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시 사2019. 1. 9. 17:08


Ⅰ. 들어가며

Ⅱ. 뒤르케임 이론의 적용: 도덕적 평화 개념을 중심으로

Ⅲ. 나가며 



Ⅰ. 들어가며


  한파주의보 발령에 따른 위험 안내 메시지가 동장군의 맹렬한 기세를 알려준다. 바깥 기온 영하 12도, 체감온도는 무려 영하 19도라고 한다. 동토의 땅 시베리아 설원 못지않은 강추위가 이어지고 있다. 불과 5개월 전, 예년에 없던 폭염 하의 기온이 영상 40도에 육박했던 것을 떠올려 보면, 대지를 이글거리는 프라이팬처럼 달구어 놓았던 한여름 뙤약볕의 열기가 채 가시지도 않았을 것 같은 요 몇 개월 사이에 50도에 이르는, 체감 기온을 기준으로 하자면 60~70도에 이르는 기온차를 이겨내며 살아야 하는 형편에 놓여 있는 셈이다. 그래도 살아내야 하니 참으로 척박한 자연 풍토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냉탕과 급탕을 왔다 갔다 오가야 하는 이런 예측 불가능한 현상은 비단 기후의 문제만이 아님을 금세 안다. 어느 날 아침, 제주도를 향해 항해하던 세월호가 침몰을 했고 채 피우지도 못한 꽃이었던 어린 학생들은 온 국민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배와 함께 서서히 수장되었다. 그 시각 국가의 시계는 멈춰 있었고 정부의 공간은 부재했다. 그런가 하면 박근혜와 최순실로 대표되는 사익에 눈먼 국정농단 세력들의 일탈 행위는 국민들을 분노케 했고, 광장은 척폐청산 피켓을 든 국민들의 촛불행렬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마침내 박근혜가 탄핵됨으로써 이게 나라냐며 저항했던 국민들의 요구는 수용되었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는 남·북의 정상이 만나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에 서명했다. 11년 만의 남·북정상회담이자 신한반도시대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이후 숨 가쁘게 이어진 평화와 번영을 향한 여정은 ‘5·26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역사적인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견인해 내기에 이른다. 70여년에 걸친 갈등을 종식하고 평화의 씨앗이 뿌려지는 순간이자, 동시에 냉전의 마지막 보루인 판문점 체제(동아시아 불평등 체제/샌프란시스코 체제)가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서명 하나를 남겨두고는 있으나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를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모든 정치·외교적 사건들 또한 불과 4~5년의 시차 속에서 만들어진 세기적 사건이자 드라마틱한 순간들이다.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현상(레온 페스팅거, 『인지부조화 이론』, 2016, 나남출판)에 따른 ‘부조화 압력’[각주:1]이란 바로 위와 같은 상황들을 전제로 해서 만들어진 이론일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의 급변하는 사회·외교적 현상들이 함의 하는 바는 무엇이며, 이의 분석과 해결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등의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케임(Emile Durkheim)을 소환하여 이에 대한 대답을 찾고자 했던 한 학자의 저술을 통해 시대적 부름에 응답코자 한다.


  김학재는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 분단과정을 거치며 형성된 ‘판문점 체제’에 주목하고 이를 ‘자유주의 평화 기획’의 관점에서 재해석 하고자 한다.[각주:2]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김학재는 ”냉전적 해석의 틀에서는 한국전쟁을 단지 한반도라는 전장에서 발생한 군사적 충돌로 바라보았지만, 평화와 국제법에 주목하려는 시도는 한국전쟁을 국제법의 지성사가 다뤄야 할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재해석해야 한다는 생각에 도달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결국엔 현실주의와 자유주의적 접근을 넘어서 ‘사회적 평화’ 개념을 전개한 뒤르케임적 사상을 대안적인 평화의 철학과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Ⅱ. 뒤르케임 이론의 적용: 도덕적 평화 개념을 중심으로


  동(북)아시아에는 현재 두 개의 전선이 형성 중이다. 미·중 간 패권 전선(신냉전)이 하나고, 샌프란시스코 체제적 전선이 다른 하나다. 대륙세력(중국)과 해양세력(미국)이 해양으로의 진출을 놓고 벌이는 신흥 전선, 냉전의 끝물에 위치한 채 청산하지 못한 과거사를 중심으로 한 붕괴 직전의 구 전선이 샌프란시스코 체제 전선이다. 전자는 현재 무역전쟁으로 표면화 된 대결의 한 국면을 맞이하고 있으며, 아베 총리로 대표되는 일본 정부는 지역 현안에 다각도로 개입하면서 그 충격을 최소화하려고 애쓰고 있다.[각주:3] 그리고 이 양대 전선의 기능과 역할에 핵심 키워드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 한반도 비핵화(또는 북핵) 의제이다. 지정학적 변화가 표출되고 있는 결정적 양상들이다.


  김학재는 이를 ‘판문점 체제’의 유산들로 본다. 즉, “한반도에 형성된 냉전의 유물들, 아시아 패러독스[각주:4]의 핵심 기반 중 하나인 한국전쟁 군사 정전 체제를, 하나의 특수한 평화체제로서 ‘판문점 체제(Panmunjom regime)'"라고 부르겠다는 것이다.(김학재 (2015), p. 22판문점 체제의 기원은 무엇인가? 판문점 체제는 다른 평화 체제들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판문점 체제는 어떤 특성과 문제를 갖고 있는가? 이에 답하기 위해 저자는 다음과 같은 통찰에서 출발해 보려 한다면 뒤르케임의 『사회분업론』을 인용한다.(김학재 (2015), p. 23)


폭력에 의해 강요된 휴전은 잠정적일 수밖에 없으며 사람들의 정신을 평온하게 만들지 못한다. 인간의 열정은 그들이 존중하는 도덕적 힘 앞에서만 멈춘다. 만약 이런 종류의 모든 권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결국 현실은 잠재적이건 격렬하건 간에 가장 힘센 세력이 지배하게 된다. 이들이 지배하는 것이 법칙이며, 전쟁 상태는 필연적으로 만성적인 것이 된다. 이런 아나키가 건강하지 못한 현상이란 것은 매우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는 가장 강력한 자가 지배한다는 물리 법칙을 더 고도의 법에 종속시킴으로써 사람들 사이의 전쟁을 제거하거나 적어도 완화시키려는 사회의 운영 목적 자체에 반하기 때문이다.

  

  김학재는 뒤르케임의 사회학적 분석에서 도출된 분업화 이론을 통해 “판문점 체제의 기원과 성격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패러독스 전반에 대한 사회학적 질문의 통로를 열어 준다.”고 본다. 즉 “뒤르케임에 따르면 분업화가 충분히 진행된 사회에서는 유기적 사회연대(organic solidarity)가 발생하지만, 분업이 발전하지 못한 사회에서는 기계적 연대(mechanical solidarity)나 적나라한 힘이 지배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연대가 발전하지 못한 아노미 상태에서는 강요된 잠정적 휴전과 전쟁 상태가 만성적인 것이 되는데, 요컨대 강요된 휴전, 전쟁 상태, 무정부 상태는 곧 도덕적 힘, 권위, 사회연대의 부재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컨대 왜 남·북 간에는 사회적 연대가 아닌 강요된 정전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가? 동아시아에는 왜 사회적 연대보다 아노미적 경쟁 상태와 힘의 지배가 만연해 있는가? 동아시아의 전쟁과 갈등을 완화하고 종식시킬 도덕적 권위는 무엇인가?“ 등에 대한 통로의 역할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뒤르케임의 사회학적 분석틀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판문점의 정전 체제와 동아시아의 무정부 상태에 결여된 도덕적 권위란 단지 한 사회 수준에서 작동하는 개인 윤리가 아니라 국가와 지역, 국제사회와 전 지구적 수준에서 작동하는 초국적 권위의 차원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권위가 부재하다는 것은 곧 그에 관한 갈등과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라고 저자는 부연 설명한다.


  앞서 지정학적 변화의 예로 동아시아에 두 전선이 존재함을 피력하였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하게 격돌하던 미·중 무역전쟁은 잠시 휴전상태에 돌입해 있다. 지난 1일 아르헨티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내년 3월 1일까지 한시적 휴전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후 어디에서 불똥이 튀어 제2의 무역전쟁으로 비화할지 예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중국은 이미 ‘반도체 굴기’를 선포한 상태다. 2025년까지 중국 내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미국 역시 이를 호락호락 내주지는 않을 기세다. 이렇듯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이면에는 기술 수준에 따르는 군사력(무기체계)의 첨단화를 빼 놓을 수가 없다. 이는 동(북)아시아 지역안보에 있어서 평화체제 한반도를 상정했을 때 그 중요성에 한층 무게감이 실리는 문제이기도 하다. 동북아시아 3국(한국, 중국, 일본)이 확실한 힘(경제력+군사력)의 균형 상태(억제력, Deterrent Power)[각주:5]를 이루게 될 것이기에 그렇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 일본의 고민이 있다.


  특혜 받은 나라 일본의 역사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9월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Treaty of San Francisco)에 의해서다. 조약 제14조(b)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현행 조약에 명시된 경우를 제외하고 연합국은 연합국의 모든 배상 청구권을 포기하고, 전쟁 수행 과정에서 일본과 그 국민들이 저지른 행위로부터 발생한 연합국과 그 국민들의 다른 모든 청구권도 포기하며, 연합국의 점령에 따른 직접적인 군사적 비용에 대한 청구권도 포기한다.” 일본으로 하여금 독일이 걸었던 ‘사죄의 길’을 택하지 않아도 되는 구실을 만들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 잔재와의 끊임없는 외교분쟁, 미해결 상태인 전후 보상 문제 등을 낳았다. 이 일련의 상황에 대해 김학재는 “결국 '아시아 패러독스'는 단지 양자 간 방위조약만이 아니라, 비자유주의 체제 불인정 원칙을 통한 중국과 북한의 정치적 배제, 한국에서의 군사적 균형을 추구하는 판문점 체제, 일본의 경제적 포섭이라는 샌프란시스코 체제 등 한국전쟁기 자유주의 평화 기획이 남긴 세 가지 유산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흡사 개별 국가들에게는 오직 자기 방어권밖에는 허락되지 않는 홉스적 리바이어던과의 계약 질서 혹은 전형적인 ‘강자의 질서’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김학재 (2015), p. 538)


  지금도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와 반성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일본이다. 과거사와 관련한 그나마 의미 있는 언급이라는 것들이 1982년의 미야자와 담화[각주:6], 1993년 고노 담화[각주:7], 1995년 무라야마 담화[각주:8] 정도다. 이후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고 일본의 모든 정권들은 하나 같이 말은 했으나 언행일치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리고 최근에는(2015년) 아베 총리가 ‘사죄’가 빠진 ‘반성’ 발언으로 주변국의 빈축을 샀다.[각주:9] 그런데 이 샌프란시스코 체제 전선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 체제 탄생 과정에 결정적인 요인이었던 한국 전쟁, 즉 판문점 체제가[각주:10] 해체의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 간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상이 그것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한국 전쟁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으로 자연히 샌프란시스코 체제에 대한 재논의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레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으로 나아가는 시금석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미국에 대한 위협을 힘(Power), 긴급성(Urgency), 의지(Will) 등 세 가지 측면으로 분류”하면서 “힘(Power)의 측면에서는 러시아, 의지(Will)의 측면에서는 중국이 미국에 큰 위협”이라고 하였다.[각주:11] “긴급성(Urgency)의 측면에서는 북한이 시급한 문제”라는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이 기사에 따르면 최근에 탄도미사일 ‘에마드’를 시험 발사한 한 이란의 위협과 북한의 위협 정도를 비교한다면, “이란의 위협은 아직 지역적 차원(필자 주: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의 시험 또는 보유)이지만 북한의 위협은 세계적 차원(필자 주: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시험 또는 보유)”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외교계 인사 중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미국 외교협회(CFR)의 리차드 하스 회장은 교착상태에 빠진 미국과 북한 간의 핵 협상을 타개하기 위해 “미·북 양측이 협상의 최종 목적(end goal)이 뭔지 동의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상세한 조치들을 담은 로드맵 즉, 지침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며 “미·북 양측이 최종 목적 전에 중간 목적(intermediate goal)을 세우고 이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재, 외교, 경제적 보상 등을 적절히 섞는 등의 단계적인 조치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각주:12]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 일변도의 정책으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뒤르케임식 용어로 하자면 사회적 ‘연대로서의 평화’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Ⅲ. 나가며


  김학재는 오늘날 새롭게 필요한 평화의 기준은 무엇인가“라고 묻고 “교류와 접촉을 통해 관계와 사회를 형성하고, 관계의 구조적 불평등을 극복하며 사회 정의라는 가치의 달성을 지향하는 사회적 평화”가 자신이 제시하려는 해답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새로운 단계의 ‘사회적 평화’를 검토하기 위해, 판문점 체제를 하나의 ‘권위의 부재’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던 뒤르케임 사회철학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보자며(김학재 (2015), p. 555) 다시 뒤르케임을 불러낸다.


아노미(anomie)가 하나의 질병이라면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사회가 아노미로부터 고통을 받기 때문이며, 우리는 사회적 결속력과 규칙성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규제가 없는 무정부 상태에서 매번 갈등과 무질서를 마주쳐야 하는 개인은 매우 고통스럽다. 인간들이 항상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늘 전쟁 상태에서 살고, 서로에 대해 적대감을 느끼며 상호 불신과 긴장을 경험해야 하는 것은 아주 고통스러운 일이다.(뒤르케임, 『사회분업론』, pp. 22, 36~37)

  

  김학재는 “뒤르케임의 아노미 개념은 흡사 홉스의 자연 상태와 비슷한, 고통스러운 갈등 상황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강력한 국가의 건설이나 보편적 국제법의 구축이 아니라, 먼저 사회 자체의 분업의 전개로 인한 사회적 연대의 발전”이라고 주장한다. “뒤르케임은 분업을 통한 연대만이 아노미를 궁극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힘에 의해 강요된 타협’이나 ‘단순한 휴전’은 오래 지속될 수 없으며,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상호 불안한 상태가 계속되고 행위자 간의 접촉 빈도가 낮기 때문에 매순간 새롭게 상대방을 탐색해야 하므로 안정적인 관계가 불가능하다.”며, “분업의 발달 없이는 더 큰 사회가 형성되기 어려우며, 인류 박애에 대한 이상은 분업이 발달함으로써만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분업을 통해 서로 연결된 큰 사회의 형성이 바로 평화적인 공동체의 필수조건이라는 것이다.”라고 말한다.(김학재 (2015), p. 560)


  결론적으로 김학재는 “이제는 강제된 분업이나 불평등의 문제를 간과하는 자유주의 평화론의 고상한 규범적 훈계나, 허약한 이상을 비난하며 홉스적인 권력을 추구하는 현실주의의 이분법적 폐쇄 회로에서 벗어날 때이다. 국내외의 사회적 연대가 파괴되고 있는 현재의 조건 자체가 ‘연대로서의 평화’가 대안임을 잘 보여준다. 즉, 한반도 평화의 출발점과 궁극적 지향은 동아시아 지역 기구나 민족 통일, 안정된 국가가 아니라, 분업 관계로 연결되어 ‘연대가 흘러넘치는 사회’여야 한다.”는 것이다.(김학재 (2015), p. 563)


  판문점 체제의 극복 방안, 혹은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 방법으로 김학재가 제시하고 있는 사회적 ‘연대로서의 평화’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우선, 그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는 점에서 그렇고, 우리가 현실에서 두 눈으로 목도하고 있는 바와 같이 힘 있는 강자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정글과 같은 국제관계 하에서 '연대로서의 평화' 개념이 얼마만큼이나 설득력을 갖는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의문시 되기에 그렇다. 또한 평화의 한 방법으로서의 ‘사회적 연대’라고 광의의 의미로 이해하고자 하더라도 이 역시 '진부'하다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앞서 논의했던 '아시아 패러독스(한반도·중국·일본+미국)'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이는 마다해서도 안 되고, 또한 거역해서도 안 되는 동아시아의 확고한 미래상이여야만 한다. 그점이 중요하다.



  1. 페스팅거는 인지부조화 이론을 통해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인간의 비합리적 행동을 납득 가능하게 설명하려 하는데, 이 이론의 핵심 가설은 “인간은 자신이 인지하는 것 사이의 내적 조화나 일관성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강한 신념과 부정할 수 없는 실재(reality) 사이에서 발생한 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해 사회적 지지를 획득하려는 노력”으로 설명한다. [본문으로]
  2. 김학재, 『판문점 체제의 기원: 한국전쟁과 자유주의 평화 기획』, 2015, 후마니타스 [본문으로]
  3. ①북미 간 관계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협상들이 난항에 빠져 있는 이면에는 일본(아베정부)의 방해공작이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이 한반도 통일(평화체제)에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나 이를 좀 더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대미 로비설이다. 즉, 일본이 자금줄을 쥐고 있는 미국의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등이 일본 편향적, 한반도 부정적 연구 결과들을 쏟아내고 이를 미국의 주류 언론들이 받아쓰면서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 ②아베 총리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양국 간 영토갈등을 빚고 있는 쿠릴열도 4개 섬의 영유권 협상 타결과 이를 통한 평화조약 체결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본문으로]
  4. 경제적으로는 엄청난 규모와 밀도로 협력과 교환을 하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이에 걸맞은, 지역 차원에서 협력하고 공동으로 논의하고 결정하는 제도와 기구 없이 마치 유럽의 19세기 민족국가들처럼 서로 경쟁하고 전쟁과 군사적 충돌의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모순적 현상. [본문으로]
  5. 한 국가가 타국가를 힘으로 억누르려 하지 못하는 상태. [본문으로]
  6.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와 관련하여 당시 일본 관방장관이던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가 담화를 발표하여 교과서 기술(3·1 운동을 데모 또는 폭동으로, 대한제국 침략을 진출로 수정토록 함)과 관련하여 주변국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언급함. [본문으로]
  7. 당시 일본 관방장관이던 고노 요헤이(河野洋平)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군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과와 반성을 밝힌 담화. [본문으로]
  8. 당시 일본 총리였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가 50주년 종전기념일 담화를 통해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제국의 국민들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안겨줬다. 의심할 여지없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통절한 반성의 뜻과 진심어린 사죄를 드린다.”고 발표함. [본문으로]
  9. 아베 총리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반둥회의) 60주년 기념 연설에서 “2차 대전 당시 침략 행위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고 함. [본문으로]
  10. 김학재는 “뒤르케임의 통찰을 빌려 말하자면, 판문점 체제는 ‘권위에 의한 평화’가 아닌, ‘힘에 의해 강요된 임시적 평화’인 것이라고 한다.”(김학재 (2015), p. 526) 이를 뒤르케임식의 ‘연대로서의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김학재는 일부 국제법 학자들은 ‘사회 분업’에 따른 연대의 발전이라는 뒤르케임의 생각을 국제사회에 그대로 적용하려 했다고 주장하며, (김학재 (2015), p. 59) “공법 이론가 레온 뒤귀(Leon Duguit, 1859~1928)는 국가라는 개념은 일종의 형이상학적 허구이며, 법은 노동 분업이 이루어지고 사람들이 상호 의존하게 되는 사회적 사실(social fact)로부터 출현한 것으로 보았다. 알바레즈(Alejandro Alvarez) 역시 법과 정의, 법과 사회적 사실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법적 형식주의를 비판하며, 법이 사회변동과 대중, 개인들을 따라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알바레즈는 국제법 분야에서도 연대라는 이념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플리티스도 국제법은 사회적 사실로부터 등장한 것이며, 국제 영역에서 국가의 권리는 기능적으로 필요한 경우에만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존의 국가 간 국제법이 국가의 권리로 보장해 온 중립 개념은 근대적 상황과 맞지 않는다고 보았다.”(김학재 (2015), p. 590) 결국, “이들에게 법이나 국가는 사회 영역 즉, 경제적 산업화, 노동 분업, 사회적 연대라는 객관적 법칙의 기능을 담당하는 기구이자 사회 발전의 지표였고, 궁극적으로는 세계연방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고 지적한다.(김학재 (2015), p. 59) [본문으로]
  11. 2018년 12월 1일,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주 시미밸리의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재단(The Ronald Reagan Presidential Foundation and Institute)에서 개최된 연례 국가안보 토론회에서 한 발언. 자유아시아방송(RFA), https://www.rfa.org/korean/in_focus/nk_nuclear_talks/mattis-12032018131951.html [본문으로]
  12. 2018년 11월 28일 연방하원건물에서 주최한 토론회. 자유아시아방송(RFA), https://www.rfa.org/korean/in_focus/nk_nuclear_talks/ne-sm-11292018160536.html [본문으로]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