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감 상2014. 5. 22. 17:53

2009년 5월 23일(토). 해맑은 봄날의 주말 아침, 늦은 기상 후 인터넷에 들어가니 눈에 들어오는 기사가 하나 있다. 노대통령 서거? "노태우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구나!" 했다.

 

그런데 가만... 노태우가 아니라, 노무현대통령께서 유명을 달리하셨다는 소식에 갑자기 뭔가에 한 방 맞은 듯 머리가 순간 띵했다. 안절 부절 못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 차를 몰아 경남 봉하마을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많은 분들이 오셔서 대통령님의 영정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들 계셨다. 아, 이게 현실이었구나!

 

그리고 2014년 5월 22일. 오늘 나는 오민주의 사망 소식이 궁금해 이곳 백석 메가박스를 찾았다. 개봉 첫날, 전국적으로 달랑 20여 곳 남짓과 서울에는 7~8개의 영화관만이 김기덕 감독의 스무 번째 영화 '일대일 (부제: 나는 누구인가?)'을 상영한다. 안타깝다.

 

영화는 오민주라는 여고생이 의문의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7명의 용의자들을 응징하고자 하는 7명의 그림자들에 의한 납치와 폭행, 그림자 상호 간의 고뇌와 갈등이 영화의 핵심 줄기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이중성 또는 나약함. 이 영화는 그런 당신과 나의 본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 이 또한 현실이구나!

 

우리는 흔히 영화적이라거나, 소설 같다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사용한다. 영화나 소설 속 사건이 매우 희귀한 일일 것이라는 선입견에서 말이다.

 

그런데 어쩌면 현실의 반영이 영화의 내용이요 소설일지 모른다. 마치 영화 같거나 소설과도 같은 드라마틱한 것으로 치자면 현실만한 게 또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오늘 현재 세계 인구는 약 73억 명 가량 된다. 그 많은 인간들이 복작거리며 살고 있는 이 지구상 어디에선가 영화나 소설 속 그것보다 더 아름다운 혹은 훨씬 처참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음이 현실이기에 그렇다.

 

이를 좀 더 비약시켜 본다면, 현실에 바탕을 두지 않는 예술이 존재할 수나 있는가라는 물음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예술은 현실의 거울이 되는 것이라는 부연 설명과 함께.

 

인간이 만들어 내는 창작물이나 조형물들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알고 있거나 생각해 낼 수 있는 수준 정도에서나 가능하다. 단적인 예로, 신은 왜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겠나 말이다. 그 또한 인간이 만들었기 때문이라면 지나친 예단인가?

 

▲ 영화 <일대일>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자, 여기 또 하나의 처절한 현실이 있다. 의문의 죽임을 당한 여고생. 그러나 용의자를 포함한 누구도 그녀가 왜 죽어야 했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또는 "위에서 시키니까 했다"는 변명만이 난무한다.

 

어떤 점에서 이 영화 일대일은 이 땅을 살아가는 오천만 민중들이 살포시 맛 보는 하룻밤의 맛난 단꿈과도 같은 영화다. 이제껏 납치와 고문은 한줌 권력자들의 전유물 같은 것이었다. 지나온 우리의 현대사가 그랬듯이 민주 인사들을 납치 · 고문하고, 현장 노동자들에게 린치를 가해 빨갱이로 날조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그랬던 권력과 그 권력의 하수인들을 납치해 응징을 가하고 자백을 받아낸다는 역설정으로 시종일관하고 있다. 테러에 대한 보복 테러라고나 할까? 정말 꿈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일들이 영화의 주모티브이다.

 

7명의 용의자를 응징하는 그림자의 역할 역시 매번 바뀐다. 처음에는 군인 복장으로 그 다음에는 조폭으로, 다음은 백골단으로, 보안사로, 마지막엔 청소부 복장을 한 채 세상에 만연해 있는 쓰레기(인간쓰레기) 처리에 나선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인간의 본성이란 것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인간은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

 

감독은 아마도 성선설을 믿나 보다. 그림자의 리더인 마동석의 입을 통해 사회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 여러 번 강조한 것이 그 좋은 예가 아닌가 싶다. 지금의 사회가 체제에 순응하는 인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체제의 문제라는 말이다.

 

맞다. 자본주의로 대변되는 사회 체제의 공고한 틀은 이제 진실과 정의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다. 단지, 그게 체제의 유지와 자신들의 기득권 보호에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만이 지고지순한 가치가 되어 작동한다.

 

요즘의 한국 영화들을 보노라면 일반적으로, 잘 포장되어 있는 고속도로를 달리다 샛길을 빠져 나오면 경치 좋은 산 중턱쯤에 위치한 대리석이 반짝이는 부티 나는 카페와도 비슷하다는 인상이 짙다.

 

그런데 김기덕의 영화는 이런 일반적인 한국 영화와는 다르게 먼지 풀풀 나는 한적한 시골길을 달구지가 덜컹거리며 가는, 그리고 허름한 농가와 황소 한 마리가 반겨 주는 마치 투박한 고향의 냄새 같은 게 있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좀 촌스럽다, 또는 거칠다는 느낌 같은 거다. 이 영화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또 하나,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동안 아주 여러 번 내가 연극 무대 앞의 객석에 앉아 있는 것 같다는 착각에 빠져들곤 했다. 어딘지 모르게 연극 속 한 장면 같은 구도와 색감, 배우들의 연기 때문이었다.

 

좋고 나쁨, 잘 만들고 못 만들고의 판단을 내리기에 앞서 김기덕의 사회를 향한 돌직구로부터 나는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먼저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영화였다.

 

플라톤이 이런 말을 했다 한다. “정치에 참여하지 않은 가장 큰 벌은,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

 

사회시스템의 변화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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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