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 사전 지식-아는 만큼 보인다” 시리즈를 준비합니다.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가로지르는 고대사 대장정입니다. 한반도 문화의 일본 열도 전파라는 주제로, 대략 6개월에 걸쳐 가야, 백제, 신라, 고구려 각 10편씩 총 40편을 연재할 계획입니다. 이 정도의 사전 지식은 갖고 일본 여행을 가면 좋겠다 싶은 내용으로 선정해서 기술할 예정입니다. 일본 땅에 깃들어 있는 한반도 개척자들의 혼과 열정을 기대해 주십시오.

 

가야편 제1

"일본 열도에 남겨진 가야의 흔적: 사라지지 않은 기억"

 

가야는 기억 속에서 희미하게 사라진 듯하지만, 실은 사라진 적이 없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이 말이 다소 생뚱맞거나 의아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한반도 남부의 여러 소국 연맹이었던 가야는 기원후 6세기 중엽까지 제철 기술과 해상교역을 바탕으로 나름의 세력을 형성했다. 하지만 562년 대가야가 최종적으로 신라에 병합되며 역사의 중심 무대에서는 물러났고, 이후 수백 년 동안 '부록적 존재'로만 다루어져 왔다. 그러나 일본 열도에서 다시 바라보면, 이 작고 복잡한 나라의 흔적은 생각보다 광범위하고, 깊고, 무엇보다도 지속적이었다.

 

가야와 일본 열도, 단순한 이주가 아니었다

 

일본 열도에서 발견되는 다수의 유물, 유적, 문화재, 사찰, 고분군 등을 그저 '한반도 계통'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통칭하곤 한다. 그러나 이 중 상당수가 가야계 개척자들의 자취라는 점은 아직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후쿠오카, 사가, 구마모토 등 규슈 지역과, 야마구치, 오사카, 나라, 교토에 이르기까지 일본 고대 문화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지역들에는 가야계 인물과 집단이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이들은 단순히 흘러 들어온 기술자나 유민이 아니라, 체계적인 기술과 제사 지식, 심지어 정치 제도까지도 전달한 '문화 이식자'였다.

 

예를 들어, 고대에 편찬된 일본 역사서 『속일본기』에는 아야씨(東漢氏), 다카무코씨(高向氏), 사키씨(狭城氏) 등 한반도계 귀족 가문이 신라 · 백제 출신으로 소개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실질적으로는 가야계특히 대가야나 금관가야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아야씨는 신사 건축과 궁중 제의, 천문과 복식, 금속공예에 이르기까지 조정 핵심 기술을 담당했다. 이는 단지 한 명의 귀화 인물이 아니라, 일종의 전문가 네트워크가 조직적으로 일본 조정과 융합되었음을 시사한다.

 

고분과 철기, 묻힌 시간 속에서 되살아나는 목소리

 

후쿠오카현의 이토시마 평야나, 사가현 카라쓰 지역의 고분군은 한반도 고령의 '지산동 고분군'과 여러 구조적 유사성을 보인다. 전방후원분(前方後円墳, 3세기~6세기 일본 고분 시대에 등장하는 대표적 무덤 양식) 형태가 일본 고유의 것이라 주장하지만, 그 중 상당수는 한반도 남부에서 출토된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 덧널(목곽)을 짜고 그 위에 냇돌을 쌓아 봉분을 만들고 그 위에 다시 봉토를 덮어 쌓는 무덤 양식) 계통과 혼합된 구조를 보이며, 특히 내부 석실의 배열이나 부장품 구성 방식이 가야 고분과 매우 닮았다.

 

이를 구조적 유사성과 상호 영향이라는 관점에서 구체화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내부 석실의 형태를 보면, 규슈 지역의 일부 전방후원분 내부에서 가야 돌무지덧널무덤과 유사한 횡혈식 석실 구조가 발견된다. 또한 무덤 속 부장품 역시 장검, 철기류, 토기 등으로 이것들의 배치방식이 서로 유사한데 특히 규슈 고분에서 가야계 토기나 무기가 출토되는 사례도 있다. 봉토 형식에서도 흙만 덮는 일본식 전방후원분과는 이질적이게도 돌을 혼합하여 쌓는 적석식 요소가 규슈 일대의 고분에서 발견된다. 대가야나 금관가야 고분과의 유사성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대표적으로 구마모토현(熊本県)에 위치한 '에타후나야마 고분(江田船山古墳, 5세기 후반)'이다. 전방후원분이기는 하나, 내부 석실은 횡혈식으로 돌을 쌓은 적석구조가 일부 확인이 되고, 대형 철제 무기와 방패, 가야계 장검류가 다수 출토되었다.

 

전방후원분과 돌무지덧널무덤의 예

 

가야에서 건너온 이들은 철을 만들 줄 알았고, 철을 다루어 무기를 만들 줄 알았으며, 철제 농기구로 새로운 농업 혁명을 이뤄냈다. 특히 일본 열도의 서북부 즉, 규슈 북부와 야마구치, 오카야마 지역에는 지금까지도 대형 제철 유적지가 다수 남아 있다. 그중 일부는 고령 지역의 제철 슬래그(쇳물 찌꺼기)와 동일한 성분 분석 결과를 보였으며, 이는 실제로 고령계 개척자가 해당 지역에 대규모로 정착했음을 시사한다.

 

야마구치현 히카리시( 光市) 지역에서는 탄소연대측정과 고고학적 층위 분석을 통해 5세기 초부터 시작된 고온 제철로 흔적이 확인되었고, 여기에 동반 출토된 철제 농기구와 무기는 고령 대가야 지역에서 확인된 것과 양식이 거의 일치했다. 이는 단지 기술의 전파가 아니라, 기술 집단의 이주를 증명하는 강력한 증거이다.

 

신사의 구조와 제례 방식에 남겨진 가야의 제사 체계

 

가야는 그저 철을 다루는 기술자 집단이 아니라, 신관 계급을 포함한 제사 국가이기도 했다. 대가야 왕실은 고대 동아시아에서 드물게 왕권과 제사권이 결합한 정치 구조를 유지했고, 이는 곧 일본의 야마토 왕권 초기의 제사 시스템과 깊은 관련이 있다.

 

예컨대, 일본 신사의 가장 오래된 형태로 평가받는 '이즈모 대사 (出雲大社, Izumo Taisha)'는 제사의 주체가 천손강림이나 황족 중심의 천손 제사 구조에 종속되지 않는 토착의 신관 계층이라는 점에서 대가야와 유사한 이중 권위 체제를 떠올리게 한다. 신사의 운영은 '이즈모 가문(出雲氏), 이즈모 신관 가문(出雲臣)' 같은 토착 신관 가계가 맡아 왔다. 이즈모 대사는 일본 시마네현 이즈모시에 위치한 일본 최고(最古)의 신사 중 하나로, 오오쿠니누시(大国主神)를 주신(主神)으로 모신다. 오오쿠니누시는 지역 공동체와 씨족의 신이다. 중앙과는 별개의 권위체계를 가졌던 지방신이다. 중앙신은 황족신인 아마테라스(天照大神)나 타케미카즈치(武甕槌神) 등으로 이 신들은 일본 황실의 조상신이자 신화 체계의 중심에 있는 신들이다.

 

대가야 역시 왕과 별도로 존재하는 신관 계급이 제사의 주체였다. , 왕과 제사장이 분리되어 존재하는 정치체제였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을 포함한 대가야 고분군에서는 '이중 묘역 구조'가 확인되는데, 이는 왕과 제사장의 공간이 구별된 것임을 뜻한다. 즉, 왕권과 제사권이 일치하지 않으며, 제의 공간이 지배자 공간과 별도로 구축되어 있다. 제사를 담당하는 별도의 신관 계층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가야와 열도 간 이러한 유사성은 단순히 제사 형식의 닮은 형태를 넘어서 정치권력과 종교 권위의 구조적 모델의 공유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또한, 일본 신사에 남아 있는 영혼을 모시는 전각 '타마야(魂殿)' 개념은 고령에서 출토된 가야식 제의 시설과 구조적 일치를 보인다. 타마야는 고대 일본의 신사나 고분에서 발견되는 영혼을 모시는 구조물을 말한다. 죽은 자의 영혼이 머무는 공간으로 고분 인근이나 신사의 영역 안에 신전으로 구축된다. 이러한 공간은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서 발굴된 대형 고분 일부에서도 발견되는데, 고분 본체 외부에 별도로 구성된 제의 시설이다. 이 구조물은 무덤 부속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혼령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한 공간 즉, ‘혼의 공간으로 해석된다. 이 외에도 건축의 고상가옥 구조라든가 제단과 일반 영역의 분리 방식, 제사에 사용된 청동거울과 도검류는 가야식 제사의 틀을 일본에서 구체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타마야(魂殿)의 일종

 

토기, 언어, 복식보이지 않는 문명의 확산

 

가야계 개척자의 영향은 건축이나 철기, 고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문명의 바탕을 이루는 토기에서 그들의 존재는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스에키(土師器)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일본 고대 회청색 도기는, 본질적으로 가야의 계림식 토기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는 김해 및 고령 지역에서 제작되던 고온 소성 토기의 기술적 전승으로, 반지하식 돌가마 구조와 1,000도 이상의 고온 소성 온도 조절 기법, 회청색 점토 처리 방식 등이 고스란히 일본 열도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가야의 계림식 토기가 대략 3세기 후반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반면, 스에키는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에 생산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문화의 전이 과정 자체라 할 것이다.

 

스에키(土師器)

 

이 외에도 일본 고대 야마토 왜 정권 시기(4~6세기) 궁중 복식에서 보이는 금속 장식의 결합 구조나 허리띠 장신구, 복식 도해 문양은 김해 양식과 유사한 사례가 많으며, 이는 금관가야 중심의 귀족 양식이 일부 왕과 대신 등 귀족층에 수용되었음을 시사한다. 금관가야는 철기와 금속 공예 기술이 뛰어나기로 유명했으며, 귀족 계층의 복식에서도 그 기술력과 화려함이 잘 드러난다. 청동이나 철 또는 금속판으로 만든 허리띠에 여러 개의 금속 장식물을 달아 복식에 위엄과 장식을 더 했는데, 이러한 장신구는 단순한 꾸밈이 아니라 신분과 지위, 혹은 종교적 의미를 지닌 상징물이기도 하였다. 복식 문양에서도 반복적인 기하학무늬나 동물 문양을 새겼으며, 용 · 새 · 해 등의 도상은 제의와 관련이 있다.

 

이러한 복식 문화는 일본 고대 궁중 복식과도 매우 유사함을 보이고 있는데, 궁중 고관의 복식에서 보이는 포(긴 옷)와 띠, 장신구의 조합이 금관가야의 엘리트 복식과 매우 유사한 형태로 등장한다. 장신구 부착 위치나 금속제 고리 장식 등이 대표적이다. 구마모토현 다마나시(熊本県 玉名市)의 '에타후나야마 고분(江田船山古墳)'에서 출토된 허리띠 장신구는 김해 '대성동 고분'에서 나온 것과 형태, 연결 방식, 장식 기법이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대 복식 형태

 

기억의 실타래를 다시 잇기 위한 여정

 

결국, 우리는 이 모든 흔적을 통해 단 하나의 진실을 바라보게 된다. 가야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일본 열도로 이동하여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기술, 제례, 예술, 정치적 위상은 일본의 고대 국가 형성과 문화 정착기에 중요한 자산으로 기능했다. 일본이 야마토왜 왕권 체제를 구축해 나가던 시기, 가야계 개척자는 단순한 기술자가 아닌 동아시아 문명권의 전이자로서 존재했다.

 

여기서는 '가야의 일본 정착'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고령계, 김해계, 성산가야계, 대가야계로 구분하여 각 계통이 일본 열도에서 어떻게 활동했는지를 추적할 것이다. 특히, 일본 각지의 유물 · 유적 · 사찰 · 신사 · 고분 · 기술유산 등을 하나씩 짚으며, 그 속에 숨어 있는 가야의 흔적을 밝히는 데에 집중할 예정이다. 가야를 잊지 않고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7년~현재/시 사2018. 12. 22. 19:28

오전에는 일본에서 오신 지인을 만나 차 한 잔을 나눴다. 내년에 일본에서 개최될 3·1평화운동 100주년 행사 소식 및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 두 개의 단상이 꼬리를 물듯 지나간다. 
 
하나, 국가 간 공생과 평화란 어떤 경로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일까? 단적으로, 한·일관계의 미래상이 그렇다. 과거 김대중 국민의 정부시절 일본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 총리와 함께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주창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올해로 20주년이 된다. 1998년 10월에 채택한 합의문이니 말이다. 
 
그 당시 쌍수를 들어 환영을 하고, 공감을 표하기는 했는데 묘한 의문 또한 가시지를 않았다. 묘한 의문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 실현 방안이 참 막연하다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기억으로는 ‘셔틀외교 정례화’, ‘청소년 교류 확대’, ‘대북(한) 공조’ 등이었던 것 같다. 과연 그렇게 하면 한·일관계가 파트너십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선언적 의미 이외에 뭐가 있을까? 다소 심경이 복잡했던 것 같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음은 자명한 이치다. 아마도 그것을 거스르는 나의 조급증 탓에 더 애가 달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또한 오부치 총리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인해 큰 진전을 보지는 못했다. 

 
둘, 2005년쯤에 책 한 권을 번역했다. 좋은 책이라서 한국에도 소개를 해야겠다는 생각 외에 딱히 언급할 내용이 없어, 역자 서문도 짤막하게 썼다. ‘한·일시민연대를 부활하자’, ‘한국의 민주주의를 일본에 수출하자’... 뭐 대충 그런 내용이었던 같다.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와 노무현 돌풍(개미들의 반란)이 거세게 휩쓸고 지나간 후였다. 일본생활에서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당당하고, 떳떳했던 그런 시절이었다. 아마도, 그 영향 때문에 다소 자기만족적인 그런 역자 서문을 썼지 싶다. 
 
이후, 퇴행적으로 펼쳐지는 한국의 정치 상황들 앞에서 나는 정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다시 수구세력들은 득세를 했고, 나라는 거꾸로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15년 지기 지인 분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내 생의 지나간 과거 어디쯤엔가 있을 법했던 위 두 가지 역사들이 사실은 종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내 삶에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있더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지인 분께서 대충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내년이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새로운 한·일관계의 뿌리는 바로 3·1운동에서 찾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한국 근대사 역시 3·1운동을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 3·1운동이 한국 근대민주주의의 씨앗이었다면, 이를 모태로 87년 민주화항쟁이라는 나무가 자랐고, 그 나무 위에 김대중 민주정부로의 정권교체라는 가지가 나왔으며, 그 가지에서 촛불혁명이라는 시민민주주의의 찬란한 잎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이 도도한 민주주의의 물줄기를 일본으로 흐르게 하여, 일본인들이 보고 배우게 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일본인인 나만의 몫이 아니라 일본과 한국의 시민들이 함께 해야 한다. 그러자면 서로의 연대가 다시금 필요하다.” 그런 말씀이셨다. 
 
물론, 나 또한 강하게 공감했다.  
 
“맞습니다. 한·일관계, 아니 동아시아 역사에서 3·1평화운동은 단지 대한의 독립만을 위한 저항(즉, 반일운동)이 아니었습니다.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저항운동 이었습니다. 우리도 3·1독립운동을 3·1평화운동으로 바꿔 불러야 합니다. 일본 국민들이 이 부분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면, 일본사회 내에서 3·1평화운동이 갖는 의의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독립 만세'를 ‘동아시아 평화 만세’로 이해하고 받아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역사왜곡도 과거사에 대한 부정도 없는, 한·일관계가 비로소 새로운 단계로 진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그것이 동아시아 평화까지를 견인해 내는 힘찬 동력이 될 것입니다.” 

 
세계는 지금 무한 경쟁, 패권 전쟁 중이다. 그 와중에 한반도는 시대에 역행(?)하여 평화체제를 구축해 보겠다고 몸부림치고 있다. 경쟁과 분열이 아니라 평화와 공생으로 가자고 발 벗고 나서고 있다. 분단의 장벽을 걷어내고 끊어진 허리를 잇자고 손을 맞잡고 있다. 그러니 그게 두려운 일본이다. 
 
그래서다. 이쯤에서 우리는 믿음(신뢰)으로 화답해야 한다. 평화체제 한반도가 주변국(일본)에게 위협이 아닌 평화임을, 경쟁과 전쟁이 아닌 화해와 상생의 길임을 적극 알리고 상호 공감해야 한다. 한·일시민연대가 지향해야 할 목표가 있다면, 바로 이것일 것이다. 
 
동아시아의 평화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통해 시작되고 또한 그로 인해 완성된다고 하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상호 신뢰를 쌓아 가는 일, 새로운 한·일시민연대가 가야만 할 길이다.



▲ 3·1평화운동 100주년 기념행사 팜플렛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7년~현재/시 사2013. 10. 29. 11:35

집단적 자위권이란 자국의 동맹국이 제3국으로부터 침략을 당했을 때, 이를 자국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해 공격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한반도에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불거지면서 집단적 자위권 문제가 심심찮게 우리 언론에 오르내린다.

 

하지만 이게 어디 어제 오늘의 문제인가? 자위대의 해외파병을 가능케 했던 평화유지군(PKO) 활동 참여 때부터 이미 예견되어 있던 일이다.

 

당시, 일본 국내외에서 일본 자위대의 평화유지군 참여 문제를 놓고 논란이 분분했다. 하지만 대세는 유엔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하나인 평화유지군 참여 역시 집단적 자위권의 연장이므로 자위대의 참여는 명백한 일본헌법 위반이라는 지적이었다.

 

그렇다면 일본이 그토록 추진코자 하는 집단적 자위권의 대상 국가는 어디일까? 이는 다시 말해, 일본이 가상의 적국으로 간주하는 나라가 어디인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 하겠다.

 

우선, 냉전시대의 가상 적국은 말할 것도 없이 소련이었다. 그 후, 소연방의 해체와 더불어 새로이 등장한 가상 적국은 중국, 그 다음이 북한이라고 보면 되겠다.

 

이는 바꿔 말해, 결국 현재 일본 정부가 가장 크게 염두에 두고 있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대상 지역은 한반도가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는 비단 일본만의 독자적인 판단은 아닐 거다. 큰 틀에서 봤을 때, 미·일 군사협력 체제와 미군의 세계 방어 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논리가 더 설득력이 있다.

 

일본은 미국의 기지국가에 불과하다. 패전과 동시에 미·일 관계는 앞서 설치는 쪽과 뒤를 봐주는 쪽으로 결론이 났기에 그렇다.

 

나는 개인인적으로 일본의 평화헌법이 일본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자주적 헌법일 것이라는 견해에 적극 동조한다. 일부의 일본헌법 개정론자들은 당시 맥아더 사령부의 강압에 의해 굴욕적으로 만들어졌으므로 자주적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종전을 위한 협상에서 일본을 거의 속국처럼 만들어 놓은 미국 정부가 굳이 일본의 평화헌법 제정에 적극적이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지금도 미국 정부의 진정한 속내는 조속한 평화헌법의 개정으로 군대보유가 가능한 일본을 만들어 미·일 군사 안보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이라 판단하기에 더욱 그렇다.

 

일본과의 지나간 과거사 문제부터 영토분쟁, 나아가 일본산 수산물의 수입문제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미국의 입김을 완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작금의 한·일관계의 현주소다.

 

말해 무엇 하겠나? 대한민국 내의 친일문제 해결 역시 미국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해도 절대 지나친 억측이 아니다.

 

그렇다고, 앞으로의 한·미관계가 미·일관계 보다 더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역시 아주 난망한 문제다. 경제력으로 보나, 기술력으로 보나, 인구면으로 보나, 말 잘 듣는 것으로 보나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미국의 제1파트너가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햇볕정책과 대북협력 정책이 몹시도 그리운 이유가 말이다. 

 

요즘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남북정상회담의 대화록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 유시민 저, 돌베개』에 나오는 노무현대통령님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말씀 한두 구절씩만 인용해 보겠다.

 

먼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말씀이다.

 

"남쪽 사람들이 좀 자주성이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자꾸 비위 맞추고 다니는 데가 너무 많다. 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자주성이 없다 하면 너무 인격 모독하는 것 같은데, 좋게 보면 눈치 보는 데가 많고, 우리 입장에서 보면 자기 주견대로 말을 못 하는가, 이렇게 내가 생각했습니다."

 

이어서 노무현대통령님 말씀.

 

"자주의 문제를 많이 제기 하시는데, 영국 토니 블레어 자문을 하는 기든스가 영국이 미국에 너무 의지하지 말고 좀 자주적으로 가라. 유렵을 중시하라. 이렇게 조언을 해 놓은 것을 봤습니다. 영국도 보기에 따라 자주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 수준으로 올려버리면 세상에 자주적인 나라가 북측에 공화국밖에 없고 나머지는 다 덜 자주적인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우리가 미국에 의지해 왔습니다. 그리고 친미국가 입니다. 객관적 사실입니다. (중략) 그래서 난 시간이 좀 필요하다. 점진적인 자주로 가자. 김대중 대통령이 들어서시기 전까지는 점진적 자주에 대한 의지도 없었습니다."

 

또 다른 논의 중에 하신 노무현대통령님의 말씀.

 

"우리가 선진강국이 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하고 적대관계, 관계정상화 풀어야 하고요. 일본하고도 아니꼬워도 문제를 풀고 가야 합니다. 남북이 말하자면 완전한 협력관계에 들어서고 북측이 국제관계에 들어서고 나면 쫓아내지 못하거든요. 지금은 세게 하면 고립이 되지만, 자리를 잡고 난 뒤에 세게 하면 자주가 되거든요. 자주가 고립이 아니라 진짜 자주가 될 수 있도록 그렇게....."

 

노무현대통령님의 비극적인 짧은 생은 어쩌면 저런 사고(思考)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대단히 불안한 자주론으로 읽혔을 수도 있는 말씀이라 사료되기에 그렇다. 그래서 아마도 국내외적으로 많이 외로우셨을 거다.

 

긴 말 필요 없다. 우선 중요한 것은 남과 북의 확고한 평화에 대한 의지다. 그리고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일이다.

 

통일? 그것은 그렇게 서로 협력하여 남과 북의 경제규모가 비슷한 수준까지 향상되고, 사람간 인적 교류도 어느 정도 이루어진 후에나 얘기될 수 있는 문제다.

 

지금은 통일을 논할 단계가 아니다. 평화와 신뢰구축 그리고 협력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일이 시급한 당면 과제다. 통일은 잠시 접어 둬라.

 

우리가 힘을 기르는 일을 게을리 하고, 허구한 날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나 하고 있는 이런 현실에서는 결코 한반도의 독자적인 힘으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막아낼 도리가 없다. 절대 불가능하다고 확신한다. 30년 후에도 이리 살텐가?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7년~현재/시 사2013. 8. 15. 13:10

오늘은 광복절이자, 패전의 날이자, 승전의 날입니다. 누구에게는 승리가 누구에게는 광복이 되었고, 또 누구에게는 패전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얄궂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렇듯 주체가 서로 다르다보니 역사의 실타래는 제대로 풀리지 못하고 꼬일 대로 꼬인 채, 지금 여기까지 와 있습니다.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기는 합니다만, 더욱 한심스러운 것은 이런 역사적 사실을 직접 목도하고서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는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2001년으로 기억이 됩니다. 그해 8월 15일. 바로 오늘이지요. 뭐, 일본이라고 해서 다 전쟁광들만 사는 곳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을 다들 패전의 날로 인식하는 것만도 아닙니다.

 

다시는 불행한 전쟁의 역사를 만들지 말자는 제대로 된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도 일본 인구의 반 이상은 됩니다.

 

그날, 저는 아는 선배와 의기투합해 달랑 둘이서 200명 남짓한 '평화유족회' 회원분들의 거리행진에 함께 했었습니다.

 

지금 기억으로는 도쿄 요츠야)역 근처에서 간단하게 반전평화 집회를 한 후, 이곳을 출발해 야스쿠니(靖国) 신사까지 약 2km 정도를 걸었던 것으로 생각이 드는군요.

 

목에는 커다란 샌드위치 판넬을 걸고 - 앞뒤로 안티조선 및 평화염원 메시지를 담은 사진과 글을 장식 그 행렬 중간쯤에서 함께 했습니다. 국내의 친일문제와 일본의 침략전쟁을 동시에 비판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그 판넬을 목에 건 채 함께 행진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참 열혈 청년이었습니다.^^

 

사진이라도 한 장 첨부하고 싶은데, 워낙 오랜 시간이 지나서 인지 그때 그 모습을 담은 사진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 아쉽습니다. 다만 주변에서 시위 중인 일본 우익을 찍은 사진 몇 장이 남아 있더군요.

 

위에 있는 사진에 보시면 버스에 일장기와 현수막을 걸어 놓고 우익 사상을 전파하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아마 그때 야스쿠니 주변에서 찍은 것으로 보입니다.

 

敬神尊皇(경신존황)이라는 글자가 눈에 띕니다. 저게 바로 일본 우익의 중심 사상이지요. '신을 공경하고 일본왕의 가문인 황실을 높이 받든다'는 의미인데, 저기서 말하는 신이란 불교도 기독교도 또는 여타의 다른 종교의 신도 아닌 일본만의 독특한 신도로서의 신을 뜻하는 것으로 신사와 연결 지어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왕인 천황이 저들 사고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그날 야스쿠니 신사 주변은 온통 일본 군복과 일장기, 그리고 욱일승천기 일색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젊은 청년들이 무리를 지어 옛 일본군 복장을 하고 행진하는 모습에서 저는 잠시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한심스럽지요. 그게 어떤 의미를 지닌지도 모른 채, 저러고들 있을 것을 생각하니 말입니다.

 

더는 오래 있고 싶지 않아 바로 야스쿠니 신사를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어느 날, 아는 일본 지인과 함께 야스쿠니를 다시 방문해 제대로 둘러 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 방문기는 이곳을 클릭하시면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민주당 국회의원 일행이 야스쿠니를 찾았더군요. 잘한 일입니다. 더럽고 냄새난다고 해서 모두들 피하기만 해서는, 길거리의 오물은 절대 치워지지 않습니다. 대청소라도 할라치면 내 몸 또한 더럽혀져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입니다. 한일관계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제 개인적인 소신입니다.

 

그 누가,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운다 하더라도 전쟁은 분명 죄악입니다. 전쟁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열망이 상식이 되는 그런 날을, 해방의 날인 오늘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을 야스쿠니신사 유슈칸(遊就館)에 초대 합니다

 

☞ 야스쿠니 A급 전범 분사론

 

☞ 주일미군을 동아시아조약기구(EATO) 군(軍)으로 대체하자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7년~현재/시 사2013. 8. 8. 16:18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 만약, 한국과 일본이 오랜 시간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해 왔더라면 지금의 동북아시아 정세가 어찌 변해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통일신라 이전의 왜(일본)와 한반도의 관계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백제를 통한 물적 · 인적교류는 대단했다고 배웠습니다.

 

당시에는 백제의 왕자가 일본(왜) 땅으로 건너가 특정 지역의 왕 - 그때는 지금처럼 국가라는 개념이 없을 때라 토호라는 명칭이 더 어울릴 것임 - 이 되어 그 지역을 다스리곤 했다고도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백제의 문물이 자연스럽게 일본 땅에 전파되기에 이른 것이지요. 일국의 왕자가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이니 그를 수행하는 수행원의 수나 규모 또는 살림살이를 위한 짐 보따리가 꽤나 컸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물론, 서로의 왕래 또한 잦았을 것이고요.

 

그런데 나당 연합군에 의한 삼국의 통일로 이런 일련의 교류가 단절이 된 채,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역사적 대목입니다. 양국간 교류가 계속 이어져 왔더라면 일본(왜) 해적들에 의한 강탈이나 조선침략의 도발, 그리고 국권침탈의 불행한 역사 또한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고 말입니다.

 

아무튼, 역사는 흐르고 흘러 지금과 같은 갈등 속의 한일관계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앞으로의 한일관계나 동북아시아의 평화공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달 말쯤, 일본정부는 '방위계획 강령' 중간보고를 공표했습니다. 일본어로는 '방위계획 대강'이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편하게 고쳐보면 일본 자위대의 운용 지침을 담은 강령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현재 유지되고 있는 이 강령은 2010년 12월에 일본 민주당 정권 하에서 만들어 놓은 것인데, 이걸 아베정권이 이번에 확 바꿔보겠다는 겁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일본에는 군대가 없습니다. 일본헌법에서 군대를 용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위대는 군대가 아니지요. 방위대입니다.

 

이런 내용에 찬성하시는 분들은 일본을 침략할 나라가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기에 군대는 여전히 필요 없다고 말씀들 하십니다. 진보진영 쪽 견해지요. 이에 대한 반론으로 보수우익에서 내세우는 안보 위협 요인은 한반도의 유사시와 중국의 해양진출 및 대만과의 갈등입니다. 그때를 위해 군대가 필요하다는 논리인 셈입니다.

 

어찌 되었든 이번에 공표한 강령을 보면 저들의 의도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개의 큰 핵심 사항이 있는데 '적기지 공격력', '해병대기능 병력 보유', '무인정찰기', '통합시스템 강화' 등입니다.

 

결국, 이를 통해서 실현하려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자주국방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즉, 군대를 보유하겠다는 말입니다. 앞서 거론한 4대 핵심 사항 중 첫 번째와 두 번째에 있는 적기지 공격력과 해병대기능 병력 보유라는 게 바로 적국을 향한 선제공격까지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보면 됩니다. 즉, 침략일 수도 있지요. 침략의 명분은 만들기 나름이니, 그리 해석한다고 해서 틀리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일본은 현재 타국에 대한 선제공격은 물론 교전권조차도 없습니다. 타국이 침략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해서 먼저 공격하거나 싸울 수 없다는 겁니다. 혹, 미사일이 날아오더라도 자국 영공 내에서만 격추시킬 수 있습니다. 헌법상 그렇습니다.

 

말이 그렇지, 그런 일본이라고 해서 겁 없이 일본을 침략할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적지 않은 방위비 부담에 더해 막강 미국이 뒤를 봐주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일본을 미국의 기지 국가라고도 하는 겁니다. 사정이 이리 된 데에는 자업자득적 측면이 강한고로 저들도 딱히 할 말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를 극복하고 타국을 자력으로 선제공격까지 가능하게 만들겠다는 겁니다. 해병대기능 병력이라는 것도 같은 의미지요. 교전과 동시에 바로 적국의 심장부로 향하는 게 해병대 본래의 기능 아닌가요? 선제적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올 하반기부터 내년에 걸쳐 일본사회의 우익화 관련 움직임들이 한 층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굵직한 것들만 보더라도 우선, 집단적자위권의 해석 변경 문제, 안전보장회의 설치, 정보보안법 제정 문제, 무기수출 3원칙의 수정 문제 등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보수화 되고 있는 사회 분위기의 틈바구니 속에서 보수우익연립 정권이 획책하고 있는 장기집권 전략과 야권의 완전 몰락, 자연재해에 대한 공포와 방사능 관련 위협 등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즉,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의 연속이라는 말이 제일 적절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결국, 이것은 중국의 세력 확장과 더불어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핵심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에서 그저 남의 발등에 떨어진 불 보듯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7년~현재/정 보2012. 8. 29. 21:03

'일본사회는 병들었다'

 

맞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가해의식과 피해의식의 일반화 현상이 근저에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정체성의 혼동 정도로 이해해도 좋겠습니다. 참 복잡 미묘한 사고의 소유자들입니다. 자기 자신들도 상당히 헷갈려 하고 있는 것이지요. 도대체 자신들이 가해자의 입장인지, 아니면 피해자의 입장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저들을 어르고 달랬던 미국의 책임 또한 없다 할 수는 없습니다만, 물론 그 이면에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해자의 신분으로 저들은 무고한 조선인들(중국, 대만, 필리핀 등 포함)을 학대·살해 했습니다. 식민과 전쟁의 시대였으니까요. 식민지 국민을 다스리기 위해, 또 새로운 전쟁터로 내몰기 위해 저들은 식민지 미개론을 설파합니다.

 

전쟁이란 생면부지인 한 인간을 아무런 이유 없이 적으로 간주해 죽여야만 하는 야만적 행위입니다. 하지만 사람을 죽인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니 정신교육이다 뭐다 해 가며 병사들에게 증오심을 불러일으키게 만듭니다. 그러자면 있는 사실 없는 사실 만들어 날조에 날조를 더해야만 했을 테고 말입니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조선인(한반도인)에 대한 각종 음해와 편견의 한 가운데에는 저런 광기의 어둔 역사가 숨겨져 있습니다. 1923년 9월 도쿄 근처를 강타했던 간토대지진 때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풀었다"는 유언비어에 속아 무려 7천명에 달하는 조선인이 무참히 학살당했습니다. 믿어지십니까? 7천명이라니요. 더구나 그 행위는 말 그대로 학살에 가까운 수준이었습니다. 때려죽이고 죽창으로 찔러 죽이고 했으니까요. 그러고도 제대로 된 진상조사나 사과 · 보상 하나 없는 게 저들의 양심입니다.

 

그로부터 무려 9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난해 3월 11일 발생했던 히가시니혼(동일본) 대지진 당시에도 그런 유언비어가 난무했던 것으로 일본 언론은 전하고 있습니다. 조선인을 포함한 외국인이 폭동을 준비하고 있으며 약탈이 자행되고 있다는 허위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그뿐인가요? 일본의 대표적인 우익 정치인인 도쿄도지사 이시하라신타로는 자위대 대원들 앞에서 "만일 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삼국인 - 주로 일본 거주 조선인과 대만인에 대한 차별적 언어 - 의 폭동이 있을 수 있는 바, 자위대가 치안유지에도 나서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불과 10여 년 전에 한 발언입니다.

 

여기에 더해 전쟁 패전국 특히, 원자폭탄 피해국이라는 또 하나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가해자로서의 과오 청산 시간을 갖았어야 할 바로 그 시간에, 역으로 피해자의 신분이 되어 스스로를 위로받지 않을 수 없는 처지로 몰고갔던 겁니다. 가해자의 몸통 위에 피해자의 가면을 쓴 채 피해자의 심장을 달고 살고 있는 셈입니다. 이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일본인의 정체성 혼란 증후군 개략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다수의 사람들이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를 악용하는 거대한 세력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어떤가요? 환자가 본인의 증세에 대한 인정을 통해 치료라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인정자체를 거부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바로 그런 과정을 일본 사회는 밟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쪽으로 몰고 가고 있는 세력의 힘 또한 워낙 막강하기 때문에 거부하기가 쉽지 않고 말입니다.

 

병리학적으로 그 증상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진단은 전문가마다 다 다를 수 있습니다. 건강한 사회라면 자국은 물론이고 주변국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려는 자세가 필수라고 봅니다. 이게 결여되어 있으니 문제라는 겁니다.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서경식 / 형진의역
출판 : 반비 2012.08.08
상세보기

 

반갑게도 이런 문제 중의 하나인 재일조선인과 관련한 역사책 한 권이 선을 보였습니다. 도쿄 게이자이대학에 재직 중인 서경식교수가 지은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은 현재 일본 땅에 삶의 뿌리를 두고 있는 재일조선인에 관한 보고서라 할 수 있습니다.

 

서경식교수는 리츠메이칸대학의 서승교수와 인권운동가인 서준식씨의 동생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학자이자 인권운동가 입니다.

 

저자는 재일조선인은 왜 일본에 있습니까?란 물음으로 시작해서 재일조선인 문제는 언제쯤 해결될까요? 라는 물음으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세세히 책 내용을 소개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직접 구입해서 일독해 보시면 될테니 말입니다.

 

단, 우리가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우리가 재일조선인에 대해 또는 조선족으로 불리는 재중동포들에 대해 갖고 있는 막연한 선입견을 깨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이미 일본 사람 아니야?" 또는 "조선족들은 중국인이더구먼." 이라고 단정 짓기 전에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해준 것이 무엇이 있었나를 돌이켜 보는 일이 순서일 것 입니다.

 

저는 일본 유학 당시 이곳저곳에 일본과 관련한 글들을 제법 많이 썼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글이라는 것은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인이 하고 싶은 얘기를 얼마나 쉽게 전달할 수 있느냐가 우선이라고 봤습니다. 그런 생각 때문에 더 용감하게 글을 쓸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그런 글쓰기를 계기로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재일조선인 청년들과의 교류 기회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몇몇 분들은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시기도 했고 말입니다.

 

물론, 그분들과의 만남 이전에 저는 일본에서 한국어와 영어·일본어로 발행되는 인터넷 매체에 대한 구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단순히 이것을 인터넷 신문과 같은 언론싸이트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 보다는 한·일 인적 네트워크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습니다. 이를 통해 일본 사회와 세계에 우리(한국에 거주하는 사람과 재일조선인)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지나간 불행한 식민 역사에 대해 누가 우리만큼 알고 있을 것이며, 누가 우리만큼 가슴 절절한 이야기를 품고 살고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우리의 시각으로 풀어 내고 싶었던 겁니다.

 

그때, 그분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저는 일본 사회에서 재일조선인 - 편의상 명칭은 재일조선인으로 통일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책에서 서경식교수가 주장하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저 역시 크게 거부감이 없는 용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 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보다 많이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이런 기대와는 달리 별로 만족할만한 결과물을 만들어 놓지 못하고 현재 한국으로 돌아와 있습니다. 핑계 같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대학원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또 생각의 차이랄까 그런 것도 존재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때 만났던 많은 분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감사한 마음 못지않게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 하지만 당시에 저는 진실로 갈구했었다는 점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아주 반갑고 의미 있는 책을 한 권 만나게 되어 기쁜 마음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런 류의 책이 드문 이유는 다들 이런 책 내기를 꺼리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칫 밥그릇이 날아갈지도 모를 정도로 위험한 행위입니다. 적어도 일본에서 밥 먹고 살고 싶다면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이렇듯 생생한 현실감 있는 책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있습니다. 사실, 한일관계 전반에 걸쳐 아쉬운 점은 일본과의 외교 제자리 찾기 작업은 보수정권이 아니면 시도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진보 정권이 일본과의 갈등구조를 만들게 되면 국내 여론이 바로 돌아선다는 겁니다. 특히, 보수 언론쪽이 트집을 잡기 시작하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 타이틀로 뽑힙니다. 경제도 어려운데 설상가상, 지지율을 의식한 보여주기 정책, 막대한 경제적 손실, 한류 완전히 물 건너 갔다 등등. 그러면 이런 기사를 보는 일반 국민들은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느냐", "조용히 처리하면 될 것을 괜시리 시끄럽게 해 우리가 손해를 보고 있다" 라는 식으로 여론몰이가 됩니다.

 

이는 결국 정권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니 표를 먹고 살아야 하는 정치의 생리상 아예 시도도 못하거나 중도에 포기하거나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수정권이 나서서 바른 관계 정립에 힘써줘야 하나 이 또한 초록은 동색이라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산적한 문제를 내재하고 있는 한일관계가 바로 서는 길은 국민의 지혜와 열정 그리고 무엇보다도 깨어있는 시민의식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깨어있는 내가 애국자 입니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7년~현재/시 사2011. 8. 1. 12:01

그냥 적당히 설레발이나 치다가 적절한 시점에 꼬리를 내리고 흐지부지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끝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한국 땅을 밟았다고 하는군요.

 

철없이 구는 일본 보수 꼴통 의원 3인의 이야기 입니다만, 저는 저들의 소식을 접하면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요즘 일본 보수 우익들이 참 많이 굶주려 있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1945년 패전 이후, 일본 보수 우익의 생존 방식은 끊임없는 위협론 주입과 주변국과의 갈등 조장을 통한 세력 확대였습니다. 쉽게 떠 올려 볼 수 있는 것이 영토문제와 역사왜곡 그리고 중국 · 북조선 위협론이 그것입니다.

 

이런 걸 빌미로 저들은 국민들의 애국심을 조장하고, 불안감을 조성하고, 마침내는 전쟁이 가능한 보통 국가 일본화하는데 전력을 매진해 왔습니다.

 

다들 아시는 바와 같이 일본은 전쟁을 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뿐만 아니라 군대 또한 보유할 수 없습니다. 전쟁 포기와 군대 폐기는 일본 헌법에 분명히 명시된 사항이고 해서 우리는 일본 헌법을 평화헌법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일본 보수 우익들은 이 평화헌법을 개정해서 전쟁이 가능한 보통국가로 만들려고 시도 때도 없이 온갖 공작들을 벌이고 있습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일본 국민 여론이 이러한 헌법 개정 움직임에 호의적이지 않아서 헌법 개정까지는 가지 않았습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저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고 봅니다.

 

바로, 이러한 국민 여론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만드는 일에 앞서 말씀 드린 주변국과의 영토분쟁과 역사왜곡 등이 악용되어 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똑바로 직시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일까요? 이제는 자위대의 해외 파병이 당연시 되고, 유사법제가 붉은 눈을 번뜩이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고, 왜곡 교과서가 전국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의식을 세뇌시키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번 저들의 무모한 도발 역시 같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본이 경제적으로 실패를 거듭하면서 정권을 담당했던 일본 보수 우익의 입지는 많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특히, 자민당으로 대변되는 저들의 정치적 결사체가 와해되면서 정권 붕괴라는 쓰라린 위기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마땅한 타개책이 쉽사리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저들을 더욱 초조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의 보수 우익세력이 툭하면 색깔론을 들고 나오듯이 저들에게 유효한 카드는 주변국과의 갈등을 통한 지지층 결집과 국론 통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제대로 먹히려면 자신들의 주장이 그르지 않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있지도 않은 사실을 진실인양 만드는 각종 왜곡과 편법이 난무하게 되는 것입니다.

 

외교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라도 당당하고 과감하게 저들의 도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눈치나 보며 적당히 타협하려 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저들이 노리는 바가 분명한 이상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 없이 선제적 타격으로 기를 꺾어놓아야만 합니다.

성숙한 한일관계가 돈독한 한일외교로 더욱 튼실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접고, 이 둘을 별개의 문제로 접근하려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시끄러움이 크고 많을수록 한일관계는 제자리를 찾아 갑니다. 그만큼 풀어야 할 과제와 꼬여 있는 매듭이 많기 때문입니다. 성숙한 한일관계는 국민들 상호간 교류를 통해, 돈독한 한일외교는 미국을 포함한 동북아 제국과의 관계를 통해서 풀어감이 옳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7년~현재/시 사2010. 6. 18. 20:51

또 다시 불거진 독도문제가 한·일관계의 발목을 잡는군요. 참 답답한 현실이지요? 이건 어떻게 한 두 번도 아니고 아주 연례행사 치루는 것 같습니다. , 개인적으로는 일본 정부의 이런 도발적인 행위들이 다분히 일본 국내용 퍼포먼스라고 생각합니다만, 아쉽게도 우리 정부쪽에도 잘못은 있습니다.

누가 정권을 잡던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외교관련 정책 아닌가 합니다. 이건 정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자존과 존립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이명박정부가 대승적 차원에서 접근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런데 정말 심각한 문제는 심심풀이 땅콩식으로 치고 빠지곤 하는 일본 정부, 더 정확히는 일본 정부와 인적네트워크를 형성한 채 일본 사회의 주류로 행세하는 우익세력의 비겁한 작태입니다. 사실 이들은 주변국과의 갈등을 조장하고 즐기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렇게 해서 그들이 지향하는 지향점은 군사대국화 일본인 셈이지요.

잠시 여기서 한국과 일본의 보수우익 세력들을 한번 비교해 보고 넘어가겠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보수우익들은 서로 다른 이질적 존재인 듯 하면서도 동질성도 갖고 있는 아주 특이한 군상들의 집단이지요.

우선, 이들의 공통점은 이미 예전에 청산·처벌되어 사라져 버렸어야 했을 역사의 죄인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일신의 안일과 영달을 위해 국가와 민족을 팔아 넘긴 채 자진해서 황국의 신민이 되었던 반민족적 인물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오늘 한국 사회 보수우익 세력의 주류들입니다.

한편, 일본 보수 우익세력의 죄과는 뭐니 뭐니 해도 주변국을 침탈하고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강간했던 반인륜적인 범죄 행위를 저지른 전범들과 그들의 후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모두 이미 60여년 전에 처단되어야 마땅했던 역사의 죄인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아직도 한·일 양국사회의 주류로 행세하는 이런 역사적 아이러니는 참으로 가슴아픈 일입니다.

반면, 서로 다른 하나의 차이점은 무엇이겠습니까? 한쪽은 나라를 팔아 먹고 천황의 신민이 되어 호의 호식했던 비굴한 인간 부류라는 점이요, 다른 한쪽은 자신의 국가와 천황을 위해,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미명 하에 목숨 바쳐 싸웠던 전사의 자식들이라는 차이점 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보수우익 앞에서 한국의 보수우익은 마치 서자와도 같이 한 없이 작아지는 것이며, 같은 뿌리라는 희미한 의식을 붙잡은 채 작은 정통성이나마 인정받으려는 가련한 몸짓이 오늘날 대한민국 지식인들의 '현대적 친일행위'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지나간 죄과를 참회하고 반성하지 못해서 나오는 정체성의 혼란에 다름 아니라고 봅니다.



▶ 거리에서 시위 중인 일본 우익들의 모습     ⓒ 강동완

이런 그들이다 보니 설사 아메리카를 향해 같은 친미를 하더라도 궁극의 목표가 다릅니다. 미국을 향해 절대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그들이라지만 그 이면에는 군사대국화를 향한 불타는 집념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무엇을 위한 군사대국화이겠습니까? 미국과도 맞짱을 뜨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불굴의 몸부림인 셈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절대 성조기를 흔들어대지 않습니다. 오로지 붉은 태양으로 상징되는 천황 국가의 표식, 일장기가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그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의 어떤 논리 속에 국가와 국민과 우리의 자존이 있습니까? 오로지 힘있는 대국을 향한 공허한 울부짖음 밖에 무엇이 더 있습니까? 한마디로 정체성의 부재인 것이지요. 서글픈 일이지만 마치 거대한 따뜻함을 따라 고갯짓 하는 해바라기와도 같다고나 할까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독도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제가 앞서 일본정부의 독도 도발은 일본 국내용 퍼포먼스라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지금 일본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인자 자체가 과거의 군국주의 세력의 떨거지들 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천추의 한()과도 같은 절대 염원이 있습니다. 평화국가가 아닌 전쟁이 가능한 보통국가 일본이 바로 그것이지요. 이는 군사대국화를 향한 불굴의 집념과도 일맥상통하는 정신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한 줌도 안 되는 군국주의 떨거지들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그들 스스로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국민 여론을 호도하고, 불안감을 조성하고, 주변국과의 갈등을 통해 적당히 애국심을 고취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전후 60년간 단 한 순간도 이러한 준동을 멈춘 적이 없는 저들입니다.

러시아·중국·한국과의 영토분쟁, 역사교과서 왜곡, 과거사 부정, 대북 강경론을 통한 좌파세력 척결 등이 그 예가 될 것입니다. 그런 노력(?) 덕분에 지금은 상당 정도 우경화의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자위대의 해외 파병이 자연스러워지고, 유사법제가 아무렇지 않게 통용되는 꿈만 같은 세상을 만들어 냈던 것이지요. 그런 그들의 궁극의 목표는 군사대국화 최대의 걸림돌인 평화헌법의 개정입니다.


▶ 평화시위 중인 일본의 시민들     ⓒ 강동완

평화헌법이 무엇이고, 어떤 과정을 거쳐 제정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저의 앞선 글들을 보시면 잘 나타나 있습니다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일본의 평화헌법은 저들만의 헌법이 아니라 저들에 의해 핍박받고 억압 당해야 했던 우리 민족을 포함한 주변국, 더 나아가 평화를 지향하는 세계 모든 국가·민족들과의 결연한 약속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는 그와 같은 불행한 침략의 역사를 만들지 않겠다는 가슴 절절한 약속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의 동의 한 마디 구하지 않고 저들 맘대로 약속을 파기하고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이런 어이없는 작태를 우리는 결코 용납해서는 아니됩니다. 이런 연유로 일본의 평화헌법 수호는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독도에 대한 끊임없는 영유권 주장 역시 저들의 이와 같은 노회한 전략에 다름 아님을 안다면 이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 또한 달라져야 하겠지요. 누가 뭐라해도 독도는 현재 우리가 점유하고 있는 우리의 땅입니다. 저들이 제 아무리 어거지를 부리며 발버둥을 친다해도 이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 우리는 독도 문제만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모든 외교적 마찰에 대한 꾸준하고 일관된 정책, 문제가 불거진 이후에나 나오는 사후적 조치가 아니라 선점적이고 적극적인 홍보 전략을 통해 저들의 그릇된 논리가 파고들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노력이 중요할 것으로 봅니다.

누가 뭐라 해도 독도는 우리 땅 입니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20:08

고이즈미 정권 이후, 일본사회의 보수 우경화 현상은 하루가 다르게 빠르고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는 양상입니다. 특히, 아베 정권으로 대표되는 보수 우파적 성격을 띈 정치세력이 주도하고 이들과 비슷한 성향을 지닌 사회 지도층과 언론들이 합심해서 만들어 내는 뛰어난 아젠더 세팅력은 엄청난 파급력을 지닌 채 여과장치 하나 없이 그대로 순진한 국민들에게 전파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 좋은 예 하나가 평화헌법이라고 불리는 일본헌법 제
9조에 대한 개정 논의 아닐까 생각합니다. 반대 여론이 상당히 우세해 보이던 5·6년 전에 비해서 최근의 여론조사에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박빙의 찬반 의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일본 언론들이 전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양심적 지식인 가운데 한 분인 이토 나리히코
(伊藤成彦) 선생은 필자가 번역 출판한 자신의 저서 「일본은 왜 평화헌법을 폐기하려 하는가(행복한 책읽기, 2006년)」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일본 헌법 제9조가 일본 패전 60년이 되는 오늘까지 문자 하나, 단어 하나마저도 바뀌지 않고 지켜져 올 수 있었던 것은 주변 아시아 제민족으로부터의 강한 연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즉, "일본 헌법 제9조의 존폐를 둘러싼 투쟁은 일본 내의 패권세력과 평화 세력간의 투쟁임과 동시에 미·일 제국주의 세력과 아시아 민중들의 투쟁이기도 했으며 그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라는 것 입니다. 


그렇습니다. 일본 헌법 제9조는 단지 일본 헌법 속의 한 조항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자신들이 저질렀던 불행했던 과거사에 대한 반성임과 동시에, 더 나아가 다시는 그러한 침략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아시아 각국 민중들을 향한 굳건한 약속 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일본 내 보수 우익 패권세력들이 획책하고 있는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군사 국가화에 대한 우리의 우려와 반대는 저들이 주장하듯 '내정 간섭'이 아니라 우리의 분명한 '권리'인 것입니다.


전에도 한번 글로 쓴 적이 있습니다만 일본에서 유학생활 중이던 어느날, 일본인 지인과 함께 야스쿠니(靖国)신사 내에 위치하고 있는 부속시설 유슈칸(遊就館)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잊혀지지 않는 것은 전시실의 2층 입구에 있는 영화 상영관에서 상영중이던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잊지말자'라는 영화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청·일전쟁은 청나라로부터 조선을 독립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전쟁이었고, 대동아 전쟁은 서구 세력으로부터 아시아 제민족을 수호하기 위한 위대한 전쟁이었다는 내용의 영화였습니다.


허탈한 심정으로 영화 상영관을 나와
30여분에 걸쳐 전시시설을 쭉 둘러본 후의 제 느낌은 야스쿠니신사 내 그곳, 유슈칸은 단순한 부속시설(전쟁박물관)이 아니라 ‘전쟁 미화 박물관’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합사되어 있는 A급 전범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진다고 해도 이와 같은 야스쿠니신사의 본질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더군요. A급 전범들이 그곳에 있건 없건 지금의 야스쿠니는 과거회귀 세력들의 마음의 안식처이기 때문이겠지요.


갈등의 시대, 한·일 양국의 양심적이고 깨어있는 시민들의 굳건한 연대와 동맹만이 21세기를 갈등과 분쟁이 없는 평화와 공생의 세기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교과서 문제, 정신대 문제, 영토문제, 한국인 원폭 피해자 문제 등 어느 것 하나 현재진행형이지 않은 것이 없는 지금 역사는 우리에게 준엄하게 묻고 있습니다. 무엇을 할 것이냐?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20:06

유슈칸(遊就館)은 야스쿠니신사 내에 있는 시설 중의 하나로 일본 전쟁 박물관으로 설명되곤 하지요. 그러나 유슈칸은 야스쿠니와 함께 단순한 박물관 내지는 추모시설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곳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저 흔하디 흔한 전쟁 박물관으로 만족할 것이라면 그 위치가 지금처럼 야스쿠니신사 내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예정에도 없이 갑자기 유슈칸을 방문하게 됐습니다. 제게는 한국어을 일본말처럼 멋지게 구사하시고, 한국의 웬만한 노빠 보다 노무현 대통령을 훨씬 더 좋아하는 일본인 지인이 한분 계십니다.
 
오랜만에 그 분을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노무현 대통령의 유슈칸 방문에 관련한 말씀이 화제에 올랐고, 그래서 말 나온 김에 한번 가보자고 의기투합해 유슈칸 방문을 실행에 옮기게 됐습니다. 뭐, 그 분이나 저나 머리에 털 나고 처음으로 유슈칸을 방문하게 된 것이었지요.
 
몇 년 전이었을 겁니다. 저는 제가 일본에 온지 얼마 안됐던 어느 해 8월 15일에 겁도 없이(?) 일본의 평화유족회 회원분들의 평화시위에 참석했다가 야스쿠니신사를 처음으로 방문해본 경험이 있지만, 유슈칸에는 들어가보지를 못했거든요.
 
그런데 저의 일본인 지인께서도 일본에 60년 가까이 사셨으면서도 야스쿠니신사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관계로 이제껏 가보지를 못했다고 하시더군요.
 
아무튼 그렇게 유슈칸을 방문하게 됐습니다.
 
800엔이나 하는 입장권을 구입하고 2층 전시실로 올라가게 되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영화 상영관입니다. 약 150석 규모의 아담한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 것은 '잊지 말자'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였습니다.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뭘 잊지 말자고 하는 것일까?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에 앉을 생각도 않은 채, 맨 뒷 줄에 서서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봤습니다. 이상하지요. 꼭 그런 상황과 마주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어떤 대결 심리가 발동이 됩니다. 마치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라는 식의 그런 묘한 감정 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청일 전쟁은 청나라로부터 조선을 독립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전쟁이었고, 대동아 전쟁은 서구 세력으로부터 아시아 제 민족을 수호하기 위한 위대한 전쟁이었습니다. 그게 영화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극장을 나서면 전시실이 이어집니다. 여기저기 이것 저것 둘러보고 마지막 전시실로 향하게 되면 전사자들의 사진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서둘러 휘 둘러보고 밖으로 나오니 의문이 들더군요. 도대체 뭘 잊지말자고 저렇게 차려 놓은 것일까? 전쟁을? 아니면 죽음을? 그도 아니라면 미국과도 맞짱떴던 당시의 영광을?
 
아쉽게도 그곳에는 평화는 없고, 전쟁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마저도 분명치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전쟁을 또 하자는 거야? 아니면 말자는 거야? 아둔한 나의 머리로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쓰잘떼기 없는 이야기가 길어졌지요.
 
노무현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유슈칸 방문건을 놓고 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좀 더 대국적인 견지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선, 현재의 일본 사회 현실을 바로 볼 필요가 있는데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일본사회의 보수 우경화 현상은 빠르고 심각합니다.
 
특히, 보수 우파적 성격을 띈 정치세력이 주도하고, 이들과 비슷한 성향을 지닌 사회지도층과 언론이 합심해서 만들어내는 뛰어난 아젠다 세팅력은 그대로 국민들에게 전파되는게 현실입니다.
 
일례로 야스쿠니신사 참배문제, 평화헌법 개정 문제, 자위대 파병 문제가 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첫말을 꺼내기가 힘이 들지, 한두 번 언론에 오르내리게 되면 그건 일상용어화 되다시피 합니다.
 
이러한 일본 사회의 보수화 경향은 정치권의 지형을 일시에 자민·민주 양당 체제로 바꾸어 놓았고, 혁신세력의 몰락을 가져왔습니다.
 
현재 일본 정치권의 최대 화두라 할 수 있는 차기 총리 문제도 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지금 거론되고 있는 4명의 차기 주자들 대부분이 역시 골수 우파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중에 그래도 고이즈미 총리와는 좀 다른 인물이 차기 총리가 되었으면 하는게 우리의 솔직한 바람이지요.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 보다는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관방장관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구요. 또 그렇게 흘러갈 것으로 예상은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한 가지만 더 욕심을 내자면, 이제는 일본 정치권 내에 친한파·지한파 의원들도 좀 많이 만들고 이들과의 연대 또한 활성화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과거처럼 만나서 요정 가고, 양주 마시는 의원연맹이 아니라 동북아의 미래를 놓고 진지한 고민이 가능한 그런 의원들의 모임 말입니다.
 
바로 이런 두 가지를 실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정부의 차별화 된 전략도 필요하다는게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쉽게 이런 것이지요. 고이즈미 총리의 일련의 움직임이 마음에 안든다고 해서 모든 일본 정치권과 담을 쌓아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반고이즈미 세력, 반고이즈미류의 인물과는 더욱 끈끈한 연대가 필요하고, 그들의 일본 내 입지가 강화될 수 있는 무수한 방법들을 우리 나름대로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이번에 나온 노무현 대통령의 유슈칸 관련 말씀도 그것의 일환으로 저는 받아들입니다. 당시 일본 언론에서도 그 말씀을 관심있게 다루면서 후쿠다씨와 나카소네씨에게 포커스가 맞추어 졌었거든요.
 
그래서 이런 것이지요. 일본 국민들이 보기에 "아, 후쿠다씨가 총리가 되면 주변국 관계가 많이 좋아질지도 모르겠구나"라는 기대감을 팍팍 심어줄 수 있도록 하는, 한마디로 후쿠다씨를 위한 노무현 대통령의 '선물'이었다고 저는 보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정도의 선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아예 말씀하신대로 유슈칸을 직접 방문하실 것을 감히 제안 드립니다.
 
실행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요. 예를 들자면 후쿠다씨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 특히 '새로운 추도시설 건립을 준비' 중인 세력들이 이와 관련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노무현 대통령을 초청하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더 욕심을 낸다면 노무현 대통령 뿐만 아니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도 함께 초청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날 저녁 고이즈미 총리와 마주 앉아서 딱 한마디만 해 주시면 됩니다. "도대체 뭘 잊지 말자는거요?"라고 말입니다. 사실, 어제 류슈칸을 방문하고 나서 든 생각 중에 하나가 '고이즈미 총리도 제대로 모르고 있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와타나베(渡辺) 요미우리신문 회장 이야기 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는 "고이즈미 총리가 무식해서 그런다"고 했다지요. 무식하면 용감하다?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방문 시기는 8월 15일이 괜찮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들의 많은 이해와 동의가 필요하게 될텐데요. 그러나 만약 이게 실현만 된다면 그것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는 엄청난 것이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야스쿠니는 지금의 야스쿠니로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고이즈미류가 야스쿠니를 더 이상 지금처럼 자신들의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할 수가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야스쿠니의 의미가 일거에 퇴색해 버리고, 본래의 의미로 돌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뿐이겠습니까? 평화헌법 개정 문제 등 일본 우경화를 차단하고 잠재우는데도 더 없이 좋은 명약이 될 것임은 물론이거니와 더 나아가서 한·일간의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는 과거사와 관련한 장벽들을 일거에 날려버릴 수 있는 일대 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저는 확신합니다.
 
물론, 고이즈미 총리가 언제 야스쿠니신사를 방문하는가 역시 하나의 변수가 되기는 할 겁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본인 스스로도 재참배에 대한 의욕을 꺾지 않은 상태이고, 문제는 시기인 듯 싶은데요.
 
어떻게 보면,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시기가 차기 총리를 누구로 점 찍어 두고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에 8월 15일 방문을 고수한다면, 이는 아베 관방장관을 배려하고 있다고 봐야 하는데요. 아베 관방장관 역시 총리가 되면 야스쿠니를 참배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고이즈미 총리가 임기말 8월 15일에 야스쿠니신사를 전격 방문하게 되면 차기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더욱 쉬워지게 됩니다.
 
그러나 8월 15일이 아닌 다른 날짜를 선택하게 된다면, 이는 후쿠다씨를 비롯한 참배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세력을 배려한 것으로 봐야겠지요. 그래야 차기 정부의 부담이 크지 않을테니까요.
 
우리 정부 입장에서 8월 15일 방문이 정 여의치 않다면, 고이즈미 총리와 같은 날 방문도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같은 날, 고이즈미는 신사를 참배하고,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유슈칸을 방문한다. 어떻습니까? 너무나 대조적이고 극명한 메시지 아닙니까?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9:59

'노무현 정권이 레임덕을 피하기 위해 대일(對日) 강경론을 포기하지 않을 것',  '지지율 저조에 허덕이는 노무현 정권은 지지율을 높이는 효과가 있는 반일 강경정책을 남은 임기 중에도 계속할 것'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일본 외무성이 작성한 '대일정책 내부보고서'를 요약한 것이라며 우리 언론이 보도한 내용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새로운 내용입니까? 아니, 이런 얘기 처음 들어보셨습니까? 그런데 왜 갑자기 그렇게들 호들갑을 떨고 그러십니까?
 
이번 문건이 정말로 새삼스럽다 하는 언론 관계 종사자가 계시다면, 특히 일본 주재 특파원이라면 차라리 짐 싸 들고 한국으로 돌아가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조금만 관심있게 일본 텔레비전 뉴스에 귀를 기울이거나 신문 정치면을 뒤적이는 수고만 하더라도 1년에 대 여섯번은 족히 볼 수 있음직한 내용이라고 생각이 되거든요.
 
언젠가 고이즈미 총리도 기자들과의 묻고 답하기에서 몇 번을 반복해서 이야기 했었지요. 한국 정부의 대일 강경론, 특히 셔틀외교를 포함한 정상외교가 틀어진 문제와 관련한 답변에서 "그것은 한국 내부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이게 뭘 말하는 것일까요?
 
또 일본 외무성 출신의 모 국회의원 역시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기회 있을 때마다 그러더군요. 한국 정부의 대일 강경 정책은 "노무현 정부의 낮은 지지율과 국민 감정을 의식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게다가 일간지를 비롯한 언론들의 분석은 어떻습니까? 앞서 예로 든 두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요? 하나 빠져 있다면 중국의 영향력 때문(중국 눈치보기)이라는 분석 정도가 되겠지요. 결국 일본 정부 및 정치권, 언론의 대체적인 인식은 이상의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역사 교과서 왜곡, 독도 영유권 주장, 이 모든 문제들에 있어 일본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한국 정부가 한국 내부 문제를 잠재우기 위해 일본에게 트집을 잡고 있다라는 투 일색이었지요. 물론, 지금도 그러고 있구요.
 
그런데 누차 있어 왔던 이런 잘못된 발언에 대해 문제 제기 한번 제대로 했던 한국 언론 있었습니까? 따끔하게 한 수 가르쳐준 언론 관계 종사자분 계셨습니까? 비싼 월급 받아가면서 다들 일본 신문 번역하기에 바빴지요. 부끄럽게도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 와서 왜들 이러십니까?
 
그리고 일본 정부나 정치권, 언론 등이 저처럼 그릇된 인식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뭔가 분석할 자료를 갖고서 저런 보고서를 만들어 냈을 것 아닙니까?
 
저는 말입니다. 불행하게도 그건 바로 한국 언론들이 써 갈겨 놓은 무책임한 기사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조·중·동으로 불리는 삼류 찌라시들이 토해내는 정부를 향한 악담이 꺼꾸로 부메랑이 되어 다시 한국 정부로 돌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예, 바로 매국 행위지요.
 
어디든 일본 웹싸이트에 들어가서 그들과 토론 한번 해 보세요. 한국을 욕하고 폄훼하는 수구 꼴통 일본인들이 근거가 되는 자료라고 들고 오는 것들 보면, 죄다 조중동이 토해 놓은 배설물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을 퍼오는 사람들은 이렇게 얘길 합니다. "너네 나라 최대 신문에서도 그렇다고 하는데 너는 왜 아니라고 하냐?" 그러면서 도리어 큰 소리를 치곤 하는 것을 경험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이 말이 딱 맞습니다. 지들이 하면 정론이고, 일본이 하면 망발이지요. 그리고 이런류의 신문들이 일본쪽의 망발에는 더 날뛰고 난리 블루스를 칩니다.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우리정부의 대응이 부족하다나 어쩐다나요, 우리 정부가 손 놓고 있다가 당했다나 어쨌다나요. 웃기지도 않습니다.
 
적반하장도 이 정도가 되면 신의 경지라 할 수 있습니다. 언론개혁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일본 외무성의 보고 자료입니다. 그렇다고 일본 정부가 잘 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 정부도 이제 더 이상은 이런 찌라시들의 난리 블루스에 장단 맞춰주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번처럼 신문 기사가 나오면 코멘트를 하고, 또 그것은 더 크게 부풀려지고 말이지요. 그렇게 이용 당하는 측면도 있음이 사실 아닌가 싶습니다.
 
큰 틀에서의 대일정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가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는 관점이 중요한 것이겠지요. 자칫 사사로운 것에 일일이 토 달고 끼어들다보면 그 틀이 흔들리면서 지금처럼 일본에 계속 끌려 다닐 수 밖에 없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정부의 대일외교가 수세적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는데는 찌라시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내부의 적은 국가 외교까지도 망칩니다.
 
이제 우리가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언제까지나 일본 정부의 행위에 분노하고 항의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말인데요. 차라리 우리가 좀 더 공세적으로 나가는 것이 어떨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참에 아예 대일외교의 중심을 한반도에서 일본의 심장부로 옮겼으면 하는 것입니다. 상당히 공격적인 것으로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지요.
 
사실 한일관계라는 것이 지금까지는 거의 일본의 움직임에 일희일비하고, 좋았다 나빴다 하고, 마치 한 여름날의 여우비와도 같았잖아요. 60년을 변함없이, 너무 무의미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그 칼자루를 쥐고 요리를 한번 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우리의 대일관 역시 지나치게 막연했던 게 사실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말이지요. 새로운 한·일관계, 동반자적 입장으로서의 한·일관계, 파트너쉽으로서의 한·일관계, 한·일 우정의 해, 등 등이 있었습니다만 어떻습니까? 쉽게 가슴에 와 닿지 않는 것이 사실 아닌가요?
 
그래서 뭘 어떻게 하자는건데? 라든가, 그걸 왜 해야 하는건데? 또는 지금까지는 그것 없이도 잘 살아 왔잖아?… 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나름대로 찾자고 했던 것이 참여정부가 내 놓은  '동북아 중심국가론, 동북아 균형자론' 이런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입니다. 우리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기다리고만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과거사도, 야스쿠니도, 독도도, 해결의 열쇠를 우리의 손 안에 놓고 요리해 보자는 것입니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9:52

요즘 일본 언론에서는 계속해서 한국 관련 소식들이 주요뉴스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독도문제, 납치피해자 문제가 요 몇일 쉬지 않고 계속 보도 되었는데요. 오늘은 노무현대통령의 담화 내용이 또 주요뉴스로 올라와 있습니다.
 
오늘 노무현 대통령의 담화에 관해 일본 언론들도 상당히 자세히 보도하고 있습니다. 담화 내용의 요지까지 발췌해서 전달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전체적으로 언론들의 보도 내용은 비슷합니다.
 
아사히신문의 경우 '노무현 대통령은 담화에서 독도문제를 역사와 연관시켜 강하게 비판'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구요. 요미우리신문은 '독도문제, 강경수단도 마다하지 않겠다. 노무현 대통령 특별담화'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마이니찌신문도 비슷한데요. '노무현 대통령, 독도 도발에 단호히 대응'이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다른 언론들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일관계가 어려워질 때마다 일본 정부나 일본 정치권의 반응은 언제나 똑 같다고 말씀드릴 수가 있는데요. '냉정하게 대응한다'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에는 변함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똑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담화가 발표된 직후에 고이즈미 총리는 기자들의 질문에 '한일우호를 대전제로 해서 흥분하지 말고 냉정하게 대응하자. 전체적으로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라는 말을 했구요. 한일 양국 수뇌간에 생각의 차이가 너무 큰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기 때문에 수뇌회담을 해야 한다. 언제라도 할 용의가 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일본정부 대변인격인 아베 관방장관은 '우선은 담화 내용을 상세히 읽어보고 분석해 봐야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공식적인, 겉으로 드러난 일본 정부의 반응이구요. 이외에 비공식적으로 익명 처리된 정부고위 관계자의 발언들이 있는데요. 바로 이게 이들의 진심 아닐까 싶습니다.
 
이들은 한국 정부의 대일 강경 정책과 관련해 두 가지로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국내여론 조성용이라는 것이구요. 또 하나는 한국 정부가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반응이었습니다. 뭐, 같은 말이지요.
 
지난번에 일본 외무성이 작성한 '대일정책 내부보고서'가 문제가 됐던 것도 바로 이런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언론에 정부 고위관계자, 또는 외무성 간부로 익명 처리된 인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여기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번 노무현 대통령의 담화도 바로 '국내여론 조성용'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분석하는 이 사람들도 문제입니다만, 이렇게 분석할만한 근거를 제공해 주고 있는 우리 국내 일부 언론 및 정치 세력들에게도 큰 문제가 있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들이 무엇을 근거로 한국의 대일 강경정책을 국내여론 조성용으로 분석했겠느냐라는 문제를 우리는 바로 볼 필요가 있다라는 것이지요.
 
결국, 우리의 일부 수구보수 언론과 정치 · 지식인들의 주장을 자기들 입맛에 맞게 짜깁기 한 것에 다름아니라는 겁니다. 우리가 그렇게 강조하고 있는 과거사 청산 · 친일청산이 필요한 이유를 여기서 또 한번 뼈져리게 느낍니다.
 
쉽지는 않겠습니다만, 우리가 우리의 '역사 바로 세우기'를 제대로 해야 비로소 '외교 바로 세우기'도 가능하게 된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번 노무현 대통령의 담화를 보면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타이밍의 절묘함이었습니다. 우리 정부에서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최고로 적절한 시기에 담화문을 발표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자칫하면 고이즈미 정권은 내우외환에 시달리게 생겼습니다.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이제 레임덕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지난 23일 치뤄진 치바 보궐선거에서 오자와 민주당 체제에 패배했다는 사실은 고이즈미 자민당 입장에서는 엄청난 타격입니다. 머지 않아 책임론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에 더해서 주변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면 될수록 반대파의 공격은 더욱 집요해 지겠지요.
 
아마 자민당 내 의원들 중에 심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사람들 많을 겁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굳이 오자와라고 해서 거부할 이유가 없거든요. 의원 뱃지만 보장해 줄 수 있다면 오자와면 어떻고, 고이즈미면 어떻겠습니까? 다들 비슷한 인물들인데요.
 
어찌 되었든 우리입장에서는 최적의 시기에 최선의 공격 포인트를 찾은 겁니다. 바람이 있다면 여기서 멈추지 말고 좀 더 집요하고 끈질기게 흔들어 놓아야지요. 그리고 말이 통할만한 사람들을 우리편으로 만들어야지요. 새로운 한일관계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봅니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9:50

요즘 들어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관련한 반대론 및 분사론이 부쩍 힘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일본에서 힘깨나 쓰는 정치가들은 다들 한마디씩 하는 분위기지요. 그리고 우리 언론들도 이런 주장을 상당히 우호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것 같고 말입니다. 우리 언론에 소개된 것 중에 최근에 나온 발언들만 좀 살펴볼까요.
 
먼저, 유력한 차기 일본 총리인 후쿠다 전 관방장관입니다. 후쿠다씨는 한 모임에 참석해서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강행으로 한국·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된 데 대해 유감을 표시하고, "야스쿠니에 가는 게 뭐가 나쁘냐라고 하면은 상대방도 감정적이 된다" 라며 "정상끼리는 물론이고 국민들도 서로 감정적이 되는 건 가장 나쁜 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리 전 총리 역시 텔레비전 토크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야스쿠니 참배는 일본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는 발언을 했는데요. 한국이나 중국과 관계개선이 중요하다면 차기 총리는 야스쿠니를 참배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말과 함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고이즈미 총리는 정신적인 문제라고 말하지만 이제는 '정치적인' 문제로 변했다"고 강조하고, A급 전범을 분사할 수도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나카소네 전 총리도 일본왕인 천황이 참배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총리의 역할이라며 이러한 방안의 하나로 분사를 제기한바 있습니다.
 
제1야당 민주당의 오자와 대표도 분사론을 제기했었는데요. 신사에 모신 영령의 명패 같은 걸 없애면 된다라는 요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언론은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현직 각료인 요사노 가오루 금융·경제·재정상이 A급 전범 분사론을 말했다고 하지요? 요사노씨는 "A급 전범의 분사를 포함해 그 방식은 신사가 판단할 일" 이라며 신사 측에 자발적인 분사 검토를 제안했다는 것입니다.
 
이상이 대강 살펴본 최근 기록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런 주장들에 무조건 찬성만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결국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참된 의도가 뭐냐라는 점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주변국의 의견을 무시한 채, 고집스레 참배를 강행하고 있는 고이즈미 총리가 밉다고 해서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의견이라면 앞뒤가리지 않고 얼씨구나고 받아들이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야스쿠니 참배를 반대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살펴봐야만 합니다. 분사론자들이 주장하는 야스쿠니신사에 A급 전범들이 합사되어 있다는 사실은 단지 우리가 참배를 반대하는 하나의 이유에 불과할 뿐입니다. 더 큰 이유는 야스쿠니신사가 과거의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과거사를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지요.
 
이와 관련해서는 제가 전에 쓴 '노무현 대통령을 야스쿠니신사 유슈칸에 초대합니다'란 글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단적으로 말씀드려서 제가 가서 눈으로 확인해본 바에 의하면 야스쿠니신사 내 그곳은 단순한 전쟁박물관이 아니라 '전쟁 미화 박물관'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A급 전범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진다고 해도 이와 같은 야스쿠니신사의 본질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A급 전범들이 그곳에 있건 없건 지금의 야스쿠니는 과거회귀 세력들의 마음의 안식처입니다. 그래서 제대로 되려면 '분사론'이 아니라 '대체 추도시설 건립론'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 역시 그것을 강력히 주장해야 되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대체 추도시설은 평화와 공생의 상징이어야 하며, 한일교류 · 동북아연대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젊은 학생들이 수학여행 가서 일본의 젊은이들과 함께 어울려 놀고 토론할 수 있는 만남의 집이어야 합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 일겁니다. 하지만 그 길이 멀고 험난하다고 돌아가려 해서는 안됩니다. 새로운 한일관계는 갈등 없이는 결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미래를 위해 필요한 갈등이라면 피하지 말고 헤쳐 나가야하지 않겠습니까?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9:10

한·일간 정상 셔틀외교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더 없이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도 불안정한 동북아의 위험 요소를 양국 정상들이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서 풀어간다는 것은 또 하나의 불안정 요소를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차례에 걸친 한·일 셔틀외교를 보면서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대일 접근 방식에 의아함을 떨칠 수 없음 또한 사실이다. 제주도에서 있었던 1차 셔틀외교 때에 문제화 되었던 ‘임기동안 과거사 문제를 공식 의제로 제기하지 않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은 일면 옳기도 하면서 또한 잘못되기도 했다.

먼저 옳다고 보는 이유는 역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라는 메시지를 양국의 국민들에게 제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잘못되었다고 보는 이유는 단어선택의 실수라고 보기 때문이다. 즉, 과거사 문제를 공식의제로 '제기'하지 않겠다가 아니라 '추궁'하지 않겠다로 갔어야 맞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들로부터 돌려 받아야 할 빚이 있다. 그것은 제국주의와 식민의 역사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비인간적이었고 반인륜적이었던 이웃 사람으로서의 참회와 반성이다. 국가와 국가간, 정부와 정부간의 잘 잘못이 아닌 같은 인간대 인간이라는 관계로서의 정리 문제이다. 이게 제대로 풀려야만 다정한 이웃나라로 허물없이 맺어질 수가 있다.

생각해 보라. 언제 도끼 들고 쳐들어올지 모르는 이웃과 담 하나 사이에 두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 북한과 중국을 적으로 간주한 신방위계획, 한반도의 유사시를 가정한 비밀 훈련이 잔존하는 한 이 가설은 유효하다 -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지금도 일본의 보수 우익화에 경기(驚氣)하듯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그런 상호 신뢰와 믿음을 만드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가? 우선 중요한 것은 무엇이 잘못이었는지를 서로가 이해하는 것이며, 바로 그 ‘무엇’에서 시작된 의문과 해답을 ‘어떻게’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역할이 있다.

아쉽게도 근년 들어 일본사회는 급격히 보수우익화로 가고 있다. 그래서 위에서 지적했던 ‘무엇’과 ‘어떻게’를 가르쳐 줄 선생들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설령 있다고 해도 그들의 말씀을 제대로 전달해줄 전달 매체가 없다. 이미 일본의 매스미디어는 애국언론으로 돌아선지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행하게도 그 역할을 우리가 해야 한다. 우리가 일본 국민들에게 그 ‘무엇’과 ‘어떻게’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적어도 상기는 시켜 주어야 한다. 그래야 이들이 갖고 있는 냉전적 인식구조 해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

자, 다시 앞선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대한민국의 대통령께서 지난간 과거사를 ‘추궁’하지 않는 선에서 ‘언급’은 해 주시라는 말이다.

“당시에 당신들은 이러 이러한 일들을 했었는데, 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 보다는 우리들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이냐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내가 동북아 중심국가를 생각하고 있다. 근데 거기에 일본도 좀 참여해 줬으면 좋겠다. 그곳에는 이러 이러한 아름다운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뭐, 이런 이야기가 거듭 거듭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일 정상회담을 몇 일 남겨 놓으면 언제든 어김없이 튀어 나오는 일본 우익세력들의 망발 버릇을 단순한 실언이나 이들의 무지 정도로 받아들여서는 정말 곤란하다. 그것은 이들의 치밀한 역할 분담이고, 수상으로 하여금 양보할 수 없는 선을 이미 그어주는 것이고, 일본 국민들에게 추후 생길지도 모르는 정상회담에서의 우리측 요구를 일방적이라고 여길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는 선제 공격적 행위라는 점이다.

또한 어제 있었던 2차 셔틀외교에서도 북한에 의한 납치피해자 문제를 언급하시면서 특히 피해자의 유골이 다른 사람의 것으로 밝혀진 사실에 대해 일본 국민들의 분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하셨다는데, 이것 역시 형평성에 어긋나는 말씀이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이해를 표명하시기에 앞서 주의를 환기시켜 주는 작업이 선행되었어야 한다.

즉, “냉정하게 살펴봤을 때 북한에 의한 납치피해자 문제 역시 지나간 불행한 역사인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가 있다. 먼저 이러한 지나간 역사의 피해 당사국인 북한, 더 나아가서 주변국의 입장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라는 전제를 달고 나서 일본 국민들의 분노에 이해를 표명하심이 순서였다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께서도 어제 기자 회담에서 말씀하셨듯이 약소국이 관용을 베풀면 자칫 비굴로 보일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상대방의 잘못을 정당화 시켜주는 오류를 범하고, 북치고 장구치는 일본 우익세력의 준동에 박수를 쳐 주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새로운 한·일관계, 동반자적 입장으로서의 한·일관계는 무턱대고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의 접근이어서는 곤란하다는 점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다.

아주 쉽고 간단하게 이야기 해서 '지역생활공동체'를 만들자는 것이 새로운 한·일관계요, 동반자적 입장으로서의 한·일관계 아닌가. 그렇다면 앞서도 이야기 했듯이 그곳에는 인간대 인간으로서의 신뢰와 믿음이 선행되지 않으면 절대 안된다.

그래서 대일 외교는 양국민의 '인간적인 신뢰회복'을 기본으로 '지역생활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한 냉전구조의 해체로 부터 풀지 않으면 안 된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9:00
노무현 대통령은 기회있을 때 마다, 그러니까 부시 미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라든가,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어김없이 일본의 역사왜곡 사실과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의 부당성에 대해 설명한다.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 역시 부시 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야스쿠니신사 문제를 꺼내서 두 정상간에 많은 이야기가 오갔던 것으로 일본 언론이 전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후진타오 주석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양국의 관계 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뜻을 전달을 했고, 이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미국은 일본을 용서했으므로 중국 역시 미래를 생각해서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주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미일 정상회담 후에 이런 발언을 해서 주목을 받았다. "미일 관계가 돈독해지면 질수록 한일 및 중일 관계도 좋아지게 된다" 물론, 이 발언과 관련해서는 일본 내에서도 찬반 양론이 엇갈리고 있다.

21일, 5년만에 일본을 방문한 부틴 러시아 대통령은 고이즈미 총리와 마주 앉았다. 그러나 일본측은 자국의 최대 희망사항 중에 하나인 북방영토(쿠릴열도) 4개 섬 문제는 꺼내보지도 못한 채 정상회담을 마쳐야 했다.

북방영토 문제에 대한 부틴 대통령의 자세가 워낙에 강경했기 때문에 이 문제에만 목 매달았다가는 중일 관계만큼이나 러일 관계 역시 앞날을 기약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일본 정부가 대폭 양보해서 성사된 부틴 대통령의 일본 방문이었다.

이를 놓고, 일본 언론 및 전문가들은 러시아에 있어서의 일본의 영향력 저하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중국과 한국의 급속한 경제발전과 국가 경쟁력 향상으로 이들 국가가 러시아에서 일본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일본의 중요도가 현저하게 떨어진 결과라는 분석이다.

또한 일본 교도통신의 보도에 의하면 일본 정부는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로 한국 정부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에 12월로 예정되어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에 대한 기대를 포기했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아소 타로 일본 외상은 야스쿠니신사 참배 중지가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 전제 조건이라면 참배를 중지하면서까지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에 매달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명언했다. 즉, 다음달의 셔틀 회담이 연기 또는 중지된다고 해서 양국관계가 단절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라고 한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일본측에 진의를 요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일본 외상의 개인적인 생각인지 아니면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인지에 따라서 우리의 대응 역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설사, 외상의 개인적인 생각이라 하더라도 재발 방지를 위한 강력한 항의는 필요하다고 본다.

어쨌든 이상의 결과들을 놓고 일본 외교력의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일본 내에서도 만만치 않게 들리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다소 고소하게도 들리는 이와 같은 분석들이 과연 일본 외교의 참 모습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 기술한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한일 및 중일 관계가 한미 · 중미 관계의 연장선상으로 옮겨간 양상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제 한일 · 중일 관계 속에 당사자인 일본은 없고, 대리인인 미국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쪽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동북아 외교의 큰 틀을 대미 관계의 연속선상에 두고 미일 관계의 돈독함 속에서 풀려고 하는 의도로 즉, 대미 종속적 행태를 노골화 하고 있는 고이즈미 정권을 비롯한 신흥 우익세력의 성향으로 볼 때, 대미 의존도의 강화가 여러모로 자국에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법 하다.

현재 고이즈미 개혁의 일환으로 진행 중인 우정산업 민영화, 주일 미군 재편문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여부 등을 놓고 일본 정부에 가한 미국측의 압력은 상당했던 것으로 언론들은 보도를 하고 있다. 특히 그 중에 클라이맥스는 부시 정권으로부터 개혁의 진도가 너무 늦다라는 지적을 받고 급피치를 내고 있는 우정산업 민영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주일 미군 재편문제와 관련해서도 이를 미일 군사 동맹의 강화로 보는 측도 있으나 사령부 기능의 본토 이전 등을 감안해 볼 때 쌍방의 생각이 많이 달랐음을 알 수 있으며, 오히려 일본 입장에서는 울며겨자먹기로 주일 미군의 이전비용조차 부담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음은 미일 군사 동맹의 허술함을 보여주는 일례로 거론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구도를 타파할 수 없음이 현재 일본이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전후 일본은 미국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 하에서 성립된 체제이고, 그와 같은 체제를 혁파하기 위해서는 전후 일본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데, 그 한가운데에 천황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장애가 되고 있다.

일본이 지금과 같은 불평등한 대미 관계를 만들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전쟁 전 체제인 천황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였고, 이를 위해 천황 자신이 자국의 헌법을 위반해 가면서까지 미국측과 교섭을 벌인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결국은 동북아 외교 역시 이와 같은 모순에 함께 빠져들어가는 꼴이 되고 말았는데, 이는 일본 현 체제에 씻을 수 없는 원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로 이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일본 신흥우익들은 동북아 문제를 동북아 당사자와 풀려는 생각을 버리고, 동북아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국을 매개로 할 것을 계산에 넣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외교와 과거사를 분리해서 대응해 나가며, 외교는 일본 정부가 맡되 과거사와 관련한 일체의 해결책은 미국에게 의존하고 미국의 입김이 주변국에 전해지도록 경제력을 동원한 공작을 벌이는 것이다. 이는 대미 의존에 '올인'함을 의미한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일본의 원죄를 용서해 준 유일한 국가에게 자신의 안위를 위탁하고 구원 받는 쪽이 이해 당사자들과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는 것 보다 빠르고 편할 것으로 판단했지 싶다.

비록 얼마나 오래 갈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일본 신흥 우익세력들은 이와 같은 전략을 상당히 매력적인 수단으로 보고 있는 듯 하다.

우선, 주변국을 자극하는 도발적인 행위와 망언 등으로 지역 갈등을 부추키고 지역 안보를 위태롭게 몰고 가서 이를 자국 내 우경화 확산에 한껏 이용할 수가 있으며, 이는 일본 내 '전후사의 완벽한 청산'과 함께 '평화국가'에서 전쟁이 가능한 '전전(戰前)체제'로의 방향 전환을 이루도록 해 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뒷 수습은 미국이 맡고 말이다.

게다가 어디 그뿐인가? 비록 뒷 정리일 망정 도둑질(?)도 같이하면 동지애가 생긴다고, 이에 더해 대미관계는 한층 무르익어 가고 있다.

일본의 외교력은 결코 약화되지 않았다. 단지 미국의 '팔뚝' 에 기대어 꼬랑지를 내리고 있을 뿐이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7:41

한국에서는 한일협정 문서 공개로 인해 군사독재 정권의 주먹구구식 대응과 피해자 보상 문제가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19일 일본 히로시마 고등법원에서는 일제시대 미쯔비시 중공업 징용 노동자 40명이 제기한 강제 징용 원폭피해자 배상 소송에 원고 일부 승리 판결이 나왔다.

원고들이 제기했던 '지급하지 않은 임금과 원폭 피해 위자료를 배상하라'는 요구에 히로시마 고등법원은 원고측 일부 주장에 한해서만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번에 히로시마 고등법원이 내놓은 판결문에 의하면 ‘국외로 출국함으로 해서 원폭2법 등 관련법에 따른 수당 수급권을 박탈한 옛 후생성 국장 통달(업무지침) 402호는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법률상 근거가 있는지 여부 등을 충분히 조사한 것으로 인정할 수 없다’라며 ‘정신적 피해에 대해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사실을 놓고 한국에서는 태평양 전쟁 한국인 피해자들이 재판에서 처음으로 승소를 했다라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맞는 말이다. 지금껏 일본 고등법원은 태평양 전쟁 당시의 강제연행, 강제노동, 해외거주 피폭자 문제와 관련해서 단 한번도 국가에 배상 명령을 내린 적이 없었다.

단지 강제노동을 강요한 기업에 대해서는 배상명령을 딱 한번 내린 적이 있는데. 작년 7월에 니시마쯔(西松) 건설회사를 상대로 중국인 원고들이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측 승소 판결을 내렸던 것이 그것이다. 이번과 같은 히로시마 고등법원의 판결로 기업의 안전배려 의무 위반에 대한 위법성 지적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이렇듯 전례 없는 판결이 앞으로의 다른 피해자들의 항소심에도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까라며 상당히 기대하는 눈치다. 이미 작년에 위안부 할머니들이 패소한 경험이 있고, 강제징역 노동자 피해 소송에서 줄줄이 패한 기억이 있는 우리로서는 이번 판결이 앞으로의 항소심에 어떤 영양을 미칠지 주목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나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은 이번 판결내용이 썩 만족스러운 결과물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히로시마 고등법원은 강제연행 등 국가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구권 없음으로, 미쯔비시 중공업에 대해서는 배상시효가 만료됐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이들이 과거사 관련 피해배상 소송의 벽으로 만들어 놓은 과거의 사건이라는 '시간'의 문제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적용되어 우리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그래서 이번 판결의 핵심은 우리가 원했던 과거사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이 아니라 일본 행정관청의 업무지침에 대한 적법성 여부를 따지는 다분히 국내적인 성격이 강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즉 앞서 판결문에서도 살펴봤듯이 히로시마 고등법원은 옛 후생성 국장의 업무지침이 ‘국적에 관계없이 피폭자를 지원해야 한다는 인도적인 법 정신·법 적용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위법 하다고 판결한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거사와 관련된 일본 행정 관청의 판단에는 하나의 중요한 분기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1945년 8월 15일, 이들은 이날을 기점으로 전후(戰後)와 전전(戰前)으로 나누어 과거사를 판단하고 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그래서 전후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간혹 이번과 같이 긍정적인 판결을 내놓기도 하는데, 주가 되는 것이 일본정부나 일본기업의 공권력 및 안전의무 태만에 대한 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강제 징용 노동자들이 전쟁 종결 후 자국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 했는지의 여부 등이 그것이다.


앞서도 이야기 했듯이 이번 판결 역시 1974년 즉, 전후 일본관청의 업무지침과 관련된 시시비비에 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전전 또는 전쟁 중에 있었던 사안에 대해서는 어느 것 하나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내놓고 있지 않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강제연행, 강제노동, 위안부 문제, 전쟁 책임자 처벌 문제 등 단 한건도 제대로 인정하는 것이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번 판결이 주는 교훈, 앞으로의 항소심과의 상관 관계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것이 과거사와 관련한 우리의 딜레마이다. 이렇듯 이들의 과거사 분리대응 사실을 알면서도 승소를 위한 전략만을 세울 수가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단순하게 승소와 배상만이 우리의 주된 목적이라고 한다면 전후의 사실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대응하면 되겠지만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 또 그에 따른 적절한 사죄와 보상을 바라는 우리로서는 결코 전전 상황을 따지고 들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서 한일협정 문서 공개로 인해 불거지고 있는 재협상 및 추가 배상 문제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거기에 더해 이 문제와 관련해서 일본정부 역시도 맞대응책으로 추가 문서공개를 검토하고 있다고 하지만 현 참여정부 입장에서는 전혀 부담될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한국내의 과거 청산 요구에 기름을 부어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추후 상정해 볼 수 있는 한일협정과 관련된 피해배상 문제의 방법론 역시 앞서 거론했던 관점에서 파악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포괄적인 과거사 피해배상 형식으로 접근해서는 별다른 성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으로 보여지며, 오히려 이들의 무관심과 시간 벌기 전략에 따른 국내 내부 분란 등으로 우리가 피해를 볼 우려가 크다.


차라리 일본의 분리대응 전략에 맞춰 일본정부를 설득하고 추가협상 요구를 관철시킬 수 있는 지혜를 빌려보면 어떨까 싶다. 즉, 포괄적 의미로서의 과거사 관련 협상이 아니라 철저하게 1965년 한일협정에 초점을 맞춰서 당시의 분위기와 부당성, 제 3국의 간섭에 의한 영향 등을 조목조목 주장하고 주변국과 외교적 협조를 통한 전략적인 대응을 해 나간다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비록 법적책임이 소멸되었다고는 해도 도의적 책임까지 소멸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특히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이라는 야심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는 일본정부 입장에서는 과거사를 매개로 한 국가의 도의적 책임이라는 복병 아닌 복병의 출현이 결코 달갑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일관계,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7:37

일본 언론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작년 11월 라오스에서 열렸던 한·중·일 외무장관 회담이 끝난 뒤에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마치무라 일본외상을 불러 세워 놓고 ‘내년이 어떤 해인지 알고 계시지요?’라고 말을 걸어 일본 정치가의 실언 등을 경고했다고 한다.

자칫 역사 문제로 심각해질 우려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주의 환기였지만, 독도 문제라고 하는 일본측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계기가 되어 이와 같은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라고 일본 언론은 전하고 있다.

우리 언론에서도 많이 보도된 대로 어제 오전에 시마네현 의회가 독도의 날 조례안을 성립시켰다. 그래서 우리 정부와 국민들의 거센 항의 활동도 결국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일본 주요 언론, 텔레비전과 신문들도 어제 오후부터 오늘 아침 주요뉴스에 이 사실을 크게 보도를 하고 있다. 주로 사실 관계에 초점을 맞춰서 보도를 하고 있는데, 시마네현 의회에서의 조례안 통과 소식, 그리고 한국의 반응을 곁들여서 한류붐이 절정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 유감이라는 논지이다. 그러나 결론은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는 것이고, 일본 정부의 분명한 입장을 기대한다는 게 주종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참 안타까운 것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면서 내 놓은 논리의 빈약함이다. 1905년에 시마네현에 귀속되었기 때문에 자국의 영토라는 말뿐이다. 그런데 이 1905년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식민지 지배와 직결된 고종황제를 협박해서 성사시킨 을사조약과 관련이 있는 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인 사실은 쏙 빼 놓고 보도를 하고 있다. 바로 이점을 적극 부각시키는 것이 앞으로 우리 정부의 과제라고 보여진다.

시마네현의 독도의 날 제정 조례 문제와 관련해서 일본정부는 당초 한국쪽의 반발을 ‘독도문제는 양국 서로의 주장이 뚜렷하기 때문에 일과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경시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내에서 독도문제와 더불어 역사문제까지 불거지면서 비판의 수위가 높아지자 사태의 심각성을 재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정부 입장에서는 사태 해결의 방책을 모색은 하지만 당장은 특별한 대책 없이 열이 식기만을 기다리는 방법 밖에 없는 실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외무성은 작년 가을부터 시마네현 의회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역사 문제는 아니다라고 판단해서 사실상 묵인하고 있었다고 한다. 지방의회의 움직임 정도로 치부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문제가 커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결국은 독도 문제 역시 앞서도 이야기 했듯이 1905년 이라는 식민지 역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반론의 여지가 없는 문제라는 점에서 일본 외무성 역시 별다른 역할을 못했고, 한국정부의 거센 항의가 있자 일본외무성 내에서는 ‘빨리 조례 제정 움직임에 제동을 걸 궁리를 했어야 했다’라는 반성론도 일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올 해는 한·일 우정의 해 아닌가?

그래서 시마네현의 조례 성립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외무성 간부는 ‘국교 정상화 40주년보다 100주년에 눈길이 가는 상황이 되었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조례 제정을 계기로 한국 정부로부터 ‘일본은 역사 문제를 반성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항의 목소리가 높아져서 국교정상화 40주년의 의미보다는 국권침탈이라는 역사 문제인 1905년의 을사조약으로 관심이 옮겨간 것에 대한 한탄이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냉정한 대응을 강조하고 있지만 특별한 해결책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은 시간을 갖고 분위기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전부라는 것이다. 게다가 다음달에는 역사교과서 문제까지 불거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당분간 한·일관계는 냉각기를 맞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우세한 것 같다.

우리정부 역시도 사태 해결을 위해 지나치게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당장 해결의 실마리도 없고, 또 어차피 꼬인 것 더 꼴 필요도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결국은 그렇게 꼬인 한·일관계가 한·중·미·일, 동북아 관계를 우리에게 유리하게 풀어갈 수 있도록 만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앞서도 독도 문제는 식민지 역사의 문제라고 지적을 했지만 우리정부 입장에서는 이 부분을 좀 더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한·일관계 및 식민지 지배와 관련된 전반적인 문제, 예를 들면 지나간 한·일회담, 위안부문제, 강제연행, 강제노동, 원폭피해자 문제 등 포괄적인 식민지 지배와 관련된 사항들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로 만들고, 나아가 이를 국제적으로 이슈화 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가능하다면 유엔으로 들고 갈 수도 있겠고, 이것이 정부차원에서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민간단체를 적극 후원해서라도 주변 피해국과의 연대를 통한 국제적인 뉴스, 국제적인 이벤트로 만드는 일도 적극 검토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결국 일본 정부의 뼈 아픈 약점은 과거사 청산이라는 도의적 책임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7:35

지난 글 '한·일관계가 꼬였다고? 그럼 더 꼬아라'를 통해서 전체적으로 기본적인 흐름은 살펴봤다. 그럼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꼬여있는 한·일관계를 더 꽈야 되는 이유'를 통해서 새로운 한·일 시민연대의 중요성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 중의 한 분인 츄오(中央)대학 명예교수 이토 나리히코(伊藤 成彦) 선생은 자신의 저서 『일본 헌법 제9조 이야기-전쟁과 군대가 없는 세계로』(번역본 『일본은 왜 평화헌법을 폐기하려 하는가』강동완 옮김, 행복한책읽기 펴냄)에서 지금 일본 헌법이 1947년 5월 3일 반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여·야 구분 없이 헌법 개정에 뛰어들고 있는 현 일본 정계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강조 했다.

일본 헌법은 통상 ‘평화헌법’으로도 불린다. 그 근거는 일본 헌법 제9조 2항의 전쟁포기와 군비전폐에 있다. 이렇듯 헌법에 전쟁포기와 군비전폐를 명기하고 있는 국가는 현재 일본과 중앙 아메리카의 코스타리카 공화국 뿐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평화헌법을 개정하지 못해서 안달하는 세력들이 있으니 바로 자위대의 합법적인 군대화와 해외파병을 통한 군사대국화 야욕을 꿈꾸고 있는 新보수우익 군국주의자들이 그들이다. 물론 일본 사회에서 개헌론의 역사는 헌법의 탄생과 때를 같이 하고 있다. 이들 개헌론자들은 일본 헌법이 맥아더 연합군 사령부에 의해 강압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자주 헌법 제정론·강압헌법론 등을 들먹이며 개헌의 불씨를 계속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이토 나리히코 선생은 앞선 그의 저서에서 이들의 주장을 가당치 않은 거짓말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 평화를 지향하는 일본 헌법의 최초의 제안자는 전후 첫 내각의 수상이었던 시데하라 기쥬로(幣原 喜重郞)였고, 이 제안을 받아 들인 것이 맥아더 사령관이었다고 역사적 사실들을 열거해 가며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어찌 되었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 의회(참의원과 중의원)에서 호헌파가 적어도 3분의 1 이상을 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개헌론 자체가 큰 힘을 받지는 못했었지만, 코이즈미(小泉) 내각이 들어선 2001년 4월 이후 상황은 급변해서 이제는 의회 내에 개헌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반포 이래 최대의 위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듯 정치권이 유리한 상황에 있으면서도 개헌론을 본격적으로 거론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야 할 것 없이 개헌론이 우세한 상황이라면 의회 내에 여·야가 합동으로 헌법개정 특별위원회라도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밀어 붙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국민투표에서 통과시킬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이토 선생은 또한 지적하고 있다. 사실 내가 뜬금 없이 '꼬여 있는 한·일관계'를 논하고자 하면서 일본 헌법 이야기를 길게 끌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로 개헌론의 마지막 단계인 국민투표에 대비해서 정치권의 개헌 분위기를 민간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정치권이 모종의 작업에 들어간 것 아닐까라는 느낌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되어 온 코이즈미 세력의 거대 프로젝트의 한 부분일 수도 있다.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자민당 창당 50주년이 되는 올 11월까지는 개헌문제를 마무리 짓겠다고 호언장담해 오고 있음이 이를 증명한다고 하겠다.

또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로 불거진 중국과의 갈등, 대포동 미사일과 납치 피해자 문제로 연일 두들겨 패고 있는 북한, 거기다가 이제는 하나 남은 다정한(?) 주변국 한국과도 독도 문제로 냉각기를 맞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러시아와는 북방영토 문제로 푸틴 대통령이 방일을 한다 못한다, 코이즈미 수상이 러시아를 간다 못 간다 하는 상황이다.

영토문제와 안보문제를 빌미로 주변국과 의도적인 갈등을 유발시킨 채 국민들에게 그릇된 민족주의를 강요하는 정부와 이를 여과 없이 확대 재생산하여 전하는 매스컴의 2인 3각 경주는 '개~헌' '개~헌'을 외치고 있는 듯이 보이지 않는가.

여기에 우리 정부의 고민이 깊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이건 국가와 국가간 외교적 차원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본 국내적인 문제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우리와도 민감하게 부딪히는 군사적 팽창 정책의 일환이라는 점이 다시금 우리 정부의 선택을 어렵게 한다.

이런 이유로 해서 올 한 해, 한·일관계는 쉽게 풀기 힘든 냉각 상태를 지속할 것으로 보여지는데 오히려 이번 기회에 더 꼬고 꽈서 총체적으로 한·일관계를 재점검하고, 한국 내 과거사 청산의 계기로 삼자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와 병행해서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한가지로 한·일 시민연대의 활성화를 빼 놓을 수가 없다. 다음달부터 불거질 역사 교과서 문제도, 앞서 살펴봤던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도 결국은 국민적 지지와 여론이 중요한 향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의 한·일 시민연대는 한국의 친일·독재정권과 투쟁하는 '한국의 민주화'를 지원 및 후원하는 성격이 강했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대전환기의 한 가운데에 서 있다. 이제 우리의 시선을 일본으로 돌려보자. 그리고 일본을 주체적 입장에 둔 새로운 한·일 시민연대를 고민하고 실천하자. 그래서 反헌법개정, 反역사왜곡을 막아낼 新한·일 시민연대를 조직하자.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5:54

일본 내각부가 발표한 '외교에 관한 여론 조사'에 의하면 한국이나 중국에 대해 친근감을 느낀다 라고 대답한 사람이 전년도에 비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올 해가 한일 우정의 해라는 사실이 무색해지는 조사 결과다.
 
한국에 대해 친근감을 느낀다라고 대답한 사람은 51.1%로 전년보다 5.6%나 떨어졌다.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1996년 이후 계속 증가하다가 2001년에 잠시 감소 한 것 외에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였다. 특히 한류붐의 영향 등으로 2004년도가 과거 최고였고, 올해는 4년 만에 하락으로 돌아선 것이다.
 
한국에 대해 '친밀감을 느끼지 않는다'라고 대답한 사람은 44. 3%였다. 그리고 중국에 대해서는 '친근감을 느낀다'라고 대답한 사람이 32.4%로 역시 과거 최악이었다. 작년보다 5.2% 떨어진 결과다.
 
외교에 관한 여론 조사는 일본 내각부가 1975년부터 계속 해오고 있는 조사로 올해는 전국의 성인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했다.
 
한일관계와 관련해서는 '양호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 사람이 39.6%로 작년보다 15.9% 포인트 내려갔다. 한편, 중일관계는 19.7%만이 '양호하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이와 같이 일본 국민들이 주변국과의 관계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일본 언론들은 독도문제와 교과서 문제, 그리고 중국에서의 반일데모 등을 들고 있다. 특히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이후 냉각기를 맞고 있는 주변국 관계가 크게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분석들을 하고 있다.
 
하지만 어찌보면 전혀 새로울 것도, 또한 이상할 것도 없는 이야기다. 사실 오늘의 일본 현실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결과는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앞선 일본 언론들의 '그들식 분석'에 더해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 분위기, 그리고 주변국의 반대 의견을 제대로 일본 국민들에게 전달해 주지 못하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라는 사실이다.

일본은 왜 평화헌법을 폐기하려 하는가
이토 나리히코 지음, 강동완 옮김 / 행복한책읽기
정가 13,000  판매가 11,700 원   (YES포인트 590원)
교보문고 주간 베스트셀러
 


그뿐 만이 아니다. 이 문제와 관련한 고이즈미 총리의 발언도 한번 곱씹어 보자. 그는 기자단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객관적으로 볼 때, 경제관계 및 인적교류는 전에 없이 깊어지고 있음에서 알 수 있듯이 호감도는 별개의 문제다"
 
'왜?'라고 하는 문제의식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전형적인 '고이즈미류'의 물타기식 발언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바로 이와 같은 논점 흐리기 발언들로 인해 일본 국민들의 눈과 귀는 막혀버렸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또한 요즘들어 부쩍 언론에 자주 얼굴을 내밀고 있는 단어가 '유사'라는 말이다. '유사시' 또는 '유사법제'라는 식으로 뒷 꼬리를 달고 다니곤 하는데, 이게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니 바로 외국으로부터의 침략을 전제로 하는 대국민 '공포 조성용' 용어라는 사실이다.
 
오늘자 신문 기사 하나만 더 인용을 해 보자.
 
일본 정부는 외국으로부터 탄도 미사일 공격이 있을 경우 등에 대비한 국민 보호와 관련해 주민들의 피난 방법을 구체적으로 적시한 '시읍면 국민 보호 모델 계획안'을 발표했는데, 내년 1월에 정식 결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는 탄도 미사일 공격, 게릴라 및 특수부대의 침공, 상공으로부터의 잠입 등 3종류의 무력 공격을 상정한 피난 매뉴얼로 시읍면은 이 모델 계획을 기초로 내년 말까지 구체적인 피난 계획을 세우도록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게 오늘 일본의 모습이다. 도대체 이 사람들은 정녕 21세기를 살고 있는 게 맞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주변국으로부터 침략을 당해본 적이 없는 나라가 주변국으로부터의 침략을 우려해서 유사시를 상정하고 있는 이 뻔뻔함은 이기적인 '기우'에 지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요, 역으로 주변국을 침략해서 막대한 인적·물적·심적 피해를 입힌 불행했던 과거를 갖고 있는 나라가 오히려 주변국을 의심·경계해서 가상의 적으로 몰아대고 있는 가당찮은 작태는  '몰염치'의 극치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도둑이 제발 저린 꼴이다. 이런 절망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어찌 일본 민초들이 주변국을 따뜻한 이웃으로 볼 수 있겠는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일게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5:50

시마네(島根)현의 도발적인 '독도 망동'에 이은 고이즈미(小泉) 총리의 '안하무인격'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삐걱거리며 위태로운 행보를 거듭하던 한일관계가 고이즈미 총리의 계속되는 억지 발언과 보수 강경파 각료들의 망언으로 급기야 파행을 향해 치닫고 있다. 몇일 남지도 않은 올해가 한일 우정의 해라는 사실이 실로 부끄러워지는 일이다.
 
지난 5일,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는 더 이상 외교카드가 될 수 없다"고 전제하고 "한국과 중국이 야스쿠니를 외교 카드로 삼으려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했다. 이에 더해 중국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쪽이 이상한 것"이라며 그의 안일한 현실인식의 일단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측의 적반하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아소 타로(麻生太郞) 외무상으로 이어졌다.
 
한두 번이 아닌 계속되는 망언 뒤에 나온 지난 7일, 내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했던 기자클럽 연설은 전형적인 보수 우익 강경파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아소 타로 외상은 이날 "중국이나 언론이 지적한다고 해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그만두는 것은 일국의 총리로서 할 일이 아니며, 그것은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해야 하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자신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중단을 건의할 생각도 없음을 거듭 강조 했다.
 
과거 역사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국과 중국인들에게 안겨준 고통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계속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한편, "평화를 희구하고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마음에 거짓이 없다는 것을 허심탄회하게 봐주기 바란다"고 강변했다.
 
또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를 이유로 정상회담을 거부하고 있는 중국측을 겨냥해서 "지나간 과거가 미래에 장애가 돼서는 안 된다"며 중국측의 자세전환을 재촉하기도 하는 전반하장식 언행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에 대해서는 "가치관의 기본을 공유하고 있는 든든한 파트너, 아시아의 2대 민주주의 국가"라고 인정했는데, 이는 한국과 중국을 분리해서 대응한다는 일본측의 기본적인 주변국 외교 전략의 일단을 보여주는 발언으로 보여진다.
 
한편, 한국·중국정부 및 주변국 역시 일본 각료를 비롯한 정치 인사들의 그릇된 역사인식과 관련해 심한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와 같은 일본측의 '동북아 갈등' 전략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특히, 미국의 재외 미군 재편문제와 맞물리면서 군사력의 보유를 열망하고 있는 보수 우익들의 준동은 극에 달해 있는 상황이고, 그들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순간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바로 그 소기의 목적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것이 '평화헌법 개정'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일본 보수 우익 세력의 오랜 염원이기도 하거니와 주일미군 재편 문제는 이것을 더욱 부채질 하고 있다.
 
헌법 개정론자들의 오래된 논리가 바로 '자주 헌법론'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현재의 평화헌법은 일본을 점령한 연합군 사령부 즉, 맥아더 사령관의 지시(강압)에 의해 만들어진 헌법이기 때문에 자주성을 상실하고 있으므로 자신들의 손에 의해 자신들의 의지를 담은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이와 같은 맥아더 사령관에 의한 '강압론'이 허구라는 사실은 이미 정론이 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본인이 번역 출판한 이토 나리히코(伊藤 成彦) 선생의 『일본은 왜 평화헌법을 폐기하려 하는가 (원제: 物語日本国憲法第九条)』를 참고하기 바란다.

일본은 왜 평화헌법을 폐기하려 하는가
이토 나리히코 지음, 강동완 옮김 / 행복한책읽기
정가 13,000  판매가 11,700 원   (YES포인트 590원)
교보문고 주간 베스트셀러
 


그러나 나는 헌법 개정론자들 역시 자신들의 진심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들이 진정으로 주장하고 싶은 것은 '자주 헌법론'이 아니며, 이는 단지 명목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의 진심은 바로 '자주 국방론'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자주 국방론'은 일본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핵 폭탄급 위력의 폭발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본심을 숨긴 채 '자주 헌법론'으로 포장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는 현재 진행중인 헌법 개정론의 주된 내용이 자위대를 자위군으로 하는 즉, '군대 보유' 사실을 명확히 하고자 하는 이들의 의도를 통해서도 쉽게 알 수가 있다.
 
또한 주변국과의 갈등 문제를 비롯해 동아시아 공동체 결성에도 미온적인 행태를 보이는 것 역시도 이 '자주 국방론'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위군으로 대변되는 군사력의 보유 의지는 어딘가에 적이 존재하고 있음을 상정하지 않고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다시 말해 평화로운 동북아시아는 일본으로 하여금 군사력의 보유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일본의 보수 우익세력은 냉전시대에는 러시아를, 냉전이 종식된 후에는 중국과 북한을 그들의 가상의 적으로 설정하고 끊임없이 안보 불안을 부채질해 왔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앞서 이야기 되었던 한국과 중국 분리정책을 통한 중국에 대한 적대 · 무시 정책이 그 일례가 된다.
 
이와 같은 한·중 분리정책의 이면에는 김대중 정부 이후 한반도를 녹이고 있는 햇볕정책이 큰 역할을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남과 북에서 불고 있는 따뜻한 훈풍은 일본 정부로 하여금 전략적 변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는데, 남한이 '북한을 동포요 동족으로 보는 한' 더 이상의 일방적인 북한 때리기는 약효가 떨어진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도 노무현 참여정부의 탄생은 남북 모두에게 천만 다행한 일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하는 친일 · 수구집단이 정권을 잡고 반북 · 반민족적 행태를 지속했다면 이는 일본 보수 우익세력에게 더없이 좋은 먹이감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친일을 일삼던 신문이 한국 최대의 언론으로 행세하고 있고, 일본 왕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한 채 부끄러운 황국신민이 되기를 자청했던 군부 독재자 박정희의 딸이 당당하게 제1 야당의 대표로 군림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국민들의 미숙한 정치의식을 보여주는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망국적 지역주의와 잘못된 선거제도에 기인한 것이기는 하지만, 어찌되었든 일본 보수 우익들에게 조차도 쪽팔리는 일이다.
 
각설하고, 이제는 어떻게 이들과 사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언론보도에 의하면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고이즈미 총리의 임기 동안은 정상회담은 없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정상회담, 장관회담 다 취소하고 만나지 않으면 속은 시원해서 좋고, 우리들의 화풀이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전혀 득 되는 게 없다. 고이즈미 이후가 고이즈미 보다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기가 어려운 것이 현재 일본의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앞선 글에서 고이즈미 3기 내각을 분석하면서 이들의 역할 분담을 눈여겨보아야 한다고 말한바 있다. 강경파인 아베 신조(安倍晋三)의 관방장관 기용과 아소 타로(麻生太郞)의 외상으로의 전진 배치, 중도파인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전 관방장관의 후방 배치는 철저한 역할 분담에 의한 후계자 경쟁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아베가 후계자가 되기 위해서는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가 제일 큰 과제가 될 것이고, 후쿠다가 후계자가 되기 위해서는 야스쿠니 신사를 대체할 새로운 추도시설의 건립건이 될 것으로 분석한다. 지금까지 보여주고 있는 이들의 행보가 그것을 추측케 한다. 그리고 그 외의 인물(아소 타로 외상이나,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재무상)들은 차기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이와 같은 후계 경쟁 구도를 북한의 김정일 정권 역시 파악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아베 관방장관의 역할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며, 후쿠다 전 관방장관이 다소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이 역시도 장담하기에는 이르다. 후계자 경쟁 관계는 권력투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일본 정부 인사들을 분리해서 대응하는 전략을 펼치되,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는 그룹과 적극적인 관계 정상화 및 두터운 신뢰관계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의 역량을 총동원해서 이들을 지원하는 전략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일본내에서 이들의 입지 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함께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물론, 고이즈미 총리를 필두로 한 보수 우익들과의 만남 역시 거절해서는 안되며, 적극적으로 동북아 공동체와 평화·공생을 위한 동북아 건설을 설득해야 한다. 그렇게 간단하게 가능할 동북아 평화 체제였다면 이제까지 60년을 과거사 문제로 허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차기 일본 총리는 후쿠다일 것으로 확신하고 있는데, 현재 후쿠다씨와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그와 같은 확신에 힘을 더해 준다. 그러나 문제는 후쿠다 이후가 우려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후쿠다 이후의 인물이 아베 관방장관일 수도 있고, 고이즈미 총리의 재등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에게 민감한 문제인 소비세의 인상과 의료보험 제도의 개혁 등이 고이즈미 이후 차기 정권의 과제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바, 이로 인해 자칫 총선에서의 패배나 총선 전 패색이 짙을 경우 후쿠다는 총리 자리에서 끌어내려질 수도 있을 것이며, 이런 점에서 차기는 차차기를 위한 희생양 정권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이후 적어도 3년, 길게는 6년,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을 또 다시 '고이즈미류'의 인물들과 지지고 볶아야 한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
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4:57

니가타현의 강진과 계속 이어지는 여진이 일본사회를 충격 속에 몰아 넣고 있는 중에 이번에는 이라크에서의 일본인 납치사건이 발생해 한층 충격을 더해 주고 있다.

 

재해예방 선진국답게 발빠른 대응을 하고 있는 일본이지만 지진이든 납치사건이든 어느 것 하나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데 일본정부의 고민이 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일본인 납치사건의 경위와 앞으로의 전망 등을 문답식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1. 고다씨는 어떤 인물이며, 왜 이라크에?

 

현재까지 고다씨의 신분과 관련해서는 일본언론 역시 확실하게 밝히지를 못하고 있다.

 

우선, 알려진 사실은 고다씨는 후쿠오카현 출신으로 24살이라는 사실이다. 프리카메라멘 이라는 정보도 있었고, 사건발표 직후 일본언론에서는 자위대와 관련된 인물로 보도를 하기도 했었으나 일본정부 관계자에 의해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또 일설에?단순한 여행자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어서 일본정부 역시도 신분파악에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주변사람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뉴질랜드나 오스트랄리아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요르단에서 활동했던 일본 NGO 관계자 역시 고다씨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점 등을 들어서 여행자 신분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하고 있다.

 

그리고 고다씨가 이라크에 들어간 이유도 아직은 분명치가 않은데, 이라크로 출발하기 전에 머물렀던, 암만의 호텔 지배인에 의하면 '이라크에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다' 라고 말한 것이 전부라고 한다.

 

2. 일본정부의 대책?

 

니가타 지진 피해복구에 정신이 없는 일본정부로서도 굉장히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고이즈미 일본총리는 테러에 굴할 수 없다라며, 자위대의 철군불가 방침을 밝혔다.

 

일본 정부는 관방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인질사건대책본부'를 설치하고 외무성 부대신을 요르단 암만으로 보내서 현지대책본부를 지휘하도록 했다고 한다.

 

또한 마치무라 외무상은 어제 카타르의 알-자지라 방송의 취재에 응해서 자위대의 파견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현지의 부흥지원을 위한 것이지 전투가 목적이 아님을 강조하고 인질의 무사 석방을 촉구했다.

 

일본경찰청은 국제터러리즘긴급전개반을 암만으로 급파해서 무장조직과 석방협상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고, 바그다드 주재 일본 대사관은 이라크 임시정부에 무장조직 관련 정보의 제공과 현지 종교지도자들의 중재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언론들이 전하고 있다.

 

일본 대사관은 향후 일본인과 일본관련 시설이 테러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이라크에 입국하는 것을 금지하고 현지에 체재 중인 일본인의 즉시대피를 권고하고 있다고 한다.

 

3. 철군불가에 대한 언론의 반응?

 

고이즈미 총리의 철군불가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에 일본언론 역시 특별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는 않다. 아직 사건이 어떻게 풀릴지를 알 수 없기 때문 아닐까 싶다. 또한 우리와는 사뭇 다른 사회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철군불가 발표가 나왔을 때 엄청난 사회적 저항 운동이 있었지만, 아직 일본에서는 그러나 움직임을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200명 정도의 시민운동가들이 총리 공관 앞에서 자위대 철수 촉구 시위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 세력은 미약한 실정이다.

 

일본 언론들은 지난 4월에 있었던 일본 NGO 단체 회원들의 무사귀환 때와는 다르지 않을까 라는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당시에는 수니파 종교지도자들을 중재자로 해서 인질단체와 협상을 벌였었지만 이번에는 외인 출신이 주축이 된 알카에다 무장세력으로 알려져 있어서 지역 종교계와 관계가 깊지 않고, 또 종교지도자의 권위도 그다지 높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또한 시기적으로도 아주 안 좋은 시점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내년 초에 있을 자국 내 선거를 의식해 무장그룹들이 상당히 과격한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라크 내에 150명 정도가 납치되어 있고 그 중에 30여 명이 살해되었다고 하는데, 납치 대상 또한 미국에 협조적인 국가의 국민은 말할 것도 없고 아랍계 국민들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4. 철군불가에 대한 시민여론은?

 

앞서도 이야기 했듯이 고이즈미 총리의 철군불가 발표에 별다른 반응은 없는 것 같고, 앞으로도 특별한 저항 움직임은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지난번 납치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일본정부 일각에서 '자기책임론' 역시 불거지고 있으나 그때나 지금이나 이를 당연시 하는 사회분위기 아닌가 싶다. 국민 개개인의 자기중심주의가 국가와 국민의 관계마저도 부정하는 결과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감도 든다.

 

국가는 단 한 사람의 국민이라도 보호하고 안전을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 아닌가? 이를 애써 무시하고 있는 일본 국민들의 속마음을 나 역시 알고 싶다.

 

5. 일본사회의 분위기

 

후쿠오카현 고다씨의 자택 근처의 주민들이나 고다씨가 다녔던 중고등학교 동급생들 역시 고다씨의 무사귀환을 바라고 있다고 언론이 전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이나 동급생들 역시 고다씨가 이라크에 들어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다들 놀라고 있다고 한다.

 

고다씨는 프로 권투선수를 목표로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또 최근에는 뉴질랜드나 오스트랄리아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싶다고 말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다씨가 왜 이라크엘 갔는지 다들 의아해 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물론 지난 4월에 2차례에 걸쳐 인질로 붙잡혔던 일본인 5명이 무사히 석방된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분위기지만, 이번에는 상당히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에는 이라크 종교지도자들이 구출협상을 적극 중재했었고, 또 무장조직이 과격한 세력이 아니었던 데다가 피랍자들이 모두 이라크를 위해 활동했던 시민운동가들이었기 때문에 무사히 석방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무장조직이 어떤 성격의 세력인지, 고다 씨가 어떤 이유에서 이라크로 들어갔는지 전혀 파악이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이번 사건 해결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정부 역시도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고 보이는데, 현 시점에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될 정보도 없고, 무장그룹과의 접촉도 되지 않는 상황인 것으로 언론들이 전하고 있다.

 

또한 며칠 전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 의하면 일본 국민들의 약 67%가 자위대의 이라크 파견기간 연장에 반대한다고 답했었다. 일본정부로서는 엎친데 덮친 격 아닐까 싶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