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6:10

노무현 대통령께서 담화문 형식을 빌려 내 놓으신 대일 외교 선전포고가 일본 열도를 강타한지 4일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강한 여진은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아직 아무런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는 일본 정부 내에서는 물론이고 여·야를 비롯한 일본 정치권에서도 이 문제를 놓고 온갖 설들이 난무하고 있다.

물론 이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나누어 볼 수가 있다. 그 하나의 대표적인 예가 코이즈미 수상이나 호소다 관방장관이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미래지향적 관점에 입각해서 한·일관계를 만들어 가자는 주장이고, 또 하나는 강경그룹 멤버들의 대 놓고 비난하기가 그것이지만 한국 국내용으로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자든 후자든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전자의 경우는 이미 우리 언론에서도 많이 소개를 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을 하기로 하고, 후자에 해당하는 부류들의 주장을 간략하게 소개를 하고 가도록 하겠다. 왜냐하면 그게 바로 이들의 본심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언론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외무성의 한 간부는 ‘담화를 몇 번 읽어봐도 한국이 어떻게 하고 싶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라며 당혹스러워 했다고 한다. 나는 한번만 읽어봐도 알겠던데… 다소 독해력이 떨어지는 인물이 일본 외무성에도 있는 모양이다.

또한 24일 있었던 자민당 외교 관계 합동 회의에서는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기하자는 안 등이 나오기도 하면서 한국에 대한 강경론이 잇따랐다고 한다.

나는 이미 앞선 글에서 요즘 불거지고 있는 한·일 갈등의 원인을 일본헌법 개정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을 했고, 바로 그런 점에서 우리 정부의 대응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바 있다. 그런데 이런 나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내용의 문서 하나가 자민당에 의해서 발표되었다. 자민당이 창당 50주년을 맞이하면서 내 놓은 개정 <新이념·정강>이 그것이다. 전문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국가를 실현한다. (2) 자국의 안전은 스스로 지킨다고 하는 기개와 사명감을 갖고 이의 실현에 공헌한다」

결국은 (1)과 (2)의 앞뒤 순서가 바뀌기는 했지만 정리하자면 이런 거다. 「군대를 보유하고 해외파병이 가능한 보통의 국가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현행 일본 헌법하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이는 바꿔 말하면 헌법을 개정하겠다는 의미이고 또한 그렇게 받아들여도 무방할 것으로 본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의 우리정부의 대응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결코 쉽지 만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나 자국의 국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변국을 끌어들여 위기상황을 조장하고 있는 현실, 그리고 그것이 결코 일본 국내만의 문제가 아닌 동북아 지역의 안전보장과 관련된 사안임을 감안해볼 때 더욱 그렇다. 그래서 우리정부가 내 놓을 수 있는 카드가 마땅치가 않고, 또한 한정될 수 밖에 없다는 어려움이 있다. 바로 이런 점들을 고려해서 일본의 과거사 청산 문제는 물론이고, 앞으로 일본의 재군비와 동북아시아 세력 균형에도 관계가 있는 다소 포괄적인 수준의 제안을 하나 하고자 한다.

한국, 북한, 중국, 대만, 필리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과거 일본으로부터 침략을 당했던 국가들이 미국과 러시아까지를 끌어들여 동아시아 다자안보 협의체로서의 동아시아조약기구(EATO, East Asia Treaty Organization) 설립을 적극 추진해 보자는 것이다. 즉, 주일미군을 동아시아조약기구(EATO) 군(軍)으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닮은 점은 있으나 지향점은 많이 다를 수 있다. 우선 북대서양조약기구는 소련(러시아)에 대한 집단안전보장의 성격을 띄고 서유럽의 군사적·경제적 지원을 목표로 설립이 되었으나 동아시아조약기구(EATO)는 전적으로 일본의 안전보장과 군사적 지원을 목표로 설립한다는 것이 차이점 이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지난 15일 "6자회담을 발전시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처럼 국가 간 갈등을 다루는 기구로 만들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이 미국의 역할"이라고 말해 주목을 받았는데, 이 구상을 일본의 안전보장 문제로 돌려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현재 북핵이 문제가 되고 있는 직접적인 이유도 일본의 안전보장과 직결된다고 보기 때문으로 그래서 이 제안은 더욱 설득력이 있다.

이 같은 제안의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가 있는데, 우선은 재군비를 원하는 일본의 의사를 절대적으로 존중하고(그토록 재군비를 하고 싶어 하는데 못하게 하는 방법 보다는 하되 그릇되지 않게 하도록 하는 게 효과적이지 않겠는가) 또한 동북아시아 지역의 분쟁 해결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동북아 문제는 동북아 국가들이 해결하라)을 십분 고려한 제안이다.

두 번째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후, 새롭게 세계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독일과 일본이 걸어온 길은 아주 판이하게 달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일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라는 틀 속에서의 재군비가 이루어지면서 과거 나치로부터 침략당했던 국가들의 의사가 적극 반영되어 투명한 과거사 청산과 재군비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의 상황은 일본으로부터 침략당했던 주변국들은 모두 미국에 의해서 사회주의라는 구실이나 이런 저런 핑계로 따돌림을 당한 채 미군 단독의 점령군 주둔 형식을 띄면서 미국의 기지국가로써의 식민지적 지배체제가 굳어져 버렸다는 사실이다.

바로 여기에 일본사회의 거대 모순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라도 이렇게 잘못 꿰어진 단추를 올바르게 바꿔 꿰도록 하자는 것이고 이렇게 함으로써 일본사회의 모순, 아니 더 나아가 아시아의 국가간 지역적 문제 역시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나는 확신한다.

동북아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우리정부가 전면에 나서서 「미·일 안보조약」을 「동아시아조약기구(EATO)·일본 안보조약」으로 대체하는 안을 만들어 적극 주장해 보면 어떨까 싶다. 또한 국제 사회에 이 문제를 크게 부각시키고, 대일·대미 외교의 유용한 카드로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충분히 검토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동아시아조약기구(EATO)의 틀 속에서 일본의 헌법개정과 재군비를 실현시켜 주고, 이를 통해 국제업적을 쌓을 기회를 부여토록 하자는 것이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