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5:44

6자회담의 스케쥴이 대강 나온 듯 하다. 이 달 27일부터 3일간 중국의 북경에서 열릴 모양이다. 일본의 메스컴이 전하는 소식을 보자니 납치문제 해결 없이는 북한에 대한 어떠한 경제적 지원도 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한다. 일본정부로서야 너무나도 당연한 희망사항이라고 보여지지만 또 한편으로는 꼭 그렇게만 되어줄까 하는 의구심도 떨쳐버릴 수가 없다. 한마디로 떡 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 먼저 마시는 꼴이라는 느낌이다.

자, 그렇다면 일본은 왜 이렇게 납치문제를 6자회담의 의제에 끼워 넣으려고 안달을 하고 있는가?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북일 국교 정상화'에 관계된 문제이다. 고이즈미를 필두로 한 여당 자민당의 입장에서는 이것만큼 매력적이고 유혹적인 국내외적 인기 상승의 히든 카드가 없기 때문이다.

당내에 별반 지지 기반이 없는 고이즈미는 물론이고 자민당의 처지에서도 지금이 최고의 위기 상황이라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을 줄 안다. 결국 이러한 정치적 위기 상황의 타개책으로써 북일 국교정상화 문제는 다음 선거에서의 승리는 물론이고 자민당과 고이즈미의 정치생명을 담보해 줄 최선의 카드라는 것이 그 이유가 될 것인데, 결코 녹록하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고이즈미 정권을 국교정상화 파트너로 인정을 해주지 않는다는데 고이즈미 정권의 고민이 있다. 한번 속지 두 번 속지 않겠다는 의미와 함께 이미 북일 국교정상화 및 납치문제 해결의 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북한쪽의 일본 길들이기의 연속선상에서 바라볼 수가 있겠다.

납치문제의 해결은 북일 국교정상화를 의미한다고 볼 때 일본으로서는 그만한 대가를 치뤄야 할 것이며, 바로 그 대가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 납치문제를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일본의 태생적 한계를 들 수가 있겠다. 과거의 무모한 제국주의적 침략 전쟁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일본의 입지를 현저히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쉽게 말해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한 때는 한국의 군사독재 정권과 빌붙어서 그나마 동북아 지역에서 체면치레 정도는 할 수 가 있었지만 한국의 노무현 정권의 등장으로 인해 이제는 이것마저도 쉽지가 않게 되어버렸다.

물론, 북핵문제라는 현실적 어려움으로 인해 지난 방일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자기의 색깔을 확실하게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알만한 사람들은 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탄생으로 인해 과거처럼 한국정부를 자기들 손바닥 위에 올려 놓고 북한을 미끼로 맘대로 갖고 놀던 시대는 지났다는 사실을 말이다.

바로 여기에 일본의 또 다른 고민이 있다. 그나마 한반도에서의 영향력 행사가 가능했던 한 쪽 끈을 놓쳐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롭게 만들어 가고 있는 라인이 미국과의 유대 강화 및 이를 통한 한반도에서의 영향력 행사로의 전환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이 역시도 간단치가 않은 것이 수평적인 동맹관계를 희망하는 일본의 입장과 그 정도로 까지는 인정을 못해주겠다는 미국 부시정권의 시선의 다름 때문이다.

결국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에서의 헤게모니를 중국쪽에 완전히 넘겨주어서는 안된다는 일본정부의 고민(불안감)이 6자회담의 의제에 납치문제를 포함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부연해서 설명하자면 일본은 이번 6자회담에서 별다른 역할 없이 다른 참가국들에게 끌려다니지 만은 않겠다는 즉, 자기의 목소리는 내야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북핵문제나 미사일 문제에 대해서 일본은 그다지 할 말이 없는 입장이다. 바로 그게 일본이 갖고 있는 태생적 한계라는 것이다.

과거의 제국주의적 침략 행위가 일본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자국의 침략행위에 대한 반성과 참회 없이 어떻게 타국에게 무기의 동결 및 평화주의로의 이행을 요구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로부터는 물론이거니와 북한쪽으로부터도 별다른 설득력을 기대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납치문제를 빌미로 일본의 존재성을 인정 받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딴지를 걸어보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일본이 한반도에서 일정부분의 역할을 자임하기 위해서는 북일 국교정상화는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특히 요즘처럼 한반도 및 동북아의 정세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는 지정학적 상황과 일본의 정치질서 재편 및 자민당의 최대 위기하에서는 그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 진다.

그러나 지금처럼 가다가는 자칫 동북아시아의 영원한 왕따로 남는 것은 물론이요, 자국내에서의 정권유지 조차도 낙관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이들의 발길을 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표면적으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 문제에 대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도 일본정부의 고민이기는 하지만 더욱 중요한 문제는 설사 납치문제 해결을 통한 북일 국교정상화의 수순을 밟는다고 해도 이제 일본은 그에 상응하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몰려버렸다는 점이다.

납치 피해 가족들을 데려다가 써 먹을 만큼 써 먹었고, 그로 인해 북일 국교정상화를 목표로 솔직하게 납치문제를 시인하고 일시 귀국을 허락했던 북한쪽의 입장을 완전히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일본 정부가 북핵문제와 납치문제를 한 방에 해결하고자 6자회담에 납치문제를 끼워 넣으려고 안달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남들이 깔아놓은 멍석 위에서 손도 안 대고 코를 풀어 보겠다는 의도로 읽을 수가 있겠다.

몇 번에 걸친 6자회담에서 어떤 형식으로든 북핵문제가 원만하게 해결이 된다면 6자회담에 참가했던 국가들은 많든 적든 북한에 일정부분의 경제적 지원을 부담해야만 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지원금을 부담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있는 것이 바로 일본이다.

왜냐하면 북핵문제의 해결로 인해 가장 이득(안보 및 외교적)을 보는 나라가 일본이기 때문이다. 이는 자업자득의 성격이 강하지만 어찌되었든 외교를 정치적 논리로 접근하려 했던 과오에 대한 학습비용 정도로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다른 참가국들과는 다르게 일본은 북핵문제의 해결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바로 납치문제와 북일 국교정상화라는 더 큰 과제가 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신창이 되어버린 북한쪽이 결코 쉽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 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가기 위해서도 역시 만만치 않은 경제적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 입장에서는 이번 6자회담에서 북핵문제와 납치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역시 앞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북핵문제든 납치문제든 이미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북한쪽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올바른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일본정부의 고민이 현실적으로 나타난 고육지책으로 보여진다.

게다가 전능한 미국쪽의 눈치도 살펴봐야 하고 정권의 지지 기반인 보수 우익 세력의 거동도 살펴줘야 하고 한국과도 과거와는 다르게 대등한 외교로 접근해야 하는 등의 여러 현실적 문제들을 고려해 볼 때 결코 쉽게 풀릴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아직 실망하거나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지금도 일본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며 군사대국화 지향 및 군국주의로의 회귀로 의심하고 있는 주변국들에게 확실한 메시지를 전파하고 동참을 이끌어 내려는 노력이 전제된다면 말이다. 그 메시지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공생'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해 왔던 임시방편적이고 자국 중심적 기회주의를 버리고 진정으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공생에 기여하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주변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대국적 견지에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불안감은 떳떳하지 못한 마음에서 오는 병이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