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2006년/시 사2010. 6. 18. 17:35

지난 글 '한·일관계가 꼬였다고? 그럼 더 꼬아라'를 통해서 전체적으로 기본적인 흐름은 살펴봤다. 그럼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꼬여있는 한·일관계를 더 꽈야 되는 이유'를 통해서 새로운 한·일 시민연대의 중요성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 중의 한 분인 츄오(中央)대학 명예교수 이토 나리히코(伊藤 成彦) 선생은 자신의 저서 『일본 헌법 제9조 이야기-전쟁과 군대가 없는 세계로』(번역본 『일본은 왜 평화헌법을 폐기하려 하는가』강동완 옮김, 행복한책읽기 펴냄)에서 지금 일본 헌법이 1947년 5월 3일 반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여·야 구분 없이 헌법 개정에 뛰어들고 있는 현 일본 정계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강조 했다.

일본 헌법은 통상 ‘평화헌법’으로도 불린다. 그 근거는 일본 헌법 제9조 2항의 전쟁포기와 군비전폐에 있다. 이렇듯 헌법에 전쟁포기와 군비전폐를 명기하고 있는 국가는 현재 일본과 중앙 아메리카의 코스타리카 공화국 뿐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평화헌법을 개정하지 못해서 안달하는 세력들이 있으니 바로 자위대의 합법적인 군대화와 해외파병을 통한 군사대국화 야욕을 꿈꾸고 있는 新보수우익 군국주의자들이 그들이다. 물론 일본 사회에서 개헌론의 역사는 헌법의 탄생과 때를 같이 하고 있다. 이들 개헌론자들은 일본 헌법이 맥아더 연합군 사령부에 의해 강압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자주 헌법 제정론·강압헌법론 등을 들먹이며 개헌의 불씨를 계속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이토 나리히코 선생은 앞선 그의 저서에서 이들의 주장을 가당치 않은 거짓말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 평화를 지향하는 일본 헌법의 최초의 제안자는 전후 첫 내각의 수상이었던 시데하라 기쥬로(幣原 喜重郞)였고, 이 제안을 받아 들인 것이 맥아더 사령관이었다고 역사적 사실들을 열거해 가며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어찌 되었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 의회(참의원과 중의원)에서 호헌파가 적어도 3분의 1 이상을 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개헌론 자체가 큰 힘을 받지는 못했었지만, 코이즈미(小泉) 내각이 들어선 2001년 4월 이후 상황은 급변해서 이제는 의회 내에 개헌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반포 이래 최대의 위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듯 정치권이 유리한 상황에 있으면서도 개헌론을 본격적으로 거론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야 할 것 없이 개헌론이 우세한 상황이라면 의회 내에 여·야가 합동으로 헌법개정 특별위원회라도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밀어 붙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국민투표에서 통과시킬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이토 선생은 또한 지적하고 있다. 사실 내가 뜬금 없이 '꼬여 있는 한·일관계'를 논하고자 하면서 일본 헌법 이야기를 길게 끌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로 개헌론의 마지막 단계인 국민투표에 대비해서 정치권의 개헌 분위기를 민간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정치권이 모종의 작업에 들어간 것 아닐까라는 느낌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되어 온 코이즈미 세력의 거대 프로젝트의 한 부분일 수도 있다.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자민당 창당 50주년이 되는 올 11월까지는 개헌문제를 마무리 짓겠다고 호언장담해 오고 있음이 이를 증명한다고 하겠다.

또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로 불거진 중국과의 갈등, 대포동 미사일과 납치 피해자 문제로 연일 두들겨 패고 있는 북한, 거기다가 이제는 하나 남은 다정한(?) 주변국 한국과도 독도 문제로 냉각기를 맞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러시아와는 북방영토 문제로 푸틴 대통령이 방일을 한다 못한다, 코이즈미 수상이 러시아를 간다 못 간다 하는 상황이다.

영토문제와 안보문제를 빌미로 주변국과 의도적인 갈등을 유발시킨 채 국민들에게 그릇된 민족주의를 강요하는 정부와 이를 여과 없이 확대 재생산하여 전하는 매스컴의 2인 3각 경주는 '개~헌' '개~헌'을 외치고 있는 듯이 보이지 않는가.

여기에 우리 정부의 고민이 깊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이건 국가와 국가간 외교적 차원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본 국내적인 문제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우리와도 민감하게 부딪히는 군사적 팽창 정책의 일환이라는 점이 다시금 우리 정부의 선택을 어렵게 한다.

이런 이유로 해서 올 한 해, 한·일관계는 쉽게 풀기 힘든 냉각 상태를 지속할 것으로 보여지는데 오히려 이번 기회에 더 꼬고 꽈서 총체적으로 한·일관계를 재점검하고, 한국 내 과거사 청산의 계기로 삼자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와 병행해서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한가지로 한·일 시민연대의 활성화를 빼 놓을 수가 없다. 다음달부터 불거질 역사 교과서 문제도, 앞서 살펴봤던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도 결국은 국민적 지지와 여론이 중요한 향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의 한·일 시민연대는 한국의 친일·독재정권과 투쟁하는 '한국의 민주화'를 지원 및 후원하는 성격이 강했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대전환기의 한 가운데에 서 있다. 이제 우리의 시선을 일본으로 돌려보자. 그리고 일본을 주체적 입장에 둔 새로운 한·일 시민연대를 고민하고 실천하자. 그래서 反헌법개정, 反역사왜곡을 막아낼 新한·일 시민연대를 조직하자.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