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감 상2013. 11. 11. 21:17

세상에 첫사랑이라는 말만큼 극과극의 반응을 만들어 내는 단어도 별반 없지 싶다. 세상의 다수에게는 여전한 설렘과 가슴 두근거림의 근원적 자극제인 그것이 또 다른 다수에게는 실망과 허망함의 몽상에 불과한 것이기에 그렇다.

 

오죽하면 당신의 첫사랑은 안녕하신가 묻고 싶을 지경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냉정하게 생각해본다면 변함없는 사춘기적 순수성을 간직한 아침 이슬 같은 존재로서의 첫사랑을 기대하는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이기적인지는 너무도 명백해진다.

 

그렇다면 전과 같이 "나는 그렇게 순수한가?" 라는 물음에 답을 해야 하기에 그렇다. 시간이 흐르는 만큼 나는 변한다. 마찬가지로 그도 변한다. 고로, 몇 십 년 전의 순진무구했던 첫사랑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가 정답이 되겠다.

 

하지만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고도 했다. 가슴 두근거림 그 아련함으로써의 추억이든, 깨지고 망가진 허망한 몽상으로써의 추억이 되었든 그것이 우리에게는 매우 소중한 이유는 그래서다. 평생을 먹고 살아야 하니 말이다.

 

청주에 활동 기반을 둔 극단 '시민극장'이 서울 대학로 한복판에 연극 「살다보면(극본 장남수·연출 장경민)」을 들고 와 한바탕 첫사랑 놀이를 즐기고 있다.

 


▲ 연극 <살다보면> 포스터,   출처 네이버 연극

 

 

70대 초반인 순심과 만복은 도심의 공원을 벗하며 평범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가끔 공원 벤치에서 만나 티격태격 하기도 하지만 상대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찮은 기회에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누게 된 두 사람은 상대가 50년 전 자신의 첫사랑임을 눈치 채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그때의 그 사람임을 밝히지는 못하고 서로의 아련한 여운만을 남긴 채 무대는 막을 내린다.

 

첫사랑과의 만남, 그 이후를 상상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여전한 설레임일까? 아니면 허망한 몽상이었을까?

 

이 작품은 소극(Farce)임을 전제로 시작한다. 소극이란 말 그대로 가벼운 대화와 즐거움으로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연극을 일컫는다. 주로, 소극장에서 관객들과 호흡을 같이하는 형식으로 무대화 된다.

 

그만큼 발랄, 유쾌, 유머가 핵심 요소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작품 역시 극 중간 중간에 그 시대를 풍미했던 대중가요를 삽입해 관객의 마음을 풀어 놓고, 재치 있는 대사와 몸짓으로 관객들을 웃음 짓게 만든다.

 

이런 류의 소극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바로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과 연출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다.

 

이 두 요소 중에 적어도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 하나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 바로 이 연극 「살다보면」이라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후학들의 연기를 지도하며 직접 무대에서 열연을 펼치고 있는 배우 정인숙(순심 역)과 드라마와 연극을 넘나들며 연기의 내공을 쌓아온 정종준(만복 역)의 맛깔스러운 연기는 마치 무르익은 홍시의 달콤한 그 맛이라 할만하다. 짬짬이 출연하는 장칠군과 김영란 두 배우의 코믹한 연기는 양념이고 말이다.

 

 

 

깊어 가는 가을, 가족들의 주말 나들이 행선지로 대학로 '아름다운극장'을 추천한다. 세대를 뛰어 넘는 재미와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 여행이 가족 모두를 행복의 나라로 인도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기에.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