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9:45

참 이상한 일이지요? 어제 오늘 일본 신문을 쭉 훓어 보다가 눈에 띄는 기사가 있어 자세히 읽어보게 되었는데요. 하나는 차기 일본 총리 선거와 관련한 아베씨의 동정이었구요. 또 하나는 한일 및 중일관계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내용의 기사였습니다.
 
그런데 뭐랄까요. 이 두개가 별개의 내용인 듯 하면서도 사실은 별개가 아닌, 그러니까 이 둘은 같이 묶어서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라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요. 그런데 일본 언론들의 기사 내용은 전혀 그렇지 못한, 어딘가 언밸런스하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그 얘기를 좀 해 보려고 합니다.
 
우선 주변국 관계와 관련해서는 니혼케이자이신문의 기사와 요미우리신문의 사설이 눈에 띄었습니다. 니혼케이자이는 자사가 주최하는 '아시아의 미래'라는 심포지엄에서 압둘라 바다위 말레이지아 총리가 한 강연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역 통합에 의한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에 역내 결속 강화를 호소"하면서 한일 및 중일관계 개선을 강하게 주문했다고 합니다. 읽어보면 뭐 구구절절이 옳은 말들입니다.
 
이번에는 신문을 바꿔서 요미우리신문의 오늘자 사설을 살펴보겠습니다. '중일·한일회담, 현안이 있기 때문에 대화가 중요하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요. 이 사설이 나오게 된 계기를 먼저 말씀 드려야 겠지요.
 
지난 23일 카다르에서 중일 및 한일 외상 회담이 있었지요. 요 근래의 주변국 관계를 고려해 본다면 기대 밖의 힘든 만남이 성사가 된 것이지요. 그래서 요미우리가 사설을 통해서 주변국 예찬론을 펼치게 된 것이구요. 역시 구구절절이 좋은 말들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설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역사 인식이나 영토 문제를 양국간 관계 개선의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는 지혜다' 하지만 이 결론에 쉽게 동의할 수 없음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두 신문 다 주변국 관계라는 동일한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만, 그 결론에 앞선 문제의식이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두 신문 어디에서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듯 꼬여 있는 주변국 관계는 뭐가 문제고, 어떻게 해결을 하고 풀어가야 하는지, 또 그에 대한 원인 제공은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해결의 실마리는 누가 쥐고 있는지…
 
뭐, 그런 얘기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냥 잘해보자는 것이지요, 그냥…  쓴 웃음 밖엔 안 나옵니다.
 
화제를 좀 바꿔서 차기 일본 총리 선출 문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사실은 이게 앞선 문제와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데요. 적어도 앞선 기사처럼 주변국 관계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문제 즉, 도대체 어떤 인물이 차기 일본 총리가 되어야 주변국 관계가 좋아질 수 있겠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솔직하고 진솔하게 대답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말입니다. 차기 총리 문제와 관련해서는 대다수의 일본 언론들이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제대로 되려면 누가 차기 총리가 돼야 주변국 관계의 재정립이 가능할지, 또 어떤 인물은 왜 그런 기준에 미달하는지, 이런 논의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오히려 주변국과의 관계를 더욱 꼬이게 만들고 있는 인물을 단지 개인적 인기도가 앞선다는 이유로 그 인물을 위한 홍보지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습니다. 선데이 서울류의 옐로우 잡지라면 또 모를까 세계적인 정론지임을 자부하는 명성있는 언론들이 그러면 안되지요.

그런데 이렇듯 쪽팔리는 일을 아무렀지도 않게 자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그게 그들의 속내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마디로 입으로는 폼나게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공생과 평화를 말하면서 진심은 전쟁이 가능한 보통국가 일본을 꿈꾸고들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인물에 대해 제대로 된 비판조차 삼가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진보지와 보수지를 불문하고 지역주의라는 흙탕물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우리 언론과 과거회귀라는 유령이 배회하고 있는 일본 언론은 그래서 닮은 점이 많은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치 우물 안 개구리처럼 말입니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