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정 보2011. 6. 21. 14:47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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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문재인 (가교,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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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님의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은 이미 전해 듣고는 있었으나 요 며칠 답답한 일이 있어 딴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관계로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제, 더 이상 미뤄둬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인터넷에 들어가 주문을 했더니 좀 전에 도착을 했군요.

 

받자마자 책을 펴 들고 읽기 시작했는데, 딱 5분만에, 불과 열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읽는 것을 그만두고 책장을 덮어버렸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려 도저히 더 이상 책에 시선을 두기 어려웠습니다.

 

아마, 이 책은 오랜 시간을 붙들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주체할 수 없이 밀려 오는 분노로 쉽게 페이지를 넘기지 못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2년 전 그날, 주말이라 아침 늦게까지 잠을 청한 후 인터넷에 들어가니 노무현 전 대통령님 사고 관련 기사가 뉴스 속보에 떠 있더군요. 처음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라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더군요.

 

놀란 마음을 진정치 못하고 텔레비전을 켜니 관련 속보가 속속 보도되고 있었고, 얼마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라는 비보를 접했습니다.

 

이리 저리 거실과 베란다를 왔다 갔다 하다가, 집사람과 둘이서 누가 먼저 랄 것도 없이 대충 조문 준비를 끝내고 집을 나와 봉하로 향했습니다.

 

토요일 오후 시간대라 차도 좀 막히고 해서 예닐곱 시간을 달려 봉하에 도착을 하니, 이미 꽤나 많은 분들이 분향을 위해 줄을 서 계시더군요. 분향소를 바라보며 우두커니 한참을 앉아있다가 줄에 서서 분향을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 우리 차례가 되었을 즈음일 겁니다.

 

일반인 분향을 잠시 멈추게 한 채 검은 양복을 입은 한 분이 분향소 옆에서 나와 헌화를 하고 절을 하는데 자세히 보니 한나라당 임태희 의원(현 대통령 비서실장) 이었습니다.

 

순간,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욱하고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무엇과, 다른 한 편에서는 그래도 저렇게 혼자 조용히 와서 분향하고 가는 저 사람이 가상하군 하는 그런 감정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때 그 양반한테 욕이라도 한 마디 해주지 못한 것이 그렇게 후회가 되고 그러는 겁니다. 그때는 정신도 없고 분노보다는 슬픔이 더 커 다른 생각을 전혀 못했는데, 슬픔이 분노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문재인의 운명이다 책을 펼치는 순간,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 한 숨 돌릴 겸 해서 그때 기억을 잠시 더듬어 봤습니다.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다시 또 책장을 펴 들 생각입니다만, 이번에는 몇 페이지나 진도를 나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