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9:00
노무현 대통령은 기회있을 때 마다, 그러니까 부시 미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라든가,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어김없이 일본의 역사왜곡 사실과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의 부당성에 대해 설명한다.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 역시 부시 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야스쿠니신사 문제를 꺼내서 두 정상간에 많은 이야기가 오갔던 것으로 일본 언론이 전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후진타오 주석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양국의 관계 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뜻을 전달을 했고, 이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미국은 일본을 용서했으므로 중국 역시 미래를 생각해서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어 보는 것이 좋겠다는 주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미일 정상회담 후에 이런 발언을 해서 주목을 받았다. "미일 관계가 돈독해지면 질수록 한일 및 중일 관계도 좋아지게 된다" 물론, 이 발언과 관련해서는 일본 내에서도 찬반 양론이 엇갈리고 있다.

21일, 5년만에 일본을 방문한 부틴 러시아 대통령은 고이즈미 총리와 마주 앉았다. 그러나 일본측은 자국의 최대 희망사항 중에 하나인 북방영토(쿠릴열도) 4개 섬 문제는 꺼내보지도 못한 채 정상회담을 마쳐야 했다.

북방영토 문제에 대한 부틴 대통령의 자세가 워낙에 강경했기 때문에 이 문제에만 목 매달았다가는 중일 관계만큼이나 러일 관계 역시 앞날을 기약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일본 정부가 대폭 양보해서 성사된 부틴 대통령의 일본 방문이었다.

이를 놓고, 일본 언론 및 전문가들은 러시아에 있어서의 일본의 영향력 저하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중국과 한국의 급속한 경제발전과 국가 경쟁력 향상으로 이들 국가가 러시아에서 일본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일본의 중요도가 현저하게 떨어진 결과라는 분석이다.

또한 일본 교도통신의 보도에 의하면 일본 정부는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로 한국 정부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에 12월로 예정되어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에 대한 기대를 포기했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아소 타로 일본 외상은 야스쿠니신사 참배 중지가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 전제 조건이라면 참배를 중지하면서까지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에 매달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명언했다. 즉, 다음달의 셔틀 회담이 연기 또는 중지된다고 해서 양국관계가 단절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라고 한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일본측에 진의를 요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일본 외상의 개인적인 생각인지 아니면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인지에 따라서 우리의 대응 역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설사, 외상의 개인적인 생각이라 하더라도 재발 방지를 위한 강력한 항의는 필요하다고 본다.

어쨌든 이상의 결과들을 놓고 일본 외교력의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일본 내에서도 만만치 않게 들리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다소 고소하게도 들리는 이와 같은 분석들이 과연 일본 외교의 참 모습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 기술한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한일 및 중일 관계가 한미 · 중미 관계의 연장선상으로 옮겨간 양상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제 한일 · 중일 관계 속에 당사자인 일본은 없고, 대리인인 미국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쪽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동북아 외교의 큰 틀을 대미 관계의 연속선상에 두고 미일 관계의 돈독함 속에서 풀려고 하는 의도로 즉, 대미 종속적 행태를 노골화 하고 있는 고이즈미 정권을 비롯한 신흥 우익세력의 성향으로 볼 때, 대미 의존도의 강화가 여러모로 자국에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법 하다.

현재 고이즈미 개혁의 일환으로 진행 중인 우정산업 민영화, 주일 미군 재편문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여부 등을 놓고 일본 정부에 가한 미국측의 압력은 상당했던 것으로 언론들은 보도를 하고 있다. 특히 그 중에 클라이맥스는 부시 정권으로부터 개혁의 진도가 너무 늦다라는 지적을 받고 급피치를 내고 있는 우정산업 민영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주일 미군 재편문제와 관련해서도 이를 미일 군사 동맹의 강화로 보는 측도 있으나 사령부 기능의 본토 이전 등을 감안해 볼 때 쌍방의 생각이 많이 달랐음을 알 수 있으며, 오히려 일본 입장에서는 울며겨자먹기로 주일 미군의 이전비용조차 부담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음은 미일 군사 동맹의 허술함을 보여주는 일례로 거론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구도를 타파할 수 없음이 현재 일본이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전후 일본은 미국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 하에서 성립된 체제이고, 그와 같은 체제를 혁파하기 위해서는 전후 일본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데, 그 한가운데에 천황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장애가 되고 있다.

일본이 지금과 같은 불평등한 대미 관계를 만들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전쟁 전 체제인 천황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였고, 이를 위해 천황 자신이 자국의 헌법을 위반해 가면서까지 미국측과 교섭을 벌인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결국은 동북아 외교 역시 이와 같은 모순에 함께 빠져들어가는 꼴이 되고 말았는데, 이는 일본 현 체제에 씻을 수 없는 원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로 이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일본 신흥우익들은 동북아 문제를 동북아 당사자와 풀려는 생각을 버리고, 동북아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국을 매개로 할 것을 계산에 넣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외교와 과거사를 분리해서 대응해 나가며, 외교는 일본 정부가 맡되 과거사와 관련한 일체의 해결책은 미국에게 의존하고 미국의 입김이 주변국에 전해지도록 경제력을 동원한 공작을 벌이는 것이다. 이는 대미 의존에 '올인'함을 의미한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일본의 원죄를 용서해 준 유일한 국가에게 자신의 안위를 위탁하고 구원 받는 쪽이 이해 당사자들과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는 것 보다 빠르고 편할 것으로 판단했지 싶다.

비록 얼마나 오래 갈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일본 신흥 우익세력들은 이와 같은 전략을 상당히 매력적인 수단으로 보고 있는 듯 하다.

우선, 주변국을 자극하는 도발적인 행위와 망언 등으로 지역 갈등을 부추키고 지역 안보를 위태롭게 몰고 가서 이를 자국 내 우경화 확산에 한껏 이용할 수가 있으며, 이는 일본 내 '전후사의 완벽한 청산'과 함께 '평화국가'에서 전쟁이 가능한 '전전(戰前)체제'로의 방향 전환을 이루도록 해 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뒷 수습은 미국이 맡고 말이다.

게다가 어디 그뿐인가? 비록 뒷 정리일 망정 도둑질(?)도 같이하면 동지애가 생긴다고, 이에 더해 대미관계는 한층 무르익어 가고 있다.

일본의 외교력은 결코 약화되지 않았다. 단지 미국의 '팔뚝' 에 기대어 꼬랑지를 내리고 있을 뿐이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