 대목으로 그저 읽고만 있어도 희뿌연 흑백의 파노라마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습니다.

 

▲ <명량> 포스터,   롯데시네마 촬영

 

1597년 명량해전을 목전에 둔 어느 날을 기점으로 영화 「명량」은 시작됩니다. 영화가 시작되기 이전, 그러니까 그해 초봄에 이순신은 한산 통제영에서 체포되었습니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죄명은 조정을 능멸했고, 임금을 기만했으며, 조정의 기동출격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출옥 후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의 자리에 앉은 이후부터 명량해전까지의 몇 개월이 영화 「명량」의 시간적 공간이 됩니다.

 

다들 아시는 바와 같이, 달랑 12척의 배로 쿠루시마 마치후사(来島 通総)가 이끄는 일본 수군 330척을 맞아 기적과도 같은 승리를 거둔다는 내용입니다.

 

쿠루시마 마치후사는 육군으로는 꽤나 많은 전공을 세웠던 유능한 무사였다고 합니다. 20대 초반에 토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의 권유로 그의 가신이 되었으며, 24살 약관의 나이에 토요토미의 시고쿠((四国) 정벌 때 선봉에서 큰 전공을 세운 덕에 토요토미로부터 1만 4000석을 받고 영주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나름 뛰어난 장수였던 그는 정유재란 시, 조선침략 과정에서 수군쪽이 자꾸 밀리자 수군으로 명량해전에 참전하게 되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영화에서처럼 이순신 장군에게 목숨을 잃게 됩니다. 37의 나이였다고 합니다.

 

명량해전과 관련한 이야기는 워낙 역사서에 많이, 그리고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는 관계로 그 대략의 내용들은 다들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을 것이기에 여기에 구구절절이 옮겨 놓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이 영화 「명량」도 직접 한 번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조금 과장을 보태서 말씀 드리면, 강추한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조급하지도 그렇다고 느슨하지도 않는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으면서도 긴장과 풀어짐 양면에 걸쳐 한시도 관객의 눈을 허튼 공간에 두지를 않습니다.

 

다소 지루해 보일 수도 있을 명량에서의 긴(한 시간여에 걸친) 전투 장면 역시 그 안에 또 다른 이야기 - 말 못하는 여인 정씨 부인(이정현 분)과 탐망꾼 임준영(진구 분)의 애틋함, 산 위의 마을 사람들 - 를 가미하여 전투의 강렬함과 인간적 감동이라는 두 측면을 적절한 배치와 조합 속에 무리 없이 표현해 냄으로써 긴장의 끈을 조임과 동시에 긴 울림까지 선사합니다.

 

시나리오, 연출 , 연기, 세트, 무대의상 등 모든 면에 걸쳐 완성도 높은 영상 미학이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해 줍니다. 뿐만 아니라 전쟁의 참혹함과 공포, 화면 가득한 피 비린내, 비인간적인 내면의 연결 구조들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고 쉬웠던 전쟁, 중요하지 않은 역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혹 있다 하더라도 그런 전쟁, 그런 역사는 고이 남겨져 후세에까지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전쟁의 내면에서 혹독하게 파괴되고 버려진 인간성의 실체만이 후세에 역사라는 이름으로 전해질 따름입니다. 교훈 가득한 역사교과서로 말이지요. 하지만 그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 뿌려진 피의 양이 얼마나 될는지 저는 감히 감조차 잡을 수가 없음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입에 올리고, 그저 수많은 역사 중에 하나로 몇 줄 기술하고 있는 명량해전. 하지만 그날 12척의 배 위에 있던 어떤 분들에게는 목숨을 건 사투요, 생과 사가 공존하는 생사의 갈림길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그 전투에서 살아남았던, 억세게 운이 좋았던 이름 없는 무명씨로서의 누군가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말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개처럼 고생했는지 후세들은 알기나 할까?” 또 다른 무명씨가 답합니다. “모르면 호로자식들이지”

 

12척 뿐인 군함, 그리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군사들. 더 이상 살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 새까맣게 몰려오는 330척의 적선을 맞아 이순신은 죽을 각오로, 아니 정말 죽기 위해 싸우는 사람처럼 자신을 버립니다. "죽어야겠지, 내가" 군사들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기 위해 이순신이 내린 처방은 그것이었습니다, 사즉생 생즉사.

 

자신을 버린 군주, 버릴 수 없는 충(忠에) 대한 맹세. 이순신은 그 충을 백성을 향한 마음으로 승화시킵니다. 무장된 자의 소임으로 자신의 충은 임금이 아닌 백성을 향해 공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릇 국가의 녹을 먹는 이들의 자세를 말함 입니다. 그리고 이게 바로 정치가 되어야 하지요.

 

다소 생뚱맞은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만, 영화가 끝이 나고 자막이 올라가는 그 순간 극장 문을 나서며 전쟁과 정치와 인간의 삶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봤습니다.

 

자크 랑시에르라는 서양철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미학 안의 불편함>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플라톤은 수공예 기술자들은 그들의 일자리 외에 다른 곳에 있을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그들이 있을 수 없는 이 “다른 곳”은 물론 인민의 의회이다 “시간의 부재”는 사실 감각적 경험의 형태를 자체 안에 기입된 자연화된 금지이다.」

 

또한 <감성의 분할>이란 책에서는 「그것은 “시간의 부재”에 근거한 ‘다른 것’을 하는데 대한 불가능성이라는 어떤 감성 분할의 이념이다.」 「민주주의적 감성 분할은 노동자를 이중적 존재로 만든다. 그것은 장인을 ‘자신의’ 장소, 가내 노동 공간으로부터 나오게 하며 그에게 공적 토론들의 공간에, 그리고 토의하는 시민의 신분 속에 있을 ‘시간’을 준다.」

 

다시 앞의 책에서 「정치는 공동체의 공동의 것을 규정하는 감성의 분할을 재구성하는 일을 하며, 새로운 주체와 대상들을 공동체에 끌어들이고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만들고 시끄러운 동물들로만 지각됐던 사람들의 말을 들리게 하는 일을 한다. 대립을 창조하는 이러한 작업은 정치의 미학을 구성한다.」고 규정짓고 있습니다.

 

한 순간의 쉴 틈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죽어라고 돌려대는 쳇바퀴와도 같은 삶의 일상 속에서 이제는 여유 또한 일(작업)의 일부가 되어버린지 오래입니다. 그렇게 죽어라고 바쁘게 살다가 어느 날 문득 조용히 사라져 주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것인 양 강요하고 있음 또한 작금의 현실이구요.

 

인간에게 쉴 수 있는 여유와,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자 하는 정치. 바로 그런 정치가 바른 정치 아닐는지요? 예술(영화)의 참모습 또한 거기서 찾아질 것이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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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