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감 상2014. 5. 18. 18:02

가슴이 뛰시나요? 가끔은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벅찬가요?

 

그렇다면 당신은 살아있는 거다. 아니, 사랑하고 있는 거다. 영화 ‘인간중독’은 바로 이 가슴 두근거리며, 숨쉬기조차 버거울 정도로 깊은 사랑의 늪에 빠져있는 사람들에 관한 영화다. 그런데 그 대상이 청춘남녀로서의 그들이 아니라 이미 결혼을 해서 살만큼 살아본 사람들의 사랑에 관한 영화다.

 

뭐, 쉽게 말해 불륜영화라는 얘기다. 불륜이란 단어 앞에 그 아무리 예쁘고 깜찍하고 세련된 미사여구를 갔다 붙인다고 해도 불륜은 불륜이다. “결혼한 사람들의 첫사랑에 관한 영화”라는 게 감독 김대우의 설명이다. 그런다고 해서 불륜이란 올가미로부터 해방되는 것은 아니기에 불륜영화 맞다.

 

하나만 더 감독의 말을 빌려와 보자. 김대우 감독은 모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중독이라는 말이 나쁜데 쓰이잖아요. 그런데 그 앞에 인간만 붙여도, 인간이 한 생을 살면서 가장 찬란한 상황이 되는 게 신기했어요. 중독이란 말이 나쁜 말이고, 인간만 붙여도 찬란한 말이고요”

 

“사람이 살면서 인간에게 중독되는 경험처럼 찬란한 순간이 어디 있겠어요. 여자든 남자든. 중독 중에 최고지 않나요? 어떻게 보면 범죄 항목에만 있는 단어인데. 인간을 붙여서 이렇게 아름다운 말이 될 수 있다니”

 

사실, 나 역시 극장을 찾기 전 인간중독이란 제목이 꽤나 납득하기 쉽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상황이기에 인간중독이란 거창한 타이틀을 달았는지가 사뭇 궁금했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볼 때는 이 영화는 사랑에 관한 영화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에 대한 집착이 갖는 궁극의 끝에 관한 영화다. 그 궁극의 끝은 중독이고 말이다.

 

이렇게 말을 바꾸어 놓고서 앞의 김대우 감독의 말을 다시 되새겨보면 감독의 말에서 모순점이 찾아진다. “인간에게 중독되는 찬란한 경험”이라는 말은 곧 집착의 궁극에 달한 그 어떤 것 즉, 광기에 대한 찬사가 되기에 이는 찬란함이 아니라 오히려 섬뜩함으로 내게는 다가온다. 마치 영화 ‘미져리’에서 애니 윌크스의 광기에찬 그 모습처럼.

 

보는 관점 상 감독과 나는 다소의 차이가 있을 수 있기에, 그것을 자신의 방식대로 풀어가는 감독의 미장센을 통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감독의 역량과 수준은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오른 듯하다.

 

특히, 영화의 구성이란 차원에서 나와 타자(남)를 가르는 명확한 이분법적 차별화는 영화의 메시지를 한층 간결하게 해 준다.

 

중독의 올가미에 씌어져 있지 않는 상대는 남이다. 그것의 존재에 개의치 않는다. 그래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누가 보면 어때요? 다 남인데...”

 

또한 남(타인)은 또 다른 남에 대해 관심이 있는 척 하지만 무관심하며, 반응 또한 씨니컬하다. 이게 인간중독의 본질이다. 그렇게 배치함으로써 중독된 자들의 ‘중독성’의 찬란함이 더 한껏 부각되리라는 게 감독의 계산이었지 싶다.

 

▲ 영화 <인간중독>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


 

1979년 여름, 군 장교 관사에 새로운 장교 부부가 이사를 오면서 사건은 전개된다. 엘리트 군인 김진평(송승헌 분) 대령은 새로 부임해 온 부하 장교의 부인 종가은(임지연 분)의 매력에 빠져든다.

 

이 둘은 평범하지 않은 이력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김진평은 베트남전의 영웅으로 죽음과 공포의 극한을 경험한 인물이고, 종가은은 어린 시절 산 속에서 아버지를 잃은 채 그 시신 옆에서 일주일을 버티다 산을 내려와 남의 손에 자라야 했다. 그리고 자신을 길러준 집 아들과 결혼을 한다.

 

서로를 탐닉하며 비밀리에 관계를 유지해 오던 두 사람은 김진평의 술주정에 의해 관계가 폭로 되고, 함께 태국으로 도망가자는 김진평의 제의를 종가은이 거절하자 그 자리에서 권총을 빼들고 자신의 가슴을 쏜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김진평은 불명예 제대를 한 후, 동남아시아 어느 국경지대에서 사망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시나리오 상으로 볼 때, 이 둘은 중독이란 극한 상황까지 가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인물 군상들이다. 그렇다고 그런 그들의 사랑이 아름답지 않냐 하면 전혀 그렇지는 않다. 사랑은 다 아름다운 법이다. 다만, 사랑 이후의 집착이 무서운 것이지.

 

그리고 그렇게 파멸을 향해 가는 외골수식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집착이자 중독이다. 사랑은 이해요, 배려요, 상대에 대한 존중이란 점에서 파멸로 가는 사랑은 사랑의 탈을 쓴 이기심의 발로에 다름아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범인들은 그런 극한의 상황으로 빠져들기 전에 이성과 양심으로 현명한(?) 선택을 한다. 그래서 때로는 사랑을 현실의 삶이 아닌, 자신의 가슴에 묻고들 산다.

 

디테일한 구성, 아름다운 화면, 심금을 울리는 음악, 송승헌과 임지연의 고색창연한 듯한 연기, 감초 같은 수다쟁이 여인들의 시니컬한 대사와 표정. 어느 것 하나 흠잡을 곳 없는 멋진 영화다. 집착의 뒤끝에 관한 아름다운 영화.

 

단 하나, 감독의 지나친 친절함이 빚어낸 에필로그의 생뚱맞음만 빼 놓는다면 말이다. 더 진한 여운을 주고 싶었던 걸까? 2년 후라는 자막과 함께 김진평의 최후를 알리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그런데 이건 마치 “이건 영화다“라는 외침과도 같아 영화의 울림을 반감시키기에, 없었으면 좋았을 옥에 티처럼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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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