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6:07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일 항의 시위가 심상치 않은 양상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일본언론에서야 반일시위라며 떠들고 있지만, 그것을 반일(反日)이라고 보기 보다는 항일(抗日)이라는 표현이 더 옳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일본쪽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닌 듯 싶다.

비록 유리창 몇 개 파손된 것이라고는 하나 일본 영사관이 타격을 당하는데, 중국 공안들은 팔짱을 끼고 구경만하고 있었다는 게 일본 언론과 정부의 불만인 듯 하다. 즉, 중국 당국이 항의 시위를 묵인 내지는 오히려 조장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뉘앙스로 읽힌다.

이는 다시 말해서 3주째 이어지고 있는 중국에서의 이번 항의 시위를 중국 시위대와 일본 정부간의 충돌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국가간 싸움으로 몰아가려는 의도로 비친다는 것이 솔직한 나의 감상이다.

그래서 폭력으로 치닫고 있는 다소 과격한(?) 형태의 시위에 개인적으로 상당히 우려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칫 진실이 진실일 수 있도록 하자는 주변국 주장의 정당성이 일본에 왜곡되어 전달될 수 있고, 심지어는 이를 악용코자 하는 불순한 세력도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요 몇일 일본언론의 헤드라인은 거의가 주변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본에 대한 항의 시위와 관련된 내용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특히, 그 시위 양상이 과격하면 과격할수록 메인 쪽으로 옮겨갈 가능성은 더욱 높다고 할 것이다.

오늘 텔레비전 각 방송사들이 보여주고 있는 아침부터 지금까지의 주요 뉴스 역시 반일시위와 관련된 것들이다. 돌이 날고, 오물이 투척 되고, 진압경찰과의 충돌 장면이 묘한 음악과 함께 사뭇 긴장감을 더하게 한다.

왜 지금 일본에서?

한때 한국에서 땡전 뉴스가 횡횡하던 시절 하루가 멀다 하고 보아오던 영상과 닮아있다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별반 새로울 게 없는 모습이기는 하지만, 의아스러운 점은 그런데 왜 지금 일본에서 20년 전 대한민국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가 이다.

이 문제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 일본 정부의 성격을 제대로 분석해 봐야만 한다. 특히 코이즈미(小泉) 내각의 제1의 목표가 무엇인지부터 파악해보는 것이 급선무라 할 것이다.

4년 전 코이즈미 총리는 정부 수반이 되면서 2가지를 약속했다. 야스쿠니(靖國) 신사참배와 헌법개정이 그것이다. 그러나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이벤트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으며, 또한 이는 외교적 유·불리에 의해 언제든 불참으로 변경 가능한 사안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헌법개정과 관련한 문제는 보다 심각한 초당적·거국적 사안이라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게다가 이 헌법개정 문제는 비단 코이즈미 내각의 제1의 목표일 뿐만 아니라 자민당 50년 역사의 숙원 사업이자 일본 우익세력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코이즈미 총리는 내각 결성을 명 받는 순간부터 - 아니 어쩌면 헌법개정을 전제 조건으로 총리직을 움켜 쥐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 개헌을 위한 준비 작업을 철저하게 진행시켜 왔고, 드디어 그 결실의 순간을 맞고 있다.

특히 정치권의 개헌 분위기는 아주 만개해 있는 상황이다. 사민당의 몰락과 구자민당 이탈세력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제1야당 민주당의 급격한 부상이 개헌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역시 국민 투표라 할 것이다. 아무리 정치권의 분위기가 좋다고 해도 개헌의 최종 단계인 국민투표에서 통과되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오래 전부터 대국민 개헌 분위기 만들기에 코이즈미 내각을 비롯한 정치권과 보수우익 세력은 총궐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코이즈미 내각은 주변국과의 의도적인 갈등 조장으로, 정치권은 개헌론의 공론화로, 보수우익 세력은 역사 왜곡으로 철저한 역할분담을 통해 목표 실현에 성큼 다가섰다고 볼 수 있다.

코이즈미 정권의 성격

사실 이번 중국에서의 항의 시위의 배경으로는 일본에 의한 역사왜곡이나 야스쿠니 신사 문제 등 여러가지를 들 수가 있겠으나 그 중에서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것이 일본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 문제 아니었나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일 강경 발언으로 들썩이던 중국 여론에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어 가던 일본 유엔 상임이사국 반대 서명 운동이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지 싶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사실 일본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 문제는 헌법개정 문제보다는 하위의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코이즈미 내각은 앞서도 이야기 했듯이 내각 구성시부터 개헌을 목표로 태어난 정권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 문제나 북일수교 문제, 러시아로부터의 북방영토 반환 문제 등은 아마도 코이즈미 총리의 개인적인 욕심에 의한 사적 추진 사업이었을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물론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이 세가지 문제들 중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할 것이나 그것을 내각의 운명을 걸고 추진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계획과 사전 작업이 필수적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들 세 문제는 어느날 갑자기 툭 툭 불거지기 시작해서 별다른 성과 없이 질질 시간만 끌고 있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게다가 이슈화 되는 시점 역시 정치적 격변기 내지는 대중적 지지도 회복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코이즈미 총리는 취임초기 80%대를 넘나드는 엄청난 인기를 누리다가 이후 40%대로 곤두박질 치면서 상당한 위기 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것을 만회할 수 있는 특별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었다. 개헌이라고 하는 것은 국민적 지지를 얻지 못하면 불가능한 사항인데 떨어지는 지지도는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궁리해 낸 것이 외교적 업적을 통한 지지도 만회라는 우회 정책이었고, 이는 코이즈미 개인의 명예욕과 맞물려 급속히 세력을 확대하게 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별다른 준비 없이 평양으로 달려갔던 것이고, 북방영토도 시찰을 했고, 유엔 상임이사국에 진출하겠다고 큰소리도 치고 있는 것이다.

경제개혁이나 사회개혁, 정치개혁 등 일본 국내 문제의 해결은 엄청난 국민적 저항 내지는 이탈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애초부터 코이즈미 내각의 과제는 아니었다고 봐야 한다. 물론 코이즈미 총리는 코이즈미 개혁을 줄창 강조하고 있지만 그것은 결코 퍼포먼스 이상이 될 수 없음은 코이즈미 개헌 내각이 안고있는 풀 수 없는 숙명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은 헌법 개정을 위한 분위기 조성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군대를 보유하게 되고, 과거와 같이 전쟁이 가능한 보통의 일반국가가 되는 것. 그것이 내년 상반기까지 예정되어 있는 코이즈미 내각의 과제이며, 이 과제를 완수하고 코이즈미는 물러날 것이다. 그래서 올 해가 더 없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올 해 안에 개헌안이 완성이 되고 내년에는 국민투표를 통한 최종적인 개헌으로 달려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슬슬 회자되기 시작하는 국민투표법안을 통한 미디어 통제설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개헌은 주변국에 대한 약속 파기다

이제 우리 정부도 보다 더 강력하게 일본의 개헌에 분명한 반대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헌법 개정 문제를 우리가 거론하고 나서는 것은 자칫 내정 간섭 시비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우리에게도 일본 헌법을 지켜내야 할 무거운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일본 헌법이 평화헌법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나라와 같이 과거에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엄청난 희생을 당했던 주변국들의 뼈아픈 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아픔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주변국에 대한 약속으로 일본은 평화헌법을 만들었고, 50년 가까이 지켜오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일본헌법 개정을 반대하는 우리의 논리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일본이 헌법을 개정하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안보불안에 기인하고 있는 만큼 이것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그래서 다소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으나 일본 헌법을 개정하고 군대 보유를 인정하는 대신 일본에 미군이 아닌 연합군을 두는 제도를 기본으로 상정해서 대응할 필요가 있음을 밝혀두고자 한다. 하지만 분명히 해 둘 것은 이 제도는 실현 가능성의 유무 보다는 오히려 개헌 저지책으로써의 의의가 더 크다는 사실이다.

지난 글에서 필자가 동아시아조약기구(EATO) 연합군이라고 명명했던 것으로 독일이 앞선 선례로 거론 가능할 것이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