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시 사2014. 11. 17. 13:31

빅맥, 코카콜라,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커피, 휘발유 가격이 도쿄보다 서울이 비싸다고 하지요. 오늘자 서울신문 기사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소득 올랐지만 엔저로 역전이라고 부제를 달아놓았던데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분석 같습니다.

 

대체적으로 일본이 물가가 비싼 도시로 다들 알고 계시고, 이것 때문에 일본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이 고민도 많이 하시는 것을 종종 봅니다만 사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비싼 것은 비싸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아주 많다는 게 정답인 듯싶습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서민들의 생활에 꼭 필요한 생필품 가격은 저렴한 게 아주 많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도 익숙한 일본식 소고기덮밥인 규동(牛丼)의 경우는 물론이고 규동가게에서 파는 대부분의 음식들이 300(3천원)~500(5천원) 정도 합니다.

 

우리나라 서울에서 이 정도 가격에 밥 한 끼 제대로 먹을 수 있는 곳 있나요? 김밥집 정도가 그렇겠지만 김밥집에서도 김밥과 라면을 제외하면 김치찌개 한 그릇에 4500~5500원 정도 하니, 쉽게 비교가 됩니다.

 

그리고 옷값도 그렇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하고 있는 유니클로라는 상품, 사실 이거 처음 일본에 나왔을 때는 젊은이들이 입는 아주 저렴한 브랜드였습니다. 대개 천엔이나 이천엔 정도하는 저렴한 의류가 주를 이뤘습니다.

 

그 후에 사업이 좀 잘 되자 7~8천엔짜리 오리털점퍼와 자켓류도 나오기 시작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저렴한 가격에 젊은 디자인으로 승부하는 브랜드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네에 있는 소규모 쇼핑몰이나 백화점을 가면 브랜드의류들도 많이 세일된 가격에 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번은 오리털 점퍼를 하나 사러 갔는데, 노스페이스라는 브랜드가 5천엔에 팔리고 있더군요. 그때 우리나라에서는 이 브랜드가 한참 뜨고 있을 때였지만, 저는 듣도 보도 못한 상표라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른 점퍼를 사서 나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그 유명한 거였더군요.

 

또 하나, 남자들 이발의 경우도 동네 이발소에 가면 대개 3천엔에서 35백엔 정도 합니다. 그런데 동네 곳곳에 있는 남성전문 컷트숍에 가면 천엔 - 요즘 우리나라에는 7천원(우리 동네에는 5천원짜리도 최근 생겼지만) 하는 남성 전문 컷트숍이 성업 중입니다 - 에 가능합니다. 물론, 머리를 감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연세 있는 분들은 다들 동네 이발소로 가시지요. ? 그게 일반적인 시세라 보기에 그렇습니다. 삶의 질의 차이인 것이지요.

 

그런데 중요한 건 이겁니다. 이렇게 서민들 생활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서비스요금이 저렴한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르바이트 시급을 포함한 임금이 높다는 겁니다.

 

서민들 생필품의 가격은 우리와 큰 차이가 없는데, 단적으로 아르바이트의 시급은 우리의 두 배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그렇지요. 우리의 삶이 그만큼 더 팍팍하다는 의미입니다.

 

일본이 지금 저렇게 된 데는 물론 잃어버린 20년의 영향이 큽니다. 하지만 그래도 일본 서민들이 꿋꿋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이미 저들은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이라는 정점까지를 찍었었기 때문이지요. , 다들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을 했었다는 겁니다.

 

그러다가 경기침체가 장기간 계속되자 앞서와 같이 서민들의 생필품 가격이 자동적으로 하향 안정화로 돌아선 겁니다. 그러니 그 오랜 시간을 큰 탈 없이 다들 먹고 살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채 선진국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신자유주의라는 역풍을 맞으면서 서민들의 삶을 살필 제대로 된 준비의 시간을 갖질 못하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신자유주의라는 게 뭡니까? 쉽게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금융자본이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것 아닙니까? 케인즈주의의 대안으로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복지축소, 사회안전망 비용 삭감, 인플레이션을 통한 실질임금 저하 정책 등을 통해 서민들을 쥐어짜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전반적인 사회시스템과 서민들의 삶이 일정 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즉 튼실한 내·외부적 환경들을 갖추지도 못한 채 엄동설한 북풍한설에 알몸으로 내몰려버린 겁니다. 이러니 온몸이 꽁꽁 얼 수밖에요. 바로 이게 서울의 삶이 도쿄보다 더 팍팍하게 된 이유입니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7년~현재/시 사2010. 6. 19. 01:54

어제 어느 신문 기사에 보니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도시가 일본의 수도 도쿄라고 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도쿄뿐만이 아니라 10위 안에 일본의 주요 도시들이 4개(도쿄, 나고야, 요코하마, 고베)나 들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사 아래에 달린 댓글들을 보다가 이 글을 쓸 생각을 했습니다. 내일 모레 일본으로 워킹을 떠난다는 어떤 학생의 한숨 소리가 제 귀에도 들리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실에 좀 더 접근을 한, 살아있는 생활 물가를 전해드려야겠다 싶어서 이 글을 시작했습니다.


그 기사에 의하면 물가 비교 대상은 각국의 생필품 가격과 서비스 가격이라고 되어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품목을 어떤 방식으로 산출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없어서 좀 아쉽기는 합니다만, 어차피 이 글의 성격이 그렇게 정확한 산술적 수치에 근거한 글쓰기가 아니기 때문에 저도 두루뭉술하게 한 번 써 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일본은 물가가 비싼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국가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일면 맞기도 하고, 일면 틀리기도 합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비싼 것은 굉장히 비싸고, 싼 것은 또 무지하게 싸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비싼 것의 대표적인 품목 중에 하나가 바로 교통비일 겁니다. 특히, 신간센 요금, 전철 요금, 버스 요금 등이 그렇지요. 또 하나는 이게 가장 피부에 와 닿는 건데, 캔 음료 가격입니다.


여행이든, 공부든, 출장이든, 어떤 이유로든 일본을 방문하게 된다면 공항에 내려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 중에 하나가 자판기 커피를 하나 빼 먹거나, 캔 음료를 하나 사 드시는 것일 텐데요. 제가 아는 분들 중에 일본에 처음 오셔서 부담 없이 캔 음료 빼 드시는 분 아직 많이 못 봤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판기 캔 음료 하나에 120엔 정도를 하는데요. 이걸 한국 원으로 환산을 하면, 오늘 환율이 약 1320원 정도 하는 것으로 봐서 캔 음료 가격은 우리 돈으로 1590원 정도가 되겠지요?


음, 1600원에 캔 음료 하나. 뭐 지금이야 우리도 물가가 많이 오르고 했으니까 그러려니 합니다만, 우리나라에서 캔 음료 하나에 600~700원 하던 때에는 정말 그거 하나 사 먹는데 보통 일본생활 경력 3개월이 필요했습니다.^^


자, 여기까지가 아주 일반적인 일본 물가 이야기이구요. 지금부터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을 좀 적어 볼까 합니다.


그렇다면, 일본 물가가 정말 그렇게 비싸기만 하다면 일본 서민어은 어떻게 살겠나? 라는 의문이 드실 겁니다. 샐러리맨의 월급이 우리나라 보다 엄청나게 더 크게 높은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이런 의문을 해소해줄 수 있는 일본 사회의 특징 두 가지를 들어서 제 생각을 적어볼까 합니다.




첫째, 양극화의 고착


우리가 소위 선진국이라 부르는 국가들을 보노라면 그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양극화 아닌가 싶습니다. 양극화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욕망을 잔인하게 짓밟아 버리는 습성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인데요. 양극화가 심화되면 오로지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극도의 개인주의적 사고가 만연해 이타심이 없는 물질만능 사회로 변질시켜 버립니다. 결국은 개인 간의 불신과 반목, 상대적 박탈감 등의 부작용이 사회 문제화로 나타나곤 합니다.


일본 사회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 재미있는 현상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쉽게 설명 드리면, 이런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습니다만, 고급과 저급의 공존이라는 사실입니다. 뭐, 고급이라는 것은 어느 사회에나 있는 것이니까 여기서는 저급(하품)만을 언급토록 하겠습니다.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으로 미국조차도 따라 잡을 것처럼 승승장구하던 일본이 90년대 들어 누구도 예측치 못했던 버블 붕괴라는 쓰라린 고통을 맛보게 됩니다. 아마도 일본이 한 참 잘 나갈 때, 그때가 지금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조금 여유가 있다 싶은 사람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골프를 즐기고, 해외로 여행을 떠나고, 그럴듯한 식당에서 가족 외식을 즐기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미식가가 늘어나고, 바로 이게 버블이 붕괴되기 전까지 일본 보통 사람들의 생활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버블이 꺼지면서 부동산 폭락과 함께 노동시장은 불안정하게 돌아가고, 임금삭감과 비정규직의 확산, 늘어나는 실업률은 마치 다람쥐 쳇바퀴처럼 다시 내수시장의 침체를 불러오고, 이는 또 고용시장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고, 마침내는 이런 악순환의 반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구조적인 경제침체기를 맞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국민들이 중산층이라며 자랑스럽게 떠벌리던 일본 사회는 중산층의 붕괴라는 혹독한 시련 앞에 사회적 약자가 급증하게 됐습니다. 노년은 홈리스로, 젊은이들은 프리타로 전전하며 힘겨운 삶을 살게 됩니다.


사회적 위기가 어떤 이에게는 기회로 다가오기도 하는 법인가 봅니다. 바로 그런 사회적 약자를 지탱케 해 주는 의식주 관련 산업이 일본 사회의 새로운 비즈니스로 자리를 잡으면서 이런 틈새시장에서 대 성공을 거두는 기업가도 출현하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일본 먹거리 중에 규동이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소고기 덮밥 정도가 될 겁니다. 그런데 이게 맛도 기가 막히면서 가격도 아주 저렴합니다. 뭐, 꼭 규동 뿐만 아니라 규동 가게에서 파는 대부분의 메뉴들이 한 끼 식사로도 부족함이 없으면서 가격이 싸고 양도 제법 된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규동 한 그릇에 보통 250엔~300엔 정도 할 겁니다. 현재 환율로 환산을 하면 우리 돈으로 약 4000 원이 채 안 되는 가격입니다. 그 외의 메뉴들도 400엔 안쪽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까 물가 비싸기로 소문난 일본 도쿄에서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가격들인 셈이지요?


그리고 서민들에게 빼 놓을 수 없는 게 술 아닙니까? 간단하게 일본식 선술집이라는 이자카야를 예로 들어 볼까요. 일본인들은 주로 혼자서 술 마시기를 즐기니까 크게 부담 없이 적당히 취하기에는 이곳만큼 좋은 곳이 또 없지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술집이라는 삼겹살집에 가서 남자 둘이 소주 2~3병에 고기 좀 먹으려고 하면 보통 3~4만 원 정도가 들 겁니다. 마찬가지로 일본 이자카야에 가서 남자 둘이 적당히 취하고자 해도 아마 저 정도 금액이면 충분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입는 것 하나만 더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성황리에 팔리고 있는 유니클로라는 메이커의 옷이 있습니다. 사실, 이거 우리나라 대기업이 들여와 팔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아주 저가브랜드 이지요.


주로 젊은이들과 서민들이 즐겨 입는, 티셔츠 한 장에 천엔 정도 하는 아주 저가 의류입니다.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후에는 6~7천 엔짜리 재킷도 만들어 팔고, 파카도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만, 초기에는 주로 천 엔이나 2천 엔 하는 물건들이 주를 이루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지금까지 나왔던 저가 의류에 비해 원단과 품질이 우수하고, 디자인이 감각적이라는 이유로 굉장히 성공을 거두었다고 합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물건을 필요로 했던 일본 사회의 시대적 배경도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일본은 전체적으로 물가가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일반 서민들이 생활하기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사회적 기반이 조성되어 있다는 점을 말씀 드리고, 바로 이게 자민당 정권 50년이 만들어 놓은 병리현상이라는 말씀과 함께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둘째, 맞벌이


자, 저는 위에서 몇 개의 예를 들어 물가가 비싼 일본이지만 서민 생활에는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저급 물건도 산재해 있어 일반적인 서민 물가는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나 빼 놓은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드리려고 위에서는 의도적으로 거론하지 않은 것인데요. 의식주 중에 하나, 주택과 관련한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위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정말 그게 다라면 일본 서민들의 삶이 그렇게 팍팍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거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잘 알려져 있는 것과 같이 일본도 집값 비싸기로 소문난 동네 아닙니까? 버블 붕괴 이후 부동산 가격이 많이 내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특히, 과거에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주택 대출을 받아서 장기간에 걸쳐 대출을 갚아 나가는 방식으로 집 장만을 했습니다만, 부동산 경기의 악화로 주택을 소유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 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로금리라는 유혹을 앞세워 집 장만을 권유하는 금융권의 영업 공세에도 불구하고 월세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집값 때문인 것이지요. 이제 더 이상 일본에서는 집이 투자(투기)의 대상이 아님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머지않아 우리도 그리 되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월세로 지출되는 돈이 장난 아니게 많다는 점입니다. 도쿄에서 4인 가족이 생활하려면 적어도 월세로 100만 원은 지출해야 그냥 저냥 살아갈 수 있습니다. 괜찮은 맨션을 얻으려고 한다면 월 150만 원 정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한 사람 월급으로 생활하며 이 정도를 추가로 지출해야 한다면 도대체 얼마를 벌어야 이게 가능할까요? 바로 이런 이유로 많은 일본 가정주부들이 맞벌이 전선에 뛰어 들고 있습니다. 물론, 맞벌이 하는 분들 중에는 정말 자신의 일이 좋아서 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오직 먹고 살기 위한 돈벌이 수단으로 맞벌이를 선택하신 분들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일본에서 공부할 때, 학교에서 공부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거의 밤 10시 정도였습니다. 그 시간에 전철을 타면 주로 퇴근하는 직장인들과 함께 가게 되는데요. 그 분들 중에는 가정주부로 보이는 분들도 꽤나 됩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는 많은 분들이 눈을 감고 잠을 자면서 가지요. 하루 일과에 지치고 피곤해서 그럴 겁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도대체 사람이 산다는 게 뭔가? 또 가족이라는 건 뭔가? 일주일 내내 아침 7시에 집에서 나와 밤 10시나 되어야 귀가를 하고, 집에 가자마자 씻고 잠자리에 들면 또 깨자마자 출근을 하고, 주말이면 피로회복 차원에서 늦잠이라도 자 줘야 하고, 또 그렇게 하루가 가면 다시 일터로 향하고, 가족이란 같은 집에 산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인가? 이게 사람 사는 모습인가?


이런 이유로 저는 열심히 일하는 것과 함께 사람답게 사는 것도 잊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삽니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맞벌이가 보편화 되어가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여성의 일자리 창출 문제가 중요한 사회 의제 중에 하나이기도 하구요. 특히, 애들 학원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하시는 분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은 연령에 관계없이 정말 많은 주부들이 맞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분들 중에 많은 수가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일을 선택하신 것이겠지요?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일 상2010. 6. 18. 20:25

그 해 여름은 정말 잔인했다.

처음 일본을 올 때만 해도 6개월은 아르바이트를 하지 말고 공부만 해야지 했는데, 점점 줄어드는 통장의 잔고가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집 도움없이 자립하겠습니다."
큰소리는 치고 왔는데 아무래도 6개월을 버티기가 쉽지 않을 듯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 아는 후배의 소개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그해 4월에 일본에 왔고, 6월 부터 했으니까 여름의 시작 무렵 이었다.

일명, 노가다 !

전철역 보수공사 현장에서 하는 막일 이었다.
마지막 전철이 지나가면 공사를 시작해서 첫 전철이 오기 전까지, 그러니까 밤 12시 30분부터 새벽 4시 30분까지다.

어디든 공사 현장은 다 같지 않을까 싶은데, 정말 막일은 막일 이었다. 오래된 지하철역 보수공사는 주로 타일을 새로 깔든가, 아니면 노후된 계단을 새로 만드는 공사가 대부분인데, 그냥 새로 깔거나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노후된 것들을 깨내야 한다.(이게 정말 장난 아니다) 그리고 새 타일을 붙이는 것이다.

그 중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막일 중의 막일' 시멘트를 지상에서 공사 현장까지(주로 지하1, 2층이다) 나르거나, 아니면 타일을 깨고 그 깬 타일들을 다시 지상의 큰 트럭까지 옮기는 일이었다.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는 일들이나 덜 힘든 노가다 - 물론 기술은 필요하겠지만 - 예를 들면 타일을 붙이든가, 시멘트를 바르든가 하는 일들은 일본 기술자들의 몫이다.

일당은 하루에 9,000円을 받는다.  물론 4시간 일하고 그 정도 받으면 괜찮은 일 같은데, 중요한 건 받는 만큼 해야 한다는 거다.

4시간 동안 쉬는 시간은 딱 한 번 약 20분 정도. 이때 음료수 하나를 준다. 그게 전부다.

아, 그리고 이 일은 외국인이나 유학생에게는 불법이란다.
하지만 하청 업자가 돈 남겨 먹을려고 값싼 우리들을 쓸 것이다. 어느 나라든 그런 건 있는 것 같다.

드디어 첫날이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막일 이었지만, 사실 그까짓 것 쯤이야 했다.

오늘의 작업은 시멘트를 지하 공사현장까지 옮기는 것이란다. 큰 트럭 한대분이니까 가히 짐작은 갈 거다.


"아, 저걸 전부 지하 2층까지...." 


그리고 남들처럼 머리 뒤통수에 시멘트 2포를 얹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얹혀졌다가 맞을 거다. 다른 동료가 교대로 앞 사람의 머리위에 얹어주니까....

이거, 정말 장난 아닌거다. 간신히 일어섰다. 휘쩡휘쩡 몇 걸음을 옮겼다. 시멘트 2포 참 무겁더라.


비틀거리며 계단을 내려가 지하 1층 까지는 왔는데, 더는 도저히 못 가겠는거다.

땀은 비오듯 쏟아지고, 머리 뒤에서 시멘트 2포가 짓 누르니까 고개는 점점 ㄱ자로 꺾이고, 머리에 쓴 안전모가 얼굴을 반이나 가려서 앞이 제대로 안 보인다.

게다가 한 여름 햇볕에 노출되었던 시멘트는 그 열기가 쉽게 가시지 않고, 그 시간까지 뜨거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정말 뜨겁다.


그 뜨겁고 무거운 것이 목덜미를 짓 누른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제기럴, 끝내는 개찰구 기둥에 머리를 들이박고 말았다.
잘못 왔다.
죽었구나.

거기까지 가는 짧은 시간(약 5분) 동안 정말로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한 순간, 영사기에서 필름이 돌아가듯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버님, 어머님....... 가족들.......친구들......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왜 일본까지 와서 이 고생을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러웠다. 뭐가 서러웠는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서러웠다. 그리고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일본와서 처음이자 마지막 눈물은 그렇게 공사장에 뿌렸다)

다행히 땀이 비오듯 쏟아져 남들은 몰랐을 것이다.
그게 눈물인지, 땀인지 ......

포기다. 기숙사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갈 방법이 없었다. 마지막 전철도 끊기고, 택시타고 가자니 거기가 어디라고 전철로 20정거장 정도를 왔는데, 그건 주머니 사정이 허락을 않는다.

그래, 씨-벌. 해보지.
그 순간 정말 욕이 먼저 나왔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이다.
시멘트 2포를 패대기를 쳤다. 애꿎은 시멘트가 뭔 잘못이 있다고......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역시 인간은 적응력이 빠른 동물일까? 
그 이후 부터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하루 일이 끝나고, 기적을 울리며 첫 전철이 온다.
그리고 저 멀리서 붉은 태양이 솟아오른다.

아, 산다는 게 이런 거구나 !

일이 끝나고 기숙사에 도착하면 아침 6시.
대강 씻고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2시간 자고 8시에 일어나 학교에 간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오후 2시.
라면 하나 끓여서 밥 말아 먹고 동네 도서관으로 간다.
3시 부터 6시30분 까지 비몽사몽간에 공부를 한다.

다시 집에 돌아와 저녁 먹고 밤 11시까지 3시간 정도를 잔다.
그리고 일어나 또 노가다 현장으로 간다.

이런 반복되는 생활을 그 해 여름 약 3개월을 했다.

지금도 나의 가족들은 이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다.
아마 어머님이 아셨다면, 노발대발 하셨을거다.
당장 짐 싸들고 귀국하라고 .......

이 아들이 유독 잘나서가 아니라, 그게 세상 모든 부모님들의 마음일테니까.

이런 일을 생활로 하시는 분들께는 참 죄송스런 말이지만, 그 해 여름은 정말로 힘들고 잔인한 여름이었다. 나에게는.......

내가 편히 잠들어 있는 늦은 밤, 아마도 또 다른 누군가가 시험대에 서고 있을 것이다. 그때의 나 처럼.

건투를 빈다.


ps/ 사실, 이글도 꽤 오래 전에 썼던 겁니다. 아마도 2002~3년쯤 경험담 삼아 썼던 글 아닐까 싶습니다. 그때는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한겨레신문의 코리안네트워크라는 코너에 글을 쓸 때였는데요. 이글을 보시고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어떤 분이 메일로 연락을 주셨어요. 술 한 잔 하자고 말입니다. 


그래서 아메요코 시장이 있는 오카치마치에서 만나 시장통에서 한 잔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냥 술 한 잔 사주고 싶어서 연락했다"고 하면서 그때 그렇게 힘들었었냐고 물어 보시더군요. 혹, 이글 보시면 연락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한 잔 대접해 드리게 말입니다. 문득 그때가 생각납니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일 상2010. 6. 18. 20:19

제가 살고 있는 집을 기준으로 반경 50M 이내에 대형 빠찡코점이 4개나 있습니다. 꽤 많다고 할 수 있지요. 뭐, 아무래도 전철역과 가깝기 때문이겠지만 전철역을 상권으로 하고 있는 지역 특성을 감안한다면 또 그렇게 많다고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일본의 빠찡코 산업은 그야말로 과장 좀 보태서 한집 건너 하나 꼴입니다.
 
어제는 저녁 늦게 자정쯤에, 잠도 안 오고 해서 캔맥주나 하나 마시고 잘까 하고 편의점을 다녀왔습니다. 요즘은 이게 버릇이 됐습니다.
 
어슬렁 어슬렁 걸어가는데 두 명의 젊은이가 빠찡코점 셔터 앞에서 잠들어 있습니다. 요즘은 한국도 꽤나 춥다고 하던데요. 일본(도쿄)도 요 몇일 바람이 장난이 아니게 거셉니다. 자연히 기온도 많이 내려가 쌀쌀한 날씨입니다.
 
그 추운 날씨에 한명은 담요를 둘둘 말고, 또 한명은 파카 차림으로 그렇게 누워 있더군요. 대단한 청춘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제가 이제까지 본 중에 가장 이른 줄서기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침 6~7시에 100여명씩 줄서기 하고 있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만, 빠찡코점이 밤 11시에 영업을 끝냈을 테니까 영업을 마치자마자 그 앞에 죽치고 있는 줄서기를 본 것은 어제가 처음이었습니다.
 
빠찡코에 푹 빠져 사는 청춘들이거나 아니면 어제 좀 과하게 잃었거나 뭐 둘 중에 하나겠지요. 아, 빠찡코점 앞에서 줄서기를 하는 이유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그러는 겁니다.

예를 들면, 전날 돈을 많이 넣었지만 터지지 않은 기계를 잘 보아두었다가 남들보다 먼저 차지하겠다는 생각 때문이지요. 그리고 또 대개 입구쪽 기계가 터질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그래야 가게에 들어오는 손님들이 잔뜩 쌓아 놓은 구슬 박스를 보고 의욕적으로 투자(?)를 할 것이라는 심리를 이용한 것인데 바로 그런 자리를 차지하기 위함입니다.

 
제가 일본 생활을 하면서 이런 것은 따라하지 않아도 좋겠다 싶은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빠찡코 산업입니다. 우리 정부가 절대로 허가해주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제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우리 언론에도 가끔 가십성 기사로 오르내리곤 하지요. 엄마가 어린애를 자동차에 혼자 남겨두고 빠찡코에 간 사이 아이가 질식사했다는 그런 이야기 말입니다. 이런 것은 아주 특이한 사례라고 보여지구요.
 
문제는 일반 국민들에게 폭 넓게 퍼져 있는 빠찡코 중독증세 아닌가 싶습니다. 재미삼아 하는데 어떻겠느냐고 하실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는데요. 제가 알고 있는 분들 중에 정말 오락 정도로 빠찡코를 하는 분들은 거의 보지를 못했습니다.
 
한번 재미 붙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빠져 버리더군요. 심한 경우에는 애 분유 값은 못 줘도 다음날 빠징코할 돈은 양말 속에 꼬불쳐 놨었다는 사람도 봤습니다. 한 마디로 가정이고 뭐고 눈에 안 들어온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사회적·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사람들은 그다지 빠찡코를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하루 빵 값을 기계 속에 쳐 넣고 정작 자신들은  배를 곯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배고픔의 악순환이지요.
 
물론, 그 속에서라도 희망을 찾고 싶어하는 그 심정 이해 못할 바도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만을 탓할 수도 없는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것을 정상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요.
 
그리고 제 주변에도 일본으로 돈 벌러 온 한국분들 많이 계시는데요. 뭐 요즘은 돈벌이가 예전만 못해서 다들 힘들어 하시지만 그래도 열심히들 살고 계십니다. 한참 경기가 좋을 때는 아르바이트만 해도 한달에 40~50만엔 버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다고들 했는데, 그래서 그때 유학했던 가난한 유학생들은 돈을 벌 것이냐? 공부를 할 것이냐?로 고민깨나 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지금은 어림없는 이야기지요.
 
그렇게 일본에서 돈을 벌고 계시는 분들 중에 어떤 분들은 버는 족족 한국으로 송금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주로 연세 좀 있으신 분들이 그렇게 사시는데요. 눈물 나는 것은 그렇게 힘들게 벌어서 전액 송금하시는 이유가 한국에 있는 자식들을 위해서 랍니다. 게다가 자식을 위해 그렇게 고생 고생하시면서도 열이면 열, 입만 열면 자식 자랑으로 침이 마릅니다. 저도 자식의 한 사람으로서 참 많이 반성합니다.
 
하지만 역시 많은 분들이 벌어 놓은 것 하나 없이 그렇게들 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국으로 돌아가자니 벌어 놓은 것 하나 없고, 일본에 계속 있자니 돈 벌이가 시원치 않고 그래서 고민하는 분들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 이야기 들어보면 한 때, 돈 잘 벌지 못했던 사람 한 명도 없습니다. 다들 예전에는 돈 깨나 벌었다고 하더군요. 그렇지요. 하루 15~16시간씩 일 하고, 개중에는 이 악물고 하루에 두 군데서 일하는 분들도 많이 계시니까요. 헌데, 그 돈은 다 어디 갔냐구요?
 
빠찡코와 술, 여자 또는 남자. 다 외로움이란 단어 뒤에 따라 붙음직한 것들이지요. 그 중에서 으뜸은 빠찡코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 심리란게 참 묘하지요. 도박으로 잃은 것은 잘 생각 안 나고, 딴 것은 꽁돈인 듯 싶게 만들거든요.
 
그래서 가끔 이런 경우도 있지요. 친한 선후배 또는 친구가 술 한잔 하러 가자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자신이 쏘겠다는 거지요. 왜냐구요? 빠찡코에서 돈 좀 땄으니까요. 그런데 그 친구는 어제도 그제도 계속 잃었거든요. 모처럼 한번 따 놓고는 마치 그 돈이 꽁돈인 듯 생각하고 팍팍 쓰는 거지요.
 
그렇게 잃어서 마이너스가 되고, 따도 남는 것이 없게 되니까 빵찡코에는 결코 플러스가 없습니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6:03

언론보도를 통해서 알려진 것처럼 이라크에서 또 한명의 일본인이 무장조직에 의해 납치되었다고 한다. 우선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그의 무사귀환을 기원한다. 그리고 이번 사건을 통해서 드러난 문제점 두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이번 사건의 경과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이라크 무장세력의 범행 성명에 의하면 영국계 세큐러티사에 근무하는 일본인 사이토 아키히코(44)씨가 납치되었다. 이라크 서부에서 습격 당해 행방불명 된 것으로 일본정부가 확인했다고 한다.

또한 일본외무성은 무장세력이 인터넷에 올려 놓은 사이토씨의 여권도 본인의 것이라고 확인했다. 그리고 이라크 주둔 중인 미군 시설에서 경비 관련 업무를 위해 필요한 미 국방부가 발행한 신분증 카드, 무기 휴대 허가증 등도 공개됐다.

사이토씨는 경비회사 하트 세큐러티사 런던 지사 소속으로 이라크 서부에서 미군 기지 경비에 종사하고 있었던 것으로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일본 언론 보도에 의하면 사이토씨를 포함한 수십 명이 차로 이동하는 중 알 아사드 근교 히트에서 습격을 당했다고 한다. 일본 정부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교전 현장은 다양한 무기가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상당히 처참한 상태였다고 한다. 교전 당시 이라크 보안군 12명과 외국인 경비업체 직원 4명은 현장에서 모두 사망했고, 사이토씨는 교전으로 인한 총상을 입고 인질로 붙잡혔다고 이 무장단체는 밝혔다.

일본인을 납치한 단체인 '안사르 알-순나'는 알카에다와 연계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조직이다. 지난해에는 미군 부대에서 일하던 네팔인 12명을 납치해 살해했고, 쿠르드 지역 자폭 공격 등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지의 미군과 이라크 보안군은 이 조직이 다른 무장단체와 연계를 유지하면서 시리아 국경 사막 지대에 은신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들은 또 "인질로 잡힌 일본인은 중상을 당했으며 우리는 조만간 그를 찍은 비디오를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일본인만을 살려둔 채 납치한 이유 등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것이 없으며 이후 추가 성명이나 비디오 공개조차 없는 상황이다.

일본정부 대책마련에 분주

일본정부는 10일 오전 1시 수상관저의 위기 관리 센터에 연락실을 설치했다. 또한 외무성에도 오전 2시에 마치무라 외상을 본부장으로 하는 대책 본부를 마련해 사이토씨의 가족이나 하트사, 이라크 및 미국 정부와의 연락을 통해 사실 관계 확인을 서두르고 있다.

마치무라 일본 외상도 "관계자들이 사이토씨 가족을 접촉했다"고 밝혔다. 러시아를 방문중인 고이즈미 총리는 피랍소식을 듣고 이라크 인근 국가 공관에 정보 수집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오노 방위청 장관은 내각회의 후에 가진 기자회견에서 “현재 상황에서는 사마와에서의 자위대 활동에 영향은 없다”라고 언급했다. 현재 일본은 5백 여명의 자위대를 바그다드 남부 사마와 지역에 파병해 놓고 있다.

해외주재 일본인이 미군의 경비 업무를 수주한 민간회사로부터 분쟁 지대에 파견되어 일어난 사고와 관련해서는 일본정부에서 상정해 놓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에 대한 대응에 외무성 간부는 괴로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언론들이 전한다.

일본 외무성 간부에 의하면 사이토씨는 1979년에 육상 자위대에 입대해서 제1 공정단에 배속되었다가 퇴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1 공정단은 육상자위대 소속의 유일한 낙하산 부대이다. 훈련의 강도나 위험도, 작전 수행 능력에 있어서 육상자위대의 최정예부대라고 한다.

육상자위대를 제대한 후 22살에 프랑스의 외국인 부대에 입대해서 21년을 근무했고, 작년 제대와 함께 사설 경비회사에 취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리카와 남미 등 해외에서의 전쟁·분쟁에도 꽤 참여했다고 한다.

이라크에서 납치된 일본인들은 이라크전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6명이었다. 그 가운데 5명은 무사히 풀려났었지만 1명은 일본 자위대의 철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작년 10월에 살해됐다. 일본 정부는 최악의 상황이 되풀이될 가능성을 크게 염려하면서 대책마련에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언론들이 전하고 있다.

내 탓이오!

이라크 무장그룹에 의한 사이토씨의 신병구속 사건은 우리에게 두 가지의 시사점을 던져준다. 하나는 이라크전쟁을 계기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전쟁의 민영화’에 대한 실태를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 사회의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이라크에서 활동하고 있는 민간 병사들은 종래의 용병과는 약간 이미지가 다르다고 한다. 즉, 사령부가 지휘하는 소탕작전 등에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시설 경비나 요인 경호 등 작전 수행 이외의 임무를 맡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민간 군사 청부업자로 부른다. 이와 같은 민간 군사 청부업자들이 현재 이라크에는 2만 명 가까이 파견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의 실제 임무를 명확하게 선 긋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들 역시 전투행위를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초부터 지적되어 온 만성적인 미군의 인원 부족문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에 더해서 ‘전쟁의 효율화’를 목표로 하는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의 방침아래 업무의 민간 위탁은 오히려 장려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하겠다. 즉, 본래대로라면 군이 실시해야 되는 임무의 상당 부분을 민간이 맡아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역시 넓게 봐서는 용병임에 틀림없다. 용병은 국제법으로도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 사항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를 묵인 또는 장려하고 있는 미국의 행태는 분명 비난 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일본 정부 역시도 비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오늘 아침 일본의 주요 텔레비전 뉴스에는 납치된 사이토씨의 동생이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이 상당히 오랜 시간 방영되었다.

주요 요점은 이렇다. “형은 그 일이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여러분들께 심려와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 본인(형)은 44세의 어엿한 성인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일본 정부의 이라크 정책이 동요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일본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일본 정부를 지지한다”라고 단언했다. 그리고는 “무사히 돌아온다면 무슨 생각으로 현지에 갔으며, 그 직업에 종사하게 되었는지 여러분들이 납득할 때까지 설명하라고 하고 싶다”

이게 사지에서 죽음과 직면해 있는 형을 생각하는 동생의 마음이란다. 세상에. 허 참, 세상 어느 부모형제가 죽음 앞에 놓여 있는 제 피붙이를 보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나라면 말이다. “우리 형 살려주세요. 꼭 살아서 돌아오게 해주세요” 라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을 것이다. 우선은 살려놓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바로 저 겁먹은 동생의 머리 속에는 오늘의 일본 사회가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아니 아주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책임’ 이라는 것이다. 정확히 1년 전이다. 이라크에서 활동하던 NGO 활동가와 프리랜서 저널리스트가 이라크 무장그룹에 구속 되었을 때, 그들의 행동과 판단을 비판하면서 또 구출비용을 청구하면서 일본 정부의 고위 관료와 총리에 의해 유포되어 널리 유행했던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 정부의 무모한 자위대 파견에 대한 '책임면피'에도 톡톡히 한 몫을 했다.

당시 대다수 언론들은 이들을 죽어라고 두들겨 팼다. 요지는 무책임한 놈들이므로 맞아도 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어느 누구 하나 당당하게 이런 얼토당토 않은 ‘자기책임론’에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이 침묵했다. 바로 그 침묵으로 생긴 어두운 그림자가 지금 일본 사회를 서서히 삼켜버리며, 민중들의 숨통을 조여 오고 있다.

오늘의 일본 사회는 이처럼 가족애에 바탕을 둔 아주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인도주의 조차도 수용하지 못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고 말았다. 그리고 그 자리를 오염된 자식들이 강요하는 철지난 국가주의가 스멀스멀 기어들고 있다. 그래서 위험하다.

자기 책임을 방치하려 하지 않으며, 또한 그것을 타인에게 전가 시키려 하지도 않는 것은 고귀한 일이다 -니체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일 상2010. 6. 18. 15:59

요즘 일본 사회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대략 2가지가 눈에 띈다.

하나는, 그 유명한 '한류' 열풍

또 하나는 일본 사회의 '보수화'  '우경화' 분위기가 그것이다.

몇일 전, 신쥬쿠에서 약속이 있어 외출을 하기위해 언제나 처럼 전철을 탔다. 점심 때가 막 지난 시간이었기 때문인지 승객은 그다지 많지가 않아서 반 정도는 빈 자리였다.

두 세 정거장을 지났을 무렵, 한 70은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이 타셨다. 이리 저리 두리번 거리시다가는 마침 내 맞은편 빈 자리에 앉으셨다. 좌우로 젊은 여자가 앉아 있는 자리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이 할아버님은 좌우에 앉아 있는 젊은 여자들의 인상을 유심히 살펴보시더니, 그 중에 우측 아가씨에게 말을 거시는 거다. 이때 부터가 걸작이다.

할아버님 曰 "요즘 젊은 사람들은 너무 우리 자신(일본)을 모른다. 어디를 가든 맨 그 조선놈들이 만들어 놓은 휴대폰이나 만지작 거리고 있고, 컴퓨터 인터넷에 빠져서 정신 못차리고 있는데, 이래서는 안 된다. 우리 일본이 얼마나 훌륭한 민족인지를 알아야 한다. 메이지 신사(그렇게 들렸다)로 와라. 거기오면 다 가르쳐 준다" 뭐, 요약하면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물론 그 젊은 아가씨는 눈을 감은 채 못들은 척 하고 있었지만, 이에 아랑곳 없이 할아버님은 2~3분을 당신이 하시고 싶은 말씀만 하시고는 일어섰다.

흠, 참.

이럴 때만큼 황당할 때도 없다. 내 앞에서 내 욕을 하고 있는 것이나 매 한가지인데.... 도대체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도 모르겠고.... 빤히 쳐다보면 싸우자는 것이 될테고.... 뭐, 그렇게 연세드신 영감님과 싸워본들 또 뭐할 것이며...

암튼 복잡한 심정 그 자체였다.

그 할아버님이 내리고 나서 한참을 생각해 봤다.
 
도대체 이들은 왜 그렇게 조선 사람(코리안)을 미워하는 것일까? 지나간 역사를 쭉 거슬러 가 보더라도 단 한번도 이들을 해코지 한 적이 없는데,  아니 오히려 우수한 문물과 문화를 일본 땅에 전수해 주었다는 이야기는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인데 말이다.

나도 아이큐가 그렇게 떨어지지는 않는 넘인데도 이 부분은 도대체가 이해가 안된다. 누구 아시는 분 있으면 좀 가르쳐 주시면 고맙겠다. 쩝~

개인적으로 일본 생활 7년차에 들어가는데 이런 광경은 처음으로 목격을 했다. 길거리에서 시위 중인 우익들은 가끔 봤어도 전철 안에서까지 이러다니... 그 만큼 일본 사회가 많이 오른쪽으로 치우져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래도 그 할아버님 텔레비전은 참 열심히 보셨군 하면서 속으로 웃었다. 한국이 IT 산업이 우수하다는 것은 알고 계신듯 한데, 휴대폰을 조선(한국) 사람들이 만들었다고 주장하시는 것은 좀 오버하신 거다.

씁쓸하지만, 한류와 혐한류(우경화)의 상징적인 모습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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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일 상2010. 6. 18. 15:47

일본으로 공부를 하러 온 이후 물가의 지속적인 하락으로 인해 큰 경제적 부담 없이 지금까지 생활 가능했던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지 싶다. 물론, 경기 침체로 인한 장학금의 감소, 아르바이트 임금 삭감 등을 모두 계산에 넣는다면 꼭 그렇게 다행스러웠다고만 할 수도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장학금이라는 불확실한 요소 보다는 생계 유지비라고 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의 지출 감소는 확실히 눈에 보이는 혜택(?) 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물가 또한 슬슬 오르려는 기미를 보이는 것으로 봐서 아무래도 서민들의 생활은 갈수록 힘겨워질 것만 같다. 글쎄, 고이즈미 정권 4년이 남겨 놓은 결과가 차츰 현실화 되고 있는 현상 중의 하나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몇일 전 신문에 규동(牛丼, 쇠고기덮밥) 가격이 인상될 것이라는 기사가 있었다. 규동은 그야말로 없는 사람들의 먹거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돈 없는 서민들의  한끼 식사용 요기거리 였다. 250엔~300엔 정도로 정말 부담 없는 가격에 맛도 꽤나 괜찮았으니까. 게다가 햄버거 가격까지.
 
한편으로 이러한 물가 하락에 못지 않게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이 7년 연속으로 샐러리맨들의 연봉이 감소 - 소득세액은 3.6%가 증가 - 하고 있다는 국세청의 조사 보고서이다. 중·고 소득층이 줄어들고, 연 300만엔 이하 저 소득층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으로 양극화의 심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일반 직장인들에게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아르바이트 시급 역시 계속 떨어져서 한때는 시간당 1000엔을 넘기도 하던 것이 이제는 800엔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게다가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일본에는 프리타라고 하는 부류가 아주 많은 사회다. 쉽게 설명하자면 특별한 직장 없이 아르바이트만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인데, 이들의 수입 역시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경기 침체라는 이유를 명분으로 삭감된 임금은 언제 제자리를 찾게 될지 알 수가 없는 상태에서 물가는 벌써부터 들먹거리기 시작하니 그만큼 서민들의 삶이 더욱 팍팍해질 수 밖에 없음은 불문가지라 하겠다. 결국 이렇게 간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일본 사회 역시 양극화 현상은 한층 심각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OECD(경제협력 개발기구) 회원국 중에 일본의 빈곤율이 5위라는 발표가 있었다. 일본이 빈곤율 5위라는 사실에 의아해 하거나 설마하며 웃어 넘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빈곤율은 절대 빈곤을 의미하는 수치가 아니다. 국민 평균 수입의 절반 밖에 수입이 안 되는 사람들의 비율을 빈곤율로 계산한다니까 그런 순위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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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빈곤율이 근년 들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10년 전에 비해 2배나 늘어나서, 8.4%에서 15.3%가 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은행에 1원 한푼도 저축액이 없는 세대가 10년 새 3배나 늘었다고 한다. 10년 전에 8.8%였는데 지금은 22.1%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부채에 허덕여도 국민만은 부자라는 소리가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 듯 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이와 같은 저소득층의 증가와 더불어 특정한 계층의 저소득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이야기 했던 프리타로 대변되는 젊은층과 직장에서 은퇴한 고령자들의 저소득화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 사실은 일본의 미래를 놓고 보더라도 자칫 사회문제화 될 소지가 크다. 그렇다면 이렇듯 反서민적 양극화를 부추키는 주범은 누구인가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느 저널리스트가 이런 말을 했다. '고이즈미 구조개혁의 실체는 능력 있고 돈 많은 사람들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자유를 주겠다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본인들이 알아서 잘 살아라 라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은 이들(알아서 살아야 할 사람들)이 전폭적으로 고이즈미식 구조개혁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들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 모습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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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정 보2010. 6. 18. 15:45

사실, 외국인으로 남의 나라에 살면서 그 나라의 풍습을 전부 이해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 우선은 현지 주민들과 한 가정에서 생활하지 않는 한 속속들이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기도 어려울뿐만 아니라 자신의 경제적·시간적 제약도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눈에 보이는 정보에만 의존하다 보니 주로 텔레비전에 비치는 모습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그래서 직접 경험이 아닌 간접 경험이 전부가 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의 설날 모습을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 간단하게 그려보고자 한다. 앞서도 엄살 떨 듯 이야기 했듯이 간접경험에 기초하고 있는 만큼 이들에게 감정이입 된 공감대 비슷한 것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각 지역별로 지역적 특색과 차이도 있다고 한다.
 
일본 역시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연말연시가 되면 자주 들려오는 단어가 있다. '귀성'과 '귀경'이란 말이 그것이다. 대도시나 타지로 나가 있던 가족들이 고향을 찾아와서 함께 새해를 맞이하기 때문이다.

    각 가정의 대문에 걸려 있는 오카자리(お飾り)   



    위 사진에서 처럼 새해가 되기 4~5일 전부터 각 가정마다 대문에 오카자리(お飾り)라는 것을 걸어둔다고 한다. 이는 새해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하는데, 사진에서도 보이는 것과 같이 여러가지 재료들로 구성되어 있다.

    풀고사리는 장수를 의미한다고 하며, 굴거리나무는 후세까지의 복을 비는 것이고, 오렌지 즉 주황색은 집이 대대로 번영하도록 해 달라는 의미이며, 다시마는 기쁨을, 새우는 허리가 구부러지도록 산다는 것으로 장수를 바라는 것이라고 한다.


    ▲  카도마쯔(門松)의 모양도 다양하다 



    새해 전 날쯤이 되면 역시 대문 양쪽에 카도마쯔(門松)라는 것을 설치해 두는데 한자 의미 그대로 문에 두는 소나무 정도가 될 것이다. 카도마쯔 역시 종류가 다양해서 사진에서처럼 소나무 가지로만 된 것도 있고 화분모양으로 된 것도 있으며, 대나무와 소나무가 함께 구성된 것도 있다. 소나무만 쓰다가 중세 이후에 대나무도 함께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카도마쯔(門松)와 오카자리(お飾り)는 비슷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소나무의 푸르름과 대나무의 곧음은 집안의 무병장수, 대대손손 번영을 의미하기도 하고 신이 내려올 때 집 주위를 청결하게 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불교의 영향이 깊음을 알 수 있다.



     

    메밀국수(年越しそば)를 먹으면서 격투기를 시청한다  



    새해 전날인 12월 31일은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앉아 메밀국수(토시코시소바, 年越しそば)를 먹으면서 새해를 맞거나 텔레비전을 시청한다. 메밀국수를 먹게된 유래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다. 긴 메밀국수 가락처럼 오래오래 장수하라는 의미도 있고, 쉽게 끊어지는 국수 가락처럼 지난 한 해의 액운을 모두 끊어 버리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온 가족이 오손도손 둘러 앉아 함께 새해를 맞이할 수 있다는데 가장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때 가장 즐겨보는 유명한 프로그램이 NHK의 가요홍백전이라는 것으로 우리나라의 가요청백전과 비슷한 쇼 프로그램이다. 가수들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을 일생의 영광으로 생각할 정도라고 하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요즘은 비슷한 시간대에 방영하는 경쟁사의 격투기(프라이드) 프로그램에 많은 시청자를 빼앗겼고, 또한 NHK 내부의 불미스러운 추문 등으로 인해 인기가 많이 시들해졌다.


    ▲  오죠니(お雑煮) 



    ▲  오죠니(お雑煮) 셋트



    그리고 드디어 새해 아침이 되면 떡국을 먹게 되는데, 이들은 오죠니(お雑煮)라고 부른다. 물론 지방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고 한다. 오사카나 교토 지방은 미소(된장)로 끓인다고도 하고 동경을 중심으로 한 관동지역은 간장으로 간을 맞춘다고 한다. 내가 먹어본 떡국 역시 사진에서와 같이 간장 국물에 모찌라는 직사각형 떡을 넣고 끓인 것이다.
     
    다들 자기 나라의 먹거리가 최고라고 하지 않는가? 참고로 일본인들은 일본에서 태어나서 참 다행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왜냐하면 일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먹을 수 있어서 그렇단다. 그래도 나는 역시 우리 떡국이 먹고 싶다. 얼큰한 김치만두와 함께 말이다.


    오세치(お節) 요리


    또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설날 음식에 오세치(お節)라는 것이 있다. 설날에는 밥 대신 오세치를 먹는다. 찬합에 차곡차곡 넣어두고 먹을 때 마다 꺼내 먹는 것이다.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오세치 요리는 우엉, 새우, 다시마, 연근, 검은콩, 무 등을 조리한 것으로 맛은 약간 달착지근하다. 각 요리 재료마다 깊은 뜻이 담겨 있다고 하는데 예를 들면 구멍이 송송 나 있는 연근은 지혜의 눈을 의미하고, 긴 수염이 달린 새우는 장수를 의미하며, 검은콩은 열심히 노력하라는 의미이고, 다시마는 일년 내내 좋은 일만 생기기를 기원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앞서 이야기 했던 오카자리와도 비슷함을 알 수 있다.


    ▲  오죠니(お雑煮) 셋트와 토소(屠蘇)   



    오죠니와 오세치 거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불로장수를 기원하는 술 토소(屠蘇)라는 것이 있다. 온 가족이 아침 식사를 하면서 마시는 술로 악한 기운을 멀리하고 건강에 좋다고 하며 3번에 나누어 마시는데, 주로 니혼슈(日本酒)나 맥주를 마신다.


    ▲  오토시다마(お年玉)


     

    대략 20세 이하의 젊은 사람들은 우리나라처럼 오토시다마(お年玉)라는 세뱃돈을 받는다. 그냥 돈을 건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해서 하나 하나 봉투에 담아서 주며 봉투에는 연이나 매화가 그려져 있다.
     
    이렇게 아침식사를 끝내고 세뱃돈을 주고받은 다음에는 신사참배를 간다. 새해 첫 참배를 하쯔모우데(初詣)라고 하며, 그 인파도 엄청나서 동경 신주쿠 근처에 있는 유명한 신사인 메이지신궁(明治神宮) 같은 경우에는 매년 전국에서 가장 많은 290만 명 정도의 참배객이 다녀간다고 한다. 
     
    설날의 주된 놀이로는 줄다리기, 팽이치기, 연날리기 등이 있다고 하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동경 도심에서는 구경하기 힘들고 지방에서나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5:42

    일본의 언론 보도에 의하면 현재 일본 내에 있는 외국계 학교의 졸업생들에게 대학입학 자격을 주지 않음으로 인해서 외국계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대학을 진학하기 위해서는 대학입학 자격 검정 시험(대입 검정 고시)을 통과해야 하는 등 많은 불이익을 당하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문부과학성(교육부)에서는 외국계 학교 졸업생들에게도 대학 입학 자격을 주는 것을 검토하고 있으나 조선 · 한국계 학교를 졸업한 학생 등 아시아계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제외시킬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자칫 교육 기회의 불평등 · 민족 차별이라는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현재 진행중인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와 북한 핵 문제가 주요한 이유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이런 일련의 문제와 전혀 관계가 없는 학생들을 볼모로 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재 일본에서 외국계 초 · 중 · 고교에 재학중인 대다수의 어린 학생들은 재일3 · 4세들로 일본에서 태어났고 성인이 되어서도 일본 땅에서 일본인들과 함께 사회생활을 해야 할 젊은이들이라는 사실이다.

     


    현재 일본 내에 있는 외국계 학교는 총 120개로 그 중에 미국계가 20개, 조선학교 90개, 한국학교와 화교계 학교 등이 10개로 총 2만 1천명의 학생 중 조선학교 학생이 만 천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일본 사회에서 거세게 불고 있는 매스컴과 일부 정부 당국자에 의한 편파적인 북한 때리기 그리고 민족학교 학생들에 대한 폭력과 이지메(괴롭힘)가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 같은 발표가 나옴으로 해서 일본정부의 사태 해결 의지에 상당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일본 변호사연합회의 야바나(矢花公平) 변호사는 "문부과학성의 이번 방침은 일본헌법,유엔인권규약에 위반되며, 유엔의 어린이 권리위원회의 권고에도 저촉되는 중대한 사안으로 심한 분노를 느낀다.

     

    일본 변호사연합회는 외국계 학교에 대한 차별은 중대한 인권침해행위라고 인정,1998년 2월 일본정부에 대하여 조선학교를 포함한 일정의 요건을 갖춘 모든 외국인학교에 대하여 조속히 수험자격을 인정하도록 시정권고를 낸 바 있다.

     


    문부과학성의 이번 방침은 단순히 시대에 역행하고 있을 뿐 아니라 조선학교 학생들에 대한 이유 없는 폭행,폭언사건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것을 시정해야 하는 입장에 서 있는 일본정부 스스로가 조선학교를 차별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결정으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밝히고 모든 법적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화해와 협력, 평화와 공생은 편협한 자아 중심적 사고가 아닌 상대에 대한 이해와 노력에 의해서만 실현 가능한 것이다. 또한 동반자적 한·일 관계의 중요성은 지나간 역사의 오점으로 남아 있는 배타적 자국 중심의 부정적인 세계관을 걷어내고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 가능한 긍정적인 세계관으로 바꿔보자는데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차별과 불평등이 잔존하는 한 이런 우리의 바람은 요원할 수 밖에 없다. 다시금 일본정부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한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