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6:03

언론보도를 통해서 알려진 것처럼 이라크에서 또 한명의 일본인이 무장조직에 의해 납치되었다고 한다. 우선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그의 무사귀환을 기원한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통해서 드러난 문제점 두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이번 사건의 경과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이라크 무장세력의 범행 성명에 의하면 영국계 세큐러티사에 근무하는 일본인 사이토 아키히코(44)씨가 납치되었다. 이라크 서부에서 습격 당해 행방불명 된 것으로 일본정부가 확인했다고 한다.

또한 일본외무성은 무장세력이 인터넷에 올려 놓은 사이토씨의 여권도 본인의 것이라고 확인했다. 그리고 이라크 주둔 중인 미군 시설에서 경비 관련 업무를 위해 필요한 미 국방부가 발행한 신분증 카드, 무기 휴대 허가증 등도 공개됐다.

사이토씨는 경비회사 하트 세큐러티사 런던 지사 소속으로 이라크 서부에서 미군 기지 경비에 종사하고 있었던 것으로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일본 언론 보도에 의하면 사이토씨를 포함한 수십 명이 차로 이동하는 중 알 아사드 근교 히트에서 습격을 당했다고 한다. 일본 정부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교전 현장은 다양한 무기가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상당히 처참한 상태였다고 한다. 교전 당시 이라크 보안군 12명과 외국인 경비업체 직원 4명은 현장에서 모두 사망했고, 사이토씨는 교전으로 인한 총상을 입고 인질로 붙잡혔다고 이 무장단체는 밝혔다.

일본인을 납치한 단체인 '안사르 알-순나'는 알카에다와 연계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조직이다. 지난해에는 미군 부대에서 일하던 네팔인 12명을 납치해 살해했고, 쿠르드 지역 자폭 공격 등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지의 미군과 이라크 보안군은 이 조직이 다른 무장단체와 연계를 유지하면서 시리아 국경 사막 지대에 은신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은 또 "인질로 잡힌 일본인은 중상을 당했으며 우리는 조만간 그를 찍은 비디오를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일본인만을 살려둔 채 납치한 이유 등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것이 없으며 이후 추가 성명이나 비디오 공개조차 없는 상황이다.

일본정부 대책마련에 분주

일본정부는 10일 오전 1시 수상관저의 위기 관리 센터에 연락실을 설치했다. 또한 외무성에도 오전 2시에 마치무라 외상을 본부장으로 하는 대책 본부를 마련해 사이토씨의 가족이나 하트사, 이라크 및 미국 정부와의 연락을 통해 사실 관계 확인을 서두르고 있다.

마치무라 일본 외상도 "관계자들이 사이토씨 가족을 접촉했다"고 밝혔다. 러시아를 방문중인 고이즈미 총리는 피랍소식을 듣고 이라크 인근 국가 공관에 정보 수집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오노 방위청 장관은 내각회의 후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현재 상황에서는 사마와에서의 자위대 활동에 영향은 없다”라고 언급했다. 현재 일본은 5백 여명의 자위대를 바그다드 남부 사마와 지역에 파병해 놓고 있다.

해외주재 일본인이 미군의 경비 업무를 수주한 민간회사로부터 분쟁 지대에 파견되어 일어난 사고와 관련해서는 일본정부에서 상정해 놓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에 대한 대응에 외무성 간부는 괴로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언론들이 전한다.

일본 외무성 간부에 의하면 사이토씨는 1979년에 육상 자위대에 입대해서 제1 공정단에 배속되었다가 퇴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1 공정단은 육상자위대 소속의 유일한 낙하산 부대이다. 훈련의 강도나 위험도, 작전 수행 능력에 있어서 육상자위대의 최정예부대라고 한다.

육상자위대를 제대한 후 22살에 프랑스의 외국인 부대에 입대해서 21년을 근무했고, 작년 제대와 함께 사설 경비회사에 취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리카와 남미 등 해외에서의 전쟁·분쟁에도 꽤 참여했다고 한다.

이라크에서 납치된 일본인들은 이라크전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6명이었다. 그 가운데 5명은 무사히 풀려났었지만 1명은 일본 자위대의 철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작년 10월에 살해됐다. 일본 정부는 최악의 상황이 되풀이될 가능성을 크게 염려하면서 대책마련에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언론들이 전하고 있다.

내 탓이오!

이라크 무장그룹에 의한 사이토씨의 신병구속 사건은 우리에게 두 가지의 시사점을 던져준다. 하나는 이라크전쟁을 계기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전쟁의 민영화’에 대한 실태를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 사회의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이라크에서 활동하고 있는 민간 병사들은 종래의 용병과는 약간 이미지가 다르다고 한다. 즉, 사령부가 지휘하는 소탕작전 등에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시설 경비나 요인 경호 등 작전 수행 이외의 임무를 맡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민간 군사 청부업자로 부른다. 이와 같은 민간 군사 청부업자들이 현재 이라크에는 2만 명 가까이 파견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실제 임무를 명확하게 선 긋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들 역시 전투행위를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초부터 지적되어 온 만성적인 미군의 인원 부족문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에 더해서 ‘전쟁의 효율화’를 목표로 하는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의 방침아래 업무의 민간 위탁은 오히려 장려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하겠다. 즉, 본래대로라면 군이 실시해야 되는 임무의 상당 부분을 민간이 맡아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역시 넓게 봐서는 용병임에 틀림없다. 용병은 국제법으로도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 사항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를 묵인 또는 장려하고 있는 미국의 행태는 분명 비난 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일본 정부 역시도 비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오늘 아침 일본의 주요 텔레비전 뉴스에는 납치된 사이토씨의 동생이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이 상당히 오랜 시간 방영되었다.

주요 요점은 이렇다. “형은 그 일이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여러분들께 심려와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 본인(형)은 44세의 어엿한 성인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일본 정부의 이라크 정책이 동요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일본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일본 정부를 지지한다”라고 단언했다. 그리고는 “무사히 돌아온다면 무슨 생각으로 현지에 갔으며, 그 직업에 종사하게 되었는지 여러분들이 납득할 때까지 설명하라고 하고 싶다”

이게 사지에서 죽음과 직면해 있는 형을 생각하는 동생의 마음이란다. 세상에. 허 참, 세상 어느 부모형제가 죽음 앞에 놓여 있는 제 피붙이를 보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나라면 말이다. “우리 형 살려주세요. 꼭 살아서 돌아오게 해주세요” 라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을 것이다. 우선은 살려놓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바로 저 겁먹은 동생의 머리 속에는 오늘의 일본 사회가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아니 아주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책임’ 이라는 것이다. 정확히 1년 전이다. 이라크에서 활동하던 NGO 활동가와 프리랜서 저널리스트가 이라크 무장그룹에 구속 되었을 때, 그들의 행동과 판단을 비판하면서 또 구출비용을 청구하면서 일본 정부의 고위 관료와 총리에 의해 유포되어 널리 유행했던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 정부의 무모한 자위대 파견에 대한 '책임면피'에도 톡톡히 한 몫을 했다.

당시 대다수 언론들은 이들을 죽어라고 두들겨 팼다. 요지는 무책임한 놈들이므로 맞아도 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어느 누구 하나 당당하게 이런 얼토당토 않은 ‘자기책임론’에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이 침묵했다. 바로 그 침묵으로 생긴 어두운 그림자가 지금 일본 사회를 서서히 삼켜버리며, 민중들의 숨통을 조여 오고 있다.

오늘의 일본 사회는 이처럼 가족애에 바탕을 둔 아주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인도주의 조차도 수용하지 못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고 말았다. 그리고 그 자리를 오염된 자식들이 강요하는 철지난 국가주의가 스멀스멀 기어들고 있다. 그래서 위험하다.

자기 책임을 방치하려 하지 않으며, 또한 그것을 타인에게 전가 시키려 하지도 않는 것은 고귀한 일이다 -니체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