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2006년/시 사2010. 6. 19. 12:20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27일로 예정되어 있는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일본 방문 결단을 두손들어 환영한다. 물론 우리 사회 한쪽에서는 이를 놓고 굴욕외교다, 줏대가 없다는 등의 우려 섞인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일본과는 앞으로 영영 담을 쌓고 살겠다는 정도로 외교 단절까지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예정되어 있는 방일을 취소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아니 오히려 예정에 없던 일정이라도 잡아서 달려가 만나야 하는 것이 정석이다.
 
일본 주요 언론사 인터넷판 역시 반기문 장관의 방일 관련 소식을 정치면 및 국제면 기사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교류를 지속하면서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 대한 견해와 항의의 뜻을 직접 전달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지난 17일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직후 나왔던 '방일 부적절' 입장을 바꾸고, 전격적으로 방일로 선회했다는 구절에서는 마치 우리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다소 씁쓰름하기는 하다.
 
다소 경솔하고 성급하게 대응했던 이런 부분과 관련해서는 철저한 반성과 원인 규명이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아직까지 대일 외교 로드맵 조차도 만들어 두지 않았다면 더욱 큰 일이다. 설마 그런 일은 없을 줄 믿겠지만, 다시금 상황에 맞는 대처법과 대일 외교의 큰 틀을 재점검해 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당연히 그 속에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과 동북아시아의 평화, 그리고 참여정부의 핵심 과제인 동북아 균형자론이 주된 줄기가 되어야 함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래도 우리가 적극 나서야 한다
   
그러나 이처럼 한국 외교통상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가 몇일 사이에 입장을 바꾼 이면에는 일본쪽 움직임이 상당히 작용했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특히 지난 20일 한국을 방문한 야마사키 타쿠(山崎拓) 자민당 전부총재의 역할론에 상당한 무게를 두고 싶다. 야마사키 의원은 고이즈미 총리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최측근이고, 가끔은 해결사 역할까지도 마다 않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경상대학에서 가진 강연을 통해 한·중·일 경제공동체 실현을 강조하면서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 관계개선이 절실히 필요한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 그리고 역사교과서 왜곡 등이라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한국 정부와 한국 국민들을 의식한 간접적인 문제제기요 화해의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가지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이 야마사키 의원이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 참배와 관련해서 고이즈미 총리와 의견 충돌을 빚었다던가, 아니면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발벗고 뛰어다니고 있다는 얘기를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자,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왜 이 시점에 한국을 방문해서 이런 요지의 발언을 했느냐라는 점일 것이다.
 
이런 모습은 결국, 이들의 철저하게 계산된 역할분담으로 봐야 한다. 똑 같은 입장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쪽은 싸움을 걸고, 한쪽은 말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의 발언은 좀 더 냉정한 시각으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22일부터 서울에서 개최된 지구온난화와 동북아시아 환경문제를 위한 한·중·일 환경장관 회의에 일본의 코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최근 한 주간지가 고이즈미 총리와의 결혼설을 기사화해서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환경상이 참석을 했다. 물론, 이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행사일 것으로 판단을 하지만 이들과 고이즈미 총리와의 관계, 그리고 11월에 새롭게 구성될 새내각에서 이들이 맡게 될 자리 등을 고려해 봤을 때 일본 정부의 특사, 내지는 모종의 메시지 정도는 지참했을 것으로 봐도 전혀 무리가 없다.
 
우선 야마사키 부총재는 차기 내각의 외상으로 유력하고, 코이케 환경상은 정부 대변인격인 관방장관 기용설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가져온 보따리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점쟁이가 아닌 이상 속속들이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이런 저런 것들을 참고로 추론해 본다면 아마도 야스쿠니신사를 대체하는 국립추도시설의 건립을 반기문 장관 방일 선물로 준비하지 않았을까 싶다.
 
몇일 전, 이 국립추도시설과 관련해서 우리 언론에서는 일본 정부의 여론 조작이라고 기사화 하는 등 한·일간에 약간의 소동이 빚어진 일이 있었다. 사태의 전말은 호소다(細田)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장에서 국립추도시설과 관련한 국민여론 조사를 몇 차례에 걸쳐 한 적이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가 왜 공개하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에 이를 다시 취소해서 은폐 의혹만을 키운 채 끝이 난 사건이다.
 
이것이 일본 정부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한 주변국의 반발 무마용으로 준비해 둔 히든카드 였는데, 관방장관의 실수로 사전 유출되면서 일어났던 해프닝 아니었나 싶다.
 
여기에 더해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현안 가운데 하나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의견조율과 추후 지원문제가 그것이다. 그리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납치피해자 문제와 북일 수교를 향한 고이즈미 정권의 더딘 행보에 한국정부의 도움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 해결 가능한 현안으로는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의 무비자 입국 문제일 것으로 판단된다. 당초 한·일 양국 정부는 만국박람회 기간 중에만 한국인의 무비자 입국을 허용토록 한다는 방침이었으나 이를 내년 2월까지로 연장시켜 놓은 상태였는데, 이번 기회에 아예 비자 완전 철폐에 까지 이를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진다.
 
물론, 이 외에도 몇 가지 더 있을 것으로 사료되나 그 동안 우리 정부가 끈질기게 요구해온 핵심 사항이자 실현 가능성이 높은 사안이라는 점에서 이상의 것들에 대한 기대는 사뭇 크다.
 
그러나 이는 설사 일본 정부의 긍정적인 메시지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먼저 발벗고 나서서 풀려고 달려들어야 하는 사안들이라는 점을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외교통상부가 발표한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한 한국정부의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올바른 역사인식과 실천을 통해서 만이 한일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라는 공식 입장은 아주 옳다.
 
한가지 더 첨언하자면 이와 같은 우리의 공식입장은 일본 정부나 일본의 고위 관료에게만 전달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일본의 언론과 매스컴, 그리고 일반 국민들을 향해 전방위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 일에 우리 정부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분들이 더욱 활발하게 나서야 한다. 반기문 장관께서도 이번 방일에 적극적으로 매스컴을 활용하는 전술을 계획하시기를 바라고, 노무현 대통령께서도 기회가 된다면 일본 총리를 비롯한 각계 인사들, 특히 매스컴과의 잦은 접촉을 절대 마다하지 마시기를 간곡히 부탁 말씀드린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이후 실시한 언론사 여론조사에 의하면 총리의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보다는 찬성이 많았다고 한다. 이는 종전의 여론조사 결과와 판이하게 다른 것으로 이런 분위기의 계기가 된 것이 지난달 있었던 중의원 선거에서의 고이즈미 열풍과 무관하지 않다.
 
계기야 어찌 되었든 찬성하는 이유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이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이 반대하니까라는 대답이 의외로 많았다는 점이다. 즉 주변국에서 반대한다고 데모하고, 일장기 불사르고 하니 반발심리가 생겨나고, 매스컴은 또 그것을 반일 감정으로 매도하는 상황 하에서 그런 생각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싶다.
 
그래서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이들에게 다가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들에게 우리가 반대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 해 줘야 한다. 우리의 반대가 반일이 아니라 항일인 이유, 그리고 이와 같은 항일 행동이 마치 자국에 대한 내정간섭이라도 되는 냥 잘못 인식하고 있는 이들에게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일을 불행하게도 우리가 해야 한다. 이 사람들 정말 모르기 때문이다. 하기는 한국(주변국)이라는 나라에 관심 갖기 시작한 게 일천하니 오히려 한국(주변국)을 안다는 게 이상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실 이번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나 지난달 있었던 중의원 선거 결과를 놓고 일각에서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가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으나, 이 또한 하나의 원인으로 파악할 수는 있을지언정 전부라고 단언하기에는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나는 지난 총선에서 고이즈미 자민당이 승리할 것으로 조심스럽게 예상은 했었지만, 나타난 결과와 같은 압승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조차 해보지를 못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테고, 나 역시 앞선 글에서 하나의 이유를 제시하긴 했으나 좀 더 실감나는 분석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자민당 압승의 최대 기여자는 프리타 (정해진 일정한 직장 없이 파트타임으로만 생활하는 사람들, 프리 아르바이터[free part-time worker]라는 일본어 준말)와 니트족 (NEET는 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ing의 두문자로 청년 무직자를 가리키는 신조어)으로 대변되는 젊은 세대라는 주장이다. 자민당의 고정표에 비례표 500만표가 더해져서 압승을 거두게 되었는데 그 500만표의 내역을 분석해 보니 프리타가 400만, 니트인구가 80만에 이르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고이즈미 총리를 지지하는 이유가 사람을 참 당혹스럽게 만든다. 거두절미 하고 고이즈미 총리가 '너무 멋있기 때문'에 그를 지지한다는 대답이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으며, 정작 중요한 고이즈미 총리가 외치는 개혁의 실체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하겠다.
 
이 젊은 세대들이 보기에 고이즈미 총리는 마치 게임이나 만화 속의 주인공과도 같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반대하는 적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특출한 카리스마, 게다가 한치의 양보나 머뭇거림도 없이 단 칼에 적을 베어버리는 단호함과 테크닉, 가히 상상 속의 주인공에 버금가는 이런 점들이 젊은이들을 열광케 하는 요인이란다.
 
특히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와 불황 그로 인한 실업률의 증가로 갈 곳 잃은 청년 실업자들의 불만과 불안이 이처럼 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모습으로 표출되는 양상인데,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의 사이에 생기는 묘한 동료의식의 발로로 보여지는 최근의 이러한 경향은 일본사회의 엄청난 손실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결국 이들이 고이즈미 개혁의 최대 희생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바로 이와 같은 배경을 뒤로 하고 있는 게 오늘 일본 사회의 참 모습임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들의 움직임에 절망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되지 않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올해는 한일 우정의 해이기도 하다. 이 행사의 본래 취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자.
 
한국과 일본이 불행했던 과거를 딛고 친구로서의 우정을 나누어 보자는 것 아닌가? 그런데 마주잡고 악수를 나누던 그 손의 온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별을 이야기 해서야 되겠는가? 철 없는 친구가 실망을 줘도 친구는 친구인 것이고, 잘못된 길을 가고자 한다면 두둘겨 패서라도 바른 길이 무엇인지 알려줘야 한다. 배신하는 친구를 보고 누군들 분통터지지 않겠는가마는 그러나 그래도 그게 우정을 나눈 친구로서 우리의 도리이다.
 
달려가자. 가서 만나서 따질 것은 따지고, 싸울 것은 싸우고 또 그렇게 부딪혀보자. 그리고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보자.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