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현재/시 사2010. 6. 19. 01:54

어제 어느 신문 기사에 보니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도시가 일본의 수도 도쿄라고 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도쿄뿐만이 아니라 10위 안에 일본의 주요 도시들이 4개(도쿄, 나고야, 요코하마, 고베)나 들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사 아래에 달린 댓글들을 보다가 이 글을 쓸 생각을 했습니다. 내일 모레 일본으로 워킹을 떠난다는 어떤 학생의 한숨 소리가 제 귀에도 들리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실에 좀 더 접근을 한, 살아있는 생활 물가를 전해드려야겠다 싶어서 이 글을 시작했습니다.


그 기사에 의하면 물가 비교 대상은 각국의 생필품 가격과 서비스 가격이라고 되어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품목을 어떤 방식으로 산출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없어서 좀 아쉽기는 합니다만, 어차피 이 글의 성격이 그렇게 정확한 산술적 수치에 근거한 글쓰기가 아니기 때문에 저도 두루뭉술하게 한 번 써 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일본은 물가가 비싼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국가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일면 맞기도 하고, 일면 틀리기도 합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비싼 것은 굉장히 비싸고, 싼 것은 또 무지하게 싸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비싼 것의 대표적인 품목 중에 하나가 바로 교통비일 겁니다. 특히, 신간센 요금, 전철 요금, 버스 요금 등이 그렇지요. 또 하나는 이게 가장 피부에 와 닿는 건데, 캔 음료 가격입니다.


여행이든, 공부든, 출장이든, 어떤 이유로든 일본을 방문하게 된다면 공항에 내려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 중에 하나가 자판기 커피를 하나 빼 먹거나, 캔 음료를 하나 사 드시는 것일 텐데요. 제가 아는 분들 중에 일본에 처음 오셔서 부담 없이 캔 음료 빼 드시는 분 아직 많이 못 봤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판기 캔 음료 하나에 120엔 정도를 하는데요. 이걸 한국 원으로 환산을 하면, 오늘 환율이 약 1320원 정도 하는 것으로 봐서 캔 음료 가격은 우리 돈으로 1590원 정도가 되겠지요?


음, 1600원에 캔 음료 하나. 뭐 지금이야 우리도 물가가 많이 오르고 했으니까 그러려니 합니다만, 우리나라에서 캔 음료 하나에 600~700원 하던 때에는 정말 그거 하나 사 먹는데 보통 일본생활 경력 3개월이 필요했습니다.^^


자, 여기까지가 아주 일반적인 일본 물가 이야기이구요. 지금부터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을 좀 적어 볼까 합니다.


그렇다면, 일본 물가가 정말 그렇게 비싸기만 하다면 일본 서민어은 어떻게 살겠나? 라는 의문이 드실 겁니다. 샐러리맨의 월급이 우리나라 보다 엄청나게 더 크게 높은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이런 의문을 해소해줄 수 있는 일본 사회의 특징 두 가지를 들어서 제 생각을 적어볼까 합니다.




첫째, 양극화의 고착


우리가 소위 선진국이라 부르는 국가들을 보노라면 그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양극화 아닌가 싶습니다. 양극화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욕망을 잔인하게 짓밟아 버리는 습성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인데요. 양극화가 심화되면 오로지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극도의 개인주의적 사고가 만연해 이타심이 없는 물질만능 사회로 변질시켜 버립니다. 결국은 개인 간의 불신과 반목, 상대적 박탈감 등의 부작용이 사회 문제화로 나타나곤 합니다.


일본 사회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참 재미있는 현상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쉽게 설명 드리면, 이런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습니다만, 고급과 저급의 공존이라는 사실입니다. 뭐, 고급이라는 것은 어느 사회에나 있는 것이니까 여기서는 저급(하품)만을 언급토록 하겠습니다.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으로 미국조차도 따라 잡을 것처럼 승승장구하던 일본이 90년대 들어 누구도 예측치 못했던 버블 붕괴라는 쓰라린 고통을 맛보게 됩니다. 아마도 일본이 한 참 잘 나갈 때, 그때가 지금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조금 여유가 있다 싶은 사람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골프를 즐기고, 해외로 여행을 떠나고, 그럴듯한 식당에서 가족 외식을 즐기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미식가가 늘어나고, 바로 이게 버블이 붕괴되기 전까지 일본 보통 사람들의 생활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버블이 꺼지면서 부동산 폭락과 함께 노동시장은 불안정하게 돌아가고, 임금삭감과 비정규직의 확산, 늘어나는 실업률은 마치 다람쥐 쳇바퀴처럼 다시 내수시장의 침체를 불러오고, 이는 또 고용시장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고, 마침내는 이런 악순환의 반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구조적인 경제침체기를 맞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국민들이 중산층이라며 자랑스럽게 떠벌리던 일본 사회는 중산층의 붕괴라는 혹독한 시련 앞에 사회적 약자가 급증하게 됐습니다. 노년은 홈리스로, 젊은이들은 프리타로 전전하며 힘겨운 삶을 살게 됩니다.


사회적 위기가 어떤 이에게는 기회로 다가오기도 하는 법인가 봅니다. 바로 그런 사회적 약자를 지탱케 해 주는 의식주 관련 산업이 일본 사회의 새로운 비즈니스로 자리를 잡으면서 이런 틈새시장에서 대 성공을 거두는 기업가도 출현하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일본 먹거리 중에 규동이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식으로 표현하자면 소고기 덮밥 정도가 될 겁니다. 그런데 이게 맛도 기가 막히면서 가격도 아주 저렴합니다. 뭐, 꼭 규동 뿐만 아니라 규동 가게에서 파는 대부분의 메뉴들이 한 끼 식사로도 부족함이 없으면서 가격이 싸고 양도 제법 된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규동 한 그릇에 보통 250엔~300엔 정도 할 겁니다. 현재 환율로 환산을 하면 우리 돈으로 약 4000 원이 채 안 되는 가격입니다. 그 외의 메뉴들도 400엔 안쪽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까 물가 비싸기로 소문난 일본 도쿄에서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가격들인 셈이지요?


그리고 서민들에게 빼 놓을 수 없는 게 술 아닙니까? 간단하게 일본식 선술집이라는 이자카야를 예로 들어 볼까요. 일본인들은 주로 혼자서 술 마시기를 즐기니까 크게 부담 없이 적당히 취하기에는 이곳만큼 좋은 곳이 또 없지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술집이라는 삼겹살집에 가서 남자 둘이 소주 2~3병에 고기 좀 먹으려고 하면 보통 3~4만 원 정도가 들 겁니다. 마찬가지로 일본 이자카야에 가서 남자 둘이 적당히 취하고자 해도 아마 저 정도 금액이면 충분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입는 것 하나만 더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성황리에 팔리고 있는 유니클로라는 메이커의 옷이 있습니다. 사실, 이거 우리나라 대기업이 들여와 팔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아주 저가브랜드 이지요.


주로 젊은이들과 서민들이 즐겨 입는, 티셔츠 한 장에 천엔 정도 하는 아주 저가 의류입니다.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후에는 6~7천 엔짜리 재킷도 만들어 팔고, 파카도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만, 초기에는 주로 천 엔이나 2천 엔 하는 물건들이 주를 이루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지금까지 나왔던 저가 의류에 비해 원단과 품질이 우수하고, 디자인이 감각적이라는 이유로 굉장히 성공을 거두었다고 합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물건을 필요로 했던 일본 사회의 시대적 배경도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일본은 전체적으로 물가가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일반 서민들이 생활하기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사회적 기반이 조성되어 있다는 점을 말씀 드리고, 바로 이게 자민당 정권 50년이 만들어 놓은 병리현상이라는 말씀과 함께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둘째, 맞벌이


자, 저는 위에서 몇 개의 예를 들어 물가가 비싼 일본이지만 서민 생활에는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저급 물건도 산재해 있어 일반적인 서민 물가는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나 빼 놓은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드리려고 위에서는 의도적으로 거론하지 않은 것인데요. 의식주 중에 하나, 주택과 관련한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위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정말 그게 다라면 일본 서민들의 삶이 그렇게 팍팍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거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잘 알려져 있는 것과 같이 일본도 집값 비싸기로 소문난 동네 아닙니까? 버블 붕괴 이후 부동산 가격이 많이 내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특히, 과거에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주택 대출을 받아서 장기간에 걸쳐 대출을 갚아 나가는 방식으로 집 장만을 했습니다만, 부동산 경기의 악화로 주택을 소유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 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로금리라는 유혹을 앞세워 집 장만을 권유하는 금융권의 영업 공세에도 불구하고 월세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집값 때문인 것이지요. 이제 더 이상 일본에서는 집이 투자(투기)의 대상이 아님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머지않아 우리도 그리 되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월세로 지출되는 돈이 장난 아니게 많다는 점입니다. 도쿄에서 4인 가족이 생활하려면 적어도 월세로 100만 원은 지출해야 그냥 저냥 살아갈 수 있습니다. 괜찮은 맨션을 얻으려고 한다면 월 150만 원 정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한 사람 월급으로 생활하며 이 정도를 추가로 지출해야 한다면 도대체 얼마를 벌어야 이게 가능할까요? 바로 이런 이유로 많은 일본 가정주부들이 맞벌이 전선에 뛰어 들고 있습니다. 물론, 맞벌이 하는 분들 중에는 정말 자신의 일이 좋아서 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오직 먹고 살기 위한 돈벌이 수단으로 맞벌이를 선택하신 분들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일본에서 공부할 때, 학교에서 공부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거의 밤 10시 정도였습니다. 그 시간에 전철을 타면 주로 퇴근하는 직장인들과 함께 가게 되는데요. 그 분들 중에는 가정주부로 보이는 분들도 꽤나 됩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는 많은 분들이 눈을 감고 잠을 자면서 가지요. 하루 일과에 지치고 피곤해서 그럴 겁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도대체 사람이 산다는 게 뭔가? 또 가족이라는 건 뭔가? 일주일 내내 아침 7시에 집에서 나와 밤 10시나 되어야 귀가를 하고, 집에 가자마자 씻고 잠자리에 들면 또 깨자마자 출근을 하고, 주말이면 피로회복 차원에서 늦잠이라도 자 줘야 하고, 또 그렇게 하루가 가면 다시 일터로 향하고, 가족이란 같은 집에 산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인가? 이게 사람 사는 모습인가?


이런 이유로 저는 열심히 일하는 것과 함께 사람답게 사는 것도 잊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삽니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맞벌이가 보편화 되어가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여성의 일자리 창출 문제가 중요한 사회 의제 중에 하나이기도 하구요. 특히, 애들 학원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하시는 분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은 연령에 관계없이 정말 많은 주부들이 맞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분들 중에 많은 수가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일을 선택하신 것이겠지요?




Posted by 강동완(국제정치학 박사)