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시 사2013. 12. 11. 17:50

요즘 흘러가는 대한민국의 판세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한 편의 막장 드라마를 보는 듯합니다. 인륜과 정서는 무시한 채 오직 극적 호기심에만 편승하여 시청자의 시선을 붙잡아 두는 걸 막장 드라마라고 하지요. 우리의 현실이 딱 그렇습니다.

 

의혹이 있으면 사실을 규명해야 하고, 잘못이 있으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하며, 법과 원칙에 입각한 공명정대한 원리가 철저하게 보장되어야 함이 민주사회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이에 부합하지 않으니 문제인 것이지요.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국민의 기본적인 행복추구권에 해당하는 온갖 것들이 권력에 의해 강제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저는 정치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치라는 말을 떠올릴 때마다 제가 다니던 학교의 테니스 코트를 연상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테니스 코트를 관리하는 분들의 가장 중요한 일과는 롤러를 밀고 다니며 코트를 평평하게 다지는 작업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일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요철을 없애는 작업인 것이지요.

 

만약 그런 작업을 소홀히 한다면, 그래서 테니스 코트가 평평하지 않다면, 제아무리 세계적인 기량을 갖춘 훌륭한 선수가 와서 시합을 한다 하더라도 제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할 것은 자명합니다. 결국은 실력이 아닌 운이 좋은 선수가 이기는 시합이 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운동 중에 농구를 좀 잘합니다. 옛날에는 선수로도 활약해 봤구요. 근데 제가 선수로 뛸 때는 항상 실내체육관의 평평한 마룻바닥에서 연습과 시합을 했습니다. 그 경우 승패는 거의 실력이 좌우했습니다.

 

그런데 동네 친구들과 또는 중고등학교에서 하는 체육대회의 경우 주로 학교 운동장에서 시합을 해야 했습니다. 지금이야 중고등학교 운동장도 깨끗하게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만, 우리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진흙투성이에 울퉁불퉁한 곳이 도처에 있는 그런 상태였습니다.

 

그런 환경에서는 제가 아무리 드리블을 잘한다 한들, 그 볼이 항상 제 손에 붙어 따라다닌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열심히 볼을 드리블 해 달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 불규칙 바운드로 인해 볼은 저만치 튕겨져 도망가 버리고 맙니다. 특히, 비가 내린 후 며칠 뒤에 하는 시합은 아주 죽음이었습니다. 사람들 발자국에 자전거 바퀴 자국까지 선명하게 남아 있는 농구 코트는 이미 제 기능을 상실한 상태라고 봐야겠지요.

 

그런데 정치라는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자주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정치인이 한국정치라는 상황에 투입이 된다 한들 그가 기량을 발휘하기에 적합한 환경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말짱 도루묵이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는 지나간 역사를 통해서 우리가 무수히 목도해 온 사실입니다. 물론, 그 조차도 그의 능력이라 말씀하신다면 그 또한 그의 운명이겠지만, 너무도 가혹한 형벌 아니겠습니까?

 

현실이 이렇다 보니, 나름 할 만하다 싶은 사람을 뽑아 정치에 수혈해 보지만 우리의 정치상황은 별반 나아지지 않은 채 지금 여기까지 와 있습니다. 잠시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는가 싶을 때, 친일과 독재를 기반으로 하는 과거 회귀세력에 의해 다시 발목이 잡히고 마는 불행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음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 현시대의 위대한 정치가는 정치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강단 있게 새판을 잘 짤 수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말입니다. 누구처럼 이리저리 간만 본다고 해서 될 일은 절대 아니구요.

 

다시 테니스 코트 얘기로 돌아가 볼까요? 비만 오면 상습적으로 진흙탕이 되어버리는 테니스 코트가 있다면 어찌해야 할까요? 언제까지나 고인 물이 다 빠질 때까지 무한정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연습도 해야 하고, 시합도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런 코트라면 차라리 초기 공사 비용과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포클레인으로 싹 파내고 다시 기초공사를 해서 물 빠짐이 잘 되는 정상적인 테니스 코트로 재정비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지 싶습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입장에서도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우수한 인재급의 정치인을 선택해 국정운영의 장으로 보낸다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판에서는 제실력을 발휘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국력의 낭비입니다.

 

작은 자갈과 점토질의 흙, 그리고 모래를 잘 섞어 훌륭한 코트를 먼저 만들어 놓은 후에 우수한 정치인을 투입해 그 위에서 맘껏 기량을 발휘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주인된 국민의 도리가 아니겠는지요? 결국은 국민이 나서야 합니다. 포클레인으로 판 갈이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