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9:10

한·일간 정상 셔틀외교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더 없이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도 불안정한 동북아의 위험 요소를 양국 정상들이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서 풀어간다는 것은 또 하나의 불안정 요소를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차례에 걸친 한·일 셔틀외교를 보면서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대일 접근 방식에 의아함을 떨칠 수 없음 또한 사실이다. 제주도에서 있었던 1차 셔틀외교 때에 문제화 되었던 ‘임기동안 과거사 문제를 공식 의제로 제기하지 않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은 일면 옳기도 하면서 또한 잘못되기도 했다.

먼저 옳다고 보는 이유는 역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라는 메시지를 양국의 국민들에게 제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잘못되었다고 보는 이유는 단어선택의 실수라고 보기 때문이다. 즉, 과거사 문제를 공식의제로 '제기'하지 않겠다가 아니라 '추궁'하지 않겠다로 갔어야 맞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들로부터 돌려 받아야 할 빚이 있다. 그것은 제국주의와 식민의 역사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비인간적이었고 반인륜적이었던 이웃 사람으로서의 참회와 반성이다. 국가와 국가간, 정부와 정부간의 잘 잘못이 아닌 같은 인간대 인간이라는 관계로서의 정리 문제이다. 이게 제대로 풀려야만 다정한 이웃나라로 허물없이 맺어질 수가 있다.

생각해 보라. 언제 도끼 들고 쳐들어올지 모르는 이웃과 담 하나 사이에 두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 북한과 중국을 적으로 간주한 신방위계획, 한반도의 유사시를 가정한 비밀 훈련이 잔존하는 한 이 가설은 유효하다 -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지금도 일본의 보수 우익화에 경기(驚氣)하듯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그런 상호 신뢰와 믿음을 만드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가? 우선 중요한 것은 무엇이 잘못이었는지를 서로가 이해하는 것이며, 바로 그 ‘무엇’에서 시작된 의문과 해답을 ‘어떻게’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역할이 있다.

아쉽게도 근년 들어 일본사회는 급격히 보수우익화로 가고 있다. 그래서 위에서 지적했던 ‘무엇’과 ‘어떻게’를 가르쳐 줄 선생들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설령 있다고 해도 그들의 말씀을 제대로 전달해줄 전달 매체가 없다. 이미 일본의 매스미디어는 애국언론으로 돌아선지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행하게도 그 역할을 우리가 해야 한다. 우리가 일본 국민들에게 그 ‘무엇’과 ‘어떻게’를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적어도 상기는 시켜 주어야 한다. 그래야 이들이 갖고 있는 냉전적 인식구조 해체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

자, 다시 앞선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대한민국의 대통령께서 지난간 과거사를 ‘추궁’하지 않는 선에서 ‘언급’은 해 주시라는 말이다.

“당시에 당신들은 이러 이러한 일들을 했었는데, 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 보다는 우리들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이냐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내가 동북아 중심국가를 생각하고 있다. 근데 거기에 일본도 좀 참여해 줬으면 좋겠다. 그곳에는 이러 이러한 아름다운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뭐, 이런 이야기가 거듭 거듭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일 정상회담을 몇 일 남겨 놓으면 언제든 어김없이 튀어 나오는 일본 우익세력들의 망발 버릇을 단순한 실언이나 이들의 무지 정도로 받아들여서는 정말 곤란하다. 그것은 이들의 치밀한 역할 분담이고, 수상으로 하여금 양보할 수 없는 선을 이미 그어주는 것이고, 일본 국민들에게 추후 생길지도 모르는 정상회담에서의 우리측 요구를 일방적이라고 여길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는 선제 공격적 행위라는 점이다.

또한 어제 있었던 2차 셔틀외교에서도 북한에 의한 납치피해자 문제를 언급하시면서 특히 피해자의 유골이 다른 사람의 것으로 밝혀진 사실에 대해 일본 국민들의 분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하셨다는데, 이것 역시 형평성에 어긋나는 말씀이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이해를 표명하시기에 앞서 주의를 환기시켜 주는 작업이 선행되었어야 한다.

즉, “냉정하게 살펴봤을 때 북한에 의한 납치피해자 문제 역시 지나간 불행한 역사인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가 있다. 먼저 이러한 지나간 역사의 피해 당사국인 북한, 더 나아가서 주변국의 입장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라는 전제를 달고 나서 일본 국민들의 분노에 이해를 표명하심이 순서였다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께서도 어제 기자 회담에서 말씀하셨듯이 약소국이 관용을 베풀면 자칫 비굴로 보일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상대방의 잘못을 정당화 시켜주는 오류를 범하고, 북치고 장구치는 일본 우익세력의 준동에 박수를 쳐 주는 모양새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새로운 한·일관계, 동반자적 입장으로서의 한·일관계는 무턱대고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의 접근이어서는 곤란하다는 점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다.

아주 쉽고 간단하게 이야기 해서 '지역생활공동체'를 만들자는 것이 새로운 한·일관계요, 동반자적 입장으로서의 한·일관계 아닌가. 그렇다면 앞서도 이야기 했듯이 그곳에는 인간대 인간으로서의 신뢰와 믿음이 선행되지 않으면 절대 안된다.

그래서 대일 외교는 양국민의 '인간적인 신뢰회복'을 기본으로 '지역생활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한 냉전구조의 해체로 부터 풀지 않으면 안 된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